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좀 마셔. 그렇게 마셔댄다고 배가 부를것 같아?"
민수가 날카롭게 물병을 가로챈다.
"내가 뭘 얼마나 마시든 니가 무슨 상관이야?"
"짠순이같이 굴지 말고 뭐 좀 사다 먹어라. 그리고 전에 빌려간 50불. 그거 내 놔."
"줄께. 내일 주급받으면. 내가 언제 니 돈 떼어먹은적 있어?"
"나 오늘 저녁 사먹을 돈도 없어서 그래, 이 기지배야!"
"미안하다. 야, 여기 수제비 남은거 있는데, 니가 먹을래?"
"짜고도 독한년."
민수가 혀를 끌끌차며 나를 노려본다.
그가 발로 차고 나간 문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흔들거린다.
어제부터 감기기운이 와서 머리가 어질어질한데, 아직 해야할 일이 산더미다.
이 많은 설거지며, 주방정리, 그리고 식당바닥 청소까지.
평소때같으면 2-3시간 정신없이 덤벼들어 서둘러 끝내고 가면 되는데,
오늘은 머리가 지끈거리고 몸이 천근같이 무겁다.
손님들이 남겨놓은 음식을 몇가지 집어먹으려는데 참 더럽게도 쌓여있다.
뭐라도 먹어야 힘을 내서 일을 마치지...
이 지긋지긋한 인생.
다 놓아버리고 그냥 쓰러져 버리고 싶을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러나 주방 한쪽벽에 붙어있는 사진한장.
내 삶의 모든 희망은 오직 저 사진안에 웃고있는 저 녀석.
저 귀여운 녀석.
내 사랑하는 딸.
띵한 머리를 흔들며 눈물을 얼른 씻어내린다.
어서 해야지.
얼른 하고 우리 아기 보러가야지.
으쌰으쌰 설거지를 시작한다.
그래.
시작이 반인거야.
주방정리를 마치고 식당바닥을 치우려고 걸레를 빨아서 주방을 나서는데,
누군가 식당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 민수자식. 문도 안잠그고 간거야?
"오늘 영업 끝났습니다."
그는 말없이 나를 흩어본다.
아주 기분나쁘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리고 힘없이 피식 웃는다.
"진짜 구멍 가게네..."
"영업 끝났다고 말씀드렸는데요."
그가 의자를 하나 끌어내더니, 털썩 주저 앉는다.
입고있는 가죽쟈켓 질감이나 손목시계, 번들거리는 구두, 사내녀석이 반짝거리는 귀걸이까지 하고, 질 좋아보이는 가죽가방 등을 봐서는 꽤 잘 나가는 젊은이처럼 보이긴 하는데, 그의 표정이 한순간 무척 허망해보인다.
"누구시죠? 여기...어떻게 들어오셨어요?"
아무리 그래도 민수가 문을 열고 갔을리는 없는데....
"키로.... 이... 열쇠로요."
그가 열쇠하나를 식탁위에 떨어뜨린다.
그리고 또 허탈하게 피식...웃음을 짓는다.
"그쪽은. 여기서 얼마나 일했어요?"
"왜요?"
그가 잠시 나를 보더니,
"뭐...아무려면 어때요."
그는 벌떡 일어나더니 문을 박차고 나간다.
바닥청소를 하는 내내, 그는 주머니에 손을 꽃아놓고 멍하니 하늘만 보고있다.
미친사람인가?
왜 우리 가게 열쇠를 가지고 있지?
혹시...?
정말 구멍가게 같은 이 작은 식당은 Los Angeles 한인타운 중심가에 있어서 매상이 매우 좋은편이다.
주인 할아버지가 아프셔서 병원에 입원하신지 꽤 되었는데,
혹시 그사이에 새 주인을? 저렇게 날라리같은 젊은 남자가 이런 가게를 샀을리는 없는데?
일을 마치고 나니 11시가 다 되어간다.
우리 꼬마...
오늘은 기다리지 말고 자고있어야 하는데.
또 엄마기다린다고 꾸벅꾸벅 졸고있으면,
날씨도 쌀쌀한데 아프기라도 하면...
아침에 파 사러갔다가 하나 챙겨놓은 알사탕을 가방에 챙기고 가게 문을 잠갔다.
그 남자. 아직도 밖에 있다.
그런데 쪼그리고 앉아서....
"울어요?"
그가 말없이 어깨만 들썩인다.
"이봐요."
그가 푸시시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본다.
"끝났어요?"
아...운게 아니라...추워서 떨었나?
"...네. 저 퇴근하는데... 대체 누구세요?"
그가 대답없이 일어서는데,
좋은 냄새가 난다.
와...정말 멋있는 냄새다.
가죽잠바도 참 잘 어울리는 넓은 어깨다.
잠시 멍하니 그를 올려다 보았다.
그때 보니 그의 눈가가 촉촉히 젖었다.
정말...
울었나 보네.
"수고했어요."
하더니 그는 가게문을 열고 들어간다.
잠시 후. 불이 켜졌다가 곧 꺼지고.
나는 서둘러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7
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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