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열고 집 안 구석구석 먼지를 닦는다. 타조털로 만들어진 총채는 부겐베리아 잎새 위의 가는 먼지까지 얌전하게 없애준다. 사이드 테이블에 놓인 잡동사니는 일일이 물건을 들어내 닦아내는 불편이 있었는데 타조털 총채를 사용하고부터는 한번 쓰윽 훑기만 해도 먼지가 사라지니 이게 웬 신세계인가 한다. 타조털은 창밖에 대고 탈탈 털면 옮겨붙은 먼지가 산뜻하게 떨어진다. 옛 시절에 엄마가 사용하던 말총이나 헝겊으로 만든 총채는 먼지를 털면서 먼지를 먹는 시스템이었는데 이 타조털 총채는 그럴 염려도 없어서 내게는 귀한 가사도우미가 되었다. 먼지를 털고 나서 바닥을 쓸고 화장실을 청소한다. 오늘은 손님이 오시는 날이다. 나는 손님이 오시면 손님도 반갑지만 집을 적극적으로 청소할 수 있어서도 즐겁다. 이 때의 집안청소는 일상의 노동의 개념에서 탈피한다. 손님께 청결하고 안락한 공간을 제공하기위한 행위라는 점에서 마음껏 동기부여가 된다. 한편으로는 집주인이 청결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고싶기도 할 것이다. 어쨌거나 손님이 오실 때 하는 청소는 손님에대한 배려와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손님이 오실 때면 기껍게 청소를 한다.

오늘은 보스톤에서 손님이 오신다. 남편의 옛 직장 동료이면서 안사람끼리는 대학 동문이면서 같은 교회의 속식구이기도 했으니 연이 많은 분들이다. 세대를 초월해 친구같은 느낌으로 항상 만남이 즐거웠던 분들이라 청소하는 손길에 더욱 흥이 난다. 

미국에서 오래 사신 한국분들은 한국의 옛 정과 인심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미국식 사랑과 합리성도 겸비하신 분들이 많다. 그보다 바람직하고 따스하고 정겨운 인간상이 어디 있으랴. 그런 지인들이 그리울 때면 나는 미국이 함께 그립다. 복닥복닥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치이고 물들고 약삭빨라져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좁은 땅의 비애라면 my way가 멋진 개성으로 표출될 수 있는 것이 너른 땅의 이점같아서 말이다. 말이 잘 통한다는 건 지위, 나이, 성별과는 상관이 없으나 감성, 배경, 사고방식과는 관련이 깊다. 그래서 한국식 사고방식만 가진 사람들이 수두룩한 한국보다는 미국식 사고방식과 한국의 전통이 섞인 미국의 지인들과 나는 더 교감이 된다. 미국에서 오시는 손님들을 만나면 마음이 푸근해지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오늘 오시는 두 분은 무엇보다 ‘부부’라는 인연에 대해 귀감이 되신다. 예순 중반이신데도 부부는 한 몸이요, 서로를 위하며 힘이 되어 살아가는 존재임을 말 없이 보여주는 강력한 모범답안이다. 두 분의 노년처럼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내 혼인의 최종 목표였는데 미국에 살 때는 그것이 가능해 보였으나 한국에 온 이후로는 어쩌다보니 긴가민가 하고 있다. 남편의 생활에 푸드득 날개가 달려 집 밖으로 자유로이 날아다니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면 부부관계 역시 환경의 영향을 받는 모양이다. 미국은 부부중심의 생활이 유지되며 그야말로 가화만사성의 근간이 뿌리 깊은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비교해 보자면 한국의 부부상은 기왕 결혼했으니, 책임감으로, 자식 보고, 주변 눈이 있어서, 경제적인 독립이 불가능하므로… 라는 수많은 이유로 그냥 한지붕 아래 같이 사는 사이를 일컫는 단어라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물론 당연히 사랑이 근간이 되는 부부들도 있겠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서로의 사랑과 믿음이 해이해지면 부부라는 연을 놓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지라 뒤집어 해석해보면 부부라는 이름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커플중 많은 이들이 참다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한국의 한 아티클에 의하면 결혼했는데도 외롭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반려자가 아닌 부모의 역할, 자식된 도리가 주체인 결혼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부부가 사랑하면서 사는 사이만큼 바람직한 관계형성이 어디 있겠는가. 그 곳이 어느 지붕 아래이든 나는 지상낙원이라 부르고 싶다.

부부가 사랑하는 것은 자식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 보고 자라면서 가지는 20세 미만까지의 행복도 행복이려니와 부부 사이의 애정이 돈독하면 마음의 결핍이 사라져서 자식에 대한 애집이 덜하기 때문이다. 애정과 애집은 엄연히 다르다. 부모의, 특히 어머니의 아들에대한 애집이 병폐수준인 한국 사회는 그래서 부부중심의 삶을 방해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어머니가 놓지 못하는 내 아들에대한 애집은 아들 부부에게 갈등을 유발시키고 그래서 부부싸움이 잦다보면 애정전선에 이상이 오게 될 수도 있다. 결국엔 내 자식을 사랑하는 그릇된 방식이 내 자식의 행복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되기도 한다. 자식이 스무살 이후로는 엄연한 개체이며 독립체라는 법륜스님의 철학은 미국사회의 철학이기도 한데 한국사회에서는 유독 성숙한 정신만이 이룰 수 있는 관계형성이며 부부가 온전히 한 몸으로서 결핍이 없을 때 가능한 덕업이기도 하다. 

아들은 며느리의 남편이라네요… 혼기에 이른 아들에게 어여쁘고 순진한 여자친구가 생겼다며 기뻐하시는 손님이 넌즈시 건네는 한 마디가 더없이 정갈하고 맑게 느껴진 이유는 단지 먼지를 털어낸 실내의 청결함때문은 아니었으리라. 과연… 이라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두 분의 덕업은 반드시 아들 내외의 예쁜 사랑을 지켜주리라 예견한다. 미래의 며느리가 누가 되었던 사랑할 준비부터 하시는 손님을 보면서 나부터 그리고 이 땅의 많은 부부들이 서로 사랑으로 살아야하는 이유중 한가지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