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2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의 성격중의 하나는 무언가에 미칠수 있는 열정이 늘 꿈틀거리고 살아있다는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그랬다. 만약 포도맛에 빠지면 난 포도를 한 관이고 두 관이고 몸에서 포도 냄새가 날 때 까지 하루고 열흘이고 포도만 먹었다. 음악도 마찬가지여서 어느 한 곡에 미치면 난 아침에 눈 떠서 밤에 눈감고 잠 들때 까지 그 한 곡만 듣는다. 마치 그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음악인냥 난 온전히 그 곡만을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소녀에서 숙녀로, 숙녀에서 아내로, 아내에서 엄마로 나이를 먹어가면서 가치관도 변하고 주위환경도 변해갔지만, 내 마음을 흔든 작가와 예술가, 그들의 인생과 작품세계, 역사의 기록, 또는 학문의 이론에 있어 몇 달이고 몇 년이고 내가 납득이 갈 만큼 공부하지 않고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 나의 성격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꼿꼿이 서있다. 그리고 난 나의 이런 면을 정말 사랑한다.

내가 좋아하는 유일한 여성화가인 Frida Kahlo는 여름의 정점에서 뇌쇄적인 빛을 발하는 태양처럼, 그리고 그 강렬함에 현기증이 날 만큼, 그래서 순간 나로하여금 모든것을 잊게할 만큼, 그런 깊은 전율로 나에게 다가왔다. 파블로 네루다의 <詩>라는 작품을 읽을때마다 Frida Kahlo를 처음 만났던 그 날을 추억한다. 시인이 나의 심정을 대신 읊어주고 있는 것 같아 난 이 시를 읽고 있으면 속이 다 후련해진다.

<詩>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말야

그렇게 얼굴 없이 있는 나를

그건 건드리더군.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어, 내 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

눈은 멀었으며,

내 영혼 속에서 뭔가 시작되고 있었어.

熱이나 잃어버린 날개,

또는 내 나름대로 해보았어,

그 불을

해독하며,

나는 어렴풋한 첫 줄을 썼어

어렴풋한, 뭔지 모를, 순전한

넌센스,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순수한 지혜,

그리고 문득 나는 보았어

풀리고

열린

하늘을,

遊星들을,

고동치는 논밭

구멍 뚫린 그림자,

화살과 불과 꽃들로

들쑤셔진 그림자,

휘감아도는 밤, 우주를

그리고 나, 이 微小한 존재는

그 큰 별들 총총한

허공에 취해,

신비의

모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이 시의 표현처럼 그녀는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그녀가 어디서 어떻게 나를 찾아왔는지 나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처음에는 나의 정수리를 내리꽂는 태양의 격렬함으로 다가온 그녀였지만, 난 그녀의 천재성과 사랑과 인생을 공부하고, 그녀의 아픔이 녹아있는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나와 내 마음속의 그녀는 나이를 먹었고, 그렇게 세월 또한 우리와 함께 흘러 갔다. 그래서 첫만남에서는 품에 안을수 없을 만큼 뜨거운 그녀였지만, 정작 그녀의 가슴에는 살을 에이는 듯 한 찬 바람이 불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오늘 랄라와 함께 Frida Kahlo & Diego Rivera 의 전시회에 다녀왔다. 열 살난 랄라는 큐레이터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며 한 점 한 점 그들의 작품을 유심히 관람했지만, 나는 대중들과 거리를 두고 저만치 떨어져 몽유병 환자처럼 흐느적거리며 전시회장을 걸어다녔다. 가까이서 만나게 되는 그녀의 작품세계는 아프고 또 아프다.

3월의 첫 주말. 창밖에는 곧 눈 발이라도 날릴듯한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