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쪽은 뭘 찾았는데 그렇게 좋아해요?”

“비타민이요!”
너무좋아서 깔깔거리며 웃고싶었다.

 “이거라도 먹고있으면, 배는 고파도 죽진 않을거 아니예요?”

그는 못말리겠다는듯 웃었고.

“거긴 뭐가 들었어요?”

“한유니씨…좋은일 많이 하고 살았나봐요?”

“뭔데요? 좋은거예요?”

그는 박스 안에 고이 간직되어 있는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비상 연락 장치인것 같아요.”

“그럼 우리 이제! 살수 있는거예요?”

“한번 해 봐야 알겠지만…여기서 이걸 찾았다는건…기적이죠.”

최우진은 달빛아래에서 설명서를 읽으려 애썼다.
아무리 달이 밝다지만 깨알같은 글씨를 읽기에는 너무나 어두웠다.

“아무래도… 안 보이네요.”

“그래요. 뭐. 해 뜰때까지 기다리면 돼죠!”

그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자. 이제 어디서 이 밤을 지세우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의 표정을 보니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있는것이 분명했다.

“잠시 기다려 봐요.”

최우진은 아까부터 봐둔것 이었는지 장판같은 나무 판하나와
주위에 떨어져 있는 나무조각들을 하나 하나 주워 모았다.
나도 눈치만 보다가 거들기 시작했고,

그는 여기 저기를 살피며 할수있는데로 여러가지 물건들을 주워 모았다.

점점 날씨가 쌀쌀해졌다.
보따리들을 잔뜩 싸입고 앉았는데도 자꾸 더 추워졌고,
최우진은 그래도 움막 비슷한 것을 짓느라 여념 없었다.
나는 혹시나 떨어져 있는 음식이 없을까… 어둠속을 뒤지고 다녔다.
얼마나 지났을까…

“다 됐어요.”

그의 목소리를 따라 다가가 보니,
그럴싸한 텐트집이 완성되어 있었다.
작았지만 꽤 튼튼해 보였고, 기초나 완성된 작품이 보통사람 솜씨가 아니었다.

“와…. 대단한데요? 재료도 없이 이 정도면.”

“재료는 많네요. 도구가 없어서 그렇지...”

그가 웃으며 천막을 올려주어 안으로 들어갔다.

“휴…..”  그래도 훨씬 따뜻했다.
온 몸이 나른해지는걸 느꼈고. 그때가 되니 정말 배가 고팠다.

“어떻게…이렇게 잘 지어요? 직업이…뭔데요?”

“카페에서 일한다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카페에서 무슨 일을 하는데요?”

“뭐…커피도 만들고. 청소도 하고?”

그는 무척이나 지친 표정으로 내 옆에 쓰러지듯 앉았고.

“다친건 괜…찮아요? 어깨는…?”

“나아지겠죠.”

“잘은 모르지만… 상처난걸 그냥 방치해 두면…큰일 나는거 아니예요?”

“큰일은 벌써 났죠?”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눈을 감았다.

잠이 들었나?..싶었는데 나는 잠이 오질 않았다.
너무 엄청난 사건들을 겪어서 그런지. Adrenalin이 넘쳐 흐르는지.
잠은 안오고 할일은 없고 혼자 나가기는 무섭고, 아주 갑갑해서 죽을것 같았다.

“아이고…이럴때 뭘해야 하나…
기도라도… 그래. 기도라도 해야지. 무사히 살아날수 있도록…
살려주세요… 꼭 살려주시면 교회도 열심히 나가고.
좋은일도 많이하고… 승민이 한테도 더 잘해줄께요.
우리 엄마…우리 외로운 엄마도..”

엄마 생각에 혼자 중얼거리다가 코끝이 빨개지면서 눈물이 질질 흘러내렸다.얼마나 걱정을 하셨을까. 하나밖에 없는 딸이 비행기에서 떨어져서 죽었다고 얼마나 슬퍼하고 계실까..
쭈그리고 앉아 훌쩍거리는데,

“아버지는…안 계시나…?”
자는줄 알았던 그의 고요한 목소리가 들렸다.

“미안해요… 깨셨어요?”
“잠이 안와요?”

“네. 미치겠어요.”

“살려주면 무슨 좋은일을 많이 하시려구요…?”

“뭐든지…좋은일이라면…봉사활동도 하고. 불우이웃돕기 성금도 하고. 불쌍한 사람 보면 물한잔이라도 대접하고…무엇보다 내 생각보다 남 생각 먼저 하고…등등… 또 뭐가 있을까요?”

“전 좋은일을 별로 안해봐서…모르겠는데요.”

“왜요? 저도 살려주셨잖아요.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 자신보다 남을 배려한다는건… 아무나 할수있는 일이 아니거든요?”

“죽기전에 좋은일, 딱 하나는 하고 싶어서 그랬어요.”

“사람의 천성…그리고 근성이라는건 가장 절박할때 나오는거예요, 물론 제가 다 안다는건 아니지만….근데… 좋은일을 별로 안 해봤다는건. 무슨 뜻이예요?”

그가 잠시 말없이 나를 돌아보았다.

“괜찮아요. 얘기 해봐요. 이 상황에 내가 뭐 소문을 낼것도 아니고.
우리 이 섬에서 나눈 얘기는 평생 비밀로 지키는거예요. 약속.”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의 힘없이 웃는 모습이 아름다왔다.
아니. 그게 아니고, 그냥. 조명이 워낙 어두워서 잘생겨 보였다는 거지.

“남자친구가. 엄친아라면서요?”
그가 화제를 돌렸다.

“아…뭐. 제가 그렇다는게 아니고 제 친구들이…”

“사랑해요?”

어? 왜 당황스럽지?

“네? 뭐라구요?”

“사랑…하냐구요.”

“아. 뭐… 그럼요. 최우진씨 여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예요?”

“왜 말을 돌리고 이러지? 사랑한다고. 왜 말 못해요?”

“글쎄요… 사랑…하죠. 그러니까 사귀죠.”

그는 피식 웃었다.

“그러는 최우진씨는…여자친구를 사랑하세요?”

“아뇨.”

“네? 사랑 안해요?”

“전혀.”

“어머.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아까 얘기했잖아요. 저 별로 착한 사람 아니라고.”

“근데 왜 사귀어요?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귀찮아서요. 걔라도 안 사귀면 다른 애들이 또 따라다니고…”

“어머머…참 특이하시네요…완전 왕자병이네…”

그럴줄 알았어. 저렇게 생겨서 바람둥이가 아니라면 오히려 거짓말 이겠지.

그가 소리내어 웃다가, 갑자기 자리를 움직이면서 길게 신음소리 비슷한 한숨을 몰아 쉬었다.

“괜찮아요? 많이…아파요? 어쩌죠… 어서 날이 밝아야 약을 좀 찾아볼텐데…”

“벌 받는 거예요. 죄가 많아서.”

“무슨…죄를 그렇게 많이 지셨는데요?”

“우리…. 선이를 너무 많이 울려서…” 그가 혼잣말하듯이...신음하듯이 가늘게 내뱉었다.

“선이가…누구예요…?” 그러나 귀가 너무나 밝은 나는...

그가 잠시 나를 마주 보았다. 하긴 내가 이렇게 꼬치꼬치 물을만한 상대는 아니지.. 하지만 죽느냐 사느냐를 함께 지내온 이 마당에 숨길건 또 뭐야.

“내… 여자요.”

“여자친구 이름이예요?”

“여자친구 말고. 내 여자요.”

“네? 그건 또 뭐예요?”

"사랑하는 사람."

"근데 왜 여자친구는 안 사랑해요? 혹시. 선이란 사람이 배신…때렸어요?”

“그렇죠. 배신도 그런 배신이 없죠.”

“베프한테로 간거예요?”

눈이 똘망똘망 해져서 그를 똑바로 바라보고있는 나를 보더니, 
피곤한지, 그는 눈을 슬쩍 비볐다. 

“춥지…않아요?”

“네? 아니…아…사실은 조금… 바닷가라 그런가…쌀쌀하네요…”

말을 더듬어 대며 왠지 붉어지는 내 얼굴을 가리려 애썼다. 뭐 어두워서 보이지도 않을테지만.

“그래서 잠이 안오는것 같죠…?”

“그런것…같죠…?”

그는 피식 웃으며,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딴 생각하려는거 아니니까. 걱정 말아요.”

“어머. 그래도 이러시면 안돼죠! 승민이가…”

“아… 승민이…” 그가 자신의 팔을 멀찌감치 치웠다.
“죄송합니다.”

그의 체온이 잠시 느껴졌다가 떨어져 나가니 더더욱 몸이 오들오들 떨리는것 같았다.

“뭐…최우진씨가 추우면…이리로 오셔도 돼구요.”

“전 별로 안추운데요.”

어쩜. 바람둥이가 얄밉기 까지 하네.
내가 여기서 얼어 죽을지언정!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결국..
“뭐…그럼…제가 그쪽으로 가도 돼구요.”
하며 그의 품안으로 기어들어 가고 말았다.

“승민씨에게는…나중에 저 대신 사과 전해 주세요.
한유니씨가..너무 떨고 있어서…잠시 안아드렸다구요.”

“뭐…그러시던지요…”

그의 품안은…왠지 엄마 품같이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얼마나 지났는지…

따가운 햇빛에 온 몸이 감싸지는듯한 느낌을 받아 일어났는데,

그 사람은 이미 내 옆에 없었다.
서둘러 밖으로 나와보니,
그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네… 그런것 같습니다. 현재 생존자는 저하고 한유니씨. 둘뿐입니다.
글쎄요. 길어봐야…이…삼일정도…네. 없습니다. 아직…아무것도..”

그의 옆에 조용히 앉아 귀를 기울였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대한 안전을 기해주십시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어쩌구 저쩌구…”

최우진이 한숨을 쉬며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저도! 한통 쓰면 안돼요? 울 엄마랑 승민이한테..”

그가 좀 안타까운 표정으로 미소지으며 전화를 건내주었다.

“다른 통화는…안 돼요. 비상통화만 딱 한번 겨우 할수 있게 되어있어요.”

“네? 딱 한번이요? 그럼. 통화는 잘 하신거예요?”

“최대한 설명을 하긴 했는데… 여기가 어딘지… 알수가 있어야죠.”
“그럼 어떻게 해요? 우리. 먹을거도 없고…”

바로 그 순간부터 머리속에는 온통 먹을것 생각으로 가득찼다.

떡뽂이. 치즈케잌. 아이스크림. 순대. 라면. 초콜렛,
아니. 평소에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골뱅이 무침, 호박죽이라도 좋다.

머리속에서 빙빙도는 그 수많은 음식들…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먹어요.”

어?
눈이 동그래졌다.
뭐냐고. 어디서 낫냐고. 묻지도 않고 무조건 집어 삼켰다.
먹고나니
비빔밥 이었던것 같다.

다 먹어 치울때쯤. 갑자기 최우진의 얼굴이 보였다.

“근데…최우진씨는 왜 안 먹어요…?”

“또 찾아보면 돼요.”

“으앙… 어떻해요. 미안해서…나. 너무 배고파서 괴물이 되어버렸나봐요.”

“몰랐어요? 지금 눈이 이..만해 져가지구…아흐.. 무시워라.”
그가 그렇게 말하며 소리내어 웃었다.
이 사람은…참 잘 웃는다. 성격이 소탈한건가… 바람둥이 소질을 다분히 타고나셨구만.

“내가…찾아줄께요. 이거 먹고 힘 났으니까…내가 찾아 줄께요. 쫌 만 기다려요. 알았죠?”
벌떡 일어나서 사방으로 헤매기 시작했다.

“어디가요?”
하는 그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비빔밥을 찾아 삼만리…
창피해서 더 빠르게 움직였다. 꼭 찾아주겠다는 집념으로.
헥헥 거리며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벌써 날이 어둑어둑 해지고 있었다.

어!
뭔가 반짝거리는게 보였다.
저건. 분명 비행기에서 떨어진거야!

뛰어가서 덥썩 잡았는데.
흠…
이게 뭐지?
하고 둘러 보던 순간.

크흐흥…
하는 코 푸는소리? 비슷한 소리가 들려서 주위를 돌아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뭐지? 사람인가?

다시 반짝거리던 물건을 자세히 한번 들여다 보니,
깨진 거울 조각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거울 조각안에 반사되어 비췬것은
내 얼굴뿐이 아니라
테레비젼에서만 보던 레오파드? 그…호랑이 비슷한..
바로…
내…
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