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우의 투명한 눈동자를 보며, David은 한마디 질문을 건넸다.

“아버지는.
저의 어머니를 사랑하셔서.
나를 받아준건. 아닌가요.”

"David!" 수연이 더 놀랐고,

“뭐?”

“다 큰 아들이 부담스러웠으면서.
바로 사랑하는 여자의 아들이라서 더 쉽게 받아들인건 아니신가요.”

“그래. 솔직히 그런것도 없지 않아. 물론 더 감사했고. 반가왔지.
그치만 니 어머니가 이 사람이 아니었다해도.
나는 너를 사랑하고. 감사하게 받아들였을거야.”

“정말 그렇다면.
어머니를 붙잡지 않을 자신도 있나요?”

“David! 너 무슨소리를!” 수연이 당황했다.

유신우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의 마음이 아픈듯, 그의 유쾌함도 고통에 뭍혀 사라진듯 했다.


“엄마는 나때문에. 내가 걱정되서 여기에 있는거잖아.
내가 사랑받지 못할까봐. 유신우씨 곁에 남아있으려고 하는거… 아니야?”

“David! 너 왜 이러니!”
수연이 놀라서 어쩔줄을 몰라했다.

“나…이제 다 컸어.  충분히 나 자신 챙길수있는 나이야.
아니…엄마가 필요없다는 얘기가 아니고…
엄마는…
이제 자유하라고…
자유롭게 선택하라고 하는 말이야.”

“선택은. 이미 했어.”
수연의 목소리는 당당했다. 그녀의 표정역시 근엄했다.

“너…이렇게 건방진 행동. 결례되는 말들. 아버지께 사과드려.”

“아니야! 괜찮아. David…이해해…” 유신우는 급하게 다가서며 수연을 말리려 했다.

David은 잠시 엄마를 돌아보고. 한숨을 쉬더니.

“…죄송합니다.” 유신우에게 고개를 숙였다.

수연이 마음아픈듯. 두 눈을 감았다.

“David…잠깐…엄마와 나에게 시간을 좀 주겠니…”
유신우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David의 어깨를 붙잡아 주었고.

David은 말없이 쟈켓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유신우와 이수연은 한동안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못했다.

“아참…배…고프죠? 국하고 반찬하고…금방 데울께요. 별거 없어도 그냥 간단히…”
눈물을 훔치며 일어서는 수연의 손을 유신우는 말없이 잡았다.

“얘기하고…나가서 먹어요.”

수연은 유신우를 보고 힘없는 미소지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할말이 너무 많아서 유신우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렇게 한동안 망설이는데.. 수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David이 한말…신경쓰지 말아요. 아까 얘기 한대로…전 이미 결정했어요.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유신우는 쓴미소를 지었다.
 “내가…당신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당신은 정말 모르는군요.”

“무슨…”

“당신의 진심이 어떤건지… 당신의 마음이 어느쪽으로 쏠리는지 정도는…
당신의 일거수 일투족에 온통 관심 쏟고 있는 나한테…
숨길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유신우가 부드럽게 웃었다.

“무슨 소리예요…”

“나는…당신 마음 알아요.
David을 사랑해서…
지금까지 힘들게 살아온것도 알고…
나를 진작에 찾았으면서 말하지 못한 당신 마음도 이해하고…
서지운 교수를 만나서…”

유신우가 하던 말을 멈추고 잠시 망설였다.

“그 사람을 만나고… 많이 흔들렸다는 것도…
잘 알아요.
그리고 이제.
왜 그 사람 대신 나를 택했는지.
그 이유도 이해할수 있을것 같아요.”
유신우의 부드러운 미소에.
이수연은 부끄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정말…다 알고 있으면서…

“그래도. 놓아주고 싶지 않은 내 마음…
당신은 알수 있겠어요…?”
유신우의 투명한 눈동자에서 작은 빛이 흘러내렸다.

“미안해요.” 유신우는 얼른 눈물을 닦아냈다.
그리고 잠시 자신을 진정시키더니.

“사랑한다면. 붙잡는거라고 들었습니다. 그러고 싶구요.
하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도 드네요.
이기적으로 살아온 나의 인생.

사랑하는 여자를 혼자 죽어가게 내버려둔 못난 녀석.
어떻게 행복하기를 바랄수 있나.
정말 이기적이고. 못된놈이라는 생각.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키워준 은인에게.
끝까지 내 욕심을 챙기려고 당신이 원하는걸 내가 붙잡고 있는것…
그것도. 참 못난짓이라는 생각.
그래서 말인데요,
Clara,
아니…수연씨…”

참으려고 하는데 그의 눈에 자꾸 눈물이 맺혔다.
그는 서둘러 맺혀오는 눈물을 닦아내고, 또 닦아냈다.

“말하지 말아요.”
수연이 자신의 손으로 유신우의 눈물을 쓸어주었다.

유신우는 수연의 따듯한 손길에 너무나도 놀라서 굳어버렸는데…

“아무말도…안해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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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해. 너 제 정신이야?”

서지운은 민혜주가 안쓰러웠다.

결혼해 달라니. 얘가 너무 충격을 먹었나.

“교수님…제발. 오해하지 말고…들어주세요.
협박하는거라고 생각하시지만 말아주세요.
제가 진심으로 교수님 좋아한다는건…믿어주실수 있죠?”

민혜주의 표정이 심각했다.
감정적으로 폭발해서 결혼해달라고 한것이 아닌듯 했다.
그 어느때보다 신중히 생각하고 결정한듯,
아니, 아주 큰 마음을 먹고 이자리에 서있는듯 싶었다.


“사실은요…
어…
저기요. 교수님…”
민혜주는 이제 중대사를 발표하려는듯
눈물을 말끔히 씻어내고 코를 흥하고 풀었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몰아쉬더니…

“언젠가는…알게될 일이라고 생각하고 들어주세요.
제발 오해하지 마시구요…”

뜸들이는 민혜주가 이상해서 서지운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주시했다.

“교수님과…진심으로 결혼하고 싶은거. 맞아요.
그리고 제가
결혼해 달라고 그랬지.
사랑해 달라고 한건 아니잖아요.”

“그게… 말이 돼? 결혼은…
사랑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

“교수님…사실….사실은요…
사실은 저희 아버지가 이 대학 총장님하고 아주 친하게 지내시는 사이예요.
두분이 골프도 항상 치러 다니시고.
한달에도 몇번씩 만나서 회식하시고…
아니…왜그러냐면…중요한건…저희 아버지가....우리 아버지 이름이.. Parker이라구요.”

Parker.
얼마전에 새로지은 도서관 이름이다.
그리고 지금 짓고 있는 대규모 콘서트홀도. Parker Concert Hall 이라고 되어있다.

한동안 뜸들인게 미안했는지, 아니,
이젠 에라 모르겠다 싶었는지 줄줄 잘도 나왔다.
말을 마치고는 그녀의 눈동자가 서지운을 빤히 바라보았다.
순진하고도 용감한 민혜주.

유럽에서 쭉 공부했다던,
어느날 갑자기 굴러 들어왔을때부터
늘 자유분방하고 아무것에도 제재받지 않는 아주 특이하고 순수한 영혼이라 생각했다.
그것이.
재벌집 딸 특유의 자유스러움이었나.
그녀의 스스럼없는 사랑의 고백들도.
그런 건방진 자신감이었나…

“…그래서.”
서지운은 뻔한 질문을 했다.
답을 대강 알것같았지만…

“짐작…하시겠지만.
아버지는…교수님이…
아주 나쁜사람이라고 생각하셔요…
더구나 진짜가 아니었다면…
더…난리가 나실거예요.
현재로는
음악학과 교수님들께서
절대로 정식교수인 교수님을 내보낼수 없다고
변호를 하고 나섰고, 싸우고 계시지만.
총장님이 흔들리시면.
그리고 저희 아버지가 자꾸 압력을 넣으시면…
일이 더 많이.
아주 더 크게 복잡해지고… 서로 법적소송이 될수도 있구요…
제발…
화내지 말아주세요…
제발…”

얘기를 다 마친 다음에는 민혜주가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눈을 꼭 감았다.
마치 기도하듯.
혼날 각오가 다 되었다는듯.

서지운은 기가막혀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아까 수연이때문에 저려왔던 가슴이
이제는 아주 쓰리게 꾹꾹 쑤셔와서 숨을 제대로 쉴수 없을정도로 아팠다.

그는 찡그리며 그의 가슴을 움켜쥐었고,

“교수님! 왜 그러세요! 괜찮으세요!”
손가락 사이로 서지운의 눈치를 살피던
민혜주가 급하게 다가와 그의 가슴에 손을 잡으려다. 망설였다.

서지운은 말없이 괜찮다는듯 손을 들어 보였고,
곧 들고있던 가방을 챙겨 어렵게 발걸음을 옮겨 office 밖으로 나왔다.

“교수님!” 민혜주가 따라 나왔고…

“걱정마. 안 죽어."

“교수님이… 어떻게 되면. 전 폐인이 될지도 몰라요. 죄책감에 평생을. 살아갈수 없을것 같아요!”
민혜주가 부르짖었다.

죄책감…
죄책감이라. 수연이에게도. 이제 민혜주에게도.
서지운은 그런 존재가 되었나.
수연이도 그랬다.
죄책감때문에.
피아노를 칠수없는 서지운의 손목때문에.
평생 죄책감을 느낀다고.
그래서 자신을 떠나갔다고 했다.

“그리고…전. 정말 교수님 사랑해요…
일부러 이렇게 하려고 한건 아니예요…진심이예요…”

민혜주는 늘 당당하고 용감하다…
유신우처럼.

서지운은 쓰린 가슴을 안고 웃었다.
두눈을 감고 아무생각없이.
그저 허무하게 웃었다.

왜 이렇게 닮아있는건지.
이수연과
서지운은.

죄책감을 버리기 위해
당당하게 사랑해주는 사람들에게로.

두 사람은
서로 각자 다른길을 가야하는건지.

잠시 재회했던 기쁨을 뒤로하고.
예전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멀리 떨어져서 살아가야 하는것인가.

추억이든
고통이든
사랑이든
착각이든...
모두 또 다시 기억속으로 뭍어버린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