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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애의 이야기*

지애와 내가 장난삼아 김영석을 눈여겨 보던때가 중학교 2학년이다.
중학교 3학년때 여름방학, 지애의 가족은 모두 여행을 갔다.
제주도였는데.
그곳에서 지애의 가족들은 관광을 즐기고 있던중,
지원이 심한 폐렴을 앓게되어 꼼짝없이 병원신세를 지게 되었다.

여행계획이 이렇게 되버리자,
부모님은 지애라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해주고, 혹시라도 병이 옮을까봐 잘 아는 친척집에 보냈다.
그 친척집은 오징어 낚시를 하는 집이었는데. 그곳에서 여름방학동안 오징어를 잡아 말리고 돈을 벌러내려온 학생이 있었는데.
바로 김영석이었다.  운명적인 우연이었다.

순진하기 그지없는 지애는 운동으로 다져진 그의 건장한 체력과, 거친풀처럼 자라난 그의 묵묵하면서도 남자다운 성격에 푹 빠져버렸다. 김영석은 처음에 그녀를 피했다. 지애가 너무나 순수하고 깨끗했기때문에.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동안 지애는 친척집에서 김영석과 몰래 어울려다녔다.
귀여운 그녀의 매력에 김영석 역시 자기도 모르게 빠져들었고,
둘은.
사랑했다.
이때 주고받았던 편지박스 한통을. 지애는 주아에게 맡아달라고 부탁했었다.

여름방학이후에 달라진 지애를 식구들은 이해할수없었다.
성적이 날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반항하는 그녀의 행동이 날이갈수록 심각해졌다.
사춘기때 흔히 있는, 그런 것이었지만 엄격한 지애의 아버지는 그녀를 심하게 야단쳤다.
그리고 그 다음해. 지애가 고등학생이 되자마자.
아버지는 미국에서 사업제안을 받았고 지애를 걱정하던 부모님은 이민가는것이 가장 좋은결정이라 믿고 3개월만에 시카고로 떠났다.

지애와 김영석은 더 애절하게 서로를 사랑하고 그리워했다. 몰래 편지를 주고받았고, 전화통화를 했다.
주위 친구들의 도움으로 지애는 돈을 모으면 어떻게 해서든 김영석과 통화하려고 애썼다.
김영석역시 지애곁으로 가고싶어했다.
그때 찾아온 기회라는것이 마약거래였는데. 가난하고 어두운 과거를 보낸 그에게 믿을수없는 어마어마한 사례가 주어지고, 그는 그 유혹을 이겨내지못했다. 그는 갑자기 부자가 되었다. 평생 처음으로 하고싶은것을 다 할수있었고, 가지고싶은것을 다 가질수있었다.  지애만 빼고.
그는 급기야 미국으로 지애를 찾아간다.

그때 지애는 대학교 1학년이었다. 문제는. 그녀의 대학교가 부모님의 집에서 3시간이나 떨어진 명문대였고, 그녀는 기숙사 생활을 하고있었다. 
지애를 너무 사랑한 김영석은 자신이 한국에서 사업에 성공하여, 이제는 안정되고 편안한 생활을 하고있다고 지애를 속였다.  두 사람은 뜨겁고 어리석은 사랑에 빠져 다른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던것이다.

영석은 한국으로 가서 공부를 계속 시켜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안정되게 잘 살고있는모습을 보시면 부모님도 언젠가 받아주실것이라고… 그리고 영석은 정말로 지애를 위해 뭐든 해주려고 마음을 먹고.
두사람은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2년동안 영석은 돈을 악착같이 긁어모았다.
지애를 한국에있는 대학교에 보내주면서, 생활비와 학비를 꼬박꼬박 대주었다.
그러나 그의 실제 생활은 중국과 일본을 오가며 집단의 명령을 따라야했으며, 이미 너무나도 깊이빠져버린 그의 마약거래는 사태가 심각해져, 결국 지애는 모든사실을 알게되었다.
그녀는 영석이 그 세계를 빠져나오도록 안간힘을 썼다.
김영석도 지애를 위해서 그만두고 나오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결국 두사람은 쫓기는 신세가 되어
전국을 누비며 도망다니는 생활을 시작하게된다.
집단의 모든 비밀을 훤히 알고있는 김영석을 멀쩡히 떠내보낼리 없었다.
그들은 끈질기게 두사람을 추적했다.

밑바닥생활을 하며 전전긍긍하던 김영석과 지애는. 결국 그들에게 잡히고.
김영석은 각종 죄명을 뒤집어쓰고 감옥에 가게되었다.
지애는 술집에 팔려갔다.

그리고 그렇게. 비참한 생활을 하며 5년이란 세월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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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원은 몇시간동안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한없이 아프고. 가슴이 무너져내려. 끝없이 서러운 지애의 오열에.
그래도 그는 자꾸 자꾸 반복해 말했다.

“살아있어줘서. 고마와. 난 그걸로 감사해.”

그들을 지켜보며 나는 평생처음 느꼈다.
남녀간의 사랑보다 아름다운것은.
이런거구나...

슬픔을 이길수있는것은. 감사로구나...

그리고
눈물이란것은. 정말 수도꼭지처럼 틀어놓으면 계속 나오는구나. 눈물은. 몇시간이 지났다고. 이제 다 썼다고 안나오는게 아니구나… 나름. 많이 울어봤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나자신에게 물어본다.
사랑이…뭐길래…

김영석은 자기나름대로 지애를 사랑한다고 생각했겠지. 지금도 그는 그녀를 사랑하고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의 사랑은.
용서받을수없는 범죄가 되었고.
한사람을 파괴시키는 욕심에 불과한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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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애가 지쳐서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깡패들이 현지원의 거주처를 모두 알고있으니 우리집에서 며칠지내라고 내가 고집을 피웠는데,
지애가 잠들어버렸으니 어쩔수없이 현지원도 남아있게 되었다.
밤이 깊어 잠시 물을 마시러 나왔을때, 소파에서 자고있던 현지원이 바깥 베란다에 혼자 서있었다.

“괜찮아요…?”

…그의 표정이 놀랄정도로 평화롭다.

“응…”
“이제…어쩌시려구요…”
“부모님께로 보내줘야지.”
“너무 놀라시겠어요…얼마나 이날을 기다리셨을까요…”
“많이 힘드시겠지만. 지나온 10년보다는…괜찮을거야.”
“너무나 마음이 아프셨을텐데…”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지. 하루하루 목이 조이는것처럼.”
“제 마음이 이렇게 아픈데...”

“나 때문이라고 생각했었어.”
“네?”
“제주도에서…내가 아프지만 않았어도.”
“감독님…”
“그리고. 지애가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날. 지애를 만나기로 했었는데…차사고가 났었거든… 그래서 지애를 못만났어.”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래서 더 깊은 상처를 지고 사셨군요... 목숨바쳐 지애를 찾아다니셨구요..."

“그래도 이렇게…치유를 받게되는구나. 10년을 넘게 나를 괴롭히던 병이…수술할때 아프지만. 지금처럼 마취에서 깨어나면 더 많이 아프지만. 그래도 병은 없어졌으니까. 이제 회복될것이니까.”

“맞아요…. 시간이 지나가면서 회복될거예요. 아픈기억보다…더 소중하고 행복한 기억들이. 생길거예요.”

“너를 만났을때…”
그가 나를 돌아본다.

“회복되기 시작했어.
희망이라는 것은. 절망하는사람의 사막에 생수같은 것이지.
너가 내 오피스에 면접을 보러 들어온날.
나는 모든걸 포기하고 미국행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있었거든.”

뭐라 할수없는 감동이 나를 사로잡았다.
현지원은 나를 보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와.”

그가 나의 손을 따뜻하게 붙잡아 주었다.
나는 잠시 그의 얼굴을 보다가.
확 그를 껴안아 버렸다.

“잘 하셨어요. 정말 정말 그동안 수고 많이 하셨어요. 장해요 지원오빠. 정말 너무너무 장해요…”
그의 가슴이 흔들린다.
…그가 울고있다.
처음으로 내가 그를 위로해준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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