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연주가 시작되고 나는 그의 아름다운 선율에 홀려서 반주를 하고있는지 그의 연주를 듣고 있는지...꿈만 같은 연주였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고 있었다.
모두들 감동과 환희에 빠져 웃으며 그를 보고있었고,
그는... 하 재혁. 그사람은 나를 쳐다보며 웃고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시작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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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할께."
그리고 그가 지금 내 앞에 서있었다.
헤어지고 사라져 버린지 4년만에.
나의 청춘을 다 불살라 바친 나의 첫사랑이. 4년만에 내 학생의 학부모라고 내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부탁한다고 말했다.

나는 어이가 없고 정신이 흐려져서 그 자리에 서있을수가 없었다.
뒤돌아 서는 나의 팔을 누군가 붙잡았지만,
나는 확인하지도 않고 문을 박차고 밖으로 뛰어나왔다.
어두워져가는 오후 길. 가뜩이나 눈앞에 눈물이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이 오는지, 온통 차가왔다.
나는 죽기 살기로 뛰었다.  달리기 선수처럼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주아야!"

그의 목소리가 멀어질때쯤... 나는 이미 한참을 뛰어와 내가 어디있는지 알수없었다.
너무너무 숨이 가쁘고, 지치고, 눈앞에는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벽에 부딛쳤는지...
뭔지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쓰러졌고 그 다음일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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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떠보니 병원이었다.
그리고 내 앞에 어느 청년이 앉아있었는...

"감독님!"
현지원이다.

그는 피곤했는지 눈을 부시시 뜨고 나를 보았다.
나는 벌떡 일어나려 몸을 일으켰는데.
어.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죽고싶었어?"

어. 이 인간이 어떻게 알았지?

"그렇게 세상에 광고하면서 죽고싶었어?"

"무슨..."

현지원이 신문을 꺼내 내 얼굴로 들이 밀었다.

개구리같이 두팔 두다리를 벌리고 내가 엎퍼져 있는 사진이었다.
그리고 온통 사방에 사람들이 나를 보고있었는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성탄이 다가오면서 불꽃축제를 하는일이 늘었다.
강남 한복판에서 불꽃축제와 연예인들이 공연을 하는 행사가 있었는 모양이다.
어찌됬는지 나는 불꽃마당 한복판에 엎퍼져 쓰러졌고,
나때문에 여러가지 행사가 중단됐다는...
치욕스런 스토리가 펼쳐졌다.

내 다리가 부러져있고, 팔도 한쪽은 붕대로 감겨있었다.
온몸에 영 감각이 없었다.

"저....전신마비예요..?"
그는 풋. 하고 웃었다.

저 인간이...? 아니 - 그런데 왜 저사람이 나를 병원에 데려온거지?
"감독님이 왜..."

"어쩌다가 끌려나갔다가...너 아는척하고 실어오느라고 정말 창피했다."

아니..뭐? 창피했다고... 하긴...개구리같이 엎퍼진 내 모습이 퍽 아름답진 않았다.

"왜요. 모른척 하지 그러셨어요."
그래도 나는 기분이 나쁜걸 어쩔수 없다.

"이.주.아."

내이름을 또박또박 부르는 현지원.

"2학년 4반. 공 유식 선생님. 충원 중학교."

할말을 완전히 상실한 나는 커다란 눈으로 그를 또려지게 바라보았는데..

"왜 너한테 자꾸 반말하냐 그랬지?"

"너...나랑 동갑이었어?"
그가 어이상실.. 피식 웃었다.

"마구 기어오르는군.."

"너두.. 2학년 4반이었어? 나랑 같은반이었어?"
"아니. 난 그때 고등학생이었거든."

바로 이럴때 나는 내가 밉다.

"나 현지원이다. 현지애 오빠."
"아....."

지애는 내 짝이었다. 중학교 내내 붙어다니다가 고등학교때 지애가 이민을 가서 연락이 끊어졌었는데... 지애 오빠를 내가 만났었던가?

"우리집에 자주 놀러왔었지."
"어..."
"그땐 귀엽기라도 했지."

아니 이사람이...

"몸조리 잘하고. 음악선생이 목소리만 잘 나오면 되니까 다음주부터 학교 나와. 병원비는 월급에서 제거한다."

"저기요! 아니, 총감독님 -- "

그가 뒤돌아보는 눈매는 늘 학교에서 보는 차가운 그모습이었다.  방금전까지는...아니었는데..

"지애는...잘 있어요?"
"응."

쿵.

어머. 어쩜저렇게... 고마와 해야하는데 전혀 고마운 느낌이 나질 않았다.
반가와 해야하는데 전혀 반가운 기분도 들지 않았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 차갑고 오싹할까?
아주 잠시동안은 푸근하다는 착각이 들었었다.

문이 다시 열리고.
정말로 다시 보고싶지 않은 얼굴이 눈앞에 들어왔다.

"주아야. 좀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