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연은 침대에서 힘없이 돌아보는 David 에게 다가가 그의 힘아리없는 손을 꼭 끌어안았다.

“왜 그랬어. 바보같이… 그냥 말로 하면 될껄… 그냥 얘기하고 준비해서 나가지… 왜 이렇게 까지 해야했어…”

David은 아직 여러 말을 나눌 기운은 없었다. 그저 어렵게 손가락을 들어,
말없이 울고있는 수연의 눈물을 닦아줄뿐…

“…미..안…”

David이 인사하듯 유신우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형편없구나 너. 이렇게 어머니를 걱정시키고…”

David은 아직 기운이 없는지 대답하지 못하고 한숨을 쉬었고..

“왜 니 어머니 좋은건 안 닮고
니 애비 못난 급한 성질을 닮아가지고
가출을 해, 가출을 하긴.”

“유신우씨…” 이수연이 David이 안쓰러운듯, 유신우를 돌아보았다.

유신우의 눈빛이 평상시와 다르게 무척 심각해 보였다.

“너 한사람이 다치면 나머지 사람들이 얼마나 걱정하고 괴로운지… 모르겠어?”

“...아버지.”

David의 아버지라는 부름에 유신우는 잠시 주저했다.

“죄송..해요.”

“아니…그러니까…” 유신우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러려고 그런게 아닌데…” David의 안색이 창백해져서, 갑자기 무섭게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아직 고비 넘기려면 오늘 밤 지나야 해.
약도 잘 견디어 내고 있고, 열은 내렸으니까 이제 기침이 좀 가라앉으면…살만 할거야.
아무말도 하지마… 아무 걱정도 하지말고…”
수연은 침착하게 다가가 이불을 한겹 더 덮어주고, 가습기를 조정해주었다.
유신우도 걱정스럽게 다가와 David을 지켜보았다.

“괜찮은거야? 기침이 너무 심한데…”

“우리는…이만 나가죠.”

“David, 괜찮겠어?”

David은 힘없이 웃었다.

유신우와 수연은 병실에서 나와 잠시 침묵했다.

“정말…괜찮은거 맞죠?
Clara는 폐렴환자 많이 봤죠?”

수연은 혼란스러워하는 유신우를 잠시 보다가…
조용히 유신우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Clara…”

“유신우씨…
일주일동안…
잠도 못자고
음식도 못먹고… 고생하셨어요…
스케쥴도 모두 미루고 David 찾아헤맨거…
정말 유신우씨 진심인거… 알아요.
제가 잘못 키워서 죄송해요…
진작 그 아버지 자리…채우시지 못하게 해서…죄송해요.
그리고.
전 이제 유신우씨…
정말로 믿어요.”

“잘못 키웠단 말만 취소하면. 그 칭찬 받아드릴께요.
그리고. 믿는다는 말...
내 멋대로 해석할께요.
사랑하지는 않지만
좋아하긴 하고 의지하겠다는 뜻으로.”

"유신우씨.."

유신우는 허탈한듯 웃고는,
다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서지운교수… 지금 많이 힘들거예요.
잘은 모르겠지만
누군가 권력을 잡은 사람들 사이에서
잘못 된 이야기를 계속 퍼뜨리고 있어서…
너무 빠른 속도로 무너져 내리고 있어요.
음악세계라는게…정말 좁아서
실력도 실력이지만
인맥이 가장 중요하거든요…”

서지운의 이름 한마디에 수연의 눈동자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수연의 어깨를 잡아주고.

“오늘밤은…부탁할께요.”

“…네…걱정 마세요.”

유신우는 천천히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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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운은
유신우와 수연이 나란히 서있던 모습을 생각하며…쓰리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래도 David을 찾아서 다행이다…싶어
피식 웃으며 차에서 내리는데,

“서지운씨.”

어두움속에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Mr. Parker..?”

그는 고급스런 검정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Care for a drink?”

“What…can I do for you.”

“You don’t answer questions well. I asked if you cared for a drink.”

“…Sure.”

Parker은 씩 웃으며,

“Then open the door.”

서지운은 알았다는듯 고개를 끄덕이며,
정문을 열고,
먼저 들어가시라는 손짓을 했다.

Parker은 들어서자 마자 한숨을 쉬고.
리빙룸의 소파에 주저 앉았고.

“자네. 자식이라는게 뭔지… 알아…?”


Parker은 와인 컵을 가지러 가는 서지운에게 앉으라는듯 손짓을 했고,

서지운은 소파에 마주 앉았다.

“혜주 그 아이가 나에게 무슨 의미인지… 아냐고.”
Parker은 그렇게 말하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억울했나?”

서지운은 말없이 Parker을 똑바로 쳐다 보았고.

“억울하지 않았어? 지금까지 충성해온 학교에서도 당신을 최악의 조건으로 내보냈고.
당신 명성도 땅에 떨어졌을텐데…
혜주와 내가 미웠겠지. 억울했을테고. 아닌가?”

서지운은 고개를 숙이며 와인을 잔에 따랐다.

“말도 섞기 싫다..?”

“아닙니다. 술은 와인밖에 없는데 괜찮으십니까.”

“Whatever you have.” 그는 얄밉게 웃으며 손을 올려 들었다.

서지운은 와인을 따라 Parker앞에 내려놓았는데.
“혜주가
병원에 입원했어.”

서지운은 놀라서 Parker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았고.

“서지운 자네를 제 자리에 돌려놓으라고
단식투쟁…뭐 그 비슷한짓을 했는데
그냥 내비뒀더니
상태가 심각해져서
원래 그애가…대학교때부터
거식증이 있었거든.”

“지금은...어떻습니까.”

“아직도 모든 음식을 거절하고있어. 주사도 안 맞으려고 하고.”

서지운은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바보같은 것…

“그렇다고 이제와서… 자네를 복귀시킬수는 없어.
그럼 모든게 너무 우스운 꼴이 되니까.”

“저에게 원하시는게…뭐죠.”

“혜주하고 유럽으로 잠시 가줬으면 해.”

“네?”

“영국 Oxford에 임시교직이 있는데
혜주를 그 곳에 데려다 주고
녀석 정신차리고 일하도록. 지금 상태에서 깨어나오려면
새로운 환경이 필요하다는 의사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어.
내…
가까운 가족중 하나가 그쪽에 Conservatory를 운영하고 있지.
이름대면 금방 알만한…
혜주에 대한 부탁은
사실 자네가 복귀할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한 핑계야.
거기 자리가 비어있다고 연락이 왔는데
이곳보다 조건이 월등할테고…
작곡하는 사람에게 보장된 미래지.”

서지운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죄송합니다.”

Parker은 피곤한듯 등을 소파에 깊이 기대고 앉았고,

“죄송합니다. 그렇게…할수 없습니다.”

Parker과 서지운은 잠시 서로를 마주보며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 나를 거절할 처지가… 아닐텐데.
이런 호의를 무시할만큼
사치스러운 사람인가? 어려운 부탁도 아니고
이제 음악을 못하게 될수도 있을텐데?”

“음악은
누가 시켜서 하는것도 아니고
못하게 한다고 안해지는것이 아닙니다.
원래 굶어 죽어가면서도 하는게
음악이고 예술이죠.”

“훗… 천재적인 음악인이라더니
그럼 어디 진정한 예술인이 되보시게나.
굶어 죽어가면서 쓰는 음악이 명곡이 되나 두고보자구

명예가 땅에 떨어진 작곡가를 누가 써줄까?
그렇잖아도 유럽과 아시아에서 새로운 천재들이 몰려오는데.”

Parker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도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는 자네를 조금 도와주고 싶었는데 안됐군.
자네에 대한 파렴치한 소문들은 사실 나도 믿지 않거든.”

서지운은 일어서는 그를
말없이 올려 보았고.

“그 소문이 대체 뭔데요.”
뜬금없는 목소리에, 서지운과 Parker은 깜짝 놀랐다.

“죄송합니다.  문이 열려 있길래, 그냥 밖에서 기다리다가…
본의아니게 훔쳐들었네요.”

유신우가 주머니에 손을 넣은채, Parker과 서지운을 번갈아 보았다.

“서지운교수에 대한 소문, 제가 들은것들과
같은 소문인지…한번 맞춰 볼까요?”

“자넨 누군가? 이 사람 친구?”

“친구요? 에이…전혀…
적이라고 할수있죠. Enemy.”

Parker은 조금은 장난스러운 유신우가 불쾌하다는듯 아래 위로 �f어 보았다.

“아…혹시… 그 Post doc fellow하는 여학생…측근 되십니까?”

Parker이 눈을 가늘게 뜨고 유신우를 노려보듯했고.

“서지운교수가 일부러 접근했다는
누구라더라? 그 대학에 대단한 기부를 한다는…
Park…뭐라고..
어쨌든
서교수가 재산에 탐을내서 그 집 딸을 우롱했다고.
캠퍼스 교수실에서 뭐…별짓을 다했다는 얘기도 있고…
교수로써 상상이 안가게 저질스러운...
결국 그 여학생을 사랑하지는 않으면서
철저하게 이용해먹고
아주…그냥 앞길을 막아버렸다는...
엄청나게 돈을 받고 학교를 관뒀다면서요?
그리고 그 여학생은 자살시도까지 했다고…
비슷합니까?”

Parker은 묵묵히 유신우를 주시하고 있었다.

“반 정도는 거짓이라고 봐도
서지운교수. 참 창피하게 됐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니 평상시 행동을 어떻게 하고 다녔길래
소문이 나도 그렇게 나요?
서교수랑 원수진 사람이라도 있는지…
잘 아는 학생들하고 교수님들은 모두 말도 안돼는 소문이라고
오히려 화를 내던데 말입니다.”

“여학생 집안에 먹물먹인거.
그 앞길이 막히고. 자살시도까지. 
반 이상은 사실이야.”

서지운이 놀라서 다시 Parker을 돌아보았다. 자살시도라는 말은…

“적이라더니. 친구 맞나보군.”

“백짓장 차이죠. 적과 친구는.”

“그런 상황까지 몰고 갔어도, 그래도 내 딸과 진정 사랑했고. 결혼한다고 했으면,
나는 모든것을 용서하려고 했어. 지금도. 또 한번의 기회를 주러 온것이고.
그런데 자네의 Enemy는 끝까지 나를 내치는군.”

“그럴수밖에 없겠죠. 서지운 교수는. 사랑하는 여자가 따로 있으니까요.”

Parker의 얼굴에 분노가 들끓었다.
“뭐? 뭐가 어째?”

“그 여자 외에 다른 여자는 사랑한 적이 없는 사람이니까요.”

“내 딸을 사랑하지 않았다는건 이제 내가 더 잘 알아. 그 외의 것은 내가 상관할바 아니고.”

“그래서 무너뜨리시는 겁니까. 당신의 딸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소문은 어차피 믿지 않으신다 면서요.”

“그만해요. 유신우씨.”
서지운이 나서는데, Parker이 기가막힌다는듯 소리 내어 웃었다.

“재밌군. 무너뜨리다. 그 반대라고 생각했는데… 서지운 자신이 스스로 무너지고 있다고 말이야.
사람은 다른사람을 무너뜨리지 못해. 그저 스스로 무너질수있는 함정을 마련해 줄수는 있지.
그 함정에 빠져 사라지던 구해주는 손길을 받아들이던 그건 각자의 결정이니까.”

Parker은 문을 박차고 사라졌다.

유신우와 서지운은 서로의 눈길을 잠시 피했고.

“벙어리입니까? 귀 먹었어요? 아니 이런 기가막힌 소리들이 오고가는데.
왜 아무말 없어요?”

유신우가 기막힌듯 서지운을 돌아보며 물었고

서지운은 피식…웃었다.

“미쳤…나…?” 유신우는 이상하다는듯 서지운을 가만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곳에 오신 이유는… 물어도 될까요. 전 지금 좀 급하게 나가봐야 하겠는데요.”

“사실은…제가 서지운씨를 한대 패주고… 이 나쁜자식아.
니가 수연씨 맘을 그만 흔들었으면 좋겠다.
나하고 결혼하려고 마음 먹은 사람이잖아…
라고 한바탕 하려고 했더니만…
또 어딜 가신다는 겁니까.”

서지운은 겉옷을 챙겼다.

“실례하겠습니다. 한대 맞는건 나중에 하기로 하죠.”

“혹시, 민혜주라는… 그 사람 만나려구요?”

“지나친 관심은 사양하겠습니다.”

“지나치다고 생각 안합니다. 저는 Clara와 관계된 일이라면 알아야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관계된 일, 아닙니다.”

“왜 아닙니까? 민혜주에게로 가시면 거기서 혹시 마음이 흔들리시면
전 Clara를 놔주어야 겠다는 생각
다시 되돌릴까 하는데요.”

“수연이를 붙잡고 계신거라면 놔주시는게 좋겠죠. 
그러나 그녀가 선택한거라면 방해할 생각 없습니다.”

“완전 겁쟁이로군.
싸울 맛이 안나는데?”

서지운이 조금 열받은듯 유신우를 쳐다 봤는데.

“겁쟁이 아닌가? 방해할 생각이 없다…
나는 죽어도 싫은일을 스스로 하려고 하는데
니 맘대로 해라 나는 자신있으니까, 뭐 그런거잖아?”

“… 죽어도 싫은건 나도 마찬가진데..
그래서 치고 박고 싸우면…

죽지 않는사람이 이기는건가요?”

“그거 좋은 아이디어네.”

“살인자는 감옥으로 가고 죽은사람은 하늘나라로 가면 수연이는 누가 지켜줍니까?”

유신우와 서지운은 잠시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다가.
유신우가 푸웃…
하고 웃음을 내뿜었다.

“밤이 늦었습니다. 다음에 다시 뵙죠.”

서지운은 유신우에게 짧게 인사를 하고 차를 몰고 떠나갔다.

유신우는 한숨을 길게 내뱉고…

“곧 죽어도 수연이 걱정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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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FRONT에서 서지운은 숨을 가다듬었다.
예상한대로 David이 입원해있는 같은 대학병원이었다.

면회시간은 지났지만,
메세지라도 전하려고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기다리는 동안,
너무나 피곤한 서지운은 잠시 쉬려고 눈을 감았다.

 툭툭…
잠시 후 누군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고,

눈을 슬며시 떠보니,

“교수님..”

민혜주였다.

서지운은 정신이 몽롱해서 고개를 좀 흔들었는데…
꿈인가…

정신을 좀 차리고 다시 눈을 떠보니, 민혜주가 맞았다.

“왜…여기서 이러고 계셔요…”

민혜주는 환자복을 입고, 서지운 옆에 앉아있었다.
창백한 안색에 풀이 죽은 소녀처럼.

“너…괜찮은거야?”

“교수님께..폐끼치려고 그런거 아니예요. 그건… 꼭 알아주셨음 해요.”

“밥은 먹었어…?”

민혜주가 눈물 고인눈으로 서지운을 돌아보았다.

“우리 아버지가…찾아갔다 면서요.”

서지운은 말없이 붕대로 칭칭 감겨있는 민혜주의 손목을 조용히 가로챘다.

“이건… 뭐야.”

민혜주는 슬며시 뒷짐을 하며 손목을 숨겼고..

“말씀드린데로…단식투쟁…네. 좀 무모했지만
그렇게 안하면… 교수님 완전 생매장 당할것 같아서..
그래서 그런거예요. 교수님한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

서지운은 깊이 한숨을 쉬었다.

“나에게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

“저희 아버지가...제 마음, 조금은 아셨을거예요..…”

“네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몰라?
내가 잘 했다고 칭찬할줄 알았어?”

“처음엔…그냥 단식만 하려고 했어요.
서교수님 너무 억울하시니까..
이 모든게 저 때문에 생긴일인데…
그런데 아버지는 상관도 안하셨고…제가 죽거나 말거나…
이래서 살면 뭐하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점 점 영양실조가 심해지면서,…
제가 정신줄을 놓았나 봐요…
그러려고 그런건 정말 아니었어요.”
민혜주는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서지운의 마음도 엉망진창이 되어 두 눈을 감았고.

또…
멀리서 그 두 사람을 보고있던 수연의 심장은 멎을것만 같이 뛰기 시작했다.
마음같아선 서지운에게 달려가 지치고 피곤한 그 사람을 꼭 안아주고 싶었는데.
옆자리에서 흐느끼는 민혜주는.
서지운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걸까…
붕대를 감은 그녀의 손목.
그 곁에서 괴로와하는 서지운…
두 사람에게… 무슨일이 있었길래…

“이만 들어가 쉬어.
내일 다시 올테니까…”

“아니요. 오지 마세요. 오늘은…  밖에 계신단 말 전해듣고
계속 기다리실까봐 제가 나왔어요.
저 멀쩡해요. 이제 정신도 차렸고. 교수님 걱정 안하시게 잘 살수 있어요.
저 찾아 오지 마세요. 동정도 하지 마세요.
교수님 오셔도 제가 안 만날거예요.”

“민혜주.”

“정말이예요. 안 만날거예요. 다시는. 교수님한테 폐끼치지 않을거예요.”

“더 이상 끼칠 폐도 없어.”

“저 쪽에… 그 여자분…계셔요. 우리…보고 있어요.”

서지운은 민혜주가 눈빛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돌아보았다.

누군가 후다닥…사라지는 그림자만 보였다.

“이봐요… 또… 폐 끼치잖아요.”

“다른 사람 걱정할때가 아니잖아.”

“아버지께 말씀드렸어요.
한번만 더 교수님께 찾아가서 괴롭히면
그땐 정말 죽어버리겠다고.”

“너 왜 그렇게 무서워졌니?”

“말했잖아요. 우리 아빠 무서운 사람이라고… 그 아버지에 그 딸이죠.”

“제발 그러지 마.”

민혜주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안녕히 가세요.”

서지운이 일어서는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내가…어떻게 하면 좋겠어.”

민혜주가 그를 돌아보았다.

“내곁에…영원히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치만 영원히 불행한 교수님을 보고싶진 않아요.
그러니까 이제 다시는 찾아오지 마세요. 아는척도 하지 마세요. 그렇게 해주시면 돼요.”
민혜주가 병실쪽으로 사라져 갔고,

서지운은 괴로운듯 두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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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수연은 젖은 수건으로 잠든 David의 얼굴을 닦아주는데,

똑똑똑…

문이 열리고, 서지운이 들어왔다.

수연은 그를 돌아보고, 조금 냉정하게 웃음지었고.

“좀… 어때…? David은.”

“많이 좋아지고 있어. 며칠 더 쉬면 돼.”

“넌.”

“난.. 좋아. 괜찮아.”

서지운은 괜찮다는 수연의 말을 되네이며, 그녀를 보았는데, 그녀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너… 많이 피곤하지 않으면 얘기 좀 해도 돼?”

“그래. 얘기 해.”

수연은 서지운을 똑바로 돌아 보았고.
서지운은 평안하게 잠들어 있는 David을 잠시 보다가...


“...여기서?”

“응. 긴 얘기 아니면 여기서 해.”

서지운은 한숨 지었다.
“긴 얘기는 아니지만…”

“무슨 얘기 하려고.
난
별로 할말 없는데.”

“…왜 그래…?”

“알잖아. 나… 이미 결정했다고 얘기 했잖아.
네가 David 찾아줬다고… 이제와서 유신우씨…그 사람 배신할수 없어...
사실 너보다 그 사람이 훨씨 더 많이 애써줬고
너에게 고맙다고해서…내가 전에 한말들… 다 없던걸로 칠수는 없잖아..

그리고…나 어젯밤에…두 사람 봤어..
그렇다고 오해하거나. 그런게 아니고.
난
그냥 이제
유신우씨가 좋아
그 사람 순수하고… 꼬이지 않은 솔직함이
나에게 편해.”

서지운이 천천히…고개를 숙였다.

“그래…알았어
알았으니까
잠깐... 나와 봐.”

수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눈물을 참으려고 심호흡을 크게 하고
서지운의 뒷모습을 따라 걸었다.

그때, 뒤에서 조용한 David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교수님… 마음 아프게 하지마…”
수연은 놀라서 돌아보았고,

David이 힘없이 웃었다.

“속 다 훤히 보이는 거짓말도…하지 말고.”

“넌 어서 기운차려. 괜찮은거야?”

“어서 나가 봐. 교수님…기다리시잖아.”

서지운은 멀리 창가를 바라보며 복도끝에 서있었다.
그의 옆모습이
햇빛에 반사되어
몸 전체에서 빛이나는것 처럼 보였다.
이제 마지막으로 봐 둬야 하는거라면
조용히 커다란 창문 밖을 바라보는 그 모습을. 사진이라도 찍어 놓고 싶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는 늘 그렇듯이 침착한 표정이었다.
깊은 심포니에 심취해 있는 사람처럼, 그의 눈빛만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서지운을 냉정하게 밀쳐서라도 떠나 보내지 않으면
그 사람을 다시한번 더 망치게 될까봐.
수연은 두려워 견딜수 없었다.

민혜주와 그의 사이에 자세한 내용은 알수 없었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대강 들은얘기로는
두 사람이 결혼하면
서지운교수의 명예도 직장도 모두 회복되기에 시간문제라고 했다.
아마도 이런 곤경에 빠진것도 혹시 자신 때문이 아니었을까…
수연은 겁이 났다. 그래서 더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천천히 그를 향해 걸었다.
좀 더 오래 그의 옆모습을 보고싶어서.

그런 수연의 마음을 알았는지..
서지운은 움직임없이 멀리 무언가를 조용히 내려다 보고 서있었다.

그의 조용한 숨 소리가 들릴만큼.
주위는 고요했다.
햇빛이 따뜻했다.

두 사람은 아무 말 하지 않은채 한참을 서 있었다.
서지운의 눈길을 더듬어 따라 내려보니
병원 길 건너 작은 공원이 보였다.

잔디가 고르게 깔려있고, 드문드문 꽃이 핀 나무들에 둘러싸여,
모처럼 맑은 날씨에 찬란할 정도로 아름다운 공원의 경치였다.

어린 소녀가 빵조각을 뿌리며 즐거워했고.
사방에서 새들이 날아와 고맙다는듯 고개를 조아리며 빵조각을 쪼아 먹었다.
소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번쩍 안아들어 공중에 새들과 함께 날게 해주자.
귀여운 소녀의 웃음소리는
멀리 병원 창가에 서있는
서지운과 이수연의 귀에도 들릴듯.
행복하고 상쾌하게 울려 퍼졌다.



“사랑해.”


서지운은 나지막하게
그렇게 한마디
20년동안 가슴속 깊이 묻혀있던
한마디를 했다.
 
수연은 아무말도 아무것도
할수 없었다.
철저했던 마음의 준비도
완벽하게 연습했던 차가운 대화의 내용도
모두 하얗게 잊어버렸다.
속수무책으로 눈물만 흘러내렸을 뿐

서지운이 그녀의 어깨를 천천히 잡아 돌렸다.
그의 눈가에도 눈물이 �션薦羚駭�.

그리고 그는 조용히 미소지었다.

“할말은…
그게 다야.”

수연이 얼음처럼 굳어져서 눈물을 흘리는데..
서지운이 그녀를 스치고 지나 걸었다.

수연은 지나쳐 가는 그의 손을 잡았고
천천히 돌아서는 그에게 키스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면

이렇게 햇빛 찬란하고 따스한 오후에
아무도 없는 조용한 이곳에서
우리의 힘들게 기다려온 오랜사랑을
이제는 그만 잊어버리자는 의미었을지
세상이 반대하고
서로를 더 무너뜨리는 일일지라도.
이제는 헤어지지 말자는 의미었을지

두 사람 자신들도 알지 못했다.

“사랑해…”
수연은 서지운의 흰 셔츠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의 가슴을 적시며 울었다.

“사랑해… 사랑해”

어린 시절
너무 어려서 하지 못했던 그 말
조금 커서는
헤어져 있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 서로 들을수 없었던 그 말
다시 만난 후에는
서로에게 상처가 될까봐 하지 못했던 그 말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을거라 생각하며 묻어버려야 했던
그 한마디.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이렇게 조용한 고백하나로
충분했을 정도로
이미 오래전에 정해진,
기다림에 성숙해진
약속의 결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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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후.

유신우가 힘차게 지휘를 하는 모습이 보이고
합창단과 함께 호흡하며 움직이는 그의 손동작은 수백명의 댄서가 춤을 추듯.
일정하게 각이 졌고,
힘없이 떨어져 버린 낙옆들을 다시 불어내 하늘로 날게하듯,
희망과 에너지를 끌어내는 힘이 있었다.

우뢰와 같은 박수로 공연은 끝이 났고,
유신우는 땀으로 흠뻑 젖어 지친듯, 그러나 활기찬 모습으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휴계실로 인파가 몰려들었고,
한시간이 지나서야 조금 조용하고 안정된 분위기가 되었다.

“유신우씨, 축하드립니다. 정말 대단했어요.”

유신우가 돌아보며 밝게 웃었다.

“아…서 백수님 오셨구만.”

서지운과 이수연은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래. 와이프한테 얹혀사는 기분이. 어떠신가요?”

“미안하죠.”

서지운이 웃으며 대답했고,
수연은 부끄러운듯 미소지으며 유신우에게 물었다.

“David은 잘 하고 있나요?”

“힘들다고 엄살이 심해요. Clara는 그 녀석 엄살부리는거. 본적 있어요?”

“엄살이요? 아니요… 엄살 부리지 않는데. 뭐든 불평없이 하거든요. 얼마나 힘들게 시키시길래…”

“아니. 지금 제 탓을 하시려는 겁니까? 그 녀석 엄살이 제 잘못이란거예요?”

“아뇨. 그런건 아니지만…”

“걱정 말아요. 밥도 세끼 먹이고 잠도 하루 7시간 재우고 운동도 시킵니다.”

수연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해졌다. 아무래도 유신우가 너무 David을 고생시키는게 아닌가 싶어서…

“오늘도… 못 왔나..봐요.”

“숙제를 다 못했으면 외출은 못 하죠. 배우는 속도가 느려 터져요.”

서지운이 끼어들었다.  “꽤… 잘 하던데… 혹시 가르치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건  아닌가요?”

“아니…그런데 이 분들이…” 유신우가 기분 상한듯, 두 손을 허리에 가져다 댔다.

바로 그때 유신우의 오른쪽 귀 밑으로 꽃다발이 불쑥 튀어나왔는데.
수연의 표정이 밝아졌고,

유신우는 놀란듯 뒤돌아 보는데,

“무지하게 틀리시데요. 두번째 곡 2악장은 박자도 몇번 놓치시고... 프로가 뭐 그래요?”
David이 씩 웃으며 꽃다발을 유신우의 품에 안겼다.

“어? 뭐? 아니 이 녀석이 그런데…” 유신우는 기가 차서 할말을 잃은듯 했고.

“프로는 공연중에 박자 놓치고 틀리는것에 흔들리지 않아. 만들어 지는 음악이 아름답다면 성공한거야.”
서지운이 웃으며 David을 마주 보았다.

“에이. 교수님은 음표 하나만 틀리게 써도 그렇게 혼내시더니 이렇게 위선하시면 안돼죠.”

“넌 프로가 아니니까.”

네 사람은 함께 웃었다.
유신우는 David이 자랑스러운듯, 그의 머리를 쥐어박듯이 끌어 안았고.

“엄마 나 좀 살려줘요.”

“왜?”

“아버지가 밤낮으로 볶아서…아주 못살겠어요. 음악이 이렇게 힘든건지 몰랐는데 경제학으로 다시 돌아갈까 봐요.”

수연은 조용히 미소지었다.
“정말…엄살이 심해졌네…어리광도 부릴줄 알고…”

아버지라 그런가 보다…
정말 친 아버지라서 불평도 하고 떼도 쓰고…어리광도 부리나 보다…
부자지간에 못다한 시간을 채우려 유신우는 밤낮으로 David을 귀찮게 구나보다…
두 사람은 친구처럼. 형제처럼…
서로를 의지하기 시작한듯 했다.
정상적이진 않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가족은. 보기 드문것 같다.
생각하며 수연은 눈가에 눈물을 닦아냈다.

“엄마는 또 울어요?”

“좋아서…너무…감사해서.”

유신우는 David과 어깨동무를 하고 서서 따뜻하게 미소지었다.

“부러우면 두사람도 하나 낳아서 키워요.”

수연과 서지운은 황당한듯 웃으며 서로를 마주 보았고,

“왜 그렇게 놀라요? 애기 안 낳으려고?”

“아…좀 징그럽다. 이 나이에 갓난애기 동생을 봐줘야 해요?” David이 장난스럽게 말했고,

“애끼 이 녀석아! 니 어머니가 니 만한 나이에 널 키워주신건 왜 몰라?” 유신우가 화를 냈다.

네 사람은 함께 웃었다.
아픔도 슬픔도 이제 먼 기억속으로 흘려 보낸듯.

“저희는…이만 갈께요. David. 아버지 말씀 잘 듣고.”

수연이 웃으며 David을 안아주었다.
David은 언제든, 수연에게 불쑥불쑥 전화를 한다.
저녁을 먹으러 오겠다고.
점심을 사먹기 싫다고.
머리가 아프다고…

유신우는 서지운과 악수를 나눈 후
David을 데리고 지인들에게 인사를 시키러 나갔다.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던 수연과 서지운은 발걸음을 옮겼다.

“콘서트…좋았지…?”  서지운이 수연의 왼쪽 손을 잡으며 물었고.

“응. 꽤.”

서지운이 피식 웃으며 수연을 돌아보는데, 수연은 곰곰히 생각하는 표정으로 한마디 내뱉었다.

“난. 이제 너무 버릇이 나빠졌어.”

“응?”

“네가 항상 피아노를 쳐주니까… 다른 음악은 좋은건지 어떤건지 그냥 그저 그래.”

서지운은 수연을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근데…넌…”
수연이 순간 걱정스런 표정으로 서지운을 돌아보았고…

“공연…하고 싶지 않아…?”

“글쎄. 나도 버릇이 나빠졌어.”

“무슨..?”

“네가 항상 내 음악을 들어주니까 다른 사람들은 듣던지…말던지…”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고 웃었다.
세상에 부러울것이 아무것도 없이 그저 행복하게.

수연은 아파트를 정리하고 서지운의 집으로 살림을 합쳤다.
작은 집이었지만 두 사람의 행복한 신혼을 꾸미기에 충분히 아름다왔다.
거실에 들어서면 그랜드피아노가 보였고,
부엌에서는 늘 고소한 음식냄새가 풍기는

오래전 서지운과 이수연이 한지붕 아래서
설레이는 첫사랑을 키웠던 그 날들처럼
둘은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음악을 사랑하며

하루 하루를 보냈다.

대단한 성공을 꿈꾸지 않으며
세계적인 명성이나
세상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명예보다
그들은 평범한 사랑을 택했다.

"밖에 누구 오셨어?"
 수연이 정원을 정리하다가 피아노앞에서 머리를 쥐어 싸고 있는 서지운에게 물었고,

"어? 난 아무 소리도 못들었는데."

"그래?  집앞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내가 나가 볼께."

"아니야. 내가 갈께. 넌 하던 일 마저 해."
서지운은 붙잡고 있던 노트북을 접고, 밖으로 나갔다.


헐렁한 셔츠에 면바지를 입은 서지운은 널럴한 슬리퍼를 신고 나왔는데,

집앞에는 고급 승용차앞에
정장으로 완벽하게 차려입은 민혜주가 세련되게 화장한 얼굴로 서지운을 마주보았다.

“안녕하세요.”

서지운은 잠시 할말을 잃었는데,

민혜주는 푸웃…하고 웃었다.

“처음 봐요. 교수님…이런 모습.”

서지운도 피식 웃었다.

“잠깐. 들어…올래..?”

“아뇨. 가봐야 해요. 공항 가는 길이예요.”

“그래? 어디 가는데..?”

“저 재벌집 딸이잖아요. 껌 사러 가요, 영국으로.”

서지운은 기가막힌듯 웃었다.

“이거요, 전해드리려고 왔어요. 우리 대학교 총장님이 직접 쓰신거니까
버리지 마세요.” 민혜주는 빳빳한 봉투를 내밀었다.

서지운의 표정이 진지해졌고.

“교수님이 잘 되셔야 저도 마음놓고 열심히 살수 있어요. 소식 보내주시는데로
저도 Oxford에서 코스 시작하기로 했구요.”

서지운이 편지를 받아들었다.

민혜주는 웃으며 돌아섰고,
승용차의 뒷 창문을 똑똑 두드렸다.

창문이 스르륵 내려가면서 못마땅한 표정의 Parker이 보였는데,

서지운이 고개숙여 인사를 하자,
Parker은 찜찜한 표정으로 창문을 도로 쭉 올려버렸다.
“아빠!”
민혜주가 짜증을 부렸고,

Parker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서지운에게 성큼성큼 다가섰다.

“Next time, I’m gonna make sure you become a true starving artist.”
[다음에는. 자네가 정말 굶어죽어가는 아티스트가 되도록 만들어주겠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서지운은 영문을 알수없어 민혜주와 Parker을 번갈아 보았고,

Parker은 다시 차에 올라 타서 문을 탁 하고 닫았다.

“우리 아빠는…사과를 저런식으로 하셔요.
여기에 저와 함께 오셨다는거 자체가… 우리 아빠 최고의 사과라는거…알아주세요.
그리고…
꼭 연락 주셔야 돼요. 저 국제 백수 만들지 마시구요.”

민혜주가 돌아서서 차를 타려는데,

“영국에서…
맛있는 껌 찾으면
하나 부쳐.”

민혜주는 씨익 웃으며 차문을 닫았다.

정문에서 걱정스럽게 서지운을 바라보는 수연에게로 서지운은 다가왔다.

“무슨일이야…?”

“음… 껌 사러 간데네.”

“응?”

서지운은 웃으며 수연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두사람이 소파에 앉아 봉투를 뜯어 보았는데..

총창이 쓴 편지였다.

Dear Professor Suh,

It is with my deepest regrets and most profound apologies that I write this letter.
I understand that there has been a terrible confusion and gross over-statements that abounded in and around our campus regarding your relationship with a particular student.

I apologize, first because the school did not take immediate actions to control the spread of such distorted rumors about our esteemed faculty member, and I further find myself remorseful for the fact that we released you from your duties here at the university due to this bewilderment.

If you would be so kind and generous to accept my apologies, I dare ask you to please sign the enclosed contract to renew your tenureship at this university.  We would be honored to receive any words from you.

Sincerely,
Dan Livingstone


수연은 눈물 �셜� 눈으로 서지운의 팔을 감싸 안았고,
서지운은 조용히 편지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어쩌나…” 수연이 걱정스러운듯 한마디 내뱉었고.

“왜…”

“네가 집에 있는게…난 너무 좋았는데.”

“그럼 집에 있지 뭐.”

수연은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야… 그래도 서백수보다는… 서교수가 나아.”

“유신우씨가..이제 날 뭐라고 놀려먹을까?”

“그러게…”

서지운과 이수연은 서로를 꼭 껴안아주며, 소리나도록 웃었다.

띵동…
하는 벨소리가 울렸고,

“누구지?”

두 사람이 문쪽으로 다가가자,

“아버지!”

서지운이 두 손 가득 보따리를 들은 아버지를 모셨고,
어머니는 웃으시며 서지운을 노려보셨다.

“이 녀석! 또 연습안하고 수연이랑 시시덕 거리고 있구나!”

“아…” 서지운이 수연이를 돌아보았고, 그녀는 웃으며 인사를 했다.

“뭐해? 어서 피아노에 앉지 않고! 내일 콩쿨있는데 준비해야지!”

“아..예…” 서지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그…이 양반 참…” 어머니는 혀를 끌끌 차셨다.

“수연아. 나 시원한 보리차좀 가져다 다오.”
아버지는 피아노 옆에 의자를 끌어다가 앉으시며 옛날 그 때처럼 거리낌없이 부탁하셨다.

수연은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고,
서지운의 어머니는 수연의 어깨를 감싸 부엌쪽으로 끌어주셨다.

“저 양반 시작하면 적어도 한 시간이다. 내비 둬. 지운이가 알아서 할거야.
내 갈비 거리 사왔는데, 우리 그냥 오븐에 구워 먹을까?”

“어머니…” 수연은 따뜻한 어머니의 손길에… 목이 메었다.

“울긴… 왜 울어? 네가 다시 돌아오고 나서…
아버지도 정말 많이 좋아지셨다.
옛날에 맺혔던 한이…풀어지셨나봐…
너를 그냥 보낸걸 평생 마음 아파하셨다고…

정신이 말짱해지실 때마다,
니가 착하고 예쁘게 잘 컷다며… 눈물짓곤 하셔.
지운이 저 팔불출 녀석은 백수가 되가지고서도 좋다고 싱글벙글이고…

우린…
원래 한 식구였어…
이제 다 제대로 된것 같아.
안 그러니, 수연아…?”

수연은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들을만큼
환상적인 쇼팽의 발라드소리가 동네 가득 울려퍼졌고
부엌에서는 고소한 고기 냄새가 풍겼다.
그리고 좀 더 오래
자세히 귀를 기울이면
행복한
웃음 소리도
들을수 있을것이다.

The End

[epilogue:

사랑이라는 말이
너무 흔해진 세상입니다.
아이스크림도 사랑하고 벽에 걸려있는 그림도 사랑하고...
당신을 사랑한다는
진정한 한마디는
꽁꽁 얼어붙은 사람의 마음을 충분히 녹일수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helpless romantic 이니까요.. ㅎㅎㅎ 

왜 이리도 갈수록 힘들어 지는지...ㅎㅎㅎㅎ
음악도 그랬죠. 처음에 반짝 반짝 작은별 쳤을때는 재미있었고,
엘리자를 위하여 칠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Bach이 등장하고, 좀 더 강도깊은 소나타가 나타나고
브람스와 베토벤, 쇼팽이 들락나락하기 시작하자.
오마나 이거 못하겠다.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글쓰는것 역시 갈수록 힘이 드네요. 처음부터 제 자신에게 뭐 믿을만한 구석이 있어서 한것도 아니고,
그저 즐거워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저의 바닥까지 드러나 보이는것 같아 참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Etude 첫부분에서 그랬듯이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도록 더 많이 노력하겠습니다.
잘 써보려고 기교를 부리거나, 쑈를 하지 않고
그냥 가슴으로 느껴지는 이야기들을...있는 그대로 쓸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인내와 한없는 이해심으로 지켜봐 주시는 따뜻하고 친절하신 독자님들께...
정말, 진심으로, 진짜, 완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