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에서 집으로 어떻게 돌아왔는지.
마루바닥에 얼마나 앉아있었는지. 정신이 몽롱했다.
살아야지. 잘 살아지…싶으면서도 눈앞이 캄캄했다.
이제 학교에 가면 민우석이 생각나서 어떻게 연극부를 나가지.
연극부하려고 전공도 바꿨는데. 그 사람없이 할수 있을까.

저녁시간이 되었지만 배고픈것도 잊고 그저 하숙집 마루바닥에 앉아 하늘을 멍하니 보고있었다.
그때 문이 열리고,
윤세준이 들어왔는데.
그의 손에 하얀 봉투가 들려져 있었다.

“선배님…?”
“먹어라.”
윤세준과 그의 붕어빵…

그의 얼굴을 보니 순간 한숨이 나왔다.
숨을 참고 있던 사람처럼 갑자기 긴 숨이, 터지듯 새어 나왔다.
윤세준이 내 곁에 조용히 앉아 붕어빵을 내밀었는데,

“먹어. 방금 만들어서 따뜻해.”
“전 붕어빵 별로 안 좋아하는데요..”
“맛있는데? 영양도 괜찮고.”
“그럼 선배님이나 드세요.”
“난..엄마한테 혼나.”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내가 웃는모습을 보며 그도 조용히 웃었다.

“왜 또 오셨어요…가출하신거예요?”
“오늘은 모두 바빠서 정신없으셔.”

“세정씨가…정말 행복하겠어요. 축하한다고 꼭 전해주세요.”

윤세준이 걱정스런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너도…행복해 질거야.”
“….”

“한번쯤은. 너가 행복해서 웃는걸 봤으면 좋겠다.”

“선배님은. 왜 저한테 잘 해주세요?”
“붕어빵 사주는게 잘해주는건가?”
“저번에 병원에서도…오늘도…그리고 사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늘 저에게 주기만 하셨잖아요.”

“그냥 니가 우는게. 보기 싫어서.”

먼곳을 보며 미소짓는 그의 옆모습이 지난 여름, 한참을 함께 뛰고 땀을 흘리던 그 모습과 겹쳤다.
처음 그를 만난날도 생각나고.
그와 함께 유치장에 갖혀서 나누던 대화. 그때 그가 내밀던 붕어빵도 기억이 났다.

갑자기. 그가 내 손을 잡았는데,
놀라서 그를 보는 순간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나를 끌어 올렸다.

“왜 그러세요.”
“잠깐. 나가자.”
“네?”
“붕어빵 싫다며. 저녁 먹어야지, 너.”
망설였다.
안돼는데.
이사람한테 기대고 싶지 않은데.
너무 멀고 높은곳에 있는 사람이라서.
나와 함께 이렇게 돌아다닐 만큼. 평범한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선배님.”

그와 똑바로 마주 보았다.
나는 윤세준이 두려웠다.
그의 따뜻한 마음이. 다정스런 눈빛이.
웅장한 숲속의 그 저택과.  향기를 품기던 귀부인의 미소와. 무섭게 내 치던 회장님의 모습과 겹쳤고.
처음 만났을때부터 그와 가까와지면…민우석이 싫어할거라고 늘 염두 해두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민우석이 내 곁에 없어도 그와 가까와지는것은 내가 해서는 안될 일이라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저 한테 대체 왜 이러세요.
왜 잘 해주고 맘 써주고…
이러다가 제가 선배님한테 기대고 싶으면 어쩌시려고 이러세요?
선배님이 그랬잖아요. 저를 지켜줄수 없고. 곁에서 도와줄수 없다 그랬으면서
왜 자꾸 제가 의지하고 싶게 만드세요?
전. 이제 너무 지쳐서. 상처받기도 싫고. 버려지는것도 견딜수 없어요.
제가 먹던 말던. 내버려 둬야 제가 혼자 일어서지요.
제 곁에 없을거면서. 이렇게 잠시 나타났다가 또 사라질거면서 왜 이러시냐구요!”

윤세준은 변함없이 잔잔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 서있었다.
돌맹이를 아무리 던져도 그의 호수같은 잔잔함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 모습이 너무 듬직하고 침착해 보여서.  나는 더 그에게서 도망치고 싶었다.

“내가 울던 말던. 상관하지 마세요. 사라질거면. 지금 영 영 사라지세요.”

“너가 부르면. 온다고 했잖아.”

“다시는 선배님께 연락하지 않을거예요.”

어쩌면 나는 그의 정체를 알고난 후부터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그가 더욱 멀게만 느껴졌던것 같다.
그의 마음 아플것은 생각안하고. 그의 앞에서 한없이 이기적인 내 모습도 싫었다.


“한가지만. 기억해.”

그의 다정한 눈빛을 보는것이 미안하고 가슴이 쓰렸지만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애써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았다.

“너가, 다시 웃을수 있는 날이 오면. 그 때 사라질께.”

“아니요. 지금 가세요. 선배님이랑 만나고 싶지 않아요.”

그를 밖에 그대로 남겨두고 나는 내 방 문을 닫아버렸다.
잔인한 내 자신이 미우면서도.
나의 눈물을 모두 받아주는 그의 다정한 품속이 훨씬 더 두려워서.
그렇게밖에 할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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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주가 지나고 우연히 바닥에 채하연의 명함이 떨어져 있는게 보였다.
그때 결혼식에서 받아온 그 명함.
잠시 망설이다가 무심코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채하연이 왜 연락하라고 했을까? 일부러 명함까지 주면서…

따르릉

[여보세요]

“채하연..씨.”

[네. 누구시죠]

“저. 한예지 인데요”

[한예지? 한예지가 누구지?]

“그때 결혼식에서…”

[아! 아… 맞다. 한예지. 세준씨 동생 결혼식. 그래요. 잘 걸었어요. 좀 만나죠.]

너무 우울하고 기운이 없어서 그냥 전화를 해 보았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할수가 없어서 그냥 그녀의 명함을 만지작거리다 걸어본 전화였다.
선뜻 만나자는 그녀의 응답이 뜻밖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