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것 보세요, 최우진씨.
돌려 말하는거, 저 무지하게 싫어해요. 그냥 솔직 담백하게 대답해 주세요.
제가 주인인걸 알았다는게 무슨뜻이죠? 혹시 저를 만나고 싶어서 일을 맡으셨다는 뜻인가요?”

 

그는 피식 웃으며 조용히 한숨 쉬었다.

 

“왜요. 제가 너무 직설적인가요. 비겁하게 빙빙 돌려서 말하는거. 전 더 이상 못하겠거든요?”

 

“조금…무례하시다는 생각은 안들어요?”

 

“제가…무례하다구요… 그러는 최우진씨는, 어제”

 

“남자친구 앞에서 제가 아는 척해서…화 나셨어요?”

 

“또,  딴 얘기 하지 마시고.. 다시 묻죠. 제가 주인인걸 알았다는거. 무슨 의미예요?”

 

“일 놓은지…삼년이 지났어요. 아무것도 새로 만들 자신이 없어서

일을 할수가 없었는데… 한유니씨가 주인이라는걸 듣고는

 다시…그림을 그리고 싶었고…뭐든 시작하고 싶어서.”

 

“왜요… 제 이름이 뭐 어때서요. 그때 비행기에서 잠깐 만난 사람들이잖아요. 우리.”

 

“그래요. 그랬죠…”

 

“아니면… 우리…또… 만난적이…있나요…?” 

나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얼른 닦아내고 아닌척 할 마음도 생겨나지 않았다.

이순간 만이라도

그냥 이 사람에게 내 모습, 내 마음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그저 그의 깊은 눈동자 속을 바라보며 그의 한마디를 기다렸다.

내가 이렇게 애가 타는걸…그는 알까.

아니면 나한테 당신 미쳤어요? 왜 울고 이래? 하면 어쩌지…?

 

갑자기 그는 뭔가 결심한듯,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의 깊은 눈동자 속으로

안타까움에 떨고 있는 나의 모습이 보였다.

 

“유니야…”

 

그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가슴이 미어지도록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불러 주었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다른 설명은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의 그 한마디로.

족했다.

나를 죽음의 위기에서 살려주고,

나를 위해 집을 지어주고.. 비빕밥을 찾아다 주고, 바닷가에서 게를 잡아다 주던

최우진의

그 목소리 그대로… 나를 불러주던 그 목소리 그대로…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나를 껴안는 그의 품에 나의 모든것을 맡겨 버렸다.

 

쾅!

뒤에서 문이 세게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아….하늘도 무심하시지. 왜 꼭 이럴때 방해자가 나타난단 말인가.

지금부터 해야 할 이야기가 너무나 많은데…

 

 

 

“야, 너 누구야! 이 새끼! 그 손 못 떼?”

 

놀라 돌아서 보니… 승민의 얼굴이 시뻘겋다.

그 딴에는 나를 이 위기에서 구해주려고,

성큼성큼 뛰어온다. 저 이상한 사람이 감히 내 여자친구를!

처음보는 표정이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최우진과 나는 당황할수 밖에 없었다.

 

승민이 씩씩 대며 믿을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가왔다.

“유니야! 너 괜찮아? 이 미친놈 뭐야!”

 

승민이 최우진에게 한방 날릴 자세였다.

 

“승민아, 아! 저기! 그게 아니고”

 

한발 늦었다.

이미 승민은 주먹을 한번 날렸고, 최우진은 피하려 하지 않고 그냥 맞았다.

 

여자친구를 건드린 건달놈과 한참 몸 싸움이라도 벌이려고 각오했던 승민은

묵묵히 맞고 쓰러지는 최우진이 이상하여 자세히 눈여겨 보기 시작했다.

 

“잠깐… 이 자식… 어제 카페에서. 그놈 아냐?”

 

“승민아. 진정해… 이러지 마!”

 

“어떻게 된거야?” 승민이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돌아 보았다.

“너… 바람 난거야? 그런거냐, 유니야?”

 

“승민아…그런게 아니고…”

 

이런 난감한 일이 있나…이건 정말 두번 미치는 일이다…

 

강한 남자 승민의 두 눈이 엄청나게 흔들리고 있었다.

“왜… 왜 갑자기 이런 녀석 하고… 넌…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알잖아!”

승민이의 떨리는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알지…! 진정해 승민아… 내가…설명 해줄께…내가… 다 얘기 해 줄께…”

 

승민에게 매달려 있는 나를 최우진이 조심스레 붙잡는다.

 

“내가…얘기 해 줄께요.”

 

돌아보자, 그가 조용히, 안심하라는듯 나를 똑바로 바라본다.

 

“바람난거… 아닙니다. 그냥 제가 꼬셔 봤어요. 넘어오나 보려구.”

 

“뭐..야?”

 

승민은 믿을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 사람과 나를 번갈아 본다.

 

“너…뭐야. 건달이야? 미친놈이야? 바람둥이야?”

 

 

“건달은 아니고… 미친 바람둥이라면…뭐 틀린말은 아니겠네요.”

 

 “다시 말해 봐. 그러니까. 니가 우리 유니한테. 뭘 어떻게 했다는거야? 꼬셨다고? 지금.

그러니까 가지고 놀았다는 거야? 감히 나의 유니를?”

  

잠시 최우진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서서히 고개를 내 저었다.

이건…아닌것 같아…

이렇게 하면…안돼.

거짓말...하지 말아요.

 

“그런게 아니야.”

내가 나서야 최우진을 보내줄수 있을것 같았다.

그리고 승민의 상처를… 책임져야 할 사람도 나니까.

 

내 목소리를 듣고 승민은 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승민의 눈가에 가득 고인 눈물에

말문이 턱 막혀 버렸다.

 

꿈 때문에…

실제 상황도 아닌 꿈 때문에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하게 됐다고…

아니…이 사람을 좋아하는 건지..

아직 나 자신도 확실하지는 않은데...

그저…보고싶었고 확인하고 싶었을 뿐인데.

 

망설이는 나의 모습을

최우진이 유심히 바라보더니…

 

“아니라고 믿고 싶었겠지만. 사실입니다. 나 한테 넘어오나… 그냥 시험해 봤어요.

한번도 실패해 본적이 없거든요. 한유니씨도… 별수 없네요.”

그가 피식 웃었다.

 

나도 잠시 헷갈릴 정도로 여유있는…그런 미소를 지었다.

 

승민은 그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승민이가 정신을 잃은것 같다. 원래 이렇게 난폭한 사람이 아닌데.

 

“이거 뭐야! 이 미친자식! 니가 뭔데 감히 그 따위로 나불거려 우리 유니한테!”

 

“승민아! 그러지 마! 승민아!”

 

최우진이 승민의 손을 잡더니, 확 밀어냈다.

 

“여자친구가 나한테 넘어왔다는건 그쪽에도 조금은 책임이 있다는걸. 모르나?”

 

“뭐?” 승민이 기가막혀서 어쩔줄을 몰라 했다.

 

“뭔가… 아쉬운게 있었겠죠. 안 그래요?”

하며 최우진은 자신의 셔츠를 바로 잡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미안합니다. 한유니씨.”

 

그는 피식 웃더니 가방을 챙겨 밖으로 걸어 나갔다.

 

진짜…나를 가지고 논건가?

나 혼자…

착각한건가…?

아니면 왜...

 

“야! 이 새끼야! 어디서 감히!” 승민이 주먹을 쥐고 고함을 질렀다. 따라나가서 한판 벌리기라도 할 기세여서, 내가 얼른 붙잡았다. 싸움도 잘 못하는 녀석이…

“승민아. 참아… 그냥…보내…”

 

승민은 한참동안이나 가슴이 떨렸는지 앉아서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승민아…”

 

“유니야…”

 

갑자기 유니야…하고 부르던 최우진의 표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나를 속인건가… 한번…그렇게 불러 본건가… 그래…둘이 같은 꿈을 꿨다는게…말이나 돼? 정말 미친…바람둥이였나? 그래…그 절세미인 여자친구도 있으면서… 더 깊이 얘기를 해 본것도 아니잖아…그냥 나를 유니야…라고 부른것 뿐이잖아..

 

“내가. 착각했나봐. 나 그 사람하고 아무 사이도 아니야. 그 사람이랑…그냥…자꾸 만나게 되서 정말 이상한 우연이라고 생각되서…호기심이 있었던건 사실이지만… 그 까짓 환상때문에…너를 이렇게 아프게 하고 싶지는 않아…”

 

“유니야!”

 

승민이는 어린애처럼 훌쩍이며 나를 확 부둥켜 안았다.

그러더니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한숨을 쉬고 그를 꼭 끌어 안아 주었다.

 

“니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내가…왜 모르겠니 승민아…미안해… 놀라게 해서 정말 미안해…”

 

두 눈을 꼭 감았다.

 

승민이를 아프게 해서…정말 너무 미안했다. 내가 천벌을 받을 짓을 한것 같다.

한쪽에서 얼얼하게 아픈 최우진에 대한 기억은…천천히…

쓸어 버리면 없어지겠지.

우리가 깨어있는 동안 만난적은 고작 몇번 안되니까.

거기에 비해 승민과 나의 만남은 이제 거의 3년인데…

3년이란 세월동안 그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를 사랑해 주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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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칫솔질을 하고 있는데 엄마가 세게 문을 두드리셨다.

 

“엄마?”

 

“경찰서에서 오란다. 같이 가자, 유니야.”

 

“어? 지금?”

 

서둘러 옷을 챙겨입고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는 엄마를 모시고 택시를 잡아 탔다.

 

경찰서에 도착하자,

우리를 면회실로 인도해 주었는데,

커다란 유리창 밖에서 심문을 받는듯 하는 범인과 형사의 모습을 볼수 있었다.

 

 

 

“범인이 이제야 조금 안정을 찾은듯 합니다. 너무나 죄송하다고…벌을 받더라도 사과를 드리겠다고 하는군요.”

 

“사과요? 손해금액이 얼만지나 알고 하는 얘긴가요?”

 

“엄마…” 옆구리를 꾹 찔렀다.

“그 사람 사정도 한번 들어 봐야지…”

 

“시끄러! 세상 물정 몰라가지고는!”

엄마는 눈을 흘기셨다.

 

“손해배상금은 보험에서 나오잖아…”

 

“시끄럽데두! 니가 이렇게 물렁 거려서 내가 일부러 데리고 나온거야! 보고 배우라고.”

 

아유…우리 엄마 하여튼 독하시다…

 

범인이 면회실 테이블 앞에 나타났다.

 

그는 미친사람같지 않았다.

위험한 사람이었다면 경찰에서 이런 자리를 마련했을리도 없었다.

 

“제가… 사람을 잘못 봤나봅니다… 정말…죄송합니다.”

그의 눈빛이 진실해 보였다.

 

엄마는 콧방귀도 안뀌시고 그를 노려보셨는데… 왠지 착한인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박태식이. 누군데 우리 가게에서 그런 난동을 부렸습니까?”

 

엄마의 목소리는 차가왔다.

 

“제…동생…남편새끼입니다. 근데 그 놈이…제 동생은 임신을 시켜가지고 필리핀에 데려다 놓고…

혼자 한국에 와서는 부잣집 따님이랑 결혼하려고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소문에 소문을 따라 찾아간곳이…

바로 거기였어요.

 

정말…죄송합니다.”

 

 

 

엄마와 나는 놀라서 눈을 껌뻑거리지도 못했다.

 

“박…태식이요?”

 

“네… 그 놈 이름인데. 생긴건 아주 뺀질뺀질 합니다. 거짓말은 청산유수이구요…”

 

“사진…있으세요?”

 

“그런걸 남겨 놓을 녀석이 아니죠. 아주 철저하고 기계같은 놈입니다. 모든 거짓말을 사실처럼 만들어 놓는…무서운 사깃꾼중에 사깃꾼이죠…얼굴도 완전 성형을 해 놓았을 수도 있고...”

 

“그럴리가 없어, 엄마.”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도 믿고싶지 않은 눈치였다.

 

“누가 뭐래? 그냥…”

 

“그래서요… 그 놈..이. 동생분을 떠나온게…대략…언제쯤이죠?”

 

“3년쯤 됐죠. 그 동안 제가 모든걸 포기하고 그 놈만 찾아 헤맸습니다. 기억하는거라곤 그놈의 뺀질한 얼굴판 하나인데… 그 놈이 남긴 자식…제…조카는…”

아저씨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리셨다.

"이제…2살 반이니까… 지 애비도 못 보고 그렇게 자라온거죠…제 여동생은 노동이란 노동은 다 하고..”

엄마와 나는 한동안 아무런 말도 나누지 못했다.

 

그러다가,

 

엄마가 날카롭게 물으셨다.

 

“지금 합의 해달라고 쑈하시는겁니까?”

 

“그 놈이 사기치고 저의 전 재산을 훔쳐 갔습니다… 그 후로 우울증 때문에 약도 먹고 치료도 받고 했지만…

갑자기 그 놈 소식을 듣고 울분을 참을수 없어서...죽을 각오로 덤벼 들었습니다. 제가 무식하고 성질이 급해서 엉뚱한 분들께 그런 큰 잘못을 저질렀으니… 그 댓가는 충분히 받을겁니다.  합의 해달라고, 제가 어떻게…감히.. 그런거…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그런데…

박 태식. 그 새끼를… 혹시 알고 계신가요?”

 

우리의 눈치가 이상했는지, 그는 조금은 희망을 품은 표정으로 올려다 보았다.

 

 

 

“전혀 모릅니다. 그런 사람. 듣도 보지도 못했어요.”

엄마는 차갑게 내치셨다.

 

“알아볼께요, 아저씨. 제가 알아봐 드릴께요.”

엄마가 쓸데없는 소리를 나발하는 나를 째려보신다.

 

“혹시 모르니까…제가 자세히 알아 볼께요 아저씨.”

엄마에게 단호하게 선언하듯, 똑바로 쳐다보며 한마디 더 했다.

 

 

 

경찰서를 나오면서.

엄마와 나는 한동안 한마디도 주고받지 않았다.

 

"그 사람에게...승민이 사진. 왜 못보여주게 한거야 엄마?"

 

"혹시 모르지. 합의 노리고 쑈하는 사람이면 무슨 거짓말을 못하겠어?

우리가 먼저 알아보고. 나중에 확인해도 늦지 않아."

 

엄마가 감았던 눈을 뜨시더니, “3년 전이라고… 그 때… 승민이 만난게…공항 이었지?”

 

“아니야, 엄마. 미국이었어. 뉴욕.”

 

“뉴욕에서. 유학 마치고 곧 한국 들어온다고…그래서 너 뉴욕에서 일할때…어울려 다녔지?”

 

“그랬지… 고급 자가용 끌고 다니면서 최고급 레스토랑으로 날 데려갔어. 늘 명품 선물을 해 줬고…

한국에 들어와서는 부모님이랑 가족들도 소개 받았는데...

부유한 집안이고 부모님도 교양 있으시다고. 엄마도 좋아했잖아.”

 

“그런데… 그 가족들이 온통 흩어져 살았지? 부모는 유럽에서 사업하시고…남동생 여동생은 일본이랑 미국에서 유학하고… 그 집에 직접 놀러간 적은…”

 

“직접 놀러간것도… 일년에 한두번 정도. 나야 워낙 일에 미친 사람이었으니까. 한국과 미국을 오가면서 그런거에 신경쓸 사이가 없었지.”

 

“너… 괜찮아?”

엄마가 잠시 나를 살펴 보신다.

 

“아닐거야. 그냥… 우리가 충격 먹었나봐… 승민이한테 너무 미안하다. 그지 엄마?”

 

“부모님이랑. 만나자고 전화 해.”

 

“어?”

 

“그 집에도 오늘 가보고 싶다고 해.”

 

“엄마… 승민이가…설마… 그럴리가 없잖아…?”

 

“어서.”

 

승민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잠시 후.

문자가 왔다.

 

미안 유니야.

지금 회사에서 미팅이 있어서.

이따 6시에 만나는거. 잊지 않았지?

윈도우 카페.

거기서 만나는거다.

 

 

 

최우진이랑 그 난리를 치고도 윈도우 카페?

 

“뭐래니?”

 

“6시에…만나자고…”

 

“그래 그럼. 우선 만나서 한번 물어보렴. 부모님 어찌 지내시는지.

당장 통화를 좀 하고 싶다고.”

 

“알았어 엄마…조심해요. 괜히 승민이 상처 받을수도 있는일이야. 아까 그 아저씨가 거짓말 하는걸 수도 있잖아.”

 

“그래…그건 그렇지… 승민이가 그럴애가 아닐거야... 그런데 만약 맞다면. 저 아저씨는 우리 생명의 은인이고. 간단한 방법은. 그 범인이랑 승민이가 만나보면 알겠지만. 그 사람 말처럼 성형을 했을수도 있으니까.”

 

"엄마! 그렇게 넘겨 집지 말라니까.."

 

"알았어. 밝혀질건. 곧 밝혀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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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윈도우 카페.

 

들어서자 마자 최우진과 마주쳤다.

 

그는 조용히 고개숙여 인사를 하고는 돌아서는데...

 

 

“잠깐만요. 최우진씨.”

 

그가 고개를 돌리자 마자 말했다. “유승민씨. 기다리고 계십니다.”

 

“왜...그러신거예요? 어제…”

 

“무슨 말씀이시죠?”

 

"가지고 놀았다는건...거짓말이죠?

나를…유니…라고 불렀잖아요.”

 

“다들 넘어가던데요. 갑자기 이름 불러주면.”

그가 힘없이 피식 웃었다.

 

 

따귀라도 날려주고 싶었다.

못된놈. 정말 그런거였어? 그런줄도 모르고 나 혼자 그렇게 삼류 드라마를 찍은거야?

 

“왜요. 왜 그런건데요. 대체 무슨이유로 나를 가지고 논거냐구요.”

 

“저기. 유승민씨가 보고 계시네요. 이러다가 저 한대 더 얻어 맞겠습니다.”

 

“비겁한 놈… 정말 나쁜… 바람둥이.”

혼잣말로 생각만 하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줄줄…말로 흘러 나왔다. 눈물도 쬐끔 맺히고..

 

그런데.

그때

 

 

말없이 그가 돌아섰다.

내가 그의 옆모습을 끝까지 봤을거라고

생각 못해서였는지,

마음아픈 표정으로, 입술을 깨무는 그의 모습.

나는 다시 가슴이 내려 앉았다.

 

 

“유니야!”

 

승민이가 기다리다 못해 내가 서 있는곳으로 걸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