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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아. 그러니까 내가 아는 바닷가는 뉴포트 비치 뿐이지만, 여기서는 산타 모니카가 더 가깝지.
인석은 내비게이션을 켰다.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시아는 이상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 보았다.
“너 정말 이 차 어디서 났어?”
“시아야, 내가...내가 말이지.”
“응.”
“그니까. 한국에 삼촌이 한분 계셨었는데. 그분이 근래에 갑자기 돌아가셨어.”
“어? 정말? 너 괜찮아?”
전에 너....가족이 아무도 없다고 그랬잖아... 라는 말을 시아는 삼켰다. 괜히 마음아픈 말을 할 필요는 없지, 가족을 찾았다면 좋은일이니까, 근데 돌아가셨다니...
“어 난 잘 모르는 분인데. 어쨌든 그분이 나한테 재산을 남기셨다네.”
시아의 눈이 동그래졌다.
인석은 씨익웃으며 말했다.
“차는. 그분이 타시던 거라고. 그리고 나에게 남겨주신게 좀. 많은가봐.”
“정말?”
“그래. 그래서….나 조만간 한국에 가봐야 할것 같아.”
“한국에?”
“응.”
시아가 조용히 미소지었다.
민우는 몰랐겠지만 인석은 그 미소의 의미를 알았다.
그러나 그는 물었다.
“왜 웃어?”
“사실은...나도…”
“너도?”
“아니. 아니야. 이따가 바닷가에서 말해줄께.”
“그럴래?”
인석은 바닷가 근처까지 겨우 도착했는데 헤매기 시작했다.
표내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인석은 사실 자신이 직접 운전을 하고 돌아다녀 본적이 별로 없었다. 늘 기사가 운전해 줬었기 때문에 모든것이 생소했다. 파킹은 어디다 하는지.
“왜그래?” 시아가 웃으며 물었다.
“아...그게…”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너만 아는 골목이 있다면서. 계곡도 보이고. 아무도 모르는 조용한 해변.”
“거기는...다음에 가자. 사실 내가 말이야. 좀…”
“왜?”
“수술을 해서 그런지 멀미가 나려고 해. 거긴 좀 멀어서 못가겠네.”
“어...어떡해. 내가 어떻게 해줄까?”
“찬바람 쐬면 좋을거 같애.”
인석은 웃으며 그녀를 껴안았다.
시아는 당황했지만 멀미가 난다는 그가 더 걱정이 되었다.
바다 바람이 시원했다.
바다는 언제봐도 변함없이 웅장하고 거대하다.
그 엄청난 모습이 두려울수도 있지만 작게 쏠려오는 파도는 또 아름답고 잔잔하다.
시아처럼.
인석은 늘 시아를 이렇게 품안에 꼭 안고 싶었다.
지금 인석의 품안에 행복하게 안겨있는 시아의 모습이 마치 꿈만같았다.
“민우야.”
그 이름에 기분이 살짝 상하지만.
괜찮다.
나에게 시아를 준 이름. 나에게 자유를 준 이름.
“너 우리집에서 많이 아팠을때. 아침마다 도망가려고 했었잖아?”
소심한놈. 도망은 왜 해?
“그때마다 내가 너를 붙잡아서...처음엔 니가 많이 짜증났지?”
“아니야. 그냥 짜증난척 했지. 미안해서.”
“알아. 근데 너가 처음으로 아침에 나에게 웃어준날… 이젠 도망 안가겠다고 했던 그날 말이야…”
이 둘. 생각보다 많은 추억을 만들었나 보군. 뭐. 까짓거. 이제 시아는 나와 지낼 시간이 훨씬 많으니까.
“사실 그날 내가 기다리던 합격 통지서가 왔었어. 한국에서.”
알아...인석은 조용히 미소지었다.
“합격 통지서?”
“응. 미술대에서 강의하는 일인데. 난 영 안될줄 알았거든. 근데 합격 통지서가 왔어.”
“정말 잘 된일이네?”
인석은 조용히 웃었다. 니가… 정말 하고싶었던 일이라기에...내가 힘을 좀 썼어. 생각하며 웃었다.
“근데 안가려고 했었거든.”
“왜?”
시아가 조금 부끄러운 표정으로 민우를 올려다 보았다.
인석은 마음이 조금 쓰라림을 느꼈다.
그정도였어? 니들 사이가?
내가 그렇게 애를 써도 안돼던 시아가… 그놈이랑은 단 몇개월만에…
아니...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괜찮아. 이제...내가...내가 시아 곁에 있으니까.
“아빠가 절대 반대하셨거든. 혼자 못보내신다고. 근데…”
“근데?”
“민우 너라면...아빠도 믿어주실거 같아서.”
밝게 웃으려고 했는데 정말 별수없이 쓴웃음이 나왔다.
니...아버님까지…
“괜찮아? 민우야, 너 괜찮은거야?”
“아...괜찮아. 괜찮아…”
“미안해. 내가 한말이...부담스러웠어?”
“그럴리가. 아니야 시아야. 왜 그런말을 해?”
시아의 표정이…
“그냥...나 혼자 너무 좋아했나봐. 미안해.”
인석은 잠시 멀리 바닷가를 바라보다가 깊은 눈빛으로 시아를 바라보았다.
시아는 왠지 달라진 그의 분위기에 조금 당황했고, 또 설레였다.
인석은 조용히 시아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시아는 눈이 동그래져서 놀랐는데,
인석은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도...너무 좋아서 할말을 잃은것 뿐이야…”
시아의 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이제 나에게 설레이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있다.
그래.. 지금 열받는것은 사실이지만 이제 우리의 추억은 나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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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일어나십시오!”
밤이라도 깊은 잠을 잘수없어서 늘 반은 깨어있는 느낌이었다.
시끄러운 소리에 그는 반사적으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왜 그래?”
“위험합니다. 아무래도 놈들이 가까이 온것 같습니다.”
이제 몸이 많이 좋아졌다. 뛰어다닐수도 있을것 같았다.
기회다.
“준비해.”
“예!”
기다려오던 순간이었다.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별장을 벗어나는 순간.
그때까지는 잘 몰랐지만
별장밖으로 나오니 정말 깊은 숲속이었다.
주위에 경비를 하던 사람들이 통털어 30명은 되는것 같았다.
대체 이놈 정체가 뭐야?
차를 타고 한참을 가고 있었다.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이봐.”
“예!”
“잠깐 세워 봐.”
“안됩니다!”
차안에는 운전을 하는 녀석. 그 옆에 비서. 두놈 뿐이었다.
뒤로 따르는 차량이 열대정도.
“토할것 같아!”
“그냥 여기 하십시오” 하며 봉투를 내밀었다.
민우는 봉투를 잡는척 하다 비서의 팔목을 비틀었다.
당황하는 그의 팔을 쥐어잡고 운전대쪽으로 그의 몸을 밀어냈다.
차는 끼이익 하고 틀어졌고,
운전사는 어쩔수없이 브레이크를 밟았다.
민우는 필사적으로 차에서 뛰어내렸다.
거의 절벽가까이로 차가 떨어질뻔 했다.
민우는 죽자사자로 절벽을 타기 시작했다.
수많은 가드 들이 민우를 쫓아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두웠고,
절벽은 가파랐다.
높은 절벽 아래위로 무엇이 있는지, 물인지, 숲인지, 그저 깊은 어두움만 가득할 뿐이었다.
여기서 뛰어내리면 죽는다.
안돼.
이건...무모해.
가드들이 우르르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민우는 눈을 질끈 감고 뛰어내렸다.
어디로 떨어지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것은 용기였는지, 무모한 도전이었는지, 아니면 바보같은 자살행위였는지… 두고보자는 심산이었다. 어차피 악몽같은 현실이었다.
민우는 현실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으윽.
미친 점프를 하고 눈을 뜬 민우는 너무 기가막혀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가 떨어진곳은 폭신한 나뭇더미였다.
물론 살이 까지고, 다리와 팔이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그래도 살아있다니.
이런 우연이 있을수도 있나.
그가 아직
살아있다는것은 신이 그의 도전을 바람직하게 봐주셨다는거다.
주위를 둘러보니 가드들은 아직 먼 위쪽에서 아우성거리며 난리, 야단법썩이었다.
아래로 뛰어내리라며 윽박지르는 놈들도 있었고 그럼 니가 가라는 놈들도 있었다.
민우는 몸을 낮추고 뛰기 시작했다.
어두움에 익숙해진 그의 눈은, 달빛의 도움으로 어두운 숲을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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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지 않아?”
“괜찮아.” 시아는 웃으며 자신의 목도리를 꼭 매주는 그를 바라보았다.
“다행이네. 난 추워죽겠는데.”
“한국 바람은...상쾌하게 차갑고 시원한 느낌이야. 미국은 이렇게까지 춥진 않지만 뼈속까지 으스스..한 그런게 있잖아?”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손을 호호 부는 시아.
인석은 그녀의 말 하나 하나 행동 하나 하나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그러게.”
그러나 민우 그녀석이 얼마나 무뚝뚝하고 재미없는 녀석인지 조금은 지켜봤기에, 그리고 시아의 기억에서 자꾸 튀어나왔기에, 조금은 농담잘하고 밝은 자신의 성격을 조심하기 시작했다.
괜찮아…
시간이 지나면 나의 기억으로, 나의 추억으로 시아의 기억이 가득 찰것이고.
시아는 그녀석의 기억을 온통 잊을거야.
그때가 되면 좀 더 마음껏. 내 방식대로 사랑해줘야지.
인석은 그렇게 다짐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때, 인석의 전화가 울렸다.
번호를 보고 그의 표정이 굳어졌는데,
“왜그래, 민우야?”
“어? 아...아니. 잠깐만. 추우니까 택시 안에 들어가 있어. 난 짐 실고 들어갈께.”
“응… 알았어.”
뭔가 급한일인듯, 짐작한 시아는 조용히 차안으로 들어가 전화를 급하게 받고 돌아서 걷는 민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수술을 하고 스포츠카를 몰고 집으로 돌아온 민우는…
왠지 수술 전…
전시회장에서 만나서 몇개월간 시름시름 앓았지만 말로는 통하지 않는 따뜻함과 온화함이 있던 민우와… 달랐다.
말이 별로 없었고, 친절함을 불편해하고, 관심을 부담스러워했던 민우가.
그랬었다.
아주 조금씩..아주 천천히 시아에게 다가왔던 그는
여전히 수줍어했고
서툴렀었다.
그의 서툴고 순수한 마음이...그가 감추려고 노력했지만 너무나 빤히 보였던 그의 따뜻한 마음이 시아에게는 너무나 큰 설레임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수술 후 그는… 말을 하지 않아도 자신감에 넘쳐있었고, 장난스러운 농담을 곧잘 하곤 했다. 시아에게 적극적이었고, 뭐든 망설이는법이 없었다.
아버지를 굉장히 어려워하던 전과 달리,
그는 시아의 아버지에게 무척이나 깍듯했고, 반듯했다.
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 뭐...내가 그를 잘 몰랐을수도 있지.
그때는 몸이 아파서...그냥 그렇게 서툴어 보였을수도 있지.
그의 미소는 여전했고, 그의 따뜻한 눈빛도…
아니...그런데 부인할수없는 뭔가가 시아의 마음 한구석을 찔렀다.
그의 눈빛도...어딘가…
“오래 기다렸지? 미안.”
민우가 웃으며 차에 올라탔다.
“어디 좋은 식당으로 가주세요. 점심먼저 먹게.”
하며 민우는 익숙하게 운전사에게 말했다.
그는 애써 웃었지만 그의 머리속은 터질것만 같았다.
그 놈이. 사라졌다고?
숲속에서 뛰어내렸다고?
미친자식. 지가 가면 어딜간다고..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래...차라리 깨끗하게 없애버려?
이런 멍청한놈!
“민우야, 물어보시잖아?”
“어? 뭐라고?”
“한식 아니면 외식 레스토랑으로 모실까...물었습니다만..”
“아. 그래. 뭐...시아는 뭐 먹으면 좋겠어? 너 좋은데로 해. 너 부페 좋아하지?”
“어?”
시아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인석도 순간 입술을 깨물고 싶었는데,
“내가...부페 좋아하는거...말했었나?”
“어. 아버님..아버님한테 들었지. 아저씨, 부페 ...좋은데로 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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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서든 도련님을 찾아야해. 멀리 못갔을테니, 뒤져보자구.”
날이 밝은후, 숲속 깊은 곳곳으로 수색이 시작되었다.
그때 민우는…
“괜찮아요 젊은이?”
“예...감...감사합니다.”
차갑게 얼어버린 그는 작은 구멍가게에서 음료수를 사먹을 돈도 없었다.
몸에 지니고 있는 뭐 쓸만한 물건도 전혀 없었다.
멀쩡하게 잘 차려입은 코트. 그것도 숲속을 헤매고 다니느라 거지꼴이 되어 있었다.
“죄송합니다. 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물 한모금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더 이상 한 발자욱도 뗄수 없을것 같았다.
“물 한잔만...부탁 드려도...될까요?”
가게주인 할아버지는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물 한잔을 가져다 주었다.
“감사합니다…”
할아버지는 그를 아래 위로 훝어 보더니,
“배고픈가?”
“아...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할아버지는 피식 웃으시더니, 빵 하나와 우유하나를 내미셨다.
“자. 외상으로 줄테니까. 다음에 꼭 갚으시게.”
할아버지의 친절함에 민우는 조용히 웃었다. 거지같은 자신의 모습이 창피하기도 했고.
“감사합니다.”
가게 앞 계단에 걸터앉아 빵과 우유를 받아먹으며 민우는 한숨을 쉬었다.
자….
이제 뭘.
어떻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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