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게 일주일이 지나가고 어느새 토요일이 되었다.
마이크가 아파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Hi!!! 오랜만이네," 하며 활짝 웃었다.

"그렇네.. 마이크는 왜 그렇게 바빴어?"

"너야말로. 전화해도 안받은게 몇번인줄이나 알아?"
하며 그가 조금 삐진듯 한쪽입을 삐쭉하며 웃는다.

"주말이라도 볼수있으니, 다행이네."
하고 헤...웃는데,
그가 그윽한 눈빛으로 진지하게 나를 본다.

"너 얼굴보니까... 왜 이렇게 오랜만인가 싶다. 많이...그리웠나봐."

나도 마이크가 많이 궁금했다.
전화통화도 몇번했고, 이메일은 거의 매일 주고 받았는데도.
뭔가  모자란 듯, 어딘가 왠지 허전한 듯...
그 느낌이 뭐였는지 잘 모르겠다.
그게 그리움인가?

그의 차를 타고 일주일간 어찌 어찌 지냈다며 한참 수다를 떨다 자폐아 특수 학교에 도착했다.
오늘은 강교수가 안보였다.

"강교수...없네?"

"그래...어...."

갑자기 마이크가 할말을 잃는데,

"Oh my goodness! I can't believe this!!"
하며 길쭉하고 시원한, 전에 지하철에서 잠깐 만났던 금발의 미녀 Cindy 가 마이크를 보고 놀란 표정으로 뛰어나온다.

"Wow... What...are you doing here?"

왜저럴까. 왜 마이크는 이 여자를 볼때마다 저렇게 당황할까..

"I work here!" 하며 그녀는 활짝 웃는다.

매주 토요일마다 여기서 봉사생활을 시작한지. 2년이 되어간다고.

"Two years?" 그 2년이라는 말에 마이크는 무척이나 놀란듯 하다.

그녀는 웃는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한참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그녀는 또 활발하게 웃으며 사라졌고,
마이크는 저번 처음 부딫쳤던 그 날처럼, 또 멍해진 표정이다.

"왜그래..?"

"어?"

"왜...그러냐고. 저 여자는 어떻게 아는사람인데...그렇게 넋을 잃은거야?"

"넋을 잃긴... 아니야."

"말해봐. 괜찮아."

"She's.... my...ex-girlfriend."

"아....그래? 그랬어? 진작 말하지..뭐 그런걸 그렇게 힘들게 말해?"
하며 쿨하게 웃어주었다. 난 상관없어 -  너도 상관하지마....라는 뜻으로.
마이크는 좀 다행이다 싶었던 건지, 내가 이러면 안돼 - 싶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금새 밝아진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오늘은 부엌에서 일하는 스태프에게 인터뷰를 먼저 시작해 볼까?"

나도 싱긋웃으며 그러자고 했다.

그리고 그후로 세시간동안, 나와 마이크는 이사람 저사람을 붙들고 침이 마르도록 떠들며 인터뷰를 작성하고, 무거운 컴퓨터와 녹음기를 들고 다니며 사람들을 따라다녔다.
바쁜와중에도 내 마음 뒷편에서는 마이크의 한마디가 계속 맴돌았다.
옛...여자친구....옛 여자친구라고...
그렇게 넋을 잃고 보는건.
아직 그녀를 잊지 못한건 아닌지...

지우려고, 부인해봐도, 자꾸 머리속에서 맴돌았다.
그러나 그 얘기를 꺼내 물을정도로 내 자존심을 굽힐 자신은 없었다.
아직. 우리가 사귀자고 한것도 아니고...그냥 서로 좋아한다고 말한것 뿐이니까...

그때.

"Oh no! NO!!!" 하며 소리지르는 스태프들이 여기저기서 몰려든다.

"무슨일이지?" 마이크와 나도 소리나는 곳으로 뛰어들어가 보았는데,

저번주에 봤던 천사같이 예쁜 그 여자아이다.
윤지석과 조용히 머리를 빗으며 대화를 나누던 그 여자아이...
그러나 낮에는 이마에 붕대를 감고 손에는 장갑을 끼고 심한 자페증을 앓는... 그 소녀였다.
그녀가 누군가의 팔목을 물고 놓질 않는다.
식은땀을 흘리며 오히려 그녀를 달래고 있는 그 사람은...
윤지석이다.


"Anna! STOP! Stop it now!" 하며 당황한 스태프 한명이 소리지르자,

윤지석이 그에게 고개를 흔든다.

"Don't yell. You're scaring her."

뭐? 무섭게 하지 말라고? 소녀는 이 순간 공포 그 자체였다.
다른 사람들 모두 발을 동동 구르며 소녀를 윤지석의 팔목에서 떼어내려고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고,
저렇게 하게 놔주는건 틀린것이라고 핀잔을 주는 이들도 있었다.

윤지석은 꿈쩍도 하지 않고 계속 애나를 타이르기만 했다.
"애나야...왜 그래.. 말 해봐. 응?"

소녀는 풀어주기는 커녕 그의 팔목을 더 꽉 물기 시작한것이, 윤지석의 고통스러운 표정에서 짐작이 갔다.
그의 셔츠 팔목주위가 검붉은 피로 물들어가는것이 보였다.

"겁내지 말고 말 해봐. 괜찮아...."

괜찮아...말해봐...
그는
그 두마디를 계속 반복한다.

드디어 그녀가 서서히 힘을 풀기 시작하고,
스르륵... 뒤로 쓰러진다.
윤지석은 쓰러지는 소녀를 받쳐주고는,
두눈을 감으며 소녀를 자신의 품안에 꼭 안아준다.
그의 이마에 온통 식은땀이 맻혀있었다.
아픔을 참으며 소녀를 달래느라, 그도 곧 쓰러질것 같이 지쳐보였다.

"삼촌...."
소녀의 입술에서 꿈같은 한마디가 들리고,
그녀의 감겨진 두 눈가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햇빛이...따가와. 눈이...아파."

윤지석이 안타까운 눈으로 소녀를 보며, 조용히 손수건을 꺼내 그녀의 눈을 조심스레 닦아낸다.

"어때...좋아졌지?"

소녀는 말없이 그의 팔에 안겨 숨을 죽인다.
그렇게 몇분...
소녀는 깊이 잠에 들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안도의 숨을 내 쉬었고,
소녀의 담당 치료사와 여러 스태프들이 윤지석의 팔에 붕대를 감아주며, 그 에게 이런 저런것을 물었는데
그는 침착하게 대답을 하다가,
그때 우리를 처음 본듯했다.
조금 놀랬는지,
잠시 고개를 돌려 일을 마치고,

멍하니 구경하고 있던 마이크와 내쪽으로 천천히 걸어나왔다.

"여기...어떻게 왔어?"

"괜...찮아? 너. 피나는데..." 마이크가 걱정스러운듯 물었다.

"장교수가 불러낸거야?"

"그래. 넌...?"

윤지석이 피식 웃더니. 

"점심시간 다 됐네. 점심이나 먹으러 갈까?"

"여기서...더 일해야 해."

"밥도 먹지 말래? 장교수가?"

"아니...그건 아니지만. 너, 정말 괜찮겠어?"

"별거 아니야. 아이들은..."
그가 잠시 말을 멈추더니...

"더...많이 다치기도 하는데."
하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우리는 셋이 근처 식당으로 걸어나왔다.

"아는...아이 인가요...?" 음식을 시켜놓고 조심스레 물었다.

윤지석이 또 피식...그냥 웃는다.

"삼촌...이라고..."

"삼촌 맞아. 우리 누나...딸이니까."

마이크가 잠시 망설이더니,

"장교수랑은...무슨 관계인거야...?"

"그건 내가 알바 아니고."
하며 방금 나온 뜨끈한 국수를 입에 집어 넣고는,

"니들은 데이트를 참 특이하게 하는구나?"
하며 웃는다.

윤지석은... 어떤 사람일까...?
마이크와 윤지석 사이에는 어떤일이 있었던걸까...
장교수와... 그 사람과도 무슨 관계가 있는건지...

처음으로 윤지석이란 사람을 편견없이 그대로 보게되었다.
궁금하기도 했다.
이 사람...
뭐하는 사람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