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야! 유니야!”

“오빠…”

뿌연 연기가 시야에 들어왔다.
정신이 몹시 맑아졌고,
그 대신에 온몸이 바위에 눌려있는것처럼 아프고 쑤셔왔다.

최우진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잘 보이지는 않지만 희미하게 사람들이 보인다!
우리는!
그 섬에서 드디어 구출 받은건가!

그런데 왜 그 과정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거지?

차례대로 의사, 간호사, 엄마, 승민, 친척에 사촌친척까지 와서 눈물을 훔치고,
훌쩍이며 다행이예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며 서로 껴안고 난리다.
그렇겠지…내가 기적같이 비행기 추락사고에서 살아나고.
무인도에서 구출되고…
그 꿈같은 이야기들을 다 해주면 모두 놀라 자빠질거야.
영화를 만들자고 그럴지도 모르겠군.
그런데
이상하다.
어제와 오늘 사이 대체 무슨일이 있었던 건지.
말이 나오지 않는다.
머리가 터질것 같이 아프고 몸을 움직일수가 없다.

웅성웅성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여기가…어디야…” 하며 옹알거리는 내 목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것 같다.

“유니야. 고마와! 정말. 정말 고마와!!”
엄마가 울고 계시다.

“엄마…” 내 목에서 개미기어가는 소리가 겨우 삐져 나온다.

엄마는 훌쩍거리시며 내 손을 꼭 잡으신다.

“그 사람은…?” 온 힘을 다해 한마디 더…

“응? 누구? 승민이 저기 있잖아.”

엄마가 멍한 표정을 짓고 잠시 무척 걱정스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최…우진…씨”

“뭐? 누구?”

그때 의사 한분이 다가오더니 내 눈알을 자세히 살피고, 이곳 저곳을 체크했다.

“몇가지 검사를 좀 해 봅시다.”

“왜요? 괜찮은건가요?” 엄마의 걱정 가득한 목소리.

“네. 말씀도 잘 하시는걸 보니. 모든것이 정상인듯 합니다.. 의식을 잃은상태에서 일주일을 보냈으니. 형식상 검사를 해보자는 겁니다. 한유니씨. 여기가 어딘지 아시겠습니까?”

“…한국이요?”

의사는 껄껄대고 웃었다. “네. 맞습니다. 그렇죠. 기분은 어떠세요?”

“제가… 구출된게…언제죠…?”

“구…출이요?”
의사도 엄마같이 멍한 표정이다.

“비행기 사고…” 뭔가 이상해서 나도 흐지부렸다.

“아 네. 원인은 아직 모르지만 비행기 안에서 바이러스를 옮으신것 같아요. 굉장히 드문 일이긴 하지만 승객 바이러스라는 병을 지금 연구중에 있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몇달동안… 섬에서 기다렸는데.”

“네?”

사람들이 서로 서로를 마주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왜들 저러지? 그 기적같고 기가막힌 이야기를 지금쯤은 TV나 뉴스에서 방송을 했을법도 한데?

“한유니씨. 승차하셨던 비행기는… 서울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한유니씨는 저기 계시는 이승민씨가 병원에 입원시키셨구요. 기억…안 나십니까?”

“기억안나? 너 한국 도착한날…내가 병원에 데려왔잖아. 위험한 바이러스 전염으로 입원해서…의식을 잃었다가 너 일주일만에 깨어난거야!” 승민이가 다가와서 내 손을 잡았다.

“일주일?…병원…?”

그래…
병원…

그랬었지…
기억이 난다.
승민이가 나를 업고…
병원에 입원했고.
그때 잠이 들었던 기억이…
이럴수가…있나?
정말…
그럼.
이런 황당한...
허무한…
아니…아닌가? 잘된건가?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오랜시간동안 의식을 잃으시면. 흔히 있을수 있는 일입니다.
긴…꿈을 꾸셨을수도 있구요.”

꿈이라고…?

“여기있는 분들… 모두 알아보실수 있으시겠습니까?”

“…네…”

“널…먼저 보내는줄 알았어…”
승민의 눈가에 아직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울지마…승민아.”

“일주일동안…정말 지옥같은 시간이었어. 니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온것만 같아…”

“…내가 걸린 병이 뭔데?”
“아주 희귀한 바이러스 라는데, 가끔 비행기로 여행을 하는 승객들이 걸리는 수가 있데. 의학적으로 아직 알려진바가 별로 없다고 해. 이제 완쾌되어 가고 있으니, 걱정은 안해도 된데.”

한숨을 길게 뿜어 쉬었다.

최우진과의 모든일이… 꿈이라는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런데 부인할수 없는것은 느낌이다.
내가 깨어있고 이게 분명 현실이라는 느낌.
이 느낌은 최우진과 함께 있을때 막막했던 그 기분과는 천지차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지금 깨어있다는걸
그 누구에게 묻지 않아도 알고있다.
꿈에서 그랬던것처럼…누가 꼬집어 주지 않아도…

그래도 몇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그것을 완전히 인정할수 있었다.
꿈이었다고.
나는 비행기에서 내려 승민이와 병원에 입원한 후.
의식을 잃고 일주일만에 깨어났다고.

방문시간이 지나 모두가 다 집으로 가고
엄마가 죽을 떠 먹이시며 내 손을 잡으셨다.
“그런데 너 아까..깨어났을때… 누구 찾은거야?”

힘없이 엄마를 바라보았다. 그 사람은 그냥 환상이었던 건가?
믿을수가 없다.

“최우진이라고…하지 않았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엄마. 그 사람 알아? 어떻게?”

“그 비행기 탄 사람중에 너하고 또 한 사람. 두 사람은 이곳에 입원했고,
다른 다섯명은 마일드한 케이스라서 이미 퇴원했어. 그 다른 사람 이름이 최우진이라던데…” 

“그 사람도. 여기 입원했다고?”

“그래. 그 사람도 너랑 증상이 똑같아서.. 근데 아직 의식을 회복 못했다고… 그 사람 어머님이 너 깨난거 보고 얼마나 부러워 하시던지…”

“어디야. 그 사람 방?”

“응? 왜?”

“나. 좀 일으켜 줘.”

“왜그래? 유니야?”

“일으켜 줘 엄마.”

엄마의 부축을 받고 걷기엔 아직 역부족이었다.
쓰러질라 하는 찰라에 간호사 한분이 뛰어와서 함께 거들어 주었고,

“슬슬 움직이셔도 좋아요. 특별히 다치신곳은 없으니까 조금씩 운동삼아 움직여 보세요.
근데 좀 많이 어지러우실 거예요.”  간호사는 당황하는 엄마를 진정시켰고.

간호사는 엄마의 설명을 듣고 우리를 최우진의 방으로 인도했다.

“저기요…근데…”

“네?”

“최우진…이란 사람은…어떤가요?”

“아.. 이방에 환자분이요?”

“네. 위험한 상태인가요?”

“글쎄요. 상처는 그리 심하지 않은데. 의식을 찾는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예요.”

“들어가 봐도…돼요?”

“잘 아시는 분이세요?”

“아…네…그냥… 비행기에서…좀 친해졌거든요”

간호사는 잠시 생각하는듯 하더니 승낙했다.

엄마와 간호사의 부축을 받고 들어가 보니.

최우진이 창백한 얼굴로 누워있었다.
그의 어깨에 붕대가 감겨있었고,
다리하나도 치료중인듯 붕대로 싸여있었다.

“이 사람은…왜…다쳤나요?”
다친부위가 똑같은것이 너무너무 이상해서 물어볼수 밖에 없었는데.

“공항에서.
쓰러지시면서 계단아래로 떨어지셨거든요…”
간호사는 안타까운 눈초리로 최우진을 바라보며, 그의 힘아리 없는 손을 가슴위로 올려주었다.

“많이 친해지셨어요?” 간호사가 친절하게 물었는데.

친해졌냐구요?
나와 함께 죽었다 살아난 사람이예요.
나를 몇번이나 살려주고,
깊은 이야기도 나누고. 같이 배 고파하고 함께 아파하고…염려해주고.
잡혀가고, 도망치고…
추우면 안아주고…
아내같이 지켜주고 챙겨준…
이 사람이 없었다면.

내가 무슨소리를 하는거야. 꿈이었지… 그러니까 나는 이 사람을 몰라.
나와 그저 비행기에서 몇마디 주고 받았을 뿐인데.

그런데 왜…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는지.
꿈에서와 똑같이 상처난 그의 어깨와. 부러진 그의 다리와.
창백한 그의 안색이 왜 내 가슴을 그리 쓰리게 했는지…
간호사가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얼른 눈물을 닦아냈다.

“그 바이러스…뇌에 피해를 주는 바이러스 인가요?”

“네? 그건…아닐텐데요. 한유니씨 MRI는 모두 정상으로 나왔구요.”

“제가 제 정신이 아닌것 같아요.”

간호사는 미소 지으며,
“처음 의식을 찾으신 상태에서는 누구나 적응기간이 필요합니다.
워낙 정체를 알수없는 바이러스였기 때문에, 이렇게 다시 건강하게 회복하신것, 기적이라고 보셔도 좋을텐데요.
돌아가셨다가 살아 돌아오신것 처럼요.”


기적이라고.
죽었다가 살아 돌아온…

“그럼 이 사람은… 돌아올 확률이 어떻게 되나요?”

“그건…”

간호사가 잠시 말을 잊지 못했다.

“이분은… 바이러스 뿐이 아니라 넘어지시면서 다치셨기때문에
아직 정확한 상태를 판단하기는 힘들것 같습니다.”

갑자기 다리가 후들거렸다.
넘어질것 같이.
간호사가 급하게 나를 부축했고.

“죄송합니다. 지금 절대 안정하셔야 하는데.”

말없이 간호사를 바라보는 내 눈에 또 눈물이 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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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도 멀쩡했는데도
아직 바이러스의 감염이 어찌 진행되는지 모른다며
며칠이 지나도록 병원에서는 나를 퇴원시켜주지 않았다.
그리고
최우진은
깨어나지 않았다.

잠이 들때마다,
혹시나 그 꿈을 다시 꾸지는 않을까…
불안 반 기대 반이었다.

그러나 다시는 그 꿈을 꾸지 않았다.

“유니야. 오늘은 기분이 좀 어때?”  승민이는 내가 좋아하는 호두과자를 한박스사서 내 입에 넣어주며 물었다.

“응. 좋아. 기분 좋아. 나 언제 퇴원해도 된데?”

“오늘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이틀후에 검사결과 정상으로 나오면. 퇴원해도 된데.”

힘없이 미소지었다.

“와…간만에 너 웃는거 보니까 내가 아주 살것같다.”

“승민아. 넌... 꿈을 연속으로 꿔 본적 있니?”

“어, 많어. 연속으로 꿀때도 있고. 꾼꿈을 또 꿀때도 있고.
그리고 꿈에서만 나오는 장소도 있는데, 현실에는 없는 세계지만, 내 꿈에는 자주 나오는 곳이 있어.
특히 몸이 아프거나. 잠을 너무 오래자면… 아… 너… 꿈 꿨구나? 그렇지?”

“그럼…정상인가. 내가 몸이 아파서…잠을 오래자서… 그렇게 긴 꿈을 꿨나부다…”

“꿈에 내가 나온거지? 그래서 아까 깨자마자 날 찾은거 맞지?”

“어?”
할말을 잃었다. 이걸 미안해서 어째…

“무슨 꿈이었는데 그래?”

“아주… 이상하고…긴 꿈이였어. 실제상황처럼 디테일도 하나하나 이어지고…
몸에 오는 느낌이나 기분까지…
꿈에서 다치면 정말 아팠고.
추우면…정말 추웠고…배도 무지 고프고…”

“혹시…머리 누가 때렸어? 너 꿈꿀때?”

“어!”

“그거…” 승민이 피식 웃었다.

“너 침대 옮기던 중에 어떤 간호사분이 실수로 너 머리를 벽에 부딫혔어. 그리고…
추운건…여기 MRI 찍는곳이랑 검사하는 곳들이 엄청 춥웠고.
배 고픈거야, 그동안 먹은게 없이 링게르만 맞았으니까 고팠을수도 있겠지.”

듣고보니 그렇네…
왜 이렇게 허무한거지…? 누군가에게 내가 겪은 일들을 모두 다 얘기해 주고 싶었는데…
이제 아무에게도 할수 없는…비밀스런 이야기가 될수 밖에 없나..

깨어나지 못하는 최우진이…걱정된다.
꿈에서 깨어나기 전에 우리가 나눈 이야기 처럼.
이제 우리는 서로를 만나도.
모른척 해야 되겠지…?

“아. 참. 너랑 같이 입원한 사람 말야.”

“응?”

“그 비행기에서 같이 감염된 사람.”

“그 사람이…뭐…”

“깨어났데. 오늘.”
“뭐라구?”

“왜 그렇게 놀라?”

“어? 어….” 뭐라고 해야하지… 무슨소리를 해도 말이 안돼겠지만

“그 사람은…괜찮데?”

“글쎄. 자세한건 모르겠어. 다들 그 방에 가있어서 오늘 너 운동시키는 사람도 안온거야.”

나도 한번 가보면 안될까? 하고 묻고싶었지만. 차마 그럴순 없고…
면회시간이 지나고 승민이가 집으로 돌아간 저녁시간…
간호사가 내 방으로 약을 전해주러 들어왔다.

“저기요.”

“네. 뭐 도와드릴까요?”

“그… 최 우진이라는 사람… 괜찮은가요?”

“아 네. 지금 검사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모든것이 정상인듯 합니다.”

“정말… 다행이네요!”

간호사도 활짝 웃었다.

“그렇죠? 아. 한번 만나실래요?”

“네?”
잠시 생각을 더듬어 보았다.
친하다고.
물론….
비행기에서 고추장을 뒤집어 씌운 일과… 비빔밥 한번 얻어먹은것 외에는..
그 사람은 내 얼굴도 기억 못할텐데…

“그래도 돼요?”

어쨌든 만나고 싶었다.
그가 괜찮은 모습을.

잠시라도 보고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