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당신답지 않게 왜이래… 라고 묻는데 만 47세의 내 삶이 밟는 현재의 인생궤도가 이런 트랙이라면 이도 또 하나의 내 모습으로 고착화되어 곧 나답게 보일 날이 올 것이다. 치~ 먼저 변했던 건 누구인데… 변했다가 반쯤 돌아온 모습으로 이젠 원래 그랬던 것처럼 사는 남편마냥 아마 내 모습도 곧 그렇게 안정기에 들 날이 도래하겠지...

남편도 남편이지만 솔직히 더 낯선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나, 참 열심히 살았는데… 공부를 매우 열심히 했다고는 할 수 없으나 중 3하고 재수 때만큼은 열심히 했고 대학 때는 동아리활동에 미팅에 어학원에… 다시 하라면 벅차서 소화하지 못할 행보를 걸었고(미팅을 하루에 세 탕을 뛴 적도 있다) 취직해서도 과외 알바에 수영에… 그리고 결혼해서는 총체적으로 열심히 육아에 남편 뒷바라지를… 그러면서도 자신을 위해서 영어와 한국문학에 최선을 다해 정진해 왔던 것을… 쓰기에 열정이 생겼을 때는 쓰다가 졸리면 소파에도 눕지 않고 식탁에 엎드려서 쪽잠을 자고 감자를 볶다가도 한 줄 야채를 썰다가도 한 줄… 씻지도 않고 쓰다가 아이들 픽업해야 할 시간이면 총알같이 모자 쓰고 튀쳐나가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그렇게 쓴 소설들을 몇몇 국내 굴지의 출판사에 보냈다가 공손하게 내 글의 성격에 맞는 다른 출판사를 찾아보라는 답장을 받았을 때도 뭐 그런 거지… 첫 술에 배부르랴, 쿨하게, 새롭게, 또 쓰기 시작했었지... 그런데 과유불급이라… 언제부턴가 의자에 앉으면 오른쪽 좌골신경이 눌려서 그 통증에 앉는 일이 고통이 되버린 이후에는 마음이 좌불안석이었지만 몸을 다스리는 일이 먼저란 생각에 과감히 앉기를 포기했던 시간도 있었다. 그래도 심장에서는 항상 무언가를 열망하고 추구하고 노력하는 피가 쌩쌩 돌고 있었는데…

요즈음의 나는… 그 어떤 것에도 흥이 나지 않는다.. 일단 내가 무언가 할 수 있는 사람이란 생각도 안 들고 무언가 하고 싶다는 욕구도 일지 않고 딱히 재미 있는 일도 없어보이고… 책읽는 일도 글쓰는 일도, 인문학 강좌도, 알바구직도… 그냥 그렇다.

아무래도 흔히들 말하는 갱년기 무기력증에 빠진 모양이다. 호르몬이 이토록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무력증이나 하다못해 산후 우울증도 겪어본 적 없는데다 인생에 있어서 어떤 비극?이 벌어져도 (꿈은 많이 꾸지만) 불면이란 단어를 내 사전에서 발견한 적이 없었는데 요즈음은 괴기영화에서 못된 유령이 자는 척하다가 혹은 죽은 척 하다가 스르륵 뜨 듯 눈이 떠진 후엔 도통 잠의 세계로 되돌아가지지 않는다. 마음 다스리는 일에는 천부적인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건만 나는 낯선 내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과거지사 착각해 온 한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니, 지금껏 나는 성격이 좋았던 것이 아니라 호르몬이 좋은 여자였던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혹...

당신이 현재 우울하거나 소심하거나 무기력을 느끼고 불면증에 시달린다면, 그리고 신세한탄에 몸과 마음이 늘어졌다면 그건 당신이 못나서가 아니라 호르몬의 농간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주기를... 당신은 찬찬히 보면 멋지고 쿨하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담대한 매력을 지녔지만 단지 어떤 호르몬이 원활히 분비되지 않거나 혹은 발란스가 깨졌기 때문에 후져보이는 것이다. 웃고,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글을 읽어 감동을 받고 계산없이 사랑하며 여행을 가서 멋진 광경에 자아를 망각도 해보고 이 세상을 에워싸고 있는 진리를 탐구하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갖는다면 체내에서 다이돌핀이 분비되어 연쇄적으로 당신을 복되게 하는 여러 호르몬을 생산해 낼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다시 활기차고 당당하고 멋지고 쿨해지겠지... 

그런고로 나는 지루한 일상과 밋밋한 과거를 탈피해 무언가 새로운 자아를 발견해 보려고 탐미중인 것이다. 그냥 우울증에 빠지는 것보다 훨씬 나은 선택이지 않을까... 으흐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