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9일

랄라가 친구네 가족과 함께 <Hobbit>이라는 영화를 보고 왔다. 개학을 하루 앞두고 칼바람 부는 겨울밤 영화 나들이에서 돌아온 친절한 랄라씨는 집안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무려 세 시간 상영된 영화의 줄거리를 약 10분 동안 최대한 요약해서 엄마에게 들려주느냐 코트를 벗는 것도 잊은 듯했다. 작은 눈을 반짝이며 조금이라도 기억이 생생할 때 영화의 등장인물이나 중요한 장면을 빼놓지 않고 엄마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은 랄라의 마음이 고맙고 예뻐서 나도 열심히 경청했다. 얼마 전 아는 지인으로부터 <Hobbit>은 아이들이 보기에는 좀 지루한 영화라고 들었는데, 이외로 우리 랄라는 시종일관 활기찬 표정으로 흥미진진한 영화의 줄거리를 풀어나갔다. 여하튼 친절한 랄라씨의 겨울방학 피날레는 그렇게 <Hobbit>과 함께 화려하게 막을 내리는 듯싶었다.

BUT! 그러나!

잠옷을 갈아입고 잠자리에 들려고 했던 랄라가 갑자기 심각한 표정으로 우리 방으로 들어와서 하는 말이 방금 전 영화에 나왔던 괴물들을 꿈에 볼 것 같다며 무섭다고 했다. 방학 마지막 날이기도 하고, 무서움을 많이 타는 나는, 랄라의 마음을 이해하고도 남기 때문에 엄마 아빠랑 같이 자자고 랄라 자리를 만들어 주었는데, 몇 번 엎치락뒤치락하더니 자기 방이 편하다며 다시 인형들을 주섬주섬 챙겨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뒤 나도 스톰도 잠이 들었고, 랄라도 잠이 들었다. 하지만 새벽 한 시쯤 랄라는 훌쩍거리며 다시 우리 방으로 들어왔다. “엄마. 영화에 나왔던 팔 잘린 괴물이 자꾸 쫓아오는 꿈을 꿨어요. 으앙…” 랄라는 여전히 우리 방에서 잘 마음이 없는 듯, 엄마가 랄라 방에 와서 같이 자주면 안되냐고 했다. “그럼. 랄라야. 알았어. 엄마가 같이 가줄게. 엄마랑 같이 랄라 방에서 코 자자.”

랄라는 지금 잠들면 꿈에 또 괴물이 나올 것 같다며 내게 안무서운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고, 난 랄라 곁에 누워 아이의 보드라운 볼을 쓰다듬으며 곰돌이 푸우와 피글릿 이야기를 해준 것 같다. 밖에는 흰 눈이 내리고, 지금 곰돌이 푸우네 집에 피글릿이 놀러 왔는데, 푸우가 찬장에서 꿀단지를 꺼내 가슴에 끌어안고 맛있는 꿀을 먹고 있다고. 그렇게 우리는 함께 잠들었고, 신기하게 나도 랄라도 그날 밤 곰돌이 푸우와 피글릿이 나오는 같은 꿈을 꾸었다. 나는 좌선을 하러 새벽에 일찍 일어나야 했고, 알람 소리에 랄라가 눈을 떴지만 일어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라 나는 다시 토닥토닥 랄라를 재웠다. 이번에는 아이의 배를 쓰다듬으며 슈렉에 나온 당나귀와 빨간 드래건이 결혼해서 귀여운 아기들을 낳은 이야기를 해주었고, 랄라는 이내 스르르 잠이 들었다.

아침에 등교 준비를 마치고 일층으로 내려왔을 때, 랄라는 해맑은 얼굴로 어젯밤 새벽에 엄마가 해준 이야기 덕분에 좋은 꿈을 꿨다면서, 엄마 한데 꿈을 컨트롤하는 마법이 있는 것 같다며 몹시 신기해했다. 나는 랄라에게 남겨줄 물질적 유산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감명 깊게 읽은 밑줄이 남겨진 양서 몇 권, 레인소나타 다이어리, 앨범, 도시락 편지, 만년필, 내가 사랑하는 음반 몇 개, 우리 할머니 유품, 신영복 교수 서화 한 점 아마 그 정도가 전부이지 싶다. 하지만 랄라에게 남겨줄 정서적 유산은 충분하고도 남을 것이다. 어젯밤 랄라와 침대에 누워 두 손 마주 잡고 소곤소곤 이야기 나누던 시간의 느낌. 가습기 뿜어져 나오는 랄라 방안에 감돌던 따뜻하고 촉촉한 공기. 랄라가 잠에서 깨어 눈을 떴을 때 곁에서 토닥여 주던 엄마의 손길. 이 모든 것들이 내가 랄라에게 남겨줄 수 있는 소중한 유산이다.

할머니를 여의고 3년째를 맞이하지만, 난 지금도 매일 밤 할머니와 함께한 지난날의 추억을 그려보다 잠든다. 배가 아플 때 “할미 손은 약손이다. 쑥쑥 내려가라. 쑥쑥 내려가라.” 하시면서 배를 쓸어주시던 할머니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의 감촉을 떠올리기도 한다. 난 눈을 감고 내 기억 속의 우리 할머니 손을 더듬는다. 곧은 손가락 마디마디부터 정갈하게 다듬어진 손톱까지. 할머니와의 추억이 사르르르 온몸에 퍼지기 시작할 때 나는 잠이 든다. 그리고 할머니를 꿈에서 만나기도 한다. 내가 랄라에게 남겨주고 싶은 유산은 바로 이처럼 말이나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오롯이 나와 랄라만이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의 조각들이다.

2013년 1월 9일

랄라가 친구네 가족과 함께 이라는 영화를 보고 왔다. 개학을 하루 앞두고 칼바람 부는 겨울밤 영화 나들이를 나갔다 돌아온 우리 집 친절한 랄라씨는 집안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무려 세 시간에 걸려 상영된 영화의 줄거리를 약 10분 동안 최대한 요약해서 엄마에게 들려주느냐 코트를 벗는 것도 잊은 듯했다. 작은 눈을 반짝이며 조금이라도 기억이 생생할 때 영화의 등장인물이나 중요한 장면을 빼놓지 않고 엄마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은 랄라의 마음이 고맙고 예뻐서 나도 열심히 경청했다. 얼마 전 아는 지인으로부터 은 아이들이 보기에는 좀 지루한 영화라고 들었는데, 이외로 우리 랄라는 시종일관 활기찬 표정으로 흥미진진한 영화의 줄거리를 풀어나갔다. 여하튼 친절한 랄라씨의 겨울방학 피날레는 그렇게 과 함께 화려하게 막을 내리는 듯싶었다.

BUT! 그러나!

잠옷을 갈아입고 잠자리에 들려고 했던 랄라가 갑자기 심각한 표정으로 우리 방으로 들어와서 하는 말이 방금 전 영화에 나왔던 괴물들을 꿈에 볼 것 같다며 무섭다고 했다. 방학 마지막 날이기도 하고, 무서움을 많이 타는 나는, 랄라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고도 남기 때문에 엄마 아빠랑 같이 자자고 랄라 자리를 만들어 주었는데, 몇 번 엎치락뒤치락하더니 자기 방이 편하다며 다시 인형들을 주섬주섬 챙겨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뒤 나도 스톰도 잠이 들었고, 랄라도 잠이 들었다. 하지만 새벽 한 시쯤 랄라는 훌쩍거리며 다시 우리 방으로 들어왔다. “엄마. 영화에 나왔던 팔 잘린 괴물이 자꾸 쫓아오는 꿈을 꿨어요. 으앙…” 랄라는 여전히 우리 방에서 잘 마음이 없는 듯, 엄마가 랄라 방에 와서 같이 자주면 안되냐고 했다. “그럼. 랄라야. 당연히 엄마가 같이 가줄게. 엄마랑 같이 가서 랄라 방에서 코 자자.”

랄라는 지금 잠들면 꿈에 또 괴물이 나올 것 같다며 내게 안무서운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고, 난 랄라 곁에 누워 아이의 보드라운 볼을 쓰다듬으며 곰돌이 푸우와 피글릿 이야기를 해준 것 같다. 밖에는 흰 눈이 내리고, 지금 곰돌이 푸우네 집에 피글릿이 놀러 왔는데, 푸우가 찬장에서 꿀단지를 꺼내 가슴에 끌어안고 맛있는 꿀을 먹고 있다고. 그렇게 우리는 함께 잠들었고, 신기하게 나도 랄라도 그날 밤 곰돌이 푸우와 피글릿이 나오는 같은 꿈을 꾸었다. 나는 좌선을 하러 새벽에 일찍 일어나야 했고, 랄라는 알람 소리에 눈을 떴지만 일어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라 나는 다시 토닥토닥 랄라를 재웠다. 이번에는 아이의 배를 쓰다듬으며 슈렉에 나온 당나귀와 빨간 드래건이 함께 결혼해서 귀여운 아기들을 낳은 이야기를 해주었고, 랄라는 이내 스르르 잠이 들었다.

아침에 등교 준비를 마치고 일층으로 내려왔을 때, 랄라는 해맑은 얼굴로 어젯밤 새벽에 엄마가 해준 이야기 덕분에 좋은 꿈을 꿨다면서, 엄마 한데 꿈을 컨트롤하는 마법이 있는 것 같다며 몹시 신기해했다. 나는 랄라에게 남겨줄 물질적 유산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감명 깊게 읽고 한 줄 한 줄 그어놓은 밑줄이 남겨진 양서 몇 권, 레인소나타 다이어리, 앨범, 도시락 편지, 만년필, 내가 사랑하는 음반 몇 개, 우리 할머니 유품, 신영복 교수 서화 한 점 아마 그 정도가 전부이지 싶다. 하지만 랄라에게 남겨줄 정서적 유산은 충분하고도 남을 것이다. 어젯밤 랄라와 침대에 누워 두 손 마주 잡고 소곤소곤 이야기 나누던 시간의 느낌. 가습기 뿜어져 나오는 랄라 방안에 감돌던 따뜻하고 촉촉한 공기. 랄라가 잠에서 깨어 눈을 떴을 때 곁에서 토닥여 주던 엄마의 손길. 이 모든 것들이 내가 랄라에게 남겨줄 수 있는 소중한 유산이다.

할머니를 여의고 3년째를 맞이하지만, 난 지금도 매일 밤 할머니와 함께한 지난날의 추억들을 그리며 잠든다. 배가 아플 때 “할미 손은 약손이다. 쑥쑥 내려가라. 쑥쑥 내려가라.” 하시면서 배를 쓸어주시던 할머니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의 감촉을 떠올리기도 한다. 난 눈을 감고 내 기억 속의 우리 할머니 손을 더듬는다. 곧은 손가락 마디마디부터 정갈하게 다듬어진 손톱까지. 할머니와의 추억이 사르르르 온몸에 퍼지기 시작할 때 나는 잠이 든다. 그리고 할머니를 꿈에서 만나기도 한다. 내가 랄라에게 남겨주고 싶은 유산은 바로 이처럼 말이나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오롯이 나와 랄라만이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의 조각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