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쾅쾅쾅!
누군가 대문이 부숴지도록 두드리는데,

지운과 수연이 잠시 서로를 마주보았다.
뭔가를 기억해 낸듯, 수연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대문이 진동하는 소리가 계속 커졌고, 급기야는 문이 떨어져 나갈것만 같았는데.

“지운아. 너 여기에 가만히 있어. 나오지 마.”
“무슨소리야. 왜그래?”
“부탁이야. 제발 나오지 마.”

수연이가 뛰어나갔고,
지운은 곧 그녀 뒤를 쫓았다.

대문을 여는 수연이 보였고,
키크고 눈썹이 짖은 청년이 수연의 어깨를 밀치며 마당안으로 비집고 들어섰다.

“기지배야! 왜 이렇게 느려? 너 굼뱅이라도 삶아 먹였냐? 나쁜 기지배..”
“왜 또 왔어! 시끄럽게 왜 이래!"

“이렇게 큰 집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기지배가. 오빠 길에서 굶고 다니는게. 가엾지도 않냐? 그러니까 니가 나쁜년이지.”
“제발 이러지 마. 주인 아주머니. 들으시겠어.”
“뭐? 주인? 니가 뭐 노예라도 돼냐? 들리면 나오라그래. 그 악독 주인.”

수연이 있는 힘을 다해 그를 대문 밖으로 밀어냈다.
그러나 키가 대문보다 한치는 더 높은듯한 그 청년이 순순히 움직여질리 없었다.
오히려 그는 슬쩍 건드리듯이 수연을 밀쳤는데, 그녀는 힘없이 나동그라졌고,

“수연아!”
그냥 지켜볼수 없던 지운은 뛰어나가 그녀를 붙잡았다.

“지운아! 들어가! 이런 모습 보여주기 싫어!”
수연은 필사적으로 지운을 뿌리치고 다시 대문밖의 청년에게 들러붙었다.

“나가! 여기서 당장 나가!”
“이 기지배가!”
그가 빠른 손으로 수연의 뺨을 돌려쳤다.

“왜 이러세요!”
지운이 수연을 붙잡아 일으키며 소리쳤고,

“어쭈. 이건 어디서 굴러온 귀족이야? 윤기 흐르는 머리털하며…옷 입은 꼴하며. 귀티가 줄줄 흐르네?”

“지운아…제발.” 수연은 치욕과 분노를 못참고 눈물을 터뜨렸고,

“왜 이러시냐구요!”

수연의 오빠는 가래를 끌어오려 지운의 발 밑으로 침을 뱉었다.

“형아가. 사실 돈이 엄청 썩어나는데. 오늘 강도를 만나서. 지갑을 잊어버렸어.
그래서 지금 뻐스값도 없네? 니 같으면 형님이 차비도 없으시다는데,
그렇게 뻣뻣하게 구경만 하고 서있을래? 저 기지배 봐라. 오빠가 나가 죽던 말던.
자기만 잘 사면 된다…이거잖아 지금?”

“어린애가 무슨 돈이 있다고 이러세요?”

“허…이 자식이. 기지배같이 생긴게 어디서 겁도없이?” 그가 인상을 찌푸리며 성큼성큼 다가섰다.

“하지마! 가까이 오지마!” 수연이 필사적으로 막아섰고,

보다못한 지운은..
“잠깐. 기다리세요. 제가 있는건 다 드릴테니까.”

“오. 그래?”

지운이 집안으로 들어가자, 어머니가 잠에서 깨어나신듯, 방에서 나오셨다.

“왜그러니?”

“엄마…괜찮으세요? 깨셨어요?” 당황한 지운은 일부러 침착하려 노력했고.

“그래…이제 약기운때문에 이렇게 늘 무기력 하구나. 에그…내가 어서 기운을 차려야…
근데 수연이는 어디갔니?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것 같던데. 누가 오셨니?”

“아…별거 아니예요. 들어가세요 엄마. 뭐 필요하세요?”

“그래. 그럼 물한잔만 가져다 줘.”

“네.”

서지운은 부엌에서 물을 서둘러 따르고,
엄마에게 가져다 드리고는
윗층 자신의 방으로 뛰어 올라가서, 여기저기 돈이 있을만한 곳들을 뒤져
현금을 챙겼다.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급한마음에 온통 주머니에 넣고 마당으로 뛰어갔는데.
이미 마당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수연아…?”
서지운이 사방을 헤매기 시작했지만, 그녀의 흔적은 아무곳에서도 찾을수 없었다.
앞뒤를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서지운은 동네로 뛰쳐나가
쭈쭈바를 빨고있는 구멍가게 주인 아들 꼬마를 붙잡고 물었다.

“꼬마야! 너! 수연이 못봤어? 저 파란 대문집에 사는 수연 누나. 못 봤어?”
“어? 그 누나? 아까 저기 버스 정류장으로 갔는데?”
“어? 그래. 그래. 고마와.”

지운이 버스 정류장으로 뛰어갔는데,
버스를 앞에두고 수연과 그의 오빠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주위사람들은 차가운 시선만 보낼뿐,
연약한 수연이가 그를 뿌리치려 애쓰는 모습을 보고도 아무도 도우려 하지 않았는데…

“수연아!”
지운이 소리치며 뛰어가자, 수연이 순간. 놀란 눈으로 잠시 멈칫하다가
무슨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기 오빠를 따라 순순히 버스에 올라탔다.

“수연아!”
지운은 뒤로 오는 택시를 잡아 세웠고,

“저 버스 – 좀 따라가 주세요.”
“학생 돈 있어?”
“예. 있어요. 요금 드릴테니까 꼭 따라가 주세요.”
“그래? 내가 오늘 실력 발휘좀 해야겠네~”
택시기사 아저씨는 휘파람을 불며 운전을 시작했다.

몇번의 정거장을 지나도 수연과 그녀의 오빠는 버스에서 내리지 않았다.
30분쯤 차를 쫒아갔을까.
드디어 그녀의 오빠가 수연이를 끌다시피 막무가내로 잡아 버스에서 내리는 모습이 보였고,
지운은 곧 차에서 내리며,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부탁드려요 아저씨.”
서지운이 택시문을 열어둔채 그들 쪽으로 뛰어갔다.

“수연아!”

“지운아!”
지치고 놀란 그녀의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눈물이 보였다.
그 눈물을 본 순간. 지운은 모든 이성을 잃은 듯. 흥분과 분노를 이겨낼수 없어
수연의 오빠라는 사람에게로 달려들었다.

“야…이 애송이가 여기가 어디라고 쫓아와?”

무시무시하게 커다란 돌이 머리에 꽝 와 닿은것 같은 멍한 어지러움이 순간 서지운을 바닥에 넘어뜨렸다.
마치 사나운 짐승이 달려들듯, 먹먹한 아픔이 서지운의 옆구리를 사정없이 찔렀고,

미새한 소리에도 민감한 서지운에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순간이었다.
우박이 쏟아지듯, 끊이지 않고 한꺼번에 몰려드는 거친 주먹날림과 발차기에
서지운은 몸을 방어하기는 커녕, 그저 두 귀를 막았다.
그래서 수연이의 울부짖음도 듣지 못했고,
그녀의 오빠가 낄낄대며 해대던 욕지거리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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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제 말, 안들리세요?”

서지운이 멍하니 김치그릇을 보고있었다.

“교수님. 김치가 그렇게 좋으시면 좀 드시라니까요.”

“어… 그래. 김치 좋지.”

David이 해맑게 웃었다.

“교수님 참. 이상하시네요. 굉장히 무서운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무서워…? 내가?”
서지운은 훗…하고 웃었다.
David의 웃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쓰리고 아파왔다.

“네 어머님은. 뭐 하시니.”

“네? 아… 간호사 이신데요.”

간호사…
그래.
참 어울리는 직업을 택했구나.
수연이라면. 당연히 그 일을 잘 해낼 것이라 생각했다.
지운의 엄마를 돌보던 그녀의 모습은.
천직을 만난사람처럼,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고,
힘든일도 마다않던…
아프고 약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꼼꼼하고 부지런하게 뭐든 알아서 척척 처리하던 수연…

“미국에는. 언제왔어.”

“다음 클라스를 들을려면…인터뷰를 해야 하나요…?”

서지운이 순간 조금 당황했고.
David은 고개를 숙이고 피식 웃었다.

“갑자기 저에게 관심 가져주시는게… 좀 이상해서요.”

서지운이 할말을 잃고 어색하게 웃으며 물을 마시자,

“여섯살때 왔어요. 엄마는…낮에 쉴새없이 일하시고.. 저녁에는 학교 다니시면서 간호사 자격을 따내셨죠. 영어를 못하셔서. 간호사 자격따는데 거의 8년이 걸렸데요.  처음으로 엄마하고 마주보고 저녁을 먹어본게. 제가 열 다섯살때 였을거예요. 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