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은 악을 부른다, 그래서 악의 연대기이다. 주연 손현주라는 배우와 조연 마동석이라는 배우의 진가가 발휘되는 영화였다. 인간의 삶에 사랑과 미움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다시 더듬어보게 했다. 쥬라기 월드를 보고 나온 막내는 펄쩍펄쩍 뛰며 재밌었다고 환호성을 질렀고 큰 아이는 만면에 웃음을 띄며 흥미진진했다고 말했다. 문득 영화는 책이 가지지 못한 장점을 가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기 전부터 마음을 설레게 하고, 동시에 같은 장소와 세계를 타인과 공유할 수 있고, 영상과 음악과 이야기와 메시지를 복합적으로 전달받을 수 있다. 영화의 최대 장점은 오락성에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쟝르를 잘 선택하면 그야말로 멋진 엔터테인먼트가 되는 것이다. 저만의 독특한 상상이 가미되며 마음껏 뇌세포를 활성화시키는 독서의 특장점을 이길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브런치를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가슴이 뽀송뽕송했다. 비의 족적이 깔린 대지 위에 해가 멋대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 순간만큼 집 안의 창문을 모두 열어제치고 싶은 열망이 생기는 때도 없다. 공기가 극도로 해맑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창문을 열자 어디선가 바리톤의 멋진 선율이 흘러들었다. 라디오에서 들린다고 착각할만큼 고품격이었다. 성악을 하는 이웃이 있었구나… 그러고보니 차원 높은 피아노연주도 그 집에서 흘러나왔던가 보다. 가끔씩 멋진 라이브 피아노 소리에 행복해 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생음악을 내 집에서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것도 행운이라는 생각때문에 기분이 끝내주게 상쾌했다. 현시점 하루평균 사망률에서 교통사고의 약 1/30, 자살의 약 1/80을 차지하는 메르스로 인해 과하게 난리가 난, 대책은 저리로 가고 공포와 원망만 이리로 온 반도땅, 자발스런 매스컴의 행태가 이해가 안 되던 오늘이 망각에 든 시간이었다. 한참 감상에 빠져 있는데 반대편에서 그야말로 돼지 멱따는 소리가 들려왔다. 돼지가 사투를 벌이 듯 처절하게 노래를 불렀다. 인간의 마음으로, 인간의 상식으로, 인간의 예의로는 내지를 수 없는 흉한 소리였다. 그러자 곧 바리톤의 목소리는 숨을 거두었다. 아… 악의 연대기… 문을 닫고 안으로 숨게 만드는, 멸종시키고픈 메르스는 어쨌거나 이 땅에서 하루빨리 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