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라는 윤지석의 말이 좀 거슬렸는지, 마이크가 퉁명스럽게 말한다.

"너야말로 데이트 다니기 바쁠텐데,
이런곳에서 만나서 정말 뜻밖이었어."

훗. 하며 윤지석이 웃는다.
뭔가를 생각하는듯 하더니, 다시 국수를 집어 삼킨다.

"장교수님이 왜 그 학교에 저희를 보내신건지....혹시 알고 계셔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장교수한테 물어봐야지.
아, 그러고 보니 장교수가 전해주라고 한게 있었는데."

윤지석이 주머니를 잠시 뒤지더니,

내 앞으로 뭔가를 탁. 내려놓는다.

"이게...뭐예요?"

"너한테...주라던데?"

목걸이.

진주 목걸이다.

"이걸...왜....?"

"글쎄. 그것도 장교수한테 물어봐야겠지?"

마이크는 의아한듯 목걸이를 집어 든다.

"선물인가...? 새것 같지는 않은데...아니, 장교수가 왜?"

"이야. 잘 먹었다.  난 바빠서 이만 가봐야 겠는데? 천천히 먹고 오던지."
윤지석이 씩 웃더니, 식탁을 한번 탁 치고 일어선다.

"저런...매너도 없는 자식. 밥먹는 사람 두고 혼자 나가는 건 또 뭐야?"

그렇다. 마이크같으면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다. 늘 상대방을 배려해주고 기다려주는 마이크와는 너무나 다른 사람이다.

"목걸이...이게 뭐지?"

"녀석 말대로...장교수한테 물어보자. 이따 오후에나, 아니면 내일 만나볼수 있을거 아냐?"

마이크는 그렇게 말하더니, 목걸이를 들고, 조심스럽게 내 목에 걸어주었다.

"흠... 너한텐 안어울리는데?"

"그래?" 조금 멋적었는데,

"응. 이유를 막론하고, 다른남자가 너에게 준 목걸이...안어울려. 맘에 안들어."

얼굴이 후끈거렸다. 이럴때 내숭이라도 떨수있었다면 아마
어머머...하며 그의 어깨를 살짝 칠수도 있었을걸.
난 그런 재주가 없다.
그저 멋적은 마음에 서둘러 목걸이를 빼 주머니에 주워 넣었을뿐.
마이크는 그런 나를 보며 웃는다.

"우리 이따가 일 끝나고 저녁 먹을까?"
"응? 어...그럴까..?"

정말 마이크는 내가 좋은걸까?
너무너무 멋지고, 똑똑하고, 매너좋고...음...또 성격도 좋고,
향기도 좋은 이 남자는
내가 왜 좋을까?
자신없는 생각이 줄을 이었지만 그냥 기분좋기로 마음먹었다.
하루종일 함께 보내고 저녁까지...
정말 행복한 하루가 되겠네.

학교로 돌아와보니
장교수가 스태프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어. 왔어?"
그는 우리를 보더니 가까이 오라는듯 손짓했는데.

"마이크는 도서관에 잠깐 가보도록 해. 다음 인터뷰에 필요한 자료가 있을거야."

"아. 예..." 마이크는 잠시 나를 돌아보고는 oh well...하는 표정으로 돌아선다.

"안녕하세요"

"목걸이. 한번 해봐."
니 인사따위는 바빠서 생략하겠어..라는 식이다.

"네?"

"해보라고."

"왜...요? 이게 뭔데요?"

의아해 하는 나에게 장교수는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순식간에 내 손에서 목걸이를 잡아채더니,
나를 감싸듯
두 팔을 올려,
내 목에 목걸이를 걸어준다.
아니.
걸어주는게 아니라
그냥 걸었다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일것이다.
나는 마네킹이 된 기분이었고,
그는 그저 굳어있는 인형에 목걸이를 달아놓은것 뿐이었으니까.

그걸 알면서도
순간적으로 내 심장이 두근거렸던 것은,
아마도 너무 갑작스런 그의 행동이 너무나 이상해서 였을것이다.


"따라와."

그의 행동과 말투가 말할나위없이 불쾌했지만 따질 겨를도 없었고, 또 장교수를 거슬리게 하고 싶지도 않아,
그저 말없이 그를 따랐다.

장교수가 발걸음을 멈춘곳은.
애나가 있는 교실이었다.
낮에. 한바탕 윤지석의 손목을 물고 놓지 않던.
그 천사같이 아름다운 소녀.

소녀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물끄러미 아이를 바라보는 나의 어깨를 장교수가 톡톡 두드렸다.

"잠시..들어가봐."

"네?"

어서. 하는 표정으로 장교수는 교실문을 열었다.

"저기요. 교수님."
아무리 점수가 중요하다지만 이렇게 로보트처럼 시키는대로 따라하는건...말도 안된다.
조금의 설명도 없이, 너무 막무가내가 아닌가?

장교수는 아무말없이 교실안으로 먼저 들어가더니,
나를 돌아본다.

"잠시면 돼."

교실안으로 발을 들여놓자 마자,
소녀는 내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물끄러미...잠시 움직이지 않고 나를 또렷이 쳐다본다.
솔직히 말하면....
순간 겁이났다. 나를 때리거나 공격하진 않을지... 그럼 어떻게 해야할지.
부끄럽지만 그 순간에는 정말 겁이 났다.

소녀는 들고있던 크레용을 떨어뜨리고, 내 쪽으로 뛰어왔다.
그 때 더 겁이 났어야 하는데, 오히려 그렇지 않았다.
그 소녀의 눈빛을 보았다. 눈물이 맻혀 반짝이는 그 아이의 눈빛을.

소녀는 무작정 나를 와락 감싸 안았다.
그리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엄마!"

잠시... 얼음처럼 굳은채로 나는 장교수를 올려다 보았다.
그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잠시 눈을 감더니, 교실밖으로 걸어나갔다.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소녀를 마주 안았다.
그냥...그렇게 하고 싶었다.

"뭐...하시는 겁니까."

윤지석의 목소리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뭐 하시는 거냐구요!"

"보다시피."

"교수님!"
윤지석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소녀에게 충격을 주지 않으려고 자제하려는듯 한다.

"지금... 장난하는 겁니까?"

"지영이가... 아끼던 목걸이야."

"그러니까 지금 뭐하는거냐구요!"
급기야는 윤지석이 소리를 지른다.

소녀는 아랑곳 않고, 눈물을 훔치더니,
나를 보고는 천사같이 웃고는, 내손을 잡아 끈다.

"엄마. 나 그림 그려. 엄마도 애나랑 같이 해."

소녀와 자리에 앉자, 그들이 목소리가 조금씩 멀어진다.

"애나는. 자폐증이 아니야. 저걸 보고도 고집피울래?
너도 알고 있잖아?"

윤지석이 뭐라고 소리치는거 같은데, 이미 그들은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갔다.

장교수...대체 뭐하는 사람이야.

소녀는 행복해보인다. 나와 정확히 눈을 마주치지는 않지만,
왠지 평안해 보인다.

그때,
윤지석이 나타나 내 손을 잡아 끈다.

"미안하다. 이만 가봐."

그를 올려다 보았다.
지치고. 가슴아픈 표정이다.
그의 고뇌가득한 표정에서 왜 그랬는지 우리 오빠 생각이 났다.

"왜...그래요..?"

"나가 봐."

나지막한 그의 목소리에...
나는 그저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엄마!"
소녀는 나에게로 오려하는데,
윤지석이 아이를 막는다.

"애나. 삼촌왔어. 삼촌하고 해."

"싫어! 엄마! 엄마!"
소녀가 울부짖는다.

망설이는 나에게 윤지석이 고개를 젖는다. 빨리 나가라고.

나오기 전 잠시 뒤돌아보니,
소녀는 화가 났는지, 작은 주먹으로 윤지석의 가슴을 치기 시작한다.
발도 차기 시작한다. 울부짖기 시작한다.

어쩌나...말려야 하나...
안절부절하는데,

"잠시.. 얘기 좀 하자."
뒤에서 장교수의 목소리가 들린다.

"교수님..?"

장교수는 말없이 걷기 시작했다.
화도 나고... 의아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고.

"윤지석. 누군지 알지?"

"잘은 모르고..그냥 몇번 만났는데요."

장교수가 한숨을 쉬더니 나를 돌아본다.

"니 입학원서. 내가 추천했었다."

동서남북...질서없는 그의 대화법.
천재라서 그런가? 암튼 이상해...

"넌 우리 프로그램에 들어올 만한 인재가 아니었어."

머리에 꽝.
망치를 맞은 기분이었다.

"졸업하기 위해선 저 녀석 도움이 필요할거야."

"무슨..말씀이세요. 대체.
목걸이는 뭐고.
이 학교에는 왜 오라고 하신건지..
그리고 제가 비리로 입학허가를 받았다는건가요?
인재가 아니라는건. 무슨 뜻인거죠?"

"이봐. 나 바쁜사람이야.
세겨들어.
이 학교에 오라고 한건 지석이를 만나게 해주려는 거였고.
비리? 그건 물론 아니었지만 내 추천없이 합격할수 없었던거 사실이었고.
또 니가 인재가 아니란건 니 스스로 알고 있잖아?"

"그러니까. 왜 저를 도와주셨는지...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지."

"그건 지금 말할수 없어. 어쨌든...내가 하고싶은 말은.
넌 윤지석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니까
너도 그만큼 녀석을 도와주도록."

"전 도움따위 필요없어요!"

"그건 니 스스로 착각일 뿐이고."

장교수는 세워져 있던 차에 알람을 켜더니,
말없이 차에 올라탄다.

왜 나를 이렇게 무시하는지...
그리고 말도 안돼는. 설명도 안돼는 말만 퍼붓고 사라지는 장교수를,
나는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터벅터벅...
교실쪽으로 돌아오는데,
식은땀으로 젖은 윤지석이 한숨을 쉬며 밖으로 나왔다.

그와 눈이 마주쳤는데.
윤지석은 알까...
장교수의 횡설수설을... 저 사람은 설명해 줄수 있을까?

"저하고...얘기 좀 할래요?"

윤지석이 지친표정으로 눈길을 돌리더니,

"나하고 얘기할 시간이 있겠어?" 하며 누군가를 의식하는듯 하다.

"연서!" 하고 이쪽으로 뛰어오는 마이크가 보인다.

마이크를 돌아보니,

"연서...아...이거. 미안해서 어쩌지? 급한일이 생겨서 지금 가봐야 할것같아. 전화할께.
집에 가는건"

"전철타면 돼. 걱정 하지마."

"어? 그래.. 미안해. 전화할께 그럼."
마이크는 잠시 멈칫하고 윤지석을 쳐다본다.

"잘가라."
윤지석이 피식 웃으며 인사하자, 마이크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더니,

갑자기 내 볼에 살짝 키스한다.
"미안해 연서. 오늘 밤에 전화할께."

여전히 향기롭고 달콤한 그의 키스였지만
그순간에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왜그러는지
왠지 윤지석을 의식하는것 같은 그의 행동이
불쾌했다.

윤지석은 지친미소를 머금고 걷기 시작한다.

"할말이...뭔데?"

"여기서 해야해요? 선배님도...바쁘세요?"

그가 말없이 나를 보더니,

"아니. 안 바빠."

나는 말없이 짐을 챙겼고,
전철을 타는곳까지 걸어갔고
윤지석은 먼 발치 뒤로 나를 따라왔다.

전철에 타고 앉으니 그가 딴청을 부리며 건너편에 앉았다.
그날따라 날씨가 아름다왔다.
하늘도 눈부시게 파랗고
바람도 적당히 불어 상쾌했는데...

급하게 사라진 마이크는 어딜 간걸까? 저녁 같이 먹자고 해놓고..
그리고 장교수...

Newbury Street 에서 내렸다.
시내 구경이 하고싶었다.
윤지석은 여전히 몇 발자욱 떨어져 내가 가는데로 내버려 두었다.

"선배님은. 솔직한 쪽에 속하세요?"
그를 돌아보며 묻는데,

윤지석이 피식 웃는다.

"왜?"

"제가 묻는데로. 다 대답해줄수 있어요?"

"내가 아는문제라면."

"정말이죠"

"Newbury street 꽤나 좋아하나 보네. 무슨 조사를 하시려는지 모르겠지만.
어디 좀 앉을까?"

꽤 귀여운 찻집에 들어가 앉았다.
따뜻한 분위기. 고소한 커피 향기...

윤지석은 깊은 생각에 잠긴 채 조용히 커피를 마셨다.
왠지
그 모습이 쓸쓸하게 느껴졌다.

"장교수님이랑. 무슨 사이죠?"

윤지석이 찻잔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버릇같은 그 미소를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