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바람>

 

사십 년이란 세월을 거슬러

언덕 저편에

 

꽃다운 엄마가 숙녀의 모습으로

나무 같은 아빠가 청년의 모습으로

유월의 바람을 맞으며 서 있다

 

싱그럽고

푸르른 향기가

바람에 실려 온다

 

저녁때를 놓친 엄마가

늦은 밤 왼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 컵라면을 후루룩

 

맞은편에 앉은 아빠가

몇 가닥의 오징어포를 안주로 캔맥주를 들이켜다

힐끗힐끗 엄마를 훔쳐본다

 

<늙음>

 

늙는다는 것은

추하지 않다

 

단지

무어라 딱히 이름 지을 수 없는

지난 시절의 그 느낌을

어렴풋이 떠올리다

 

문득

미소 짓거나

한숨짓거나

눈물짓는 일이

많을 뿐이다

 

늙은이를 홀대하지 말지어다

가엽게 여기지도 

대단히 여기지도 말지어다

 

그들에게도

꼿꼿한 자존심과

일렁이는 설렘과

맑은 수줍음이 있다

 

늙는다는 것은

시간이 제법 흘렀음을

정직히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한국을 떠나며>

 

장마의 시작과 함께

나는 한국을 떠났다

 

내리흐르는 것은 아프다

비가 그렇고

눈물이 그렇다

 

일상으로의 복귀를 재촉하는

비행기 엔진의 굉음이

퉁퉁 가슴을 울린다

 

어언 삼십 년 동안

타향살이를 하는 나

 

이젠 철퍼덕 풀숲 어딘가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쉬고 싶다

 

눈처럼

낙엽처럼

내려 쌓이는 것들이 주는

포근함을 나도 느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