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준..."

말이 차마 끝나기도 전에 준혁은 나를 끌어안는다.

그의 숨소리가 거칠다.

흐느끼는 그의 품에 안긴 그 순간, 

나의 몸은 얼음처럼 굳어버릴것만 같았다.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어도,

준혁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걸 직감적으로 알수있었다.

어떻게...어떻게 해야 하지?

"준혁아..."

"미안해 지수야. 이제야 와서...정말 미안해."

나를 처음으로 사랑해 준 사람...

나는 낳아준 부모님도 모르는데

그런 나를 

길거리에서 처음보고 끈질기게 쫓아왔던

훤칠하고 잘생긴 귀공자 준혁이었다.

나도...

점점 그를 사랑하기 시작했었다.

"아기는, 우리 아기는 어떻게 됐어?"

순간, 옆에서 놀란 눈으로 우리를 보고있는 이신우가 눈에 들어왔다. 

왜냐하면...

"없어. 아기...못 낳았어. 너도 알잖아... 내 상황이 어땠었는지."

나의 거짓말을...그가 묵묵히 넘어가 주기를 바랬기에...

"그래? 미안해...미안해 지수야. 그럴줄...알았어. 하긴, 그 상황에 니가 그럴수밖에 없었겠지.. 다 내 잘못이야."

"우리... 나가서 얘기 해."

"아니, 두분 얘기 나누세요. 제가 나가죠." 

"아니예요. 우리가 나갈거예요. 문 잠그고...오늘은 이만 문 닫으세요. 그럼 내일 뵈요."

밖으로 나가는 나의 모습을 이신우는 유심히 바라본다.

공주 엄마가 공주를 안 낳았다니...이상했을것이다.

"지수야!"  밖으로 나오자 마자 준혁은 다시 나를 끌어안는다.

"준혁아...우리...얘기 먼저...얘기 먼저 해."

"나를 만난게...싫은거야? 설마... 그런건 아니겠지? 내가 지난 3년동안 너를 찾아 지옥같은 세월을 보냈어. 니가 없이 사는 하루하루가 고문이었다는거...알지? 너도 그랬지? 나 기다리고 있었지?"

"준혁아...너도 알잖아.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면."

"그래. 우리 부모님...알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내가 쥐구멍으로 숨어도 할말이 없어. 그래서 이번엔 내가 도망쳐 나왔어! 우리..우리 여기서도 더 먼데로 도망가자. 일본? 중국? 러시아? 어디라도 좋아. 너만 나와 함께 가준다면. 응?"

"너희 부모님하고...내가 살아있는 동안 너 만나지 않기로 약속했어. 너도 알잖아. 너도 그렇게 약속했고."

"내가 진짜로 약속했다고 생각한건 아니지?"

"나를 가만히 안 놔두시겠다던 부모님 말씀은, 진짜였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멀리, 멀리 가자는거야."

"준혁아."

"내가 열심히 일할께. 어디서든, 뭘하든."

"알았어...알았으니까... 그럼. 내일 아침에 만나. 짐 챙겨가지고 올께. 우리 내일 아침에 떠나."

"같이 가서 챙겨오면 되잖아. 한시도 너와 떨어지고 싶지 않아. 다시는!"

"내가 여기서 처리할 일들이 있어. 그 정도는... 이렇게 갑자기 다시 만났는데...나에게도 시간을 조금 줘야지."

"지수야! 넌 내가 반갑지 않은거야? 설마?"

그의 눈빛이 변하려고 한다.

안돼..

안돼..

얼른 그의 어깨를 붙잡고 키스를 했다.

지금은 안돼.  제발...

그가 나를 밀쳐내려다가 즐기기 시작한다.

"아...미치겠다. 우리 어디 모텔이라도 잠깐 들어갔다가 가...그럼 보내줄께."

"준혁아."

"약속할께. 지금 이대로는 한시도 못 떨어져. 내가 어떻게 널 찾아 여기까지 왔는지 알기나 해? 내 목숨을 걸고 도망쳐 왔어. 다 얘기해줄께. 응?"

공주가...나를 기다리는데... 하지만.

3년 이라는 세월...그는 정말 눈물로 보냈을것이다. 정말 목숨을 걸고 나를 찾아왔을 그에게...

마지막 예의를 지켜준다고 생각하자.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정말 나를 그냥 두고 가지는 않을것이다.

고통스럽고 긴 밤을 그와 함께 보냈다.

새벽이 되서야 잠이 든 그가 깰까봐 조심 조심 발걸음을 옮겼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였다. 

그제야 생각해보니 바보같이 식당에 내 가방을 두고왔다. 

조심스럽게 열쇠로 식당문을 열고 들어섰다. 

다행히 습관적으로 열쇠는 늘 주머니에 넣어두기에.

이신우가 깨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누구...?"

식당 의자를 서너개 이어놓고 그 위에서 선잠을 자던 그가 깨어나 버리고 말았다.

"어...죄송...죄송해요. 내가 가방을...두고 가서요."

"아...그래요? 어.. 이봐요.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피나는데요"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옆에있는 냅킨을 집어 들었다.

"아니예요. 괜찮아요."

입가에 피를 소매로 얼른 닦아냈다.

"어휴...귀신같아서 깜짝 놀랐네.." 

"미안해요. 주무세요."

"아까... 왜 거짓말 했어요."

그를 돌아 보았다.

"아까 그 사람... 나쁜 사람이죠? 반가워 보이지 않았어요."

"괜히 알면 골치아파요. 지금 남 걱정 할때는 아니잖아요."

"그 사람이...때린거예요? 그래서 피 나는건가요?"

"상관하지 말라니까요."

"어떻게 상관을 안해요. 약한 여자를 때리는건, 범죄인데."

"범죄..."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 사람은 그런게 전혀 두렵지 않은 사람이예요. 세상을 다 가진 사람이라구요."

"세상을 다..가진? 그거 우습네요..."

"뭐가요?"

"나도 얼마전까진...내가 세상을 다 가진줄 알고 살았으니까."

잠시 그를 마주보는데, 

그는 천천히 다가 오더니 냅킨으로 조용히 내 입술을 감싸준다.

"다른 사람이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자신을 좀 아껴보세요."

나를...아끼라고...?

그의 눈동자를 올려다 보았다.

이 거지같은 나를.

미친개에게 밟혀 더럽혀진 나를...

아끼라고?

"나...이제 식당에 못 나와요. 말 안하고 그냥 가려고 했지만... 안녕히 계시라고...말하고 싶어요."

"왜요? 왜 못 나오는데요?"

내 대답이 필요없었다.

순간 문이 부셔지도록 큰 소리를 내며 열렸으니까.

"지수야!"

준혁의 눈은 사냥개마냥 붉어져 있다.

"준..혁아...깨워서...미..안"

차마 말을 다 마치지 못했는데

그가 이미 성큼 다가서 있다.

잠시 이신우를 노려보더니, 내 손을 가로챈다.

"가자, 지수야. 아무래도 안돼겠다고 내가 그랬지? 잠시도 떨어져 있을수 없다고.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얘기 했잖아?"

"그 손... 좀 놓으시죠."

이신우..

아...아... 안돼는데. 저 사람이 지금 끼어들면...절대 안돼는데!

"뭐야 너? 지수야. 너 혹시...?"

"아니야! 아니야 준혁아! 절대로, 절대로 아니야. 어제 처음 만난... 여기서 일하는 사람이야."

내 목소리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고,

준혁의 눈빛은 이미 제 정신이 아닌 사람이 되어있었다.

오...노...

귀를 막고 눈을 감았다.

이제 그가 어떻게 변할지 나는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쨍그랑! 

우장창!

처음에 매를 맞기 시작할때는 하나도 아프지가 않다.

마음만큼, 내 몸도 놀라서 이겠지.

아니면 그만큼 긴장하고 경직되어있어서 잠시동안은 아무런 느낌도, 기억도 사라지기 때문이겠지.

그런데 금새 아프다. 그건 준혁이가 멈췄다는 뜻인데, 

눈을 뜨고 보니 

이신우가 끼어들어 둘이 몸싸움을 하고있다.

"왜 이래요! 이신우씨, 뭐하는거예요?"

오히려 나는 이신우씨를 말린다.

나 같은걸 도와주려다가 그가 다칠까봐, 죽자사자 덤벼서 이신우를 떼어낸다.

"이것들이...지금 한편으로 붙는거야?"

"준혁아! 제발! 제발 이러지마. 응? 진정해. 준혁아!"

꽝!

하는 소리와 함께 준혁이 쓰러진다.

이신우가 의자로 그를 내려쳤고, 그는 잠시 정신을 잃고 쓰러진듯 하다.

"어서 피해요!"

"내가 피하면, 이신우씨는요?"

"나는 남자 잖아요, 어서 피하라니까요! 깨어나기 전에! 이사람 경찰에 신고할거예요."

"안돼요!"

"왜 안돼요?"

"경찰에 신고하면...잡혀가겠죠. 하지만 금방 나올거예요! 그리고 당신한테 보복할거예요. 이 사람 아버지는 아주, 아주 높은 정치인이고, 지인들이 경찰과 사업...아무튼 그 힘이 닿지 않는데가 없는 사람이예요. 어서 피하세요. 내가, 달래는 수밖에 없어요."

"바보같은 소리 말아요! 달래긴 누굴 달랜다는거예요? 어서 피해요. 보복을 하던 말던, 나는 경찰에 고발할테니까!"

"안돼요! 나 때문에 다른사람이 피해보는거 싫어요."

"거 참 말이 많네!"

그는 나를 밀어 밖으로 내 보냈다.

"뛰어요! 어서!" 

그는 마침 그자리에 선 버스 안으로 나를 밀어넣는다.

"안돼요! 이봐요, 이신우씨!"

그는 나를 보내고 돌아선다.

버스에서 내리려다가, 갑자기 공주생각에 마음이 바뀐다..

그래, 나는...공주에게 가야해.

이신우씨...

미안해요.

내가 있는 식당을 알아 낸 준혁이가 내가 할머니와 살고있는 아파트를 찾는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해가 뜰무렵, 나는 서둘러 짐을 싼다.

"그놈이...드디어 왔구나...쯧쯧..." 할머니가 혀를 차신다.

"죄송해요 할머니, 제가 곧 연락드릴께요. 제가 꼭...다시.." 눈물이 흘러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를 않는다.

"짐승같은 놈...어디 약한 여자에게 손찌검을 해. 손찌검을 하긴... 천하에 쓰레기 같은놈 같으니라구" 

할머니는 내 얼굴에 반창고를 붙히신다.

"이렇게 착한 지수가 어쩌다 그런 짐승같은 녀석을 만나서 이런 고생이야. 여길 어찌 알고 왔누...귀신같은 놈."

"할머니, 꼭 다시 올께요."

"공주는 여기 두고 가. 어디서든 자리 잡히면. 그때 데리러 오면 되잖아? 응?"

공주가 보고싶어서...가슴이 타들어갈텐데...

하지만 할머니와 함께 있는것이 공주에게 안전할것이 사실이고, 나는 지금 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

"그치만..." 눈물이 앞을 가린다.

"걱정말어. 영 힘들면 내가 공주데리고 지수 있는곳으로 갈테니까. 어디든 가서 연락만 해. 내가 갈께."

"할머니..."

"나도 이젠 지수하고 공주없인...못살어.. 그러니까 걱정말고 나한테 연락만 해. 응?"

"저...캐나다로 가보려고 해요."

"그래. 어디서든 연락만 하라고."

나와 함께 울어주시는 할머니 손을 꼭 잡았다.

영문모르고 하염없이 꿀잠을 자는 공주의 땀 베인 이마를 쓸어 넘기며 피눈물을 삼켰다.

"엄마...곧 올께. 공주야... 엄마 금방 올께.. 알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