새로 입주할 아파트 앞에 자리잡은 구둣방 아저씨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용기가 부족해 침묵을 지켰을 뿐, 마음은 사랑으로 그득했다.

나는 어제 수개월동안 틈만 나면 들어가서 기웃거리고 의견을 보태던 예비 입주자 카페를 탈퇴했다. 진짜 우리집이 되는 이 보금자리가 어떤 모습으로 탄생하게 될 지 궁금했고 집이라는 자산가치를 위해 솔선수범 고군분투하는 이웃들의 행적이 경이롭기도 경탄스럽기도 해서 격려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 사실은 소설을 읽는 것보다 흥미진진하게 진행되는 사태를 가까이서 지켜보고도 싶었다 (우리 아파트는 부도난 회사 건물을 인수, 재정비해서 분양하는 물건이다). 그래서 회사측과의 미팅에도 참석해 보고 입주자 회의에도 적극 참여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세세한 것에 마음을 쓰고, 시림들은 상상보다 집에대한 열정을 엄청 품고 살아가고 있으며, 기대보다 많은 득템은 노력에 의해 취득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파트는 나날이 고급화 되고 건실하고 화려하게 변신해 갔다. 그런데 그 흐름을 타고 완결편격으로 구둣방 아저씨 컨테이너가 이슈로 등장했다. 몇몇 강경파 입주민이 안전과 미관과 아파트의 가치라는 관점으로 구둣방 철거를 요구했고 결국 입주자 대표위원회에서 그 안건을 받아들였다.

시청에서는 민원이 들어온 이상 처리를 하는 것이 규칙이라고 했다. 불법이므로 합법화 되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애초에 불법을 눈 감아 준 것은 그들이었다. 법은 때에 따라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는 연인들의 사탕발림 약속이 아니다. 컨테이너가 인도를 점유하는 일이 불법이라면 애초부터 그런 상황은 발생하지 말아야 했다. 그랬다면 구둣방 아저씨는 처음부터 합법적으로 생계터전을 마련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의식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적어도 법은 사람을 위한 장치여야 한다. 줏대와 정칙이 없는 행정은 법을 논할 자격이 없다. 이제부터라도 준법을 하고 사회질서를 바로 세우기위해서라면 먼저 과도기에 발생될 문제의 대책부터 마련되어야 한다. 일이란 나도 살고 너도 살게 이루어져야 하고 일에는 먼저 할 일과 나중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봐주기식 행정이 인정인 줄 알고 행해진 주소가 현재라면(많이 바뀌었지만 말이다) 그 인정은 끝까지 책임을 수반해야 한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조금이라도 나누어야 한다. 그것이 바른 나라 바른 법이다. 내가 한국에 와서 놀란 점중 하나가 많은 사람들이 법을 뜯어 고칠 양으로 일을 진행한다는 사실이었다. 규칙이나 법을 바르게 인식하고 따르려는 마음보다 어떻게든 자신이 원하는 바를 관철시키려는 의지가 강해 보였다. 아마도 수시로 바뀌는 정책기조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대학입시정책, 도로교통법, 부동산 관련법… 올해 다르고 내년 달라지는 정책과 법규는 국민들의 기질을 이상하게 형성시켜 놓았다. 개정은 좋으나 어떤 정책이든 먼 미래를 바라보고 발생될 많은 케이스를 시뮬레이션 해보고 각각에 대한 대응책을 함께 마련한 후 확정이라는 단계를 거치는 신중함이 절실히 필요하다. 

각설하고, 컨테이너 이야기로 돌아가서, 

내가 입주민들의 구둣방 강제철거에 반기를 들게 된 계기는 그들의 의도로부터 기인한다. 범죄자의 공판에서도 범법행위가 이루어진 배경과 진의는 형량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사건에는 정상참작이라는 것이 작용한다. 만약 입주민들이 법을 바로 세우자는 시민정신으로 이 일을 추진했다면 나는 슬프지만 할 말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편리와 안전과 미관을 도모하느라 한 사람과 그의 가족의 생계를 위협하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았다. 나는 마지막으로 극이기주의에 항변하는 호소문을 쓰고 카페를 탈퇴했다. 그곳에 더이상 몸담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였다. 그리고 일은 후에 벌어졌다. 숨을 죽이고 사태를 지켜보던 여러 주민들이 용기를 내어 자신의 입장을 밝혀주었던 모양이다. 내 전화번호는 또 어찌 알았는지 여러통의 문자와 전화도 받았다. 입대위에서는 해결책을 모색하고 여기저기서 가슴 따뜻해지는 말들이 쏟아졌고 아파트는 다시 순해졌다.

그랬다… 한국은 본디부터 따뜻한 나라인 것을… 조금만 나와 상관없는 제 삼자를 염두에 두는 문화가 정착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한 나라가 될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