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새벽 약간의 충격을 받았고 그래서 이렇게 살면 나만 손해지… 라는 생각이 들 때까지 이불을 뒤집어 쓰고 뭉기적 거렸다. 발바닥에선 땀이 삐질거렸다. 옅은 구름조차 끼지 않은 날의 햇살 덕이 아니라면 온 종일을 이렇게 소일하고 싶었을 지 모르겠다. 미동부시간 5시이니 한국 시간으로는 아침 7시에 큰 아이가 응시한 대학의 합격자 발표가 있었다. 바삐 등교를 서두르는 아이에게 떨어지면 다음 준비 열심히 하자,라는 말을 건넸다. 어제밤까지만 해도 천하태평이었는데 왠지 발표시간이 다가오자 가슴이 무거워졌다. 좋은 일이 생길 때는 이런 법이 없다. 나는 감이 지랄맞도록 발달한 것이다.

실제로 떨어졌다는 통보를 받고나니 잠을 자고싶다는 욕망이 쏟아졌다. 침대에 누워서 문득 며칠 전에 했던 생각들을 떠올렸다. 막상 되면 어떻하지? 딸애를 이억만리 타지에 어찌 혼자 떨어뜨리누? 막상 되면 어떻하지? 더 좋은 학교에 갈 아이를… 원서조차 넣어보지도 못 하고 아까워서 어쩌누(decision이었기에)… 막상 되면 어떻하지? 더 노력해야 하고 더 성취동기를 불태워야 하는 과정을 배우지 못해서 어떻하지?… 현재의 입장을 고려해서 적당히 안정권이라 생각한 곳으로 지망을 했으니 말이다. 별 씨알도 먹히지 않을 생각을 잠시나마 했었다는 기억은 그래서 부끄럽다. 그대로 합격통지를 받았더라면 내 입에서 한두번쯤은 새어나왔을 그 투정들이 물거품이 된 건 어찌보면 다행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나를 깨우치신다. 지금으로서는 딸아이가 어떤 학교에 가더라도 갈 수 있다는 자체에 감사해야 하는데 말이다. 현재스코어 전교 꼴등의 커다란 잠재력을 믿고 그 능력을 꿰뚫어 볼 줄 아는 그 훌륭한 학교에게 말이다.

불합격 소식을 듣고 잠으로나마 현실을 피하고 싶었던 이유는 자연스럽게 생각이 '미국에 있었다면 어땠을까?'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이미 아는 답이었지만…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놓아야 하는 상황에서 마르고 닳도록 뇌세포를 혹사시킨 후에 귀국을 단행했는데 말이다. 입시교육과는 거리가 먼 부모 덕에 학교생활을 혼자서 꾸려온 딸아이는 여러 분야의 우등생이자 모범생이었다. 친구도 좋아하고 놀기도 잘하면서 전공하고자 하는 목표가 일찍부터 정해져서 그 계단을 씩씩하게 올라가는 중이었건만 한국에 온 이후로는 어쩔수 없이 그 활동들이 중단되었다. 한국에 적응한 것만도 대통령상감이니 욕심을 버리자 했건만 입시에 필요한 여러 성적들을 각각 한번씩에 99%로 확보해놓은 업적이 쌓이니 혹시나… 하는 미련을 안 가질 수 없었다. 그런데… 역시 내신 꼴찌의 벽은 두터운 모양이다. 미국 커리큘럼과 동떨어진 전형적인 한국 교과과정도 걸림돌이었으리라. 중고등때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성공한 한국 아이들의 사례로 미루어보아 그 반대의 상황을 어설프게 짐작한다면 딸아이는 그저 제 나라로 돌아가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저조한 성적에 머문 학생이 되었을 지 모르겠다. national merit schplarship fianal의 결과처럼 말이다 (아직 발표는 안 났지만 전교 꼴등에게 주어질 상은 아니므로).

미국대학을 응시하는데 가장 어려웠던 점은 네비앙스의 부재였다. 또 두 학교의 내신을 더할 수도 뺄 수도 나눌 수도 없는 것도 모호함 자체였다. 조언이나 도움은 커녕 추천서라고는 써본 적이 없는 선생님들께 추천서를 부탁드리는 일도 골칫거리를 안겨드리는 것같아 죄송스러울 따름이었다. 어떻게 어떻게 바쁘신 선생님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추천서와 커먼앱을 완성하긴 했지만 상황이 하도 모호한 지라 제대로 올라갔는 지도 모르겠다(카운셀러가 올리는 부분도 꽤 복잡해 보였다). 이렇게 우리 딸만의 고유한 미국대학응시를 마치고 결과가 어찌 나올 지 꽤 흥미진진하긴 했었다. 막상 아니라는 소식을 듣자 가슴 한 켠의 무거운 돌덩이 내려올 생각을 안 한다. 이럴 땐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하리라. 마인드 컨트롤은 내 특기이자 장점이다. 심호흡을 하며 생각의 발상을 찾아들어가 그 물꼬를 비틀어 튼다.

딸아이가 계속 미국에 있었더라면 대학은 훌륭히 해결되었을 지 모르나, 딸아이는 뼛속 깊이 한국인이라는 의식을 갖지 못했을 터이고 한국도 모르고 한국 사는 부모형제와는 동떨어진 색을 띈 채 그렇게 독자적으로 살아가게 되겠지. 가족끼리 서로 공감대가 형성될 수 없는 관계… 내겐 딸이 대학에 떨어진 이 현실 보다도 그 가상이 더욱 곤혹스러우니, 차라리 이 편이 낫고나… 게다가 얼마나 많은 경험을 하고 내적 자산을 축적하는 중인가 말이다… 인생은 현재의 기온이 춥다고 다 꽁꽁 얼어 박히게 되는 박제물이 아니다. 살다보면 영하의 날씨에도 봄 날이 되는 공간이 있음을 알게 된다. 창을 남쪽으로 뚫어놓는 작업… 딸아이는 그것을 하는 중일테지… 먼 미래를 내다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ps. 좋은 소식으로 많은 분들에게 희망을 드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 있어요. 하지만 현실을 그대로 보고?하는 것이 귀국을 고려하시는 분들께 보다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생각에 이 글을 포스팅했습니다. 여러 가정에 희망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어서 더 간절했던 합격이지만 불합격으로 얻어지는 또다른 교훈이 왜 없겠어요. 저만해도 대학 재수를 하면서 무럭 성장을 했었거든요.^^ 성공을 위한 실패!!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지요^^ 앞으로도 아이들에게 일어나는 일을 가감없이 올릴거예요. 우리 딸들은 이러했지만 다른 아이들은 또 다를 수 있음을 잊지 마시구요. 그저 이런 일도 있겠구나, 감안하시면 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