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다음으로 벌어진일이 더 기가막혔다.

"You're NOT my dad!" Andy가 화를 버럭 내며 방으로 뛰쳐들어갔다.
Dr. Smith가 얼른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갔고...
재혁은 시선을 떨어뜨린채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 미소를 너무나 잘 알고있다.
눈물보다 더 진한 그의 슬픔의 미소라는걸.

"부탁할께.  Andy가 너를..음악선생님을... 무척 좋아해."

뭐? 부탁한다고?
나는 그 자리에 내가 서있는지 앉아있는지도 구분할수 없을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아들... 이라고?"
내 생각이었는지, 내입으로 흘러나온 말인지도 구분이 잘 가지 않았다.

내가 죽어서도 사랑할 그 이름... 하 재혁..
내가 평생을 애써봐도 잊지못할 그의 얼굴. 그의 목소리...
그가 내 앞에 서서 알수없는 이야기를 지껄이고 있었다. 아들이라고. 부탁한다고? 잘 있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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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24세때.
유학을 시작하고 일년이 갖 지났을때였다.
집안형편도 그저그렇고 내 실력또한 그저 그렇고...매일매일 아르바이트를 해도 돈이 항상 모자랐고, 매일매일 공부를 해도 나의 영어는 늘 뒤 떨어졌고, 잠을 못자며 연습을 해도 나의 피아노 연주는 뒷걸음을 쳤다.

음대라는곳이 그렇다. 날고뛰는 연주자들이 다 모여있으니 나같은 보통사람은 한번쯤 짠하고 튀어보지도 못한채...그저 조용히 시키는대로 숙제 해가고, 연습해가고, 연주하고, 교수님들께 혼나고...또 죽어라 연습하는것이 생활이고 습관이다.  가끔 유명한 연주자들이 교환 program을 하러 나타나면 보통학생들은 숨을 죽이고 그 유명 학생들의 연주를 훔쳐보고, 감탄하고, 부러워하고....

하 재혁을 만난것은 나같은 보통 학생에게 아주 희안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그는 세계가 주목하고있는 지휘과 학생이었고, 그의 바이올린 실력은 이미 명성이 하늘을 찔렀다.

그런걸 나는 전혀 몰랐다.
그 날도 늘 그렇듯 혼자 교내식당에서 가장 싼 샌드위치로 저녁을 떼우고 있었는데..

"Hey... excuse me"
잘생긴 청년하나가 내 곁에 다가왔다.
나는 물끄러미 그를 보았는데...
"Um... Are you Korean?"
"yes."
"휴... 다행이다.. 한국말 하죠?"
"..네..."
"저기. 제가 프랑스에서 어제 왔거든요. 근데 돈을 아직 못 바꿔서... 저기.. 저 100 franc 랑 ... 5불이랑...바꿀래요?"
(100 franc 는 $85 정도 됨)
"돈이 썩어났어요?"
늘 돈이 모자라는 나는 그의 말도안되는 환전계산에 오히려 기가막히고 화가 났다.
"아뇨. 그냥. 지금 너무 배가 고파서.." 그렇게 말하며 그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웃었다. 정말 그에게 빨려갈 정도로 허탈하고도 순수한 미소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럼 그냥 꿔달라고 하면 돼잖아요."
"...다시...만난다는 보장 있어요?"
그의 눈빛이 참으로 깨끗하고 맑았다.

나는 아무말없이 내 짐을 챙겨들었다.
주머니에서 10불을 꺼내 그의 손에 집어 주었다.
"다시 못 만나면 천국에서 보죠 뭐. 남은 인생  꼭 착하게 사세요."

그가 다시 미소 지었다.  지나쳐 걸어오는 나의 뒤통수에 그의 시선이 계속해서 느껴졌다.

한 일주일이 지나고  Master Class에서는 악기 반주 실습시간이었다.
교수님의 첫 마디가 걸작이었고,
"Hello Class -- We have a TREAT today!"
교수님뒤에 서있는 청년이 바로 일주일전 그 학생이었던것이다.

"This is 재혁  -- He comes to us from France to perform with our orchestra as a special performer. He has studied under the most famous blah blah blah..."

교수님의 흥분과 긴장은 자리에 앉은 30여명의 학생들을 모두 들썩이게 만들었다.
재혁이 바이올린을 들고 나타났다.
그리고 연주할듯 자세를 취하더니..
"Professor, may I have an accompanist?"
"Of course! That is what this class is all about! Julian --!" 교수님은 신나서 그의 수석 제자를 불려들였다.
"Sorry, professor -- may I have a choice?"
조금은 당황한듯, 교수는 금새 다시 웃으며 재혁에게 말했다. "Of course! Anyone in particular?"
"The young lady. Back there."
그의 손가락이 움직이는대로 30명의 눈길이 돌아갔다.
나도 고개를 돌려 그의 손가락 끝을 찾아보았다.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 의 손가락은 내 뒤쪽을 가리키는것 같았고.

"JooAh? Miss Lee? You want her?"
교수님은 조금은 믿을수 없는듯. 조금은 자신 없는듯....
나는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
"Yes. Joo Ah. I want HER."

교수님은 나를 향해 어색한 미소를 보냈고, 나는 벌벌 떨며 교실앞으로 걸어나갔다.
이런... 이 일을 고마와야 할지...원수로 여기고 분해야 할지...

그는 매너좋은 미소를 짓고 나를 피아노로 손수 안내했다.
그리고는 귓속말로 이렇게 말했는데,

"저...일주일동안 정말 착하게 살았거든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