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명사진을 찍을 때마다 나는 고개가 심하게 경직된다. 입술을 다물고 턱을 다소곳이 내리고 고개를 똑바로 세워 눈으로는 카메라를 응시해야 하는 자세가 느무느무 불편하다. 증명사진을 찍을 때면 자기 암시가 시작된다. 아, 증명사진을 찍는구나. 나는 경직이 되겠구나…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으나 그런 못 말릴 최면에 걸렸다. 그래서 증명사진 찍기를 피하고 싶지만 때로는 스냅사진으로 대신할 수 없는 조건의 사진이 있으니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사진관에 간다. 그때마다 까찰한 사감선생을 대하 듯 불편하게 카메라를 응시한다. 사진이 잘 나올 리 없다. 증명사진은 신기하게도 새로 찍을 때마다 나를 놀라게 한다. 너는 저번의 너보다 이만큼이나 늙었어... 젊었을 때는 젊었을 때 대로 나이가 청춘의 숫자를 후룩후룩 집어 삼킨 후에는 더더군다나... 증명사진은 노화 증빙서류같다. 아주 잔인한 종이쪼가리다. 도저히 사랑스럽지 않다.

나는 남에게 보여지는 사진에 별로 연연해 하지 않는 편이다. 어차피 사진은 사진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다 사진에 예쁘게 나왔다고 해서 실제 얼굴이 더 예뻐진 것은 아니다. '실물이 더 낫다'는 말이 '사진에서는 멋졌는데…' 라는 속엣말보다 백배 훌륭하다. 전자는 칭찬이고 후자는 욕이다. 왜 애써 욕을 먹어야 하나. 그래서 나는 어딘가에 내보일 사진을 고를 때는 지나치게 빨 받은 사진은 피한다. 그래서인지 때때로 사진 좀 바꾸라는 퉁박도 듣는다. 실물보다 못한 사진을 올리냐며 이해불가란 표정을 대할 때도 있다. 이런 말 들으면서 기분 나쁠 사람은 없다. 이런 혜택을 누리는 것도 지나치게 빨 받은 사진을 피하는 덕이다.

요즈음은 필름을 인화하는 대신 이미지를 저장해서 프린트한다. 디지탈 카메라가 대중화된 이후의 일이다. 이제는 사진관에서도 애초에 두 번 이상을 찍고 그 중 마음에 드는 한 컷을 출력하는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하지만 십 수년 전만해도 필름을 인화하는 작업을 하므로 현상된 후에나 사진이 어떻게 나왔는 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중요한 사진은 두 번 세 번 사진관을 방문해서 찍는 사람들이 많았다. 선자리에 내보일 사진이라든가 이력서에 붙일 사진, 혹은 학교앨범에 수록할 사진 같은 거 말이다. 대학 앨범 사진을 제출할 때 주변 친구들은 미용실 방문은 물론이고 메이크업도 도움을 받고 사진관에도 여러 차례 들락거려 최종적으로 낙착된 사진을 제출했다. 여기서 왜 주변 친구들이라는 주어를 썼는가 하면 나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머리는 헤드밴드로 올려 붙이고 화장도 하는 둥 마는 둥 밍밍한 얼굴로 사진관을 찾았다. 반갑지 않은 너를 만나야 하는 부담감만 잔뜩 안고 갔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증명사진 찍기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더 나은 사진을 고르기 위해서라면 몇 번이고 카메라 앞에 섰어야 했다. 시간이 흘러 내 딸들이 엄마의 앨범을 들여다 보면서 더 자랑스러워할 수도 있었을 테니 말이다. 대학앨범에 잘 나온 사진이 개제된 친구들은 뚜쟁이 아줌마의 러브콜도 받았으니 잘 나온 사진 한 장은 인생에서 기회를 포착하는 수단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