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시간.
수연의 집에서 유신우와 그녀는 마주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오늘… 어디를 갔다 오느라고 늦었는지. 물어봐도 돼?”
유신우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조심스럽게 수연을 올려보았다.
“미안해요. 계획에 없던…일이 생겼을뿐이예요.”
“그래? 그렇게 얼버무리는걸 보니. 내가 알면 안돼는 일인가보네.”
“그런거 아니예요.”
“이봐. Clara.”
수연은 차를 마시다 유신우를 올려보았고,
“나…부탁이 있는데.”
“뭔데요.”
“David을… 좀 빌려갈까..해서.”
“무슨 말씀이세요.”
“이번에 유럽에 공연이 있는데.” 유신우가 긴장했는지 침을 삼켰다.
“그런데요.” 수연의 눈빛이 차가와졌고.
“유럽구경을 꼭 시켜주고 싶어. 아주 재밌는 여행이 될텐데 나 혼자가기는 심심하고.”
“안돼요.”
수연은 들어볼 필요도 없다는듯 딱 잘라 말했다.
“사실은.”
수연이 유신우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David이… 그 녀석이 말이지. 나한테 곡을 하나 써줬는데… 그곡을 들어본 내 제자 하나가 꼭 그걸 불러보고 싶다고. 아..난리를 쳐서 말이야. 내가 그곡을 줬거든? 근데 그 제자가 이번 유럽 페스티발에서 상을 타게됬지 뭐야. 나..이거…몰래 일 저질렀다가 된통 당한 셈인데… 유럽에 있는 친구들이 David을 한번 꼭 만나고 싶다고”
수연의 두 눈이 몹시 흔들렸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져나올듯.
“화…났어…?”
“이만 나가주세요.”
“Clara!”
“나가요.”
유신우는 풀이 죽어 깊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가고 싶어요.”
그때
David의 목소리가 거실쪽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천천히…뚜벅뚜벅 엄마와 유신우가 마주앉은 Dining room으로 다가와 섰다.
“보내주세요. 엄마.”
이수연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David…너. 유신우씨하고…
이런식으로 엄마 속이고. 너 하고싶은데로 하려고 숨겨 온거야?”
“미안해…미안해요 엄마. 너무…하고싶어서. 한번 해본거야. 이렇게까지 일이 진행될줄은.”
쫘악!
“Clara!”
유신우가 수연의 팔을 붙잡았고,
그녀의 두눈에서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David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진정해 Clara. 내가 잘못한거야. 내가 해보라고 꼬였다고. 다 큰 아들에게. 이러면 안돼지.”
“뭐가 안돼요! 내 아들이야. 내가! 죽을힘을 다해 키웠다고! 한순간도 한눈팔지 않고. 이 아이만 보고 살아 왔다구!”
이수연이 무너져내렸다.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David도. 유신우도. 당황하고 영문을 알수없어 어리둥절 했다.
아무리 화가 났다해도 이렇게까지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것은 이수연답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아? 정말 미안해, Clara. 내가…사과할께.”
유신우가 조심스레 다가섰고,
이수연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흐느끼며 조용히 문을 닫았다.
“너희 엄마가…왜 저러시지…?” 유신우는 당황하고 미안해서 David을 돌아봤는데.
David은 이제야 조금 감이 잡힌다는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제가…나쁜놈이예요. 오늘. 많이 놀라셨을텐데. 아저씨께 미리 말씀드린다는걸. 깜빡했어요.”
“무슨 소리야? 그게?”
“엄마가…오늘 누굴 좀 만나셨거든요. 오랜…친구분인가봐요.”
“그게 누군데?”
“서지운…교수님…아저씨도 아시죠?”
“서지운 교수를…왜…”
유신우는 부인하고 싶은 사실을 알게된 사람처럼 말끝을 흐렸다.
“자세한건. 저도 모르겠어요.”
유신우가 힘없이 의자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서지운…?”
한참 후…유신우는 문을 닫은 수연에게 인사도 못하고 사라졌고.
똑똑똑….
“엄마…”
아무런 반응이 없자, David은 문고리를 살짝 돌려 방안을 힐끔 둘러보았다.
“들어와.”
David은 조심스럽게 엄마곁으로 다가섰고.
“아저씨…가셨어요.”
수연은 미안한듯 David의 눈길을 피했다.
“여기…앉아봐…”
수연은 침대 옆에 앉은 David의 손을 꼭 붙잡아 주었고.
“나는…너가 없으면… 살수 없어.”
“알아요. 미안해 엄마. 엄마없으면 나도 안돼는거 알잖아?”
“너에게…말 해줘야 할때가…온것 같다.”
“뭘…? 왜그래 엄마..?”
이수연은 슬픈 미소를 지으며 David의 두손을 꼭 붙잡았고…
“너가…처음 본사람도 나고. 너를 처음 안은사람도…나야..”
뭔가…이상한 분위기를 눈치챈 David은 엄마를 똑바로 돌아보았고.
“그 누가 뭐래도…너는. 내 아들이야.”
“무슨…말씀 하시는거예요. 엄마…?” David의 심장이 심하게 뛰기 시작했다.
“열여덟살때였어…
그때…나는 갈곳이 없었지. 할줄 아는것도 없었고.
가진것도 없어서…
6개월을 노숙자처럼 헤매고 살았는데.”
이수연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처음으로 고백하는 그녀의 20년 세월이.
다 잊은듯하면서 너무나 생생한 그 힘들었던 기억들이.
그녀의 목을 메여왔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한동안 망설이다가…
다시 용기내어 입을 열었다.
“그러다가…어느 진료소에서 잔일을 하게 됐는데. 거기서. 참 아름다운 한 여자를 만났지.
그 여자의 이름은…”
수연은 흐르는 눈물을 닦고, David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David은 심장이 멎을것만 같았다.
“최연주…최. 연주라는…정말 신비로울 정도로 예쁘고…다정한 사람이었어.”
“무슨…말 하는거야. 엄마. 왜 갑자기…”
“그분이…” 수연은 흐느낌을 주체하지 못하고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David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혔다.
엄마가 무슨말을 하려는지…믿을수 없었지만 조금은 알것 같기도 했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느꼈던 아주 희미한 유리벽.
그런 유리벽이 엄마에게는 있었다.
무엇인가를 늘 숨기고.
왠지 조심스러웠던 그녀의 사랑.
그 무엇인가를 David은 짐작하고 있었다.
“그만해. 엄마…힘들면…말 하지마. 안해도…돼.”
가슴이 터지도록 통곡하는 수연의 모습이 David에게도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너를…사랑했어…나는 가진것도 없었고 할줄아는것도 없었지만…내 모든 사랑을 너에게 쏟았어…”
흐느낌과 교체되는 그녀의 목소리가. 끊어지며 이어가는 그녀의 호흡에
그동안 숨겨두었던 그녀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왜…이런 얘기 하는거야. 왜 지금…?”
David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고…
수연은 눈물에 섞여 끊어지는 목소리로 간신히 말을 이어나갔다.
“니…아버지를…찾았으니까…”
10
쪽지
Back
목록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