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사실 눈코 뜰새 없이 바쁜것은 일년 내내 변함없지만
가을이 되면 그 산만함이 더 유난해진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면 침대에 머리가 닿자마자 코를 골 정도로.
그 누구의 말 대로…나는 일에 미친 사람이다.
이렇게 바쁜일정중에 나를 가장 고달프게 하는것은 일도 아니고, 외로움도 아니다.
바로 승민.
웬수같은 나의 남자친구…
‘유니야 사랑해. 내가 너 사랑하는거 알지.
그런데 너를 못 봐서. 나 죽을꺼 같다.
영혼이 메마르는거…이런거구나…뼈져리게 느끼면서.
밥도 못먹겠고… 잠을 자도 웬종일 피곤하고.
어제는 병원에도 다녀왔다니까.
아무 이상없데…
상사병이래’
에휴…
솔직히…그가 이럴때 마다 조금은 한심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승민은 너무나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나는 그를 그 누구에게도 뺏길수 없다.
David Backham같은 몸매에, 그 야성미.
스타일리쉬한건 또 Justin Timberlake를 능가하고
목소리는 완전 현빈에다가
생긴것은 딱. 한국의 젊은Richard Gere 이랄까?
뭐. 그리 똑똑하다고는 할수 없어도 번듯한 직장 다니고 있고…
하여튼.
승민은 너무너무 멋진 매력 만점의 부잣집 막내아들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바랄수 없는. 그런 남자 친구니까.
“Ms. Han. You’re gonna miss your flight if you don’t leave now!”
“Oh my cow! What am I doing here?”
‘뭐야. 뭐래는데? 너 가봐야 돼?’
“승민아. 나 지금 한국행 비행기 타러가는거 너도 알지?”
‘그럼. 알지.’
“그니까 쫌 만 참고 기다려. 알았지?”
‘그건 그런데… 더 이상은…이렇게 헤어져 지내는거 못하겠다. 너 직장 옮긴다던거 말이야.’
“알았어, 알았어…그 얘기는 우리 만나서 하자. 응?”
‘사랑한다 유니…'
“나도, 빠이 승민.”
‘야! 빠이가 뭐야? 그냥 씨유로 해, 씨유.’
“Ms. Han!”
“그래 그래. 씨유, 씨유.”
전화를 냅다 끊고 짐이 든 가방을 끌고 걷기 시작했다.
“Will you be okay?”
“Of course.”
공항에 도착하니 벌써 줄이 한없이 늘어져 있었으니…어. 이러다 정말 비행기 놓쳐!
급한김에 마지막 수단을 사용했다.
밴 트렁크에 늘 넣고 다니는 윌체어.
지난달 피로로 링거 맞으려고 입원했을때 친구의사한테 끊어둔 handicap 싸인.
흐흐흐.
윌체어를 타고 등장하면 맨 앞자리로 옮겨준다.
그리고 짐이고 뭐고 차별이 달라지는데.
아이고. 이렇게 나쁜짓을 해서…하나님 죄송합니다…
이려면 안돼는지 알지만. 이번 비행기는 놓치면 끝장 이걸랑요…
탑승을 하자마자 곧 비행기가 뜬다고 스튜어디스의 목소리가 들린다.
“휴…. 한숨을 길게 뿜어 쉬고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더니,”
옆에 앉은 남자가 기침을 한다.
돌아보고 빼꼼히 인사하는데,
그는 기침을 힘겹게 멈추고 눈으로만 인사한다.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듯.
참 별꼴이네.
한눈에 보니 숫총각같은데…
이런 미인이 옆에 앉아서 다음 14시간을 보내준다면 그건 영광중에 영광이며
횡재이고 good luck이지...
조금 기분이 이상하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한데, 갑자기 하품이 나온다.
아. 그 동안 밤 새운거 오늘 밤에 확 풀어야지. 기지개를 펴는데,
다시 옆자리. 기침 하기 시작.
“Excuse me…”
그가 스튜어디스를 붙잡아 세운다.”
“네. 승객님. 뭐 도와드릴까요?”
“자리..좀 옮길수 있겠습니까?”
어머어머… 왠...?
“왜요?”
“향수 알레르기가…있어서요.”
“어우…어쩌죠 승객님. 자리가 모두 꽉 찼습니다. 제가 인터폰으로 광고를 해볼께요. 옮겨주실 분이 있는지.”
“어머. 관 두세요. 그렇게까지 할거 없어요. 제가 씻고 오면 되요. 제가.”
“아유…그래주시겠어요?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승객님.”
스튜어디스는 바쁜데 잘 됐다는듯, 냅다 도망치듯 사라졌다.
“미안합니다.” 그는 그제야 좀 찔렸는지 나를 보고 살짝 고개를 숙였다.
“진작 저에게 말씀을 하시죠… 다른 알러지는 없으세요?”
화장실에가서 씻는데, 괜시리 화딱지가 났다. 아휴.
하필이면 왜 저런 사람 옆이야?
내 생전 향수 뿌리고 비누로 박박 문지르긴 처음이네 처음이야…
씻고 자리로 돌아갔는데,
그는 이미 담요를 덮고 눈을 감은 상태였다.
비행기는 이륙 직전이었고.
“어머…저기…”
그가 슬쩍 눈을 뜨고 나를 올려보았고,
“그거…제 담요 아니예요?”
그는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내 의자 앞 주머니에 포장되어 있는 담요를 꺼내주었다.
“아니. 이 색깔이 아니었는데… 이옆에 펴놓은거. 댁이 가져가셨어요?”
“제가 펴 놓은거 거든요. 아까 들어오시기 전에.”
“전… 파란색이 싫은데…”
“죄송합니다. 세탁이 잘못된 이불을 쓰면.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서요.
이건 제가 집에서 가져온거예요.”
어으…별…
참 별나라에서 온 사람인가.
이번엔 세탁 알러지? 짜증나…
“앞으로 갈길이 먼데… 다른 무슨무슨 알러지가 있는지. 미리 말씀해 주시는건…어때요?”
“그것뿐입니다. 향수하고. 이불.”
헛.. 참.
“근데…잘…걸어 다니시네요?”
“네?” 뭔소린지…
“아닙니다.”
그는 한숨을 쉬더니 이불을 덮고 다시 눈을 감았다.
아 앗!
아까 handicap이라고 윌체어 맡겨놓고 부축받아 들어왔지!
내가 윌체어 타고 오는걸 본모양이다. 아이고…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창피했고. 기분이 불쾌했다.
나를 안보는 척했지만 처음 본 순간부터 나에게서 눈을 뗄수가 없었던 게로군.
라고 스스로 위로해가며…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며칠밤을 새우며 일을 해서 나는 몹시 지쳐있었다.
머리를 베개에 대자마자 코를 골며 자는건 나의 트레이드마크 이기도 하다.
이렇게 달게 자는 나를 툭툭…치는 이 싸가지는?
“어…아… 왜..요?”
“죄송합니다 승객님. 너무…코를 크게 고셔서... 주위분들이… 이…물수건을 좀 사용해 보시겠습니까?”
“아..뭐..”
주위를 살펴보니 다들 찌푸리며 나를 훔쳐보고 있었는지,
고개들이 샤샤샥. 돌아가는것만 보였다.
갑자기 옆자리가 신경쓰여 돌아보니,
그는 자는지.
눈 감고 생각을 하는지.
왠지 슬퍼보이는 얼굴이었다.
무슨 아픔을 잊으려고 눈을 감고 있는 사람처럼.
내가 그렇게 코를 골았어도 이 사람은 잘 잤나?
호기심에 자세히 그를 한번 들여다 보는데,
갑자기 그가 눈을 떴다.
괜히 죄지은 사람인양 심장이 떨렸다.
“아휴! 어유! 왜…왜 그러세요! 뭘봐요!”
오히려 내가 호통을 쳤다.
그는 좀 헷갈린 표정으로,
“제가…물어봐야 하는거 아니예요?”
“아니. 그냥. 제가 코를 골았던건지. 혹시 그쪽이 골았는데 다들 저를 의심하신건 아닌지…”
그가 풋..하고 웃었다.
“그쪽이 그렇게 코 고는거…친구들이나 식구들이 말 안해줬어요?”
“…”
잘 아는사람이라면 계속 따지며 나의 정당성을 깨우쳐 주겠지만.
모르는 사람이고. 또 앞으로 만날일도 없는 사람이니 기분나쁘고 뭐고도 없고.
그냥 무시하자. 잊어버려.
나는 담요를 툭툭 털고 다시 몸에 덮었다.
향긋한 냄새가 풍겨왔다.
꿈인가…생시인가…
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레스토랑에서 승민이와 내가 마주앉아…
게다리를 깨고있다..
환상의 와인을 마시며
덜컥!
깜짝놀라 눈을 떠보니,
비행기가 조금 심하게 움직였는지,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곧 난류가 심하니 자리에 앉아있으라는 announcement가 들려왔고.
주위를 살펴보는데, 다들 먹고있었다!
어?
내꺼는…?
스튜어디스를 부르려는데,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려서 그녀들도 모두 자리에 앉아있었다.
꼬르륵…
뱃속에서는 엄마 밥줘…하며 아이들이 울었고…
옆자리로 나도 모르게 곁눈질을 했다.
그는 아주 맛있게 먹고있었다.
비행기 밥이 맛없다 맛없다 하지만.
오늘 메뉴는 내가 그래도 젤 좋아하는 비빔밥이다. 헉…
그가 나를 힐끔 보다가 피식 웃는다.
“뭐가…. 웃기신가요…?”
“배 고프시죠?”
“네?”
“이거 드세요.”
그가 포장되있는 비빔밥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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