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로부터 버려진다는 것은 비록 그것이 물체라 하더라도 슬프다.

어린 시절, 학년이 하나씩 올라갈 때 마다 더 이상 갖고 놀게 되지 않은 장남감이 자연스럽게 자취를 감추는 것에 대해 의아스러워했지만, 나는 내가 그들을 버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면 그들은 우리 엄마 손을 거쳐, 우리 할머니 손을 거쳐 어디론가 보내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나를 대신해서 오래된 장난감이나 소지품들을 정리해 버리시는 어른들의 행동이 서운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난 두 분 덕분에 버리는 것에 대한 죄의식을 최대한 뒤로 미룰 수 있었다는 사실을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뒤늦게 깨달았다.

망가진 장난감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돌아오는 마음도 헛헛한데, 하물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버린다는 것. '내 마음에서 지운다'는 뜻의 버린다는 것이 아닌, 말 그대로 어딘가에 그 사람을 떨구어 버리고 나 혼자 달음질쳐 도망 나오는 기분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면 버림을 당한 이의 심정이란? 상상만으로도 그 비통함에 이내 숨이 막혀버릴 것 만 같다.

아직 7살밖에 안된 초등학교 2학년 A를 학교에 버리고 간 아빠.

아이는 나와 앉아 있는 동안 눈을 맞추지 못했다. 지난 몇 시간 사이에 일어난 이 깊은 정신적 혼돈과, 참담한 슬픔이 조그마한 이 아이를 자꾸만 어두운 동굴 속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조금이나마 빛을 보여주기 위해, 최대한 아이의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기 위해 계속되던 나의 노력을 받아들여준 아이가, 마침내 꽃사슴과 같은 선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눈물이 가득히 고인채로 말했다. "아빠가 날 버리고 멀리 떠났어요. 그건 제가 아빠 말씀을 안 들었기 때문일거예요."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걸까?

나는 꼭 말을 해야 하는 걸까?

소위 말하는 ‘위로’ 라는 것?

그런 걸 불과 몇 시간 전 자신의 아빠로부터 버려진 일곱살난 아이를 앞에 두고 해야 하는 걸까?

난 그냥 아이를 바라보고 앉아있었다.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래서 이곳에 왔구나. 아이야. 곧 밤이 오는데 오늘 이곳에서 잘 수 있겠니?"

"무서워요."

A는 해가 완전히 저물기 전에 보호시설로 돌아가서 저녁 운동시간에 참여해야 했기에, 난 아이와 곧 헤어져야 했다. 아이를 보낸 뒤, 정신없이 서류정리를 하고 클리닉 문을 열고나오니 어느새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혼자가 된 나는 더 이상 애써 울음을 참느라 목울대가 아픈 경험을 하지 않아도 된다. 난 이렇게 한 바탕 눈물을 쏟아내고 나면 잠시 찾아오는 평온을 느끼게 되겠지. 하지만 밤새 낯선 곳에서 무서움에 잠 못 이룰 가련한 A는 어쩌란 말인가.

오늘 밤, 달님이라도 따뜻하게 A의 창문을 비추어 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