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2일

너무 감사하다.

시인 백석을 진지하게 공부할수 있는 우연한 기회가 찾아온것에 대해... 어젯밤 잠을 이룰수 없었다. 미처 다 읽지 못한 그의 주옥같은 글들... 감히 내가 그의 문학과 삶과 사랑의 깊이를 이해하리라는 기대는 가져보지도 못하고 있다. 하지만 난 진정 황홀한 꿈을 꾸는듯 하다. 십여년 만에 느껴보는 이 아릿한 맛. 백석 시인의 작품들을 한 행 한 행 읽어 내려갈때 마다 내 온몸에 퍼지는 싸아한 것들...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내게는 없다.

어젯밤 랄라에게 고백했다. 엄마는 너무 행복하다고... 글을 읽을수 있어서, 내가 한국인이여서... 랄라의 머리맡에서 백석 시인에 대한 자료를 읽어주었다. 아름다운 글귀를 들으며 랄라가 잠이들었다.

고 향 ( 故 鄕 )

나는 북관(北關)에 앓어 누워서
어느 아침 의원(醫員)을 뵈이었다
의원(醫員)은 여래(如來)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집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 정주(定州)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씨(氏)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씨를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막역지간(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쓴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 다시 넌즈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어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