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12일
한국에서 돌아와 보니 보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올봄부터 우리 집 근처에 산책로를 겸비한 공원을 조성하느냐 공사가 한창이었는데, 너무나 감사하게도 우리가 집에 도착하기 전에 공사가 마무리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한국에 머물면서도 잠자기 전 혼자서 조용히 머릿속으로 그려오던 산책로. 스톰과 내가 새로 생긴 산책로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는 것은, 아마도 우리의 연애, 결혼, 임신, 육아에 있어 늘 아름다운 산책로가 일상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스톰과 처음 만난 날도, 우리는 달을 보며 함께 물가를 산책했고, 스톰이 나에게 프러포즈를 한 곳도 호숫가의 산책로였다. 그리고 결혼 후 우리는 같은 호숫가를 매일 밤 걸었다. 랄라를 임신하고 우리는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했고, 어느 날 스톰과 언덕의 노을을 바라보며 무작정 걷다가, 숲으로 우거진 산책로를 만났다. 몹시 이외의 장소에서 조우한 오솔길을 따라가 보니, 뜻밖에 작은 호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호숫가를 지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발견한 키 작은 사과나무에는 연녹색 풋사과가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호기심으로 사과를 하나 베어 물었는데, 어찌나 새콤하고 맛있던 지, 나는 그 상큼한 맛에 매료되어 그 후 산책을 나설 때마다 하루도 빠짐없이 사과를 와그작와그작 깨물어 먹고는 했다. 그렇게 사라진 사과의 개수만큼 나의 배는 앞으로 앞으로 부풀어 올랐고, 출산을 앞둔 가을이 코밑으로 다가왔을 무렵 사과나무에는 잎만 무성했다. 랄라가 태어나고 반년이 좀 지나서 우리 가족은 캘리포니아에서 토론토로 이주를 했고, 그곳에서도 스톰과 나는 랄라를 유모차에 태우고 매일 저녁 산책을 즐겼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산책로에서 보내는 사이, 랄라는 유모차에서 내려와 걸음마를 시작했고, 이내 오솔길을 따라 달음질쳐 나갈 만큼 자랐다. 산책은 그렇게 세월과 함께 우리 세 명 모두의 삶에 잔잔히 스며들었다.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 바로 이 순간. 자전거를 타고 휘리릭 내 앞을 지나 달리는 랄라가 있다. 9년 전 오늘도 우리는 랄라를 유모차에 태우고 토론토의 산책로를 분명히 거닐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의 랄라는 편안히 유모차에 앉아 까르르륵 큰소리로 웃고 있었지만, 스톰은 모기가 랄라 한데 자꾸만 달라붙는다고, 땀을 뻘뻘 흘리며 랄라에게 달려드는 모기를 손으로 휘-휘- 내젓느냐 정신이 없었다. 그로부터 9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 랄라는 초등학생이 되었건만, 아이의 안전을 걱정하는 스톰의 모습에는 변함이 없다. 오늘도 스톰은 내리막길에서 랄라가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다칠까 봐 노심초사다. 아빠의 마음을 먼저 헤아린 랄라가 자전거에서 폴짝 뛰어내려, 자전거를 밀면서 아빠를 앞질러 걷기 시작했다.
9년 전에도 나는 이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풋사과 같은 행복이 나를 감쌌다면, 지금은 잘 익은 단감 같은 행복이 나를 에워싸고 있음을 느낀다. 행복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지금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숨 쉬고 있는 이 순간. 어느 것 하나도 감사하지 않은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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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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