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대답 없이 돌아선다.

"사랑한다구!"

내 말이 안들리는지. 그는 계속 발걸음만 옮길 뿐.

"가지마, 이 나쁜놈아!"

분명 듣고 있으면서...들리면서.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순간

기차가 도착하는소리가 너무나 크게 들려왔다. 귓가가 멍해질정도로.

그 기차가 떠나고.

그도 없었다.

나도 없었다.

유인석... 이 나쁜놈.

"아가씨!"

"이봐 아가씨!"

눈을 뜨고 보니 청소부 아주머니가 빗자루로 나를 툭툭 치신다.

"여기서 이러고 자면 얼어죽어.  이제 막차 지나갔으니 일어나 문닫기 전에 얼렁 나가요."

얼어죽어요?

죽으면 좋지 왜... 하는 생각에 멍하니 앉아 헝클어진 머리를 조금이나마 내려 쓸었다.

"그러고 있을때가 아니고 얼렁 나가야 한다니까!"

그래. 죽을때 죽더라도 민폐는 끼치지 말아야지.

주섬주섬 겉옷을 끌어입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야."

돌아보니 멀쩡한 청년인데... 왜 나한테 반말을?

"왜?"

그래서 나도 반말로 받아쳤다.

"니 쓰레기는 치우고 가야지."

"나. 쓰레기 만든적 없는데. 아니 근데 왜 반말을... 나 알아요?"

"내가 너같은 거지를 하루 이틀 보는지 알아? 여기 동전 통. 니꺼 아니야?"

우선 기막힌 한숨한번 내 쉬고.

"거지라고...반말해도 돼? 거지는 사람도 아니니? 그리고, 내가 어딜봐서 거지라는거야? 이 거지같은 놈아. 동전통은 너나 챙겨 가시지!"

그가 피식 웃는다. 

"막말이 막 나오는걸 보니... 이제 잠이 좀 깼나보네.  어서 나가. 출입구는 그쪽이 아니고, 저쪽." 

아주 소름끼치게 그를 한번 째려봐 줬다.

그래봤자 이 헝클어진 머리에, 눈물로 더럽게 범벅된 얼굴에, 시장에서 주워입은 다 뜯어진 쟈켓에...뭐 별로 무섭지 않았겠지. 아무리 거지같다고 사람 무시하는 못된놈... 세상에는 못된놈들 뿐이야. 

기차역을 나와보니 아무것도 없는 벌판이다.  논, 밭이 듬성듬성 보이고 이제 해가 지려면 얼마 안남아서 어둑어둑한데도 불빛이 비취는 곳이 별로 없다.  내가 대체 어디까지 온거지?

인적도 뜸해 보인다.

사람이라곤....

아까 그 청년이 청소하던 아주머니의 쓰레기를 들어다 드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날씨 추워졌는데 좀 두껍게 입고 다니시죠. 전에 그 장갑 또 잃어버리셨어요?"

"에구...그러게나. 낮에는 좀 따스한가 했더니 금새 또 이리 추워지네 그려. 오늘 많이 팔았어?"

"아뇨. 저야 맨날 거기서 거기죠 뭐."

"에그...어서 빚갚고 공부 다시 해야지. 동생도 오빠가 그러길 바랄거야. 아까운 청년이 이런데서 썩고있으면 쓰나."

"이만 들어가시죠. 어두워지기 전에."

그리고 그의 눈과 기차역 앞에 쭈그리고 앉은 나와 눈이 마주친다. 

"아이고 이 아가씨, 아직도 여기 있네 그려, 얼어죽는 다니까? 왜 이러고 있는데 아직도?"

"저기요... 아줌마..."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순간 모든것이 하얘지며.....

꿈속인가.

희미하게 사랑하는 인석씨가 보인다. 

그가 웃고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때처럼.

'인석씨. 가지마. 사랑한다고 했잖아!'

'나도 사랑해 은수야. 너만 나와 함께 있어준다면, 나는 아무것도 바랄것이 없어.'

'근데 왜 아까는 그렇게 떠나갔어? 영 영 다시 안 볼것처럼... 왜 나를 이런곳에 버려두고 간거야?'

'미안해. 택시타고 오라고 주머니에 돈 넣어뒀잖아. 기억안나?'

주머니...

돈....

주머니...

주머니가...

주머니가 없다!

벌떡 일어났는데 난 내복 차림으로 방바닥에 누워있었다.

바깥에 햇볕은 쨍쨍.

이게 어찌된 일이지?

내 옷은?

누워있던 이부자리의 머릿맏에 곱게 접어 놓은 저고리비슷한 웃도리와 헐렁한 바지가 있다.

이거라도...입어야 하나? 

아무래도 기억을 뒤져보니 어제 청소부 아주머니와 그 싸가지 없던 청년...?

문이 드르륵 열린다.

깜짝 놀라 이불을 뒤집어 쓰는데,

"일어났네.  밥 먹어라."

그 청년이 밥상을 꽈당 내려놓는다.

"야! 너...누구야. 왜 나를 여기에... 악! 사람 살려!"

그가 기가막힌듯 한숨을 내 쉰다.

"이 은수. 너 은수 맞지?"

"어? 어라? 내 주민등록증 봤구나. 너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아?"

"지갑도 안들고 돌아 다니면서 주민등록증 같은 소리 하네."

"그럼 니가...나를 어떻게...알아?"

워낙 사람얼굴을 잘 기억 못하기는 하지만, 이 사람은 본적이 없다. 

말끔하게 잘 생긴 얼굴인데...

말끔하게...

아. 근데 생각해보니 그의 말이 맞다. 

어제 하도 정신없이 돌아다니느라 지갑도, 가방도 없이 집을 나왔다.

갑자기 인석의 전화를 받고,

그가 헤어지자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고,

시장에서 생선을 배달하다가 내려놓고, 옆집 아줌마 쟈켓만 들고 서울역으로 뛰어나왔으니까. 

기차 안에서 내내 그를 찾다가, 결국 한시간 만에 그를 찾았고,

그와 함께 내렸던 역에서,

그는 또 헤어지자고 했다.

그리고 기차를 타고 떠나버렸다.

아. 주머니에 돈을 넣어 놨다는건 꿈이었구나.

다시 멀쩡하게 생긴 청년을 올려다 보았다.

"나...알아요? 내가 은수인걸...어떻게."

"너 기억력이 아주 후졌구나...하긴. 뭐 좋은 기억이라고."

그가 밥상에 물을 한잔 따라 놓더니,

"자. 밥이나 먹고, 갈길 가라. 지갑도 안들고 왔으니까 내가 오만원 넣어놨다. 그 돈은, 갚는다고 다시 만나자고 할까봐 무서워서 그냥 주는거고, 니옷은 빨아놨으니까 마르거든 얼른 입고 나가."

"야... 너가 누군지 말을 해줘야지?"

그가 문을 드르륵 열고 나가다가 잠시 나를 뒤돌아 본다.

한숨을 희미하게 쉬더니,

"3년 전. 병원."

3년전...병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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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커쥐가 돌아왔습니다. ㅎㅎㅎㅎ

자꾸 바쁜일이 생기고, 시간의 여유도 그만큼 없어졌지만,

그래서 그동안 그만 쓸까...도 생각해봤지만, 

저에게 활력소가 되는 작은 outlet이다보니, 그래도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동안 모두 저를 잊으셨겠지만 다시 돌아와 주세요!! 으헝헝.

자주 업데이트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럼 모두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