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차를 타고 떠나는 내내 불안함과 초조함보다. 미안한 맘이 앞섰다.

“어떻해요..선배님. 처음부터. 선배님을 부르는게 아닌데…어쩌면 좋아요. 어젯 밤에. 따라오지만 않았어도…”

“그냥 우연이야. 니가 잘못한거 아니니까. 미안해 할거 없어.”
그는 이 상황에서도 전혀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나는 부들부들 떨고있었는데.

경찰서에 도착했는데.
이번에는 유치장 안으로 우리를 끌고 들어갔다.
나와. 윤세준을 따로 따로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너무나 기가막혀서 몸부림을 쳤다.
윤세준이 걱정이 되고. 나도 눈앞이 캄캄했다.

“아니. 왜들 이래요? 대체 어떻게 된거예요?”
“문제가 생겼어. 용의자로 체포됬으니까. 조용히 따라와.”
“네? 용의자요?”

조사실에 들어가니 달랑 책상 하나가 있었고.
나는 그 앞에 털썩 주저앉혔다.
그들이 하는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수가 없었지만.
대강은 양미숙이 사기쳐 훔쳐간 돈이 실제로 내 은행 통장에
들어갔다 나간 기록이 있다는 거였다.
더구나 나의 하숙방에서 그들이 찾아낸 증거가 한둘이 아니었다.
진작부터 하숙방을 자주 비워온 나를 주인인 양미숙은 미리 조작하려고 찍어놓은것이 분명했다.

몇시간이나 지났을까.
숨이 막히도록 괴로운 답답하고 억울한 조사가 지속되다가.
그들은 나를 유치장에 집어 넣었다.
너무나 기가 막히고 분통이 터져서 나도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왜 나한테 이런일이 생긴거지?
내가 뭘 잘못한거지?
그 아주머니는 왜 나한테?

한시간 정도 울며불며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유치장 옆방으로 끌려가는 윤세준이 보였다.
“선배님!”

무척이나 피곤해 보였다.  하루밤을 꼬박 새운거나 마찬가진데.
지친 그의 모습을 보니
미안해서 어떤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내가 왜 그 사람한테 연락을 했을까…
그때 그 쪽지가 주머니에 있지만 않았어도…내가 촬영장으로 따라 나서지만 않았어도…

곧 그는 옆방에 갇혔고.
바로 옆에서 창살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닫혔다.

“선배님…괜찮으세요? 어떻게 된거죠? 왜 선배님까지 데려온거죠?”
“용의자를 협조했으니. 의심스럽다는데.”
“그런 말도 안돼는!... 죄송해요. 미안해요 선배님.”

“걱정마. 너 믿으니까.”
“네?”
“너 믿는다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왜 나를 믿는다는걸까.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나는 그를 의심했을지도 모르겠다.

“저를…어떻게 믿으세요…”

“우석이…친구잖아.”
그의 목소리가 지쳐있었다.

단지. 민우석 친구라는 사실 하나로 나를 믿는다는… 그만큼 민우석을 믿는다는 말인가.

몇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유치장안에서 울다가. 자다가. 정신을 잃었다가. 찾았다가. 가물가물했다.
내가 지금 꿈인지. 생시인지. 알수없었다.

깜깜한 밤. 유치장안은 싸늘했다.
마음이 쓰라려 더 이상 잠자코 있을수가 없었다.

“저기요…”
창살 사이로 잡지를 읽고있는 경찰관이 하나 보였다.

“응. 뭐?”
“저… 옆방에 저분은. 저분은 저랑 잘 알지도 못하는. 그냥 저랑 몇번 만난적밖에 없는 분이예요.
저분이라도 그냥 보내주신다면. 제가 뭐든 할께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거야… 아가씨가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자백을 하면 그 사람은 혐의가 없으니까 풀려 날수도 있겠지.  그치만 현재는 아가씨 신원을 보증한 사람이라. 그냥 보낼수가 없어.”

무슨 자백을 어떻게 솔직하게 하라는건가.
“그럼. 제가 안한짓을 했다고라도 하라는 건가요?”
“정말 안했다면. 나중에라도 밝혀지겠지. 양미숙을 우선 잡고 볼일이니까.”
“그럼 밝혀질때까지. 이러고 있으라는 거예요?”
“연락할 변호사나. 가족이 있으면 얘기하라고 했잖아.”

눈물과 한숨만 새어나왔다.  나처럼 돈도 없고. 능력없는 사람은. 이대로 당할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암담했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다 지쳐 쉬고계실 아버지에게.
딸이 서울에서 대학다닌다는 자랑을 유일한 낙으로 삼으시는 아버지에게.
이런일로 연락을 할수는 없었다.

울고있는데, 윤세준이 깨어났는지 벽에서 툭툭…치는 소리가 났다.
“그만 울어.”

“죄송해요. 죄송해요 선배님… 저희 아빠한테는…연락을 할수가 없어요. 하루종일 장사하시고.
지금 겨우 주무시고 계실텐데… 제가 서울에서 대학다닌다고. 유일한 낙으로 삼으시는데…
저를 너무 믿으시는 아빠에게. 이런일로 갑자기 연락을 드릴수가 없어요… 죄송해요 선배님.”
엉엉 터져나오는 울음을 참을수가 없어서 헐떡이는데,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알았어…”
그에게 너무 고맙고 미안했는데 – 또 내 몸이 너무 피곤하고 힘들어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죄송해요… 미안해요…” 쓰러질듯 벽에 기대어 혼자말처럼 계속 중얼거렸는데…


햇빛이 따뜻했다.
어느새 아침이 되어 있었다.
“아우….” 몸이 쑤시고 아파서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나왔는데,

창살 사이로 하얀 봉투가 불쑥 나타났다.

“잘 잤어? 자. 이거 먹어라.”
응?

봉투안에는 붕어빵이 들어있었다.

“이걸 어떻게…”
“경찰 아저씨가 사다 주셨어. 내가 부탁 좀 했지.”

말없이 붕어빵을 받아들었다.
유치장에서 나오는 플라스틱 밥통과 김치조가리만 보다가…
맛있어 보여 하나 받아 들었다.

“붕어빵…되게 좋아하시나 봐요…”
“간단하고. 영양도 괜찮고.”
“지금 제가 붕어빵이나 먹고 있을때가 아닌데… 맛있긴 하네요…”
“기분나쁠땐. 최고야. 어릴때 생각도 나고…”

“어릴때… 무슨 생각이요?”
“먹고싶었는데. 못 먹었거든. 지저분하다고. 못먹게 하셨어.”
“선배님 어머님이요?”
“응… 그런데. 우석이 어머님은 내가 먹고싶어한다고. 집에서 만들어주시곤 하셨지…”

“네? 민선배님 어머님이요?”
“아…내가 너한테 별소리를 다한다.”

“근데 왜 민선배님 어머님은 선배님한테 늘 존대말을 쓰셔요?”
“…”
그가 조용하다.
내가 이상한 질문을 했나? 지금 이 상황에…

“화나셨어요?”

“아니. 그게 왜…”

“그냥 궁금해서 그랬어요. 곤란하심. 대답 안하셔도 돼요…”

“넌. 내가 왜 너 도와줬는지 알아?”
“네? 지금요?”

“아니. 그때. 연극부에서 말이야.”

“아…그때요? 왜요?”

“몇달전에 학교에 우석이를 찾아 갔었는데… 연습실에 아무도 없고. 어떤 여학생이 혼자 소리를 꽥꽥 지르고 있더라고.”
“헉…설마…”

“로미오와 줄리엣 이었지. 아마?”

“설마…”

내가 처음 연극부에 들어가려고 오디션을 준비하고 있었을때다.
아무도 없는 틈에 실전 준비를 위하여 오후 늦게 혼자 연습을 했던적이 있었다.

“혼자서 얼마나 소리를 지르며 울던지. 연기는 되게 못하는데. 그 정성이. 갸륵하더라고…”
그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챙피하고. 조금 화도 나고…

“제가…그렇게 연기를 못하나요…?”

“그럼 못해야지. 이제 막 시작했잖아?”

“그래서. 하도 못해서 불쌍하셨나요…?”

“연극은 실력으로 하는게 아니야. 열정으로 하는거지. 그 열정이 없으면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몇년안에 시들해지니까… 그런데 너는 참. 진실하게 원하는 모습이 보였어. 그래서…”

잠깐. 지금 우리가 이렇게 맘 편하게 시시덕 거리고 있을때가 아닌데.
순간. 불안함과 두려움이 다시 나를 엄습해왔다.


“선배님…화나지 않으세요. 저때문에 괜히 여기서…”
“화난다고. 저사람들이 보내주겠어? 그리고 너때문이 아니고. 그 사깃꾼 때문이잖아.”
“제가…밉지 않으세요. 괜히 한밤중에 연락을 해가지고는…”

“그러게.. 미운거 보다. 좀 가여운데?  내가 봐도 너는 아무것도 모르는것 같아서...”
 

“이제. 어쩌죠?”
“곧 잡히겠지.”
“안 잡히면요.”

“그럼 너가 누명을 쓸수도 있겠지?”
“차라리…그렇게 해야겠어요.”
“뭐?”
“선배님은. 나가셔야죠. 여기 계실 이유가 없잖아요.”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냐?”
“저야… 어차피 그 아줌마한테 이용당하고 있는거고. 나중에 밝혀질거예요. 그러니까 선배님은”
“쓸데없는 소리 하지마. 잘은 모르지만. 이럴땐 잠자코 시키는데로 하면 되는거야.”


“선배님… 영화는 어떻게 해요…”
“잘 찍고 있겠지.”
“조감독님 없이…어떻게요.”
“원래 조감독이란건. 심부름꾼이야.  내가 없어서 다들 꽤나 고생은 하겠네. 나는 덕분에 잘 쉬고있고.”
“그러다 짤리시면요.”


“이런일 가지고 짤리지 않아. 내가 얼마나 일을 잘하는데?”

웃음이 나왔다. 이런 상황에. 내가 웃을수있다니. 사람이란 참 예측할수 없는 존재인것 같다.
웃고보니. 다시 죄책감이 목을 조여왔다. 내가 지금 사치스럽게 웃을때가 아니지.
이 상황에서도 농담을 할수있는 윤세준은 참 맘이 편한 사람인듯 싶었다.

덜커덩.

조사관들이 돌아왔다.
또 다시 조사실로 끌려갔다.
그날 아침. 잠깐 붕어빵을 윤세준과 나누어 먹고 난후.
어둑어둑한 밤이 지새도록.
뭐 그렇게 물어볼것이 많고. 조사할것이 많은지.
같은 질문을 또 하고 또 반복하고.
내가 할수 있는 답은 모르겠다는것 뿐이었는데…

전혀 협조할 방법이나 정보가 없었는데.
이제 기절할 정도로 나는 지쳐있었다.

새벽 2시가 되서야 다시 유치장으로 돌아왔는데,
창살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옆방 벽에서 툭툭. 치는 소리가 들렸는데.

“붕어빵. 괜찮아?”
그의 목소리를 듣는것만으로 마음이 놓이고. 살것 같았다.
너무 미안했지만. 그 사람마저 없었다면.
나는 그때 돌아버렸을지도 모른다.

“언제까지…이러고 있어야 할까요…”
“견디기…힘들어..?”

“미칠것 같아요. 답답하고. 억울하고. 소리치고 싶어요.  죄송해요. 선배님… 미안해요…”
“미안하다는 말은. 이제 그만해라. 나도 미안하니까.”

“선배님이… 왜요….”
“나는 연락할 사람이 있거든. 그런데 안 하고 있어서. 미안하다고.”

무슨말을 하고있는지. 잘 알수가 없었다. 그의 복잡한 심정은 상상도 못하고…

“한예지… 내 동생이랑.. 나이가 비슷하겠구나….”
갑자기 왜 동생얘기를 하는지…윤세준도 유치장에 하루종일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한것 같았다.


“너처럼 미안하다는 말을 잘하고…울길 잘하지...”

“동생분이…생각나세요?...”
“그래…널 보면 그 애가 생각이 나.… 아직 어려서. 이런 일을 당하기에 참 무섭고. 힘들텐데…”

“어디계신데요?”

“집에 있겠지…”

“그럼 매일 보시겠네요…”

그에게서 아무런 대답이 없다.

“죄송해요 선배님.…괜히 저 때문에..”

“괜찮아. 나는 어른이잖아.”

“제가…너무 어린애같이 굴어서… 죄송해요.”

“조금만 참아… 곧 나가게 될거야…”

그때는 그냥 그가 나를 위로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