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마침 민수가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데,
"어? 누구세요?" 껌을 심하게 씹는 민수, 의아한듯 신우를 바라본다.
"어, 민수야. 저기...야. 여기 내가 꾼 50불하고...밀린 주급이야."
"아, 그래? 고맙다." 그는 씨익 웃으면서 돈을 세어본다.
"그런데, 민수야...주인 할아버지가...돌아가셨데."
"뭐? 주인 사장님이?"
"그래...그리고"
"그리고 뭐?" 하며 민수는 힐끔, 신우를 다시 쳐다본다.
"새로 오신분이...너.. 이제 그만 나와도. 된다시네."
"뭐? 날...잘른다고? 내가 뭐. 잘못했데?"
"아니, 그런게 아니고..."
민수는 신우를 뚫어지듯 노려본다.
"그럼 뭐야. 왜 짤른다는건데?"
"민수야, 화내지말고...다른곳 알아봐."
"이런 개떡같은! 잘못도 안한 사람을 왜 짜르냔 말이야! 당신이 새로 온 주인인가요?"
"아닙니다.."
신우는 천천히 고개를 내젖고,
민수는 억울한듯 주먹으로 식탁을 꽝! 치고 문을 발로 차고 나간다.
내가 걱정스럽게 한숨을 쉬자,
"내가...미안해야 되는거죠?" 신우가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본다.
"글쎄요, 뭐...그쪽 잘못은 아니지만, 민수도...기분나쁘겠죠. 정말 열심히 일했는데, 갑자기 직장을 잃었으니까요. 정말 우리같은 사람들은 하루하루 끼니가 걸린 상황이거든요."
신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쉰다.
"그쪽은...그런거, 잘 모르죠?"
그가 나를 올려본다. 왠지모르게 가슴이 쓰리는 눈빛이지만, 그를 동정할만큼 나는 여유있는 사람이 아니다.
"손님들 들어닦칠때 다 되가요. 부엌으로 가서 나물 씻어놓고 다듬어 놓으세요. 반찬 준비 들어가야하니까."
그가 나물을 어떻게 씻는지, 다듬는게 뭔지 모른다는건 이미 뻔한 사실이었다.
당연히 부엌에서 멍하니 헤매고 있을줄 알았는데,
뜻밖에 그는 열심히 시키는데로 나물을 씻고, 내가 한번 시범을 해보이면 고대로 따라해가며 일을 열심히 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손님들이 끈임없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방에서는 정신없이 음식준비가 계속되었고,
주방 아저씨를 도와드리고, 음식을 치우고 나르고, 주방정리하는 일을 끈임없이 해야하는데, 제대로 가르쳐줄 시간도 없었다.
"저 녀석 누구야? 새로 들어왔어?"
요리사 아저씨가 손을 바쁘게 놀리시며 물으신다.
"네...오늘 아침부터 일한데요."
"꽤 잘하는데? 첫날치곤."
"그러게요. 이런 일 안해본 사람같은데, 꽤 잘 하네요?"
"힘든일이긴 해도, 마음만 제대로 먹고 열심히 하면 금방 배울수는 있지. 오늘밤 몸살은 단단히 걸리겠지만."
쨍그랑! 순간 그가 들고온 접시들이 바닥에 나동그래진다.
"죄송합니다." 땀을 흘리는 그에게 친절한 물한잔 건네줄 여유가 없다.
"어서 치우고, 저기 쌓인 설겆이 좀 해. 공주엄마는 나가서 카운터보고. 여기 일할사람 둘은 더 놔야 하는데...쯧쯧..."
정신없던 점심시간이 지나고, 좀 숨을 돌릴만 하는데, 쌓여있는 설겆이는 줄어들지를 않는다.
그의 옆에서 물로 접시들을 헹구는데,
"힘들죠?"
"힘드네요."
"처음이예요? 식당일?"
"네. 처음이예요."
"처음치고는...잘 하네요?"
"그래요?" 그가 나를 돌아보고 피식 웃는다.
"뭐...꾀부리지 않고, 시키는대로 군말없이 하는것만 해도, 아주 잘하는거예요."
"정신없이 움직이고, 또 아무런 생각을 할수 없어서... 오히려 좋네요."
"힘든일이 많은가봐요?"
"사는게...다 그런거죠."
"그렇죠. 원래 그래요, 인생이라는게."
두 젊은이들이 식당 부엌구석에서 인생 다 산 노인들이나 할법한 대화를 주고받는다.
저녁식사때는 더 정신없이 분주했다.
정말 늦은밤이 되서야 주방일을 끝내고 그 자리에서 뻗을것만 같았다.
마지막 정리를 마치고 정말 쓰러질것 같은몸을 질질끌고 겉옷을 챙겨입는데,
신우는 뭔가를 열심히 읽고있다.
"뭐...해요?"
"아직 안갔어요?"
"아니, 피곤하지 않아요? 오늘 그렇게 죽도록 일했는데?"
"피곤해요. 하지만 나는 체력이 강하니까." 하며 웃는다.
"도대체...당신 정체가 뭐예요?"
"말했잖아요. 할아버지 손자라고."
"근데 왜...아까 그 아줌마는 숙모라는분이 왜 그래요?"
그가 책을 내려놓는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알게되겠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많은 유산을 남기셨는데,
그중에 하나는 이 식당이었고.
돌아가시기 전에 저에게 이 식당을 꼭 부탁하셨어요.
할아버지의 유산은 법적으로 모두 숙모에게로 돌아갔지만.
나는 할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위해서 여기로 온거예요."
"유산이...왜 숙모에게로 다 가요? 손자가 먼저 아닌가요? 그리고 유산이 많은데 왜 손자를 이런 식당으로 보내요?
아...미안해요. 제가 답답한걸 잘 못참는 성격이라서.
주인도 아니고, 그냥 일하는 사람으로 부른건 아닐거 아니예요? 학교도 다니는 학생이라면서요?"
"학비도, 생활비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순간 끊어졌어요. 유학생이라서 론을 받을수가 없거든요."
"그럼...불체가 되는거잖아요?"
"한국으로...가야겠죠."
"그럼 이 식당은..."
참으로 궁금한 일이다. 이 구멍가게같은 식당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유산도 많으시다는 할아버지가 그렇게 돌아가시면서 부탁을 하셨을까.
"어쨌든, 당분간은 한국에 갈 비행기표도 없고, 또 한국으로 갈수도 없어요."
"그럼 여기서 지내야 해요?...이 좁은 식당에서 어떻게 살아요?"
"어제도 살았으니까, 오늘도 살아지겠죠."
바로 그때,
식당문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열린다.
아침에 화를 내고 나간 민수가 술주정이라도 부리러 왔나?
나가보니...
"지수야."
너무 놀라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정준혁이 식당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공주의 아빠...
나의 첫 사랑.
정.준.혁.
6
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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