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온 이후 - 큰 딸을 보내다

큰 딸이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에 살았다면 대학교까지 배웅을 했을 테지만 아무래도 경제적 부담이 커서 혼자 보내기로 했다. 공항에서 눈물을 철철 흘리지 않고 가볍게 이별을 했다. 대학생활에 대한 가없는 흥분과 기대를 안고 용감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큰 딸을 보니 슬프진 않았다. 한창 책으로 공부해야할 나이인 지난 2년간 지식공부보다는 인생수업을 했기에 이제는 본격적으로 상아탑 공부를 해야할 시기라 생각했다. 그러기위해 떠나는 발걸음이라 가벼웠고 그럴 수 있는 문이 열려서 감사하고 본인도 매우 기꺼워해서 다행이었다. 다만 출국심사대를 향해 들어가는 뒷모습을 지켜보는 동안엔 미간이 서서히 뜨거워졌고, 그건 아마도 딸도 마찬가지인 듯 하여 멀리서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드는 시간은 서로 붉은 눈시울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때서야 한동안 보지 못할 제법 큰 이별을 했다는 실감이 일었다. 처음으로 해보는 일이라, 처음 하는 일은 어리둥절하기 마련이므로 그렇게 멍하니 자식과 이별을 했다.

마침 고장난 에어컨때문에 한 낮의 열기를 그대로 품은 차 안에서(한국에서 외제차를 타는 건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막내는 서럽게 눈물을 터뜨렸다. 언니 보고싶어~~~ 딸들이 언젠가 집을 떠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살았고 또 잘 날 수 있도록 훈련도 시켰지만 막상 이별을 하고나니 가슴이 별스럽게 이상했다. 한가지 감회가 아니라 허전하고 서운하고 그립고 짠하고 약간의 염려 등이 둘쭉날쭉 피어올랐다. 그 감정들이 뭉쳐치면 축축한 물이 되나보다. 갑자기 울컥울컥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집 안의 대소사보다는 친구와 바깥 생활을 더 관심있어 하고 즐기는 큰 딸이라 집에 없어도 표는 별로 안 나리라 생각했는데 빈 자리를 꼼꼼하게 되새겨보니 큰 딸은 묵직하고 은밀하게 제 영역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역할은 동생에게 든든하고 때론 얄밉지만 필요할 때 언제나 곁에 있어준 ‘언니’라는 존재였다.

둘째는 집으로 가는동안 내내 언니 보고 싶다며 쉬었다가 통곡하고 잠잠하다가 어깨를 흔들며 울어댔다. 둘째가 너무 서럽게 울어서 나는 오히려 이성을 되찾았다. 언니 내년에 올텐데 뭐… 그때까지 언니랑 카톡하고 페이스타임 하고 스카이프 하고 그러면 되잖아. 일단은 그렇게 위안을 주지만 요즈음 대학생들은 여름방학이면 인턴쉽을 하느라 집에 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현실이 머리 한 쪽에서 꾸물거렸다. 같은 미국땅에서 산다면 땡스기빙이나 크리스마스에 다녀가기가 수월하겠는데 한국은 그러기엔 여러가지 상황이 버거우니... 우리(남편과 나)도 우리지만 10여년 동안 한 방을 썼던 둘째는 너무 낯설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언니는 우리집에서 계속 안 살 거잖아, 대학 졸업해도 대학원에 가고 직장에 가고 결혼하고… 이젠 영영 같이 못 살잖아, 너무 짧았어, 너무 짧았어 ...“ 울음 속에 그토록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으니 서러울만도 했다. 엄마처럼 언젠가 그런 날이 올 거라는 생각을 염두에 두지 못한 어린 마음때문에 내 마음이 더 무거워져서 입도 무거워졌는데 갑자기 온 몸이 무거워지고 눈꺼풀도 무거워졌다. 머리꼭대기부터 내리누르는 피곤이 의자를 뒤로 젖힐 여유조차 주지 않고 잠의 구렁텅이로 나를 밀어넣었다. 언제부턴가 앉아서 자면 목이 아파서 의자를 젖히는 버릇이 생겼는데 뒷목이 사정없이 쑤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집에 도착할 때까지 꼼싹도 못하고 그대로 졸았다. 땀으로 들러붙은 등과 허벅지를 차시트에서 떼내고 내릴 적엔 생뚱맞게 저녁을 시원한 콩국수로 먹어야 겠다는 욕망이 일었다.

냉동실에서 삶아놓은 서리태를 꺼내 믹서에 넣는데 문득 다 갈아지면 4인분이 될 거라는 생각에 미쳤다. 이제부턴 3인분씩 보관해야겠네… 라고 중얼거리는데 “엄마 이제부터는 매트도 세 개만 깔고 숟가락도 세 개만 놓고…” 막내가 힘없이 말을 뱉고는 또 으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4란 숫자에서 3이란 숫자로 바뀐 현실이 적나라하게 실감되었고 그 사실이 얄궂었다. 그렇게 그 날 밤 내내 큰 아이의 부재가 나머지 세 식구의 가슴에 구멍을 뻥뻥 뚫어놓았다.

그런데 우습게도 나머지 세 식구는 다음날 아침, 멀쩡하게 3이란 숫자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남편과 둘째는 그럴만도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큰 아이와 별로 부딛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큰 딸과 제일 실갱이를 했던 사람은 나였다. 남편은 남을 푸시하는 성격이 아니고 자기를 닮은 딸아이가 자연스레 이해도 잘 되었다. 둘째는 그냥 언니라서 좋아했다. 이별이 슬프고 빈 자리가 그립지만 나쁜 일로 헤어진 것도 아니고 서로 안 좋았던 시간들이 큰 후회로 남을 일 자체가 없었다. 게다가 둘은 직장과 학교라는 바쁜 공간이 있어서 어제의 허전함을 염두에 둘 처지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혼자서 텅 빈 딸아이의 방을 마주해야 했고 그 안에 앉아 내 마음을 직시해야 할 숙제가 남아있었다. 사실 나는 자신이 없었다. 교육이란 이름하에 취했던 행동들... 그냥 제 하고 싶어하는 대로 내버려둘 걸, 그냥 좀 느슨해 있으면 쉬라고 놔둘걸, 그냥 철없어 보여도 나아지리란 희망으로 기다려 줄 걸… 하면서 후회할 일들이 쏟아질 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역사가 현시대를 지나야 제대로 조명되는 것처럼 어제 옳다고 한 내 행동들이 오늘 후회라는 파도로 덮칠 수도 있으니 딸아이와의 지난 시간들이 그렇게 다가오면 참 가슴이 아플 것 같았다. 그런데 딸아이의 책상, 침대, 옷가지들을 쓸어낸 손길에 후회라는 먼지는 모아지지 않았다. 수험생을 한국에 데려온 일, 수업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한국학교에 다니게 한 일, 한강의 문화에 빠져 무작정 헤엄치게 한 일, 때로는 채벌도 하면서 키운 일, 가끔은 내켜하지 않은 여행에 데려갔던 일 … 그 어떤 것도 아프게 떠오르지 않았다. 참 다행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바랐다.

컴퓨터 자판을 자주 두드리기보다

다른 이의 손을 자주 잡기를,

선명한 모니터를 바라보기보다

따뜻한 미소와 마주하기를,

기계음에 덜 귀 기울이고, 목소리에 더 경청하기를,

자기 눈으로 세상과 상대를 덜 쳐다보고,

여러 눈과 시선이 있음을 더 많이 이해하기를,

숫자를 사랑하기보다는

별을 사랑하고,

그 별들에 이야기를 담아내고

단호한 말보다

따뜻한 단어를 골라 말을 건네고

가지기 위해서 경쟁하지 않고,

나누기 위해서 경쟁하기를,

그래서 내가 무엇을 얼만큼 많이 갖고 있는가를 덜 자랑하고

하늘에 있는 엄마를 자주 떠올리기보다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주변에 많은 것에 감사하기를 소망했다.

그런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그런 아빠가 먼저 될 수 있기를 기도했다 

-지금 꼭 안아줄 것- 중에서

“엄마의 기도와 꼭 같네요...” 텅빈 방에서 큰 아이의 목소리가 아스라이 들리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