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도 잠시 참는듯 하다가 웃었다. 그의 웃는모습은. 정말 처음보는 모습이었다.
학교에 취직한지 일년 반.
그와 마주치고 상대한것은 매주 한번정도?
언제나 차갑고 싸늘하게만 느껴졌던 사람이었다.
찌질한 반찬냄새가 뭍혀있고 굉장히 창피한 몰골을 하고있었고,
또 온몸이 안 쑤시는데가 없었는데,
그 순간만큼은 세상 모든것이 멈춘듯,
잠시동안 재혁에 관한 모든 가슴아픈 감정이 멀어져가는 착각이 들었다.
또 그 착각은 나를 과거의 한순간 속으로 빠지게 만들었다.
그때 지애와 나는 중학생이었고, 우리는 어느 고등학생을 함께 흠모했었다.
심각한 사랑이 아니었고, 그냥 장난으로 좋아하기 시작한 어느 남학생이었는데,
그는 키가 크고 운동을 잘하는 김 영석이라는 학생이었다.
우리학교는 중학생과 고등학생들이 운동장을 공용했었는데, 매번 체육시간이면 김 영석의 반과 우리 반이 함께 운동장을 쓰게 되었다.
왜 갑자기 그 일이 생각났을까.
“총감독님. “
갑자기 심각해진 내 표정을 보고 그가 미소를 거두었다.
“현감독.”
그때 그의 뒤로 이사장님이 나타나셨다.
그가 돌아서, 정중히 인사를 올리자,
“아니…자네가 왠일인가? 차림새가 왜 이모양이지?”
“죄송합니다.”
“이사람은…?” 이사장님이 나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안녕하세요. 이 주아 입니다. 초등학교 음악을 맡고있는..” 목이 잘 구부러지지 않았지만 나는 힘겹게 인사를 했다.
“아니…이런 몸으로 학생을 가르친다고 나왔단 말씀입니까? 우리 학교 체면이…”
“제가 나오라고 했습니다.“ 현지원이 급하게 끼어들었다.
이사장이 더욱 인상을 찌푸렸고…
“안으로 들어가시죠. “ 현지원이 이사장을 자신의 사무실로 안내했다.
생뚱맞게 서있는 나를 돌아다본 현지원은 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주는 들어가서 쉬시고. 다음주에 제가 한번 찾아뵙죠. 그때까지 학교일은 신경쓰지 마세요. 그럼. “
그는 짧은 목례를 하고 문을 닫았다.
그에게 김영석에 관한 얘기를 해주고 싶었다. 왠지. 나는 장난이었지만 지애가 그를 좋아했던것이 마음에 걸려서... 그때있었던 모든 일부터. 현지원이 모르는 지애에 관한 모든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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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낑낑거리며 돌아와 보니...
재혁이 기다리고 있었다.
“몸도 안좋은데 … 왜 일을 나갔어..?”
“재혁아....”
“추운데 어서 들어가. 난…이거만 주고 가려고…”
“언제부터 기다린거야..?”
“얼마안됐어. 도와줄까?”
“괜찮아. 근데… 이게..뭔데…”
그가 흐릿하게 미소를 지었다.
“졸업선물.”
돌아서는 그의 모습을 보니 금새 눈물이 핑 돌았다.
“재혁아!”
그가 걸음을 멈추고…
“가지마.. 추운데..좀.. 들어왔다가 가..”
“아니. 그냥 갈께. 너 푹 쉬고. 어서 나아야지.”
“... 피하는거야?”
그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눈길을 찌푸리며 먼곳을 보았는데..
순간 나는 이런저런 생각이들었다.
재혁… 그래. 최주희가 떠나간 후로… 그후로도 벌써 한참이 지났다면…
그리고 내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있다고 생각했다면…
다른 여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그제서야 들었다.
아니면 나에게 다른 남자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너…여자 있니..?” 이럴때는 용감한 사람이 이기는것이다.
그가 힘든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한참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이 내 마음을 차분히 준비시켰다. 그가 뭐라 말할지…이미 짐작이 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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