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떠보니.
사방이 어두웠다.
칙칙한 냄새가 코를 찔렀는데,
손과 발이 전혀 움직여 지지 않았다.
내가…많이 아프구나… 사경을 헤맬정도로?
승민이는 어디있지?
내 곁에 있겠다고 했는데...
여기는 뭐야… 혹시…
설마?
음…
신음하는 소리가 들리는것 같아 돌아보니.
아이고…!
“꺄아아아악!”
내가 소리를 지르자,
그는 당황스런 표정으로 안타깝게 두 눈을 감았고.
“뭐야 이거. 또 당신 이예요?”
그는 식은 땀을 흘리며 내 쪽을 돌아보고 길게 숨을 몰아 쉬었다.
“정신이…들어요? 아픈데는 없구요?”
“와…이렇게 끈질긴 꿈은 처음이예요. 내가 꿈이라는걸 알면서도…못 깨어나는건.
분명 악몽인가봐…나 어떻해…”
그렇게 말하면서 그를 흩어보니 그는 온통 꽁꽁 묶여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 팔다리가 움직여 지지 않는것도. 나 역시 온통 묶여져 있기 때문이었다.
“이건 또 뭐예요? 무슨 상황이예요?”
“글쎄요.”
하얀 셔츠에 오른쪽 어깨가 빨간 피색깔로 물들어져 있었고,
생각해보니 전에 본 어깨의 상처가 더 심해진것 같았다.
참. 별별 디테일이 다 이어지는 꿈이 다 있네…
“아… 이제 지겹다. 두번까지는 재밌었는데… 이제 이꿈. 싫어질라고 해…정말…겁이 나려고 해”
혼잣말로 중얼거리는데.
그의 희미한 신음소리가 이어졌다.
무심하게 그를 돌아보았다. 아무리 꿈이라도 사람이 다쳤는데…
“괜찮아요?”
그가 찡그리며 나를 보았고.
“우와!”
나는 갑자기 푸하하 하고 웃었다.
“꿈이야! 꿈이 맞아!” 손이 자유로왔다면 박수를 쳤을텐데…
그는 정말 기가 막히다는듯 할말을 잃은듯 했다.
“사실이라면. 아까 비행기에서 가디건을 입었어야 했는데.
지금 하얀 셔츠 입고있네요? 그죠? 그니까 옷입은 순서가 바뀐거예요.
이야…내가 Inception 영화를 봐 놓길 잘했다. 정말.”
“실망시켜드려서 미안한데요, 아까 떨어져 있는거. 주워 입은거예요. 가디건이 찢어져서.”
갑자기 문이 확 열리며,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보였다.
응?
추장인가?
깃털로 잔뜩 머리에 장식을 한 원주민 같은 사람이 나타났다.
“xhowelig ghielae gheiopwefleihg ehisl”
어쩌구 저쩌구 막…말을 하다가 내 팔을 확 잡아 당기는데,
그 사람이 글쎄 내 명품백을 어깨에 책가방두르듯 메고 있었다.
“어! 이봐요! 내 가방!”
그들도 이상하다는듯 고개를 갸우뚱했고.
“어머어머…이 백이 어떤 백인데…아유…참 스타일 구겨지게…내가 하도 아끼니까 꿈에까지 나오는거야?”
꽝.
“아야!”
눈물이 핑 돌았다. 머리가 어질어질 할 정도로 아팠다.
뭐지 이건?
앞에 서있는 원주민이 내 머리를 막대기로 친듯했다.
그 사람은 다시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쉿. 입술로 자기 손가락을 가져댔다.
이 표시는 세계 만국인들이 모두 다 하는건가봐.. 푸아 웃고싶었는데,…꿈에라도 맞기는 싫어 꿀꺽 집어 삼켰다.
그들이 한참을 나를 이상하게 보다가,
머리가 돈사람인가? 하는 눈으로 나를 보더니 내 손과 발에 묶은 줄을 풀어주고는,
문을 쾅! 닫고 나갔다.
어?
왜 풀어줬지? 정신이 멍해져 있다가, 옆에 묶여있는 최우진을 돌아보며
털썩 주저 앉았다.
“이상하다…꿈에서 맞는것도 이렇게 진짜…아프나?”
머리를 긁적이는데…
최우진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순간 고통스러워 보이는 그를 잠시 보다가,
어쨌든 그에게로 다가가 밧줄을 풀어주려 애쓰는데,
잘 되질 않았다. 왜…꿈꿀때 아무리 뛰고 뛰어도 한발짝도 안 움직이듯이…
“꿈이라면…”
그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잠시 숨을 고르다가.
“현실이라고 믿는게 정상 아닌가요.”
“네?”
“깊은 잠에 빠졌다면. 헤어나올 생각도 할수 없는게…꿈의 현실 아니냐구요?”
“에이. 아니예요. 영화에서 보니까 안그러던데? 아유. 이게 왜 이렇게 안돼?”
순간 밧줄을 세개 잡아 당겼는데, 그가 악… 하고 작은 신음소리를 냈다.
“어. 괜찮아요? 미안해요.”
그는 대책없다는 표정으로
말없이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왜요? 제 얼굴에 뭐가 뭍었나요?”
“아직도… 꿈인것 같아요?”
“현실일리가 없어요. 전 분명히 비행기에서 내렸고. 승민이를 만났고…병원에서 잠들었는데…?”
“아까…깨우기 싫다고 한말. 취소해야 겠네요.”
그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갑자기 내 앞으로 성큼 다가왔고.
어?
설마 나를 꼬집으려고?
그의 눈동자 안에 내 모습이 보였다.
나는 멍한 표정으로 그를 보고있었고,
순간
코앞에서 그의 숨결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의 입술과
나의 입술이.
입술이…
어…
어라라….
이
상
하
다…..
가슴이 심하게 뛰었다.
정말 너무 진짜 같아서.
너무 이상해서…
머리를 갸우뚱하곤,
그를 다시 바라보았다.
현실이라면 생판 모르는 나에게 키스한 이 남자를 한대 쳐 줘야 옳으련만…
오히려 황홀하게 느껴졌던 이 순간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미안해요. 여자를 때릴수도 없고.
놀라게 해주려면…어쩔수 없었어요.
이제부터 우리 함께 살아남으려면, 정신을 차려야 해요. 부탁이예요.”
멍해졌다.
내 입술을 떨리는 손으로 더듬어 보았다.
아직도 그의 숨결이 느껴지는것 같았다.
“차라리…나를 꼬집지…”
“우선 여기를 무사히 빠져 나가서. 구조팀을 만나도록 방법을 찾아봐야 해요. 아시겠어요?”
“그럴리가…없는데…”
“충격이 너무커서 그러는지…정신을 자꾸 잃고 있어요. 이제는 정신 놓지말고 나를 좀 똑바로 봐요.”
“정말 꿈이 아니예요?”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아직. 못 믿겠어요.”
그는 한숨을 쉬더니, 고통스러운듯 어깨를 붙잡았다.
“비행기가 추락했을때부터. 지금까지… 이틀정도의 시간이 흘렀어요.
한유니씨는 다행히 다친곳은 없는것 같은데… 충격이 심했던것 같아요.”
그럼…
이게 진짜야?
정말 우리 둘만 남은거야?
나는 이제…
엉엉…
하고 눈물이 터져나왔다.
갑자기 너무 겁이나고 믿을수가 없어서
눈물이 철철 흘러나왔다.
“엄마… 승민아…나 어떻해…” 어린애처럼 엉엉 우는데…
그는 다시 내 앞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나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으로 끌어안았다.
따뜻한 품안에 그의 심장박동이 느껴졌다.
“너무…걱정하지 말아요…그래도…혼자는 아니니까...”
머리가 띵하며 아파왔다.
또다시
문이 쾅! 하고 열렸다.
“xoiwenglhi ghielisn!”
그들이 다시 소리를 질렀다.
잠시 갸우뚱 하더니,
“You. Speak. English?”
하고 물었다.
“YES!”
너무 반가와서 냅다 소리질렀고,
“You wanna die?”
응?
“NO.”
“You. Spy.”
“No.”
“You lie?”
“No…”
영어가 거의 필요없는 수준의 대화가 이어졌고…
“Yes. You Lie!”
“No! No! We are stranded here! Our airplane crashed. You know? SKY? Fall DOWN?”
순간 그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자기들 끼리 뭐라뭐라 주고받더니. “Sky. Fall down.” 을 몇번 반복 하더니…
“Spy! Spy from Sky!”
하며 얼굴이 새파래져서 소리를 질렀다.
“아니! 아니라니까요! No! We are not spies!”
갑자기 그들이 서둘러 문을 닫고 사라졌고,
둥둥 거리며 북치던 소리가 뚝.
끊어졌다.
최우진과 나는 말없이 서로를 마주보았고.
“어떻게…된거죠?” 나는 덜덜 떨기 시작하는데,
최우진은 급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얘기가 잘… 안됀것 같죠?”
하며 지붕위를 자세히 살펴보는듯 하더니,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해요?”
그는 잠시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내 어깨위로… 올라설수 있겠어요?”
“에?”
“서두르는게 좋을것 같은데..” 하며 그는 나를 덥썩 잡아 끌어 당겼다.
“자. 올라가요.”
“어디를요?”
“내 어깨를 밟고 올라가요. 지붕 위에. 구멍이 뚫려있는거 보이죠?”
“어깨. 다쳤잖아요.”
“어서요!”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갑자기 철커덕. 문이 잠기는듯 했다.
“어?”
정신없이 그가 나를 잡아 끄는데로 몸을 맡겼고,
그의 어깨를 타고 벽을 붙잡은 채 일어서서
그가 올려주는데로 지붕위 구멍을 찾아냈다.
“들어갈수 있겠어요?”
“구멍이…너무 작아요. 전 들어갈수 있을것 같은데…최우진씨는…”
하며 그를 내려다 보는순간,
그는 나를 번쩍 밀어 올렸다.
“빨리 올라가요. 그리고, 뛰어요.”
우선은 그가 시키는데로 구멍을 통해 빠져나왔다.
하지만 의리없이 혼자갈순 없지 않은가.
다시 그를 보려고 고개를 디미는데,
안에서 웅성웅성 소리가 들리면서 문이 덜컹! 열리는 소리와
함성소리같은것이 들렸다.
구멍으로 내려다 보니,
몇몇은 내가 애써 풀어놓은 밧줄로 최우진을 다시 묶었고,
또 다른 몇명은 내가 없어진걸 보고 두리번거리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어머. 어떻해.
최우진은?
나도 모르게 지붕아래로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왔고,
무의식중에 죽기살기로 뛰기 시작했다.
악!
한참을 뛰는데 갑자기 발에 뭔가 걸려 넘어졌다.
숨을 고르며 헐떡이다가 생각해보니.
최우진… 그 사람은?
내가 지금 혼자 살아서 뭘 어쩐다고?
그사람은 알지도 못하는 날 살리려고 끝까지 도와줬는데.
어떻하지?
죽었을까?
너무 미안하고 무서워서.
주위를 살펴보는데,
기적같은 일이었다.
바로 내 발앞에.
권총이 보였다.
비행기에서 떨어진것일까.
떨리는 손으로 총을 붙잡았다.
생전 처음 잡아보는 총이었는데,
생각보다 무겁지도, 겁나지도 않았다.
나는 두 눈을 꼭 감고,
다시 북소리가 둥둥 나는 쪽으로 뛰어갔다.
불길이 훨훨 타오르고, 가운데 기둥에 최우진이 묶여 있는 모습이 연기사이로 희미하게 보였다.
“STOP!!!”
혼자 살아서 뭐해. 어차피 이렇게 될거라면…
두 눈을 꼭 감고.
에라 모르겠다, 소리를 꽥 질러버렸다.
모든 사람들의 눈길이 나를 향하는 순간.
그렇지. 이럴때는 하늘을 향해 멋지게 발포를 해야지.
겁을 줘야 하니까.
철컥.
총을 하늘로 겨누고 쐈는데…
쐈는데…?
어?
클릭. 클릭.
모두 얼어서 나를 쳐다보는데,
총을 자세히 살펴보니.
어머.
이게 왠일이야.
어쩐지 총이 가볍더라니.
자세히 보니 플라스틱으로 만들은 장난감인 모양이었다.
아니. 여기 어떻게 이런 장난감이 있지?
멍하니 총과 사람들을 번갈아 보는데,
맨 앞에 높은 새털을 머리에 꽃고 서있던 아저씨가
큭…하며 웃기 시작했다.
그 사람이 웃자, 주위사람들도 조금씩 킥킥 거리며 웃었고.
그 아저씨가 내쪽으로 다가오더니,
“You. A good friend.”
눈이 똥그래져서 그 사람을 쳐다보기만 했다.
이제 죽는건가….
“Your friend save you. You save him.”
그는 왠지 의미심장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고.
“owerfgehiopwg hiopgewpoihg wheioap”
어쩌구 저쩌구 뭔가를 시키는듯 하더니,
곧 몇몇이 최우진을 풀어주었고,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헉!
내 눈을 천으로 가렸다.
볼수는 없었지만 최우진의 눈도 가리우는것 같았고,
우리를 밧줄로 함께 꽁꽁 묶더니,
무슨 덜그럭거리는 기구에 태웠고,
곧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그렇게 덜컥거렸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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