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그 포옹이 용서의 의미였는지

이별의 의미였는지...
알수없었지만
나는 그냥 이렇게 해석했다.

고마와요 선배님
나를 용서해줘서.
슬픔의 한 가운데서 잠시 행복했다면.
그리고 그 행복이 소중했다면
나는 너무 이기적인 사람인가.

한국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선은 죽음과 삶을 오가는 민우진에게 윤세정을 보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서 어떻게 해서든 윤세정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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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도착하자 마자.
나는 윤세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걸어봤자 늘 끊어지는 번호였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였다.

[여보세요]

웬일로 그 비서가 전화를 받았는데,

“여보세요. 거기. 윤세준 선배님계시죠.”

[전화 받으실수 없습니다]

“잠깐만요! 끊지 마세요! 제발 부탁이예요!”

[무슨일이신지 몰라도]

“세정씨와 할 얘기가 있어요. 윤세정씨요.”

[한예지씨.]

그 사람은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내가 하도 전화를 많이 걸어서? 아니면 원래 알고있었던건가?

“부탁이예요. 세정씨에게 너무 중요한 일이예요.”

민우진이 그렇게 아픈데… 혹… 잘못될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보고싶어하는 윤세정과. 꼭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말씀해보시죠. 제가 전해드릴테니]

“우진이가… 많이…아주 많이 아프다고…세정씨…보고 싶어한다고 전해주세요. 제발…부탁드려요.”

전화가 툭. 하고 끊어졌다.

윤세정을. 내가 어떤수로 찾아내서. 어떻게 미국으로 보낸단 말인가…
암담했는데. 갑자기 기발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미친듯이 내가 잡혀가 있었던 경찰서를 찾아갔다.
유치장에 있을때 윤세정이 나와 윤세준을 빼내 주었었다.
어쩌면 그곳에서 연락처를 슬쩍 보기라도 할수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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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에서 겨우 찾아낸 주소로 도착한 곳은 너무 웅장하고 커서 아예 집안이 보이지를 않았다.
높은 벽. 숲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하는 웅성한 나무들…
너무나 화려한 궁궐같기도 했고.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못 빠져나올것 같은 높은 창살의 감옥같아 보이기도 했다.

갑자기 요란한 소리를 내며 주차장문이 드르륵 위로 올라갔고,. 
떠나가는 차를 발견하고 한 비서가 뛰어나와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는데,

창문이 주르륵…내려가더니 무뚝뚝한 표정의 어르신이 창문앞에 조아리고 있는 비서에게 물었다.

“세준이. 어떻게 하고 있어?”

“말씀하신대로 하고 계십니다.”
“밑 바닥부터. 철저히 배우고 있지?”
“네. 아침 6시에 기상하셔서 회사 다녀오신 후.
저녁 때는 사모님께서 회사 역사. 장보, 법률, 규정등을
정리해서 읽게 하고 계시고. 주말에는 각 지방 지사마다 둘러보러 다니십니다.”

“훗. 녀석. 혼쭐이 나고 있겠구만.”
“많이…답답해 하시는것 같습니다.”

“3년을 그렇게 내 속을 태우더니…. 지 입으로 한 약속이니까 딴 소리 못할거야.
잠시도 쉴 틈을 주면 안돼. 그 녀석 또 딴 생각들지 않게 꼭 붙잡아 둬.
운동 시키고. 식사 잘 챙기는건 잊지말고.”

“네. 그럼요 회장님.”

차가 내 앞으로 서서히 지나가면서.
까맣게 틴트된 창문안으로 엄해보이는 어르신의 옆모습이 보였다.

윤세준이 저렇게 살고있었구나.
집에 돌아온 후로 정말 밤낮없이 일만 하면서...

부르릉..
다른 한대의 차가 내 앞을 지나쳐 주차장으로 향했다.
언뜻 지나가는 모습이 윤세준을 닮은것 같았다.
얼른 주차장앞으로 가 버티고 섰다.

기사가 좀 놀란듯 했고.
“이봐. 아가씨. 비켜. 거기서 뭐하는거야?”

“윤세준 선배님!”

굳어진 표정의 윤세준이 차 문을 열고 나왔고.
곧 비서가 뛰어 나왔다.

“이봐요! 여기가 어디라고 오셨습니까. 경찰에 고발하기전에 어서 가세요!”

“선배님!”

윤세준이 말없이 나를 보았다.
많이 지친 그의 모습이.
순간 너무나 안쓰러웠다.

“도련님. 들어가셔야 합니다. 사모님이 기다리십니다.”

윤세준이 비서를 천천히 돌아보더니.
“부탁이야. 잠시만.”

“죄송합니다 도련님. 안됩니다. 회장님께서.”
“잠시면 돼.”

“문 열리는 소리 들으셨으니. 사모님이 나오고 계실겁니다.”

윤세준이 깊은 한숨을 몰아쉬는 중.
윤세정이 뛰어 나왔다.

“오빠! 왔어?”

모두들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 되었는데.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오빠. 엄마가 기다리셔…지금 막.. 나오시는 중이야…”

윤세준이 고개를 숙이더니 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잠시 나를 돌아본 그는.
힘없이 피식. 웃었는데.
잘가라 붕어빵.
하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것 같았다.

비서도 곧 그를 따라 들어가고 주차장 철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닫혀버렸다.

너무나 기가막히고 믿어지지가 않아서 한참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서있었다.
윤세준은.
내가 상상한대로 감옥에 갇힌건가…
어찌 잠시 자유롭게 대화나누는 것마저 철저하게 감시당하면서.
그런 그에게 도움을 청하러 달려온 내가 무척이나 우습게 느껴졌다.
아니. 우스운 정도가 아니라.

덜커덩.
하고 정문이 열리고.
윤세정이 나타났다.

“세정씨!”

“쉬… 잠깐 저리로 가요.”

“어떻게 된거예요?”

“몰래 나왔어요. 지금 엄마는 오빠 붙잡고 계시니까, 내가 나온건 모르실거야.”

“선배님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보시다시피... 정말 너무해요. 우리 엄마 아버지”
“저 정도이실 줄은…상상도 못했어요”

“처음에 돌아온날. 오빠가 무릎꿇고 하룻밤 꼬박 새웠는데도 아버지가 본척 만척 하시다가는,
아침에 재떨이를 갑자기 던지시면서 얼마나 화를 내시는지...오빠는 피가 흐르도록 다쳤는데도
아버지는 눈 하나 깜짝 안하셨어요. 왜 왔냐고 윽박지르기만 하시고.
거기다 대고. 오빠는 돈이 필요하다고, 회사일 배우겠다고. 시키는대로 다 하겠다고
그 때 아버지랑 약속했어요….
그후론 잠시도. 하루도 못쉬게 해요. 연락도 아무데도 못하고….”

갑자기 할말을 잃었다.
내가 찾아온 이유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이런 상황에. 세정에게 우진의 얘기를 해 줄수 있을까…

“혹시…”
세정이 커다란 눈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예지씨. 미국엔. 잘 다녀 왔어요?”

그녀는 오히려 내가 찾아온 이유를 알고있는듯 했다. 우진이가 많이 좋아졌다는 말을 전해줄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는데.

“사실은요, 세정씨”
“네?”

“우진씨가…많이 아파요.”

세정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좋아졌다고…그랬잖아요…?”

“갑자기 좀 안좋아졌는데…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혹시 연락할수 있으면.”

세정이 눈길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우진이가…아프다구요…”

“세정씨를 보고싶다고 했어요”

세정이 나를 돌아보는 눈가에 눈물이 가득 고여있었다.

“내가…보고싶다고…우진이가 그랬어요?”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은. 내가 하고있는 일이 잘하는 일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 좀. 도와줘요 예지씨.”
“네?”
“나. 우진이 만나야 겠어. 미칠것 같다구요.”
“어떻게 도와주면 되요?”
“우리 엄마 아버지, 나한테 신경못쓰게…좀 도와줘요. 그러면 내가 미국에 다녀올수 있을거 같아”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우리 오빠랑. 결혼하겠다고 말해요.”
“네?”
“부탁이예요. 엄마 아버지가 온통 신경이 곤두서게 하려면, 그 방법 밖에는 없어요. 그 사이에 난 잠시 친구집에 가 있을테니까. 그리고 이틀쯤. 시험공부 한다고 집에 안들어와도 상관 안 하실거야.”

“그렇지만 어떻게…”
“예지씨한테는 아무일도 생기지 않을거예요. 오빠한테 부탁하면, 오빠가 도와줄거예요. 제발…나…우진이 안보면…미칠것 같아요.”

순간. 피를 토하며 쓰러지던 민우진의 모습이 스치고 지나갔다.
울며 떨리는 손으로 나를 끌어안던 민우석의 모습도..
만약…만약 민우진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그리고 내가 이 부탁을 들어주지 않아서 둘이 마지막 재회도 하지 못한다면…
평생 후회할 일이 될수도 있겠다.

“가뜩이나 힘든데, 윤세준 선배님이 더 곤란하지 않겠어요?”
“오빠는…나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요… 오빠는 날 이해해 줄거예요.”

다른방법은 없을까.
꼭 이렇게 해야만…

“그럼. 내일 이시간에 여기로 다시 와요. 준비는 내가 해 놓을께요. 부탁해요 예지씨. 부탁해요. 나 들어가봐야 해”

집안쪽에서 창문소리가 들리자 세정은 얼른 눈물을 지우고 빠른 발걸음을 옮겼다.

도와줘야 겠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이 될수도 있는. 너무나 절박한 상황이기에.
민우진과 윤세정이 우선이었다.

다음날 저녁. 윤세준이 돌아올 만한 시간이었다.
정문에 가서 벨을 눌렀다.
연기를 하는거야.
나는 연극을 하는 사람이니까

띵동 딩동

[누구시죠]

“저. 한예지라고 하는데요.”

[그래서. 누구신데요?]

“저기…저… 윤세준씨랑 사귀는 사람입니다.”

[네? 자…잠깐만 기다리세요]

잠깐이라더니 10분이 지나도록 아무 반응이 없었다.
미친사람인줄 알았겠지… 내가 좀 더 신경을 써서 연기를 잘했어야 하는데…
이제 어쩌지 싶어 한숨을 쉬며 계단을 내려오는데,
갑자기 철장문이 덜커덩 열렸다.

"들어오세요"

떨리는 발걸음을 조심조심 옮기며 안으로 들어갔다.
뜰안이 공원같이 넓고 아름다웠고
저택이 있는곳까지는 한참을 걸어서야 도착을 했다.
이제 나는 어찌되는건가.
마른침을 삼키고.
일하시는 아주머니를 따라들어갔다.

정문이 열리자.
너무나 세련되고 아름다운 여인이 내 앞에 서있었다.
생전 처음보는 귀족과 같은 풍채였다.
그녀에게서 너무나 좋은 냄새가 났다.

“한예지씨.”

내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내 이름을 또박또박 부르며 알수없는 미소를 짓고계셨다.
내가 지금 쑈를 하고 있다는것도 뚫어보고 있는듯. 미묘한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