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깐 진짜 고마웠어, 형. 내가 그거에 대한 보답은 충분히 할거야. 내가 정말 곤란했었거든.”  

정말이지 하마터면 큰일날뻔 했다. 다른사람도 아니고 아버지와 연우에게 걸려들었으니.

더구나 연우...그녀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았었다.

완전 꼼짝없이 당했다 싶은 순간, 비상시에 사용하려고 넣어둔 이 형님이라는 전화번호.

전화하자 마자 그렇게 금방 달려오다니. 인석자신도 놀란 일이었다.

“뭐가 어째?”

“아 그리고…” 민우 놈의 빠른 손이 필요하다고?

“내가 손목을 좀 엄청 다쳐서, 형을 도와줄수가 없어. 진짜야.”

“이 자식이...그런데 왜 하는짓이 영….?”

“에이, 아빠! 그만 해! 얘 다친거 안보여? 오늘은 쫌 쉬고. 내일 얘기하자. 응?”

“아니 저 자식이 하는짓이 영 이상하잖아?”

“이상하기는! 아빠가 더 이상하구만! 오랫만에 만나서 일이나 시킬생각뿐이야?”

“너 나가 있으라 그랬지?”

“아,아…” 인석이가 벌떡 일어나 희주를 머리를 확 자신의 어깨로 감싸안았다.

“얘 나가라고? 내가 델꾸 나갈께. 오늘만 좀. 봐주쇼 형님?”

“저 자식이..” 형님이 멍한 표정으로 인석을 쳐다 보았고,

희주는 얼굴이 빨개졌다.

처음 안겨본 민우의 품안에서…

아주 고급스런 냄새가 났다.

인석은 희주를 데리고 식당밖으로 나왔다.

어휴….

숨을 길게 뿜어 내쉬며…

“이제 좀 살거같네. 휴….”

“뭐가?” 희주가 얼굴을 인석앞으로 빼꼼히 내밀었다.

“아 저 안에 냄새가!” 그가 힐끔 희주의 눈치를 보았다.

“왜. 너 곱창 굽는냄새 엄청 좋아하잖아?”

“아, 그게 아니고. 그 술…”

“아, 그치. 술냄새는 원래 싫어하지. 여전하네.”

하며 희주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인석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조금씩 조금씩 자라났다.

“꿈 아니지? 우리 진짜 만난거지?”

꿈이었으면 얼마나 좋겠냐...하는 생각으로 인석은 그녀를 보며 피식 웃었다.

“어…? 너 웃는 표정이… 되게 멋있어졌다?”

인석은 뜨끔하면서도 왠지 우쭐해졌다.

그럼, 내 멋있는 표정이 그 녀석이랑 비교나 되겠어?

“형한테.. 잘 좀 말해주라. 나. 이만 가봐야될거 같애.”

“뭐? 간다고? 어딜?”

“아, 내가...좀 처리할 일이 있어서. 사실 내가 지금 엄청 바쁘거든.”

“웃기시네.”

“부탁할께. 응?”

“울 아빠가 널 순순히 보낼거 같애?”

“그니까 니가 말을 잘 해 줘야지. 아. 내가 뼈가 부러진거 같아서. 병원에 가야겠다고.”

“그럼 나랑 같이 가.”

“어?”

“내가 데리고 가면, 아빠가 믿어줄거야.”

“아, 그니까…” 시아를 만나야 했다. 그 아이가 어디서 뭘하고있는지. 우선 시아 부터 만나고 민우자식이 어떻게 하고있는지, 또 연우의 계획을.. 그 알수없는 꿍꿍이 속을 어떻게든 무너뜨리기 위한 방법도 찾아야 했다. 만약 연우가 민우의 사실을 알고도 돕고 있다면...사태는 지금 무척 위험하니까.

희주가 눈을 껌뻑거리며 인석을 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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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내 부탁을 하나만 들어줘요. 그러면...연우씨가 원하시는대로...하죠.”

“그게 뭔데요?”

“시아를 만나야 겠어요. 어떻게 지내는지...잘 있는건지... 잠시라도 좋으니 만나게 해주면”

“그럼. 내 계획대로 움직여 주겠다는건가요?”

“....” 민우는 한숨을 내 쉬었다. 그리고 연우를 똑바로 마주보았다. “그래요.”

“쓸데없는짓...또는 쓸데없는 소리. 안 하겠다고 약속할수 있어요? 만약 허튼소리를 하면...난 시아를 아주 멀리 보내버릴거예요.”

민우는 독하게 반짝이는 그녀의 눈을 조금은 애처롭게 마주보았다.

“그래요. 약속 할께요. 그냥… 잘 지내는지. 아픈데는 없는지...”

잘 지내냐고. 아픈데는 없냐고…

왜 그 시시한 말들이 연우의 가슴을 그렇게 아리게 하는지 그녀 자신도 알수 없었다.

“참...운이 좋은 아이네요. 그 시아라는 아이.”

연우는 조용히 차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가더니, 잠시 후 민우를 돌아보며 조용히 말했다.

“어서 들어가요. 당신. 집이니까.”

민우는 부축하려는 비서를 뿌리치고 천천히 집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현관까지 도착하는데 한참이 걸렸다. 아.. 이럴줄 알았으면 부축을 뿌리치지 말걸...할 정도로 멀었다.

그리고…

“인석아!”

놀란 눈으로 뛰쳐나오시는…

“어머니…” 연우가 아주 작은 소리로 속�タ눼�.

“인석아! 이게 대체….집으로 돌아온게 얼마만이니? 왜 이렇게 다친거야? 인석아!”

그분은 민우를 따뜻하게 안아주셨다.

너무 얼떨결에 일어난 일이라… 그리고 느껴보지 않은 어머니...라는 분의 품안이라 민우는 잠시 굳어져 버렸다.

“연우야. 이게 왠일이니?”

“네, 어머님. 일이 좀 있었어요. 걱정하실일은 이제 다 끝났으니까 염려 마시구요. 며칠 쉬다가...우리 결혼준비...다시 진행하려고 해요. 인석씨, 어머님 걱정 그만하시게 뭐라고 말좀 해봐요.”

‘네...어.. 저..그러니까.”

“얘가...대체 왜이렇게 다친거냐고? 양 비서는 어디있고? 강박사 좀 불러야겠다. 아줌마!”

뭐라 말을 할 틈도 없이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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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지에 어린아이같이 반창고를 얼굴에 붙히고 자잘한 상처를 치료받으며 인석은 계속 머리를 굴렸다.

얘를 어떻게 꼬시지? 어떻게 슬그머니 빠져나가지?

“배 안고파? 아까 곱창 하나도 안먹데?”

“희주...너도 배 고프냐?”

“응.’

“나가자 그럼. 뭐...너나 나나 먹고는 살아야지 않겠어?”

“끄래? 우리 뭐 같이 먹는거야, 그럼?”

희주는 신나서 인석의 팔짱에 매달렸다.

시아에게서는 느낄수 없었던 희주의 밝은 귀여움에 인석은 또 피식 웃음이 세어 나왔다.

급한마음에 인석은 좋아하는 스테이크집으로 서둘러 발길을 옮겼다.

“야...너…”

“오빠한테 야가 뭐냐?”

“이렇게 비싼 음식 막 사먹어도 소화가 되니?”

“그게 뭐소리야? 얘기 했잖아. 우리 삼촌이…”

“아무리 그래도 이런거 되게 좋아하는거 같이 보이는데?”

“그럼. 내가 안 먹어 봤을때나 몰랐지. 먹어본 다음인데 좋아하지 안 좋아하냐? 자, 이 와인 한번 마셔봐.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녹아. 세상 모든 근심이 사라진달까?”

희주의 눈빛이 순간 조금 불안하게 느껴졌고, 에이 씨… 뭔 말을 못해. 그 민우란 놈이 워낙 재미없는 놈이라서. 정말 미치겠군. 그러게 그 놈 측근들이랑 자꾸 엮이지 말아야 하는데.

그때 전화가 울렸다.

인석의 표정이 굳어졌고,

“어...어. 뭐? 뭐라고?”

희주의 눈이 둥그래졌다.

“왜그래? 무슨일 있어?”

“야, 너...너 형님한테 얘기 잘 해줘. 내가. 내가 다시 연락할께. 알았지?”

인석은 미친놈처럼 먹던음식을 내려놓고, 수표몇개를 지갑에서 꺼내 던지다 시피 하곤 뛰쳐나갔다.

“쟤가...왜 저러지?”

희주는 잠시 그의 뒷모습을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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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를!

시아를 만나러 왔다고?

그 녀석이?

인석이 미친듯이 뛰어서 아파트의 초인종을 눌렀다.

안돼.

절대로 안돼.

어떻게!

아!

문이 스르륵 열렸고,

연우의 차가운 눈빛이 인석과 마주쳤다.

아...어떻게…

라는 질문은 여기서 풀어졌고.

연우가 손을 쓴 것이다.

두사람을 만나게 해주려고?

아니, 왜?

“뭐하는거야.”

“내가 뭘.”

“연우야.” 인석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연우가 피식 웃었다.

“날...알아요?”

“연우야!”

“웃기시네. 편리한데로 아는척도 하고. 두 사람 방해하지 말고. 우리 나가있지?” 연우는 속삭이듯 그를 밀어내며 말했지만,

인석은 분노로 가득찬 표정으로 연우를 밀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도 지금 막 도착했는지, 시아가 커피를 내어 오고 있었다.

시아는 식탁에 조용히 고개를 내린채 앉아있는 인석과 민우를 번갈아 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찻잔을 떨어뜨렸고,

인석은 그런 시아의 어깨를 재빨리 다가와서 잡아주었고,

민우는… 인석의 모습을 한 민우는, 조용히 놀란 시아를 올려보다가, 깨진 찻잔을 냅킨에 쓸어담았다.

“미안… 미안해.”

시아는 인석에게 어색하게 웃으며 그의 손을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아, 민우...민우야..” 그녀가 망설이듯 말을 더듬었다 .

“이쪽은 인석이라고...차인석...나 대학교때 만난 친구야. 근데...너도 왜그렇게 다쳤니? 인석씨도 그렇고...”

“아…” 인석이 잊고있었다는듯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고,

민우는 좀 부끄러운듯 피식 웃었다.

“좀… 앉아라. 시아야.” 인석의 모습을 한 민우가 조용한 목소리로 시아를 올려보았고,

“이런 늦은시간에.. 여긴 왜 온거죠?”  인석이 분노 가득한 표정으로 민우를 노려보았다.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우선 인사부터 나눠야 하는거 아닌가요? 적어도 시아 앞에서는?” 민우가 조금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고,

“인석씨.” 연우가 그를 노려보았다.

“아, 미안...미안해요. 잠시 헷갈려서…” 민우가 피식 웃었다.

시아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두 눈에는 조금씩 눈물이 �션舛都�.

“오랜만이다. 시아야.”

“어...아...그치. 그때 전시회에서 보고"

“그랬구나. 내가...그때 전시회를 갔었지.” 하며 민우는 인석을 잠시 의미있는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민우의 모습을 한 인석은 당황한 기색을 숨기느라 두손을 주머니 안으로 집어넣었고,

“왠일이야? 나 한국온거. 어떻게 알았어?” 시아는 인석앞에서 흔들린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민우는 잠시 아무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보고싶었어…. 아프지 않고...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라는 말을 가슴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건강...하지?”

“응?” 시아는 인석을 보며 왜 이리 자신의 손이 떨리는지 알수 없었다. 아니면...민우인척 하는 저 사람이….두려워서? 분명 그는 민우가 아닌데… 자꾸 자신이 민우라고 하는...민우와 너무나도 닮은 사람.

“시아야.” 인석의 모습을 한 민우가 뭔가 이상한듯 시아를 불렀다.

“어…? 어. 그럼. 건강하지. 그리고 참. 오교수님이 그러시더라...너가...날 강력하게 추천해 줬다고…. 고마와 인석아.”

“아… 그거…?” 하며 민우는 잠시 고개를 떨구었다가 돌아서있는 인석을 돌아보았다.

그는 애써 눈길을 피했고.

“내가 진작에 찾아가서 고맙다고 전해야 하는데… 니가 여기까지 와줘서..정말 미안하네.”

시아는 애써 웃었다.

뭔가 그녀를 흔들어 놓고 있는데, 애써 웃는것이, 민우의 눈에는 보였다.

민우는 아무말 없이 그녀를 마주보았다.

아니, 아무런 말도 의미가 없었고..

지금은 아무것도 할수 없었다.

그녀의 눈빛에 두려움이 보였다.

“괜...찮은거지?”

“뭐가?”

“너 말이야. 괜찮냐고.”

“어….? 어…”

“인석씨. 이만 가보죠. 장관님께서 자꾸 전화를 하셔서요.”

하며 연우가 가까이 다가섰다.

그녀의 눈빛도 심상치 않았다.

이제 그만.

라는 말을 하듯, 그런 단호함이 그녀의 미소에 담겨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