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난 카운터 너머에서 투명한 비닐봉투 하나가 날아들었다. 나는 배가 고파요… 비닐봉투가 홀쭉한 배를 내밀며 중얼거렸다. 봉투의 아가리를 벌리고 두부, 소시지, 오뎅을 넣는데  입술을 앙다문 내 구강 안에 신물이 고여들었다. 비닐에 늘러붙은 밥풀에선 냄새는 안 났지만 냄새가 보였다. 위장이 벌컥벌컥 성질을 냈다. 벌컥 버얼컥 대며 나는 새 비닐봉투를 찾아냈다. 비닐의 배가 터질만큼 먹거리를 쳐넣고 싶다는 욕구가 치밀었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는데 뜨거운 눈물이 솟구쳤다. 그들의 까만 손, 그들의 비린내, 그들의 비닐봉투…가 나를 꺽꺽대고 울게 만들었다. 가슴이 쓰디 써서 다시는 그 집 부엌에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검고 쭈글쭈글한 수많은 손들과 맞닿은 내 하얀 손… 맛난 소가 얹혀진 쫄깃한 국수가닥을 한 줄도 담지 못했던 내 위장... 냄새는 없었지만 냄새를 보는 내 눈이 한없이 송구하고 미안했다. 나는 그들에 비해 가진 것이 많았다. 국수쯤 안 먹어도 아쉽지도 않았다. 그 사실이 죄송하고 황망했다. 그들에게 무언가를 더 줄 수 있으면 좋겠는데 내 손이 너무 미약해 안타까웠다. 하늘은 무슨 뜻으로 그들을 집도 절도 없는 존재로 만들었을까? 흥청망청 치장을 하는 사람들과 어깨에 동냥주머니를 차고 고개숙인 집시가 공존하는 샹제리제 거리가 떠올랐다. 세상은 어디나 닮아 있다. 세상에는 있는자와 없는자가 함께 있다. 있는자는 있는 대로 없는자는 없는 대로 힘들어 하는 게 세상이다. 허나 있는자는 있는 대로 없는자는 없는 대로 행복할 수 있는 것도 세상이다. 전자의 세상에서 후자의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이 발전이다. 나는 후자의 세상을 잘 알고 있다 생각했는데… 그런데 왜 그들을 불쌍하다고 여기는지... 욕심이 사라지면 그 공간 안으로 행복이 들이친다. 그들중엔 욕심을 버려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도 있을텐데 말이다. 나는 왜 우는가. 그들이 무산자라 불쌍하다는 생각을 한 때문인가? 그런데 그들은 무엇을 못 가졌는가. 행복? 의리? 그리움? 사랑?… 그들이 인간에게 소중한 선한 인성과 진솔한 감정을 얼마나 가슴에 품고 사는 지 나는 모른다. 모르면서 왜 그들을 없는자라고 단정했는가? …… . 아! 나는 어리석었구나. 그들보다 깨끗한 옷을 입고 그들보다 하얀 손을 지녔다고해서 내가 더 많이 가졌다는 생각을 하다니… 국수쯤 안 먹어도 아쉬울 것이 없어서 미안하다고 생각하다니… 

내 울음은 슬슬 줄행랑을 치고 값싼 동정은 싹이 잘렸다. 자신의 기준으로 남을 불쌍히 여기는 행위는 오만이요, 착각이지 않던가. 우리는 그저 가진 것을 담담히 나누면 되는 것이다. 비위가 약한 나는 앞으로도 그 집 부엌에서 국수를 먹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켄트 케이스의 ‘anyway’처럼, 그.래.도. 그 집 부엌에서 오랫동안 국수를 삶을 수는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