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3년전 병원에서?

3년전 쯤 나는 유인석을 처음 만났었다.

수산시장에서 생선 배달일을 하며 학비를 모으던 시절.

그때 인석씨도 생선 배달일을 처음 배우러 왔다가 우리는 첫눈에 반했다고 할까?

그런데 서툴게 일을 배우던 인석이 심하게 어깨를 다쳤다.

그래서 병원신세를 한달을 넘게 졌는데.

그때 병원에서 내가 누구를 만났던가?

"아!"

나는 벌떡 일어나 문을 드르륵 열었다.

그런데 왠지 온몸이 무너지는것 같고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삶은계란을 포장하고, 여러가지 간식들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흠... 이상하다.

아무래도 그 사람은 아닌것 같은데.

어렴풋이 기억난것은 그 병원에서 일하던 인턴이라는 젊은사람이었다.

무척이나 친절했었고 상당히 엘리트적인 인상을 풍기던.

병원에서 늘 살다시피 하는사람이라 입원해있던 사람들이라면 모두 그 인턴과 친하게 지냈는데.

그 사람 말고 또 누구를 만났던가?

아니야.. 그사람이 이런 시골에 있을리가 없잖아? 그리고 지금 하는 일을 보니 아무래도 기차안에서 장사하는 사람같은데.

"혹시...그때 병원에서 인턴..?"

"옷 다 말랐으니까 입고 가."

"그 분은 참 친절하고...어린사람들 한테도 늘 존칭을 붙여 존댓말을 썼던...

아주 신사적인 사람이었는데.  아.. 그때 우리 병동에 있었어요?"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주섬주섬 내 옷을 대충 접어 나에게 내밀더니,

"자. 입고 가. 나도 나가봐야 하니까." 

"근데 내 이름을...어떻게 기억하고 있었어요?"

"동생하고... 이름이 같았으니까."

"동생? 여동생이 있어요?"

"말이 많네. 너 운 좋은줄이나 알아. 세상 무서운줄 모르고 아무데서나 자빠져 자질 않나, 정신못차리고 쓰러지질 않나. 조심하라고"

"고마...워요. 어쨌든 뭐.. 어제 하도 정신이 없어서. 아...아직도 어지럽고 정신없긴 하네요.."

그가 돌아서려다가, 잠시 뒤돌아 보더니 나의 이마를 짚었다.

"열이..."

그가 한숨을 쉬었다.

"서울에서 왔어?"

고개를 끄덕이다가, "근데 그때 인턴, 정말 맞아요?"

"그 몸으로 서울까지 혼자 가는건...좀 위험하겠다."

"그때  인턴이었으면, 지금쯤 의사가 되있어야하는데...왜 이런곳에 있어요?"

"잠시 누워있어. 약을 좀 사올테니까."

"이봐요! 사람말을 들으면 대답을 좀 하세요!"

"난 지금. 어떻하면 널 보낼까 - 그게 가장 큰 관건이거든."

"어머, 누가 보내달래요? 내 발로 가면 되지. 걱정 마세요."

씩씩대며 발을 옮기려는데 주위가 휑하고 돌았다.

그가 휘청거리는 내 손목을 잡았다. 

"잠시 누워있으라고. 밥 먹고."

"됐어요!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신세지고 싶지 않아요."

"신세는 벌써 지고 있거든."

"그니까 누구시냐구요?"

"그래. 그 인턴. 맞아."

잠시 그의 눈동자를 뚫어져라 보았다.

"맞아요...?"

"그래. 이은수. 그때 병원에서 만났었지."

"그때...참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는데. 왜...

왜 여기에 있어요?"

"내가 여기에 있어서, 너에겐 지금 다행이지. 안그래? 잠시 기다려. 필요한게 있으면 옆방 아주머니에게 부탁하고."

참... 많이 변해있었다.

내 기억이 선명한건 아니지만 아주 엘리트한 사람이었는데, 무척 고급스러워보였고 늘 웃는 인상이었던.

내가 못알아본것이 이상한일이 아니었다.

옆방문이 드르륵 열렸다.

"아유...일어났네 그려. 아가씨 큰일 날뻔 했어! 그런데서 그리 피시시 쓰러지누, 쓰러지길?"

"죄송합니다..아. 그리고 감사합니다."

"굶고 댕기니까 그려. 몸도 안좋은 사람이 굶고 댕기니까."

"그러게요..."

순간 서러움과 슬픔이 폭풍처럼 몰려왔다.

유인석...

어디가면 그를 만나지?

전화도 끊어버리고...어제 그렇게 따라가지도 못하게 만들고.

그는.

어디간걸까.

흐느껴 울기 시작하는데,

"아이구. 울기는! 언능 먹고 정신차려야지, 아 - 집에 안가?"

정신없이 눈물만 흘러내렸다. 내가 여기서 뭘하는지...왜 이러는지.

"오메. 이 아가씨 몸이 펄펄 끓네 그려. 어쩐데. 어디 가족한테 연락이라도 해야지?"

"가족...없어요."

더 서러운 오열이 터져나왔다.

나의 유일한 가족. 나의 사랑 인석. 

어디간거야...?

"기운없는데. 그만 좀 울어.."

얼마나 울었는지 그냥 바닥에 쓰러져 있는데,

어느새 그가 돌아와 내 옆에 약봉지와 물을 건네 주었다.

정신이 좀 돌아왔다.

"아, 저...이만 가볼께요. 죄송합니다."

흐트러진 머리를 다잡고, 몸을 추스렸다.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지.

"약먹고...밥도 먹고 가. 그렇게 가다간 길거리에서 쓰러진다."

눈물로 범벅이 되어 그를 올려다 보았다.

"근데 여동생은... 어디있어요?"

그가 말없이 나를 돌아보았다.

"천국에."

할말을 잃었다.

"미안해요.."

"뭐가 미안해. 어서 먹어라."

아주머니가 청소부 옷을 입고 나오시더니,

"에그, 청년 오늘 장사 땡쳤네, 땡쳤어. 이를 어쩌나?"

"저때문에... 못가셨어요?"

"땡땡이 친거야."

흐릿하게 기억이 살아났다.

아주 속까지 착한사람이라고, 어려운사람 그냥 못 지나치는게 병이라고....병원사람들이 입을 모아 그렇게 말했었다.

"그동안 힘든일이 많았었군요...그렇죠?"

그가 나를 돌아보더니 피식 웃었다.

"어제... 헤어진 사람이...그때 병원에서 그 사람 맞지?"

"봤어요?"

"역에 있던 사람들 다 봤지, 그럼, 그렇게 난리치고 울고불고 드라마를 찍는데, 어떻게 안봐?"

"아니근데...어떻게 그렇게 기억력이 좋아요? 나도 기억하고, 인석씨도 기억나요?"

"그래...기억력 하나는 좋아. 그래서 사는게... 어렵네."

"잊고 싶은게...많아서요?"

그가 잠시 말없이 나를 돌아보더니, 

"쉬어라. 얘기는 나중에 하고."

그의 말대로 약을 먹고 한참이 지나 어두워질때가 되서야 기운이 좀 돌아왔다. 

그는 어디갔는지 없고 옆방 아주머니가 저녁을 차려 주셨는데,

"정말 감사하고, 죄송해요."

"그래도 다행이네 그려. 많이 나아서."

"근데... 저 도와준 그분은... 이름이 뭐예요?"

"지훈청년? 성이 뭐더라..아. 박씨. 박지훈."

"기차에서...장사하는 사람이예요?"

"그래. 장사한지 한 2년됐지, 이제."

"의사 아니었나요?"

"어? 의사? 글쎄...그건 모르겠고, 2년전에 내 옆방으로 세들어 와서 살면서 기차에서 장사를 시작했어. 처음에 왔을땐 그저 매일 멍하니 하늘쳐다보고 울기만 했지. 저러다 젊은 사람 하나 훅 가겠네, 싶어 내가 밥도 해다 맥이고...했어.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 가끔 웃기도 하고."

"여동생...때문이겠죠?"

"여동생? 아니 - 애인이었지 아마. 어릴때 부터 함께 자라서 동생같았다고 했어."

"그래서...이런 시골로 왔나봐요."

"내 매일 잔소리를 하긴 하는데... 젊은 사람이 여기서 뭣하냐고."

"그러게요. 지금쯤 의사가 됐을텐데."

.....

어둑어둑 해지는 저녁 하늘이 노을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는 밤이 늦어서야 돌아왔다.

생각해보니, 내가 그의 방에서 어제 잤으니...그는 밖에서 잔 모양이었다.

"저기...정말 고마와요. 그리고 미안하고... 저때문에...어디서 주무셨어요?"

"신경쓸거 없어. 많이 나아졌으니까 오늘 밤까지 잘 쉬어라. 내일은 갈수 있을거야."

"고마와서...어쩌죠?"

"됐다니까."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이 안타까왔다.

그의 아픔이 느껴져서.

나의 아픔도 더 쓰라리는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