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하자마자 서지운은 학교로 차를 돌려달라고 주문하였다.

“왜요? 아직 일하시기엔 이른데, 오늘은 좀 쉬시고 내일 가세요”
운전석에 앉은 민혜주는 말리려 노력했지만,

서지운은 고집을 부렸다.
“나혼자 가도 돼는데 왜 왔어? 네가 택시 기사야? 너 review할때 다 되가는데 이렇게 한가하게 돌아다닐 때냐구?”
“아유…알았어요. 교수님… 알았다구요… 학교 가면 될거 아니예요.”

오피스에 도착하자 서지운은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민혜주가 바짝 들러붙어 부축하려는데,
서지운은 민혜주를 돌아보며 한숨을 쉬고는,
“민혜주. 여기 학교야.”

“교수님.” 민혜주가 서지운을 똑바로 바라보고는,

“학교 아니라 TV 앞이라도, 저는 교수님 부축하는거. 할수있어요.”

말로는 통하지 않을것 같았다. 민혜주가 또 울고불고 난리치면..

“혼자 걷는것. 연습해야지. 너 가서 할일 해.”

민혜주는 좀 삐진듯, 서지운의 뒷꽁무니를 노려보았다.



“JiWoon! How are you!”
그를 반갑게 맞이하는 같은과 교수, Dr. Gibson이었다.

“I’m good enough, Dr. Gibson, thank you,” 서지운이 웃으며 인사했는데,

“I heard…you weren’t coming back this semester.”
[이번학기는 안 돌아오는걸로 알고있었는데…]
“Hmm?”

“I am pretty sure I heard that.”  Dr. Gibson은 걱정스런 표정을 숨기려는듯 어색하게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렇게 들었네. 확실한데…]

서지운은 별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잘못알았겠지.
작은 사고였는데 소문이 좀 과장되게 났던모양이다 싶었고.

“It was just a minor accident.”
[별 사고 아니었습니다.] 서지운이 대답하자,
“Why don’t you… talk to Steve...?”
[아무래도 Steve와 한번 만나보는게 어때?]
 
Dr. Steve Hynes는 음악학과의 dean 이었다.
그와 만나보라는 이야기를 듣고나니.
그렇게 별거 아니라는듯 들어 넘길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그제서야 번쩍 들었고.
Dr. Gibson의 얼굴은 진심으로 걱정스러운듯한 표정이었다.

Dean’s Office에 도착하자,
마침 Dr. Hynes가 회의중인듯 하더니, 서지운을 얼굴을 보자 벌떡일어나 오피스 문을 열더니,

“Jiwoon! How are you? I was just about to call you.”

“Dr. Hynes. Good to see you.”

“Uh. Give me a moment, will you?” 회의석에 앉은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Dr. Hynes는 회의중인 자리를 빠져나와 서지운을 데리고 자신의 오피스로 들어갔는데.

급하게 회의를 뒤로하고 자리를 잡은 Dr. Hynes가 한동안 우물쭈물 말을 꺼내질 못하더니...
우선 형식적인 이런저런 인사를 나누고...

"Dr. Suh... Umm. Jiwoon. Well..."
그분 답지 않게 헤매시기 시작했다.

"The school and the department has decided to put your teaching under a... well. Not a review, but a sort of ...probation."


“Probation? What probation?”  서지운은 기가막혀서 되묻지 않을수 없었고.

“It’s really convoluted, I know. It’s completely unbelievable. Just ridiculous, I know.”
[아주 이상하게 꼬였어. 나도 믿을수가 없다구. 정말 말도 안돼지…나도 알아.]

“Why? Because I couldn’t attend classes?”
[왜죠? 강의를 못 나와서 인가요?]

“That had something to do with it, too, I’m sure… You did miss two weeks of school. But that’s not the whole thing.”  [그것도 물론 연관이 있겠지. 두주일이나 학교를 비웠으니까. 그런데 그보다도…]

서지운은 그저 Dr. Hynes의 다음 말에 귀 기울이고 있었는데,

“There was…. A weird rumor about you and….your …”
[자네에 대한 이상한 루머가…있었어. 자네와…자네의…]

서지운은 다음말을 안들어도 이미 알것같아
어이없는 미소를 지으며 두 눈을 감았다.

“Anyways, I don’t believe in any of that junk.  But…The school administration didn’t want to deal with all the legal hassle and that wouldn’t look good on you, either… so they thought this was the best option for both you and the school.   We're calling it a 'medical leave'.  But don’t worry, as a tenured professor, it doesn’t mean anything. You’re just getting a long break. Your contract is still solid as a rock.”
[어쨌든. 난 그런 쓰레기같은 소리는 하나도 안 믿어. 그치만 학교 행정과에서는 법적인일로 관련해서 자네를 괴롭히고 싶지도 않았고, 잠시 쉬다가 돌아오는게 가장 좋은 방침이라 생각했어.  '병가' 라고 부르기로 했고. 걱정할건 전혀없어. 정식교수로써 이건 그냥 긴 방학이야. 자네의 계약은 반석과 같이 굳건하니까.]

“So what Exactly…is the junk that you do not believe in?”
[그래서…그 쓰레기같은 소리가…정확히 뭡니까.]

“Campus romance, in a good way, – but some call it as nasty as a classic case of sexual harassment. You are a professor, and she is still a student.”
[좋게말하면 캠퍼스 로맨스…근데 어떤사람들은 성희롱이라고까지 몰고가려고 해. 자네는 교수고. 그녀는 아직 학생이니까. ]

“What happens to her, then?" [그럼 저의 제자는 어떻게 되는거지요.]

“Well. She definitely won’t be considered for a position here at this University.”
[적어도 이 대학에서는 교수자리를 찾을수 없을거야.]

민혜주와의 루머라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서지운이 할수 있는일이 없었다.
정확히 따지고 밝힌다고 괜찮아 질리도 없었고, 오히려 더 일만 크게 만드는게 될수있다.

사고나던날.
민혜주가 키스하며 덥쳤을때 문을 덜컹 열고 들어섰던 학생이 생각났다.
뭐. 그 학생 뿐이었겠는가. 
늘 민혜주가 졸졸 쫓아다녔으니 소문이 날 만도 했다.
어쨋든 그날 민혜주의 과격한 행동은. 오해를 사기에 딱 좋았으니..
속수무책이라고 해야 정답이겠지.

“Sorry, I must get going, but Jiwoon, I hope this doesn’t mar the relationship we’ve built over the years.  You are a valuable member of our faculty.” [미안하네, 이만 가봐야겠어, 하지만 지운, 이 일로 인해 우리관계가 상하지 않길 바래. 자네는 우리 교수팀에 귀한 멤버니까.]

서지운은 애써 일어나서 Dr.Hynes의 내미는 손을 잡았다.

Dr.Hynes는 나가기 전에 서지운의 어깨를 두드리며, 손을 꼭 쥐어주며,
어서 완쾌하라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Dean’s Office를 터벅터벅 걸어나오며,
서지운은 아무런 생각도.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긴…방학이라…
병가라고는 하지만 따지고 보면 정학이라…
민혜주...이 사고뭉치를 어찌하나...

교수생활을 시작하고 처음 겪는 일이었다.
학교에서 이해를 한다고는 하지만
병가처분까지 했다는것은
민혜주와 서지운의 과장된 루머가 
학교 웹사이트를 통해 겉잡을수 없이 퍼진듯 했다.

로맨스가 있을수 있지.
그러나 교수와 제자간의 로맨스는 아무리 개방국가라 하여도
이런 명문 대학교의 policy에 어긋나는 일일뿐 아니라,
법적인 문제로 커질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늘 정직하고 엄하게 학생들을 지도 해오던 서지운에게.
창피하고 황당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자신의 오피스에 도착하여.
열쇠로 문을 열고,
듬성듬성 서류를 정리하기 시작하는데…


똑똑똑…

고개를 들자,

자신의 눈을 믿을수가 없어서
잠시…
침묵만 흘렀다.


“왠…일이야…”

“사고났다는 소식…들었어. David이… 얘기 해줘서…마침 여기 있었네.”

수연이가 나타났다.
지금.
서지운이 어찌할바를 몰라 혼란스러운 지금.

그녀의 따뜻한 눈망울이 서지운을 보고 서 있었다.


“괜…찮은거야…?” 그리고 지금 그를 걱정하고 있다.

“그래... 너도 잘 지냈어..?”

“응.”

서지운은 잠시 그녀를 보고만 있다가,
“아… 미안. 여기 앉아. 뭐…마실래? 아. 여기는 아무것도 없고. 어디…나갈까?”

“아니야. 그냥. 잠시 인사하러 온거야…”

이수연이 조용히 미소지었다.
그런데 그 미소는.
기억속에 희미하게 남아있던 이수연의 그 미소는.

그 먼날 그녀가 떠나가기 바로 전에,
서지운에게 과일을 깍아주고 문을 닫고 나가던 그 미소와 똑 같았다.

“무슨…인사.”

“나… 그리고 David…. 유럽으로 유학간다고…
너도 그랬지. 우리 David 정말 재능있는 아이라고…
지금까지 음악.. 일부러 못하게 한것도…너무 미안하고…
그리고 이제…더 이상 막을 이유도 없어서.
그 애 하고싶은데로 하게 해주려고.”

이수연이 억지로 웃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듯한 눈을 조용히 내리깔며, 그녀는 바보같은 미소를 지었다.

“유신우씨랑…같이…?”

그녀가 서지운을 똑바로 마주보았다.

“그런건… 아니야. 같이…가는건 아니야. 난 David때문에 가는거고. 그 사람은.”

“그 사람도… David 때문에 가는건가.”

이수연은 눈물을 집어 삼켰다.

“David을….혼자 보낼수가 없어. 아직은. 내가 그럴 용기가 없어.”

서지운은 이수연이 무슨말을 하려하는지. 전혀 알수없었다.
다 큰아들을. 혼자 잘 살지 맘 놓을수가 없어서 밥해주고 챙겨주러 간다는 소린가.

“만나서…반가왔어. 늘…생각했었어.”
수연의 두 눈가에 맑은 눈물이 맺혀왔다.

늘 생각했었다는 말.
이제 마지막이라서. 그녀는 용기를 낸것인가.
그럼 이 마지막순간에.
서지운이 낼수있는 용기는.
무엇이 있지…?

“왜… 떠났던 거야. 우리 아버지가. 너에게 어떻게 했길래…그렇게 말도 없이 사라졌어.”

“그런거 아니었어. 너의 아버지…나에게 다시 집으로 가자고…나를 설득하려고 하셨어.
우리 오빠가 행패부리는거 보시고…
아저씨도 마음 아파하셨어…
나 때문에 오해하고 있었구나…정말…미안해.”

“너에게 나는…아무것도 아니었어…?”

“너는 나에게…모든것이었어. 그치만. 나는 너에게서 가장 소중한걸 빼앗았잖아.”

“피아노…얘기 하는거야…?”

“그때 우리 오빠한테 맞고나서…너 손목 다친거…나는 알고 있었어.”

서지운의 눈가에도 희미하게 눈물이 맺혀왔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게…피아노라고 생각했구나…”

“너가 아니라고 해도. 너를 망쳐놓은게 나였어. 내가 아니었으면.”

“만약 내 손이 감각을 잃고. 내 귀가 멀고. 기억을 잃어 버리고. 눈이 안보여도…
나에게 가장 소중한건. 없어지지 않아.”

서지운은 이수연에게 다가서서 그녀의 흘러내리는 눈물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피아노는 도구일 뿐이니까. 나에게 음악은 영원한거고…
너는. 나의 음악이니까. “

이수연이 참고있었던 울음을 터트렸다. 어린아이처럼. 그냥 소리내어 울어버렸다.
서지운의 따뜻한 사랑이 그녀의 차가왔던 과거를 온통 녹여 내리는것 같은 기분이었고.
그런 그를 피하고 밀어내기만 했던 자신이. 너무 야속하고...후회스럽고...

서지운은 울고있는 이수연을 조용히 자신의 가슴에 품었다.

마지막으로 그가 낼수있었던 용기는.
그녀를 품안에 한번 안아보는것으로.
이제 여기서 끝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