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되어 눈을 떴는데, 온통 주위가 너무 고요했다.
늦잠을 잤나?
둘러보니 지애가 없다.
현지원도 없다.
아니. 대체?
서둘러 옷을 챙겨입고 아파트 주위를 둘러보는데,
다행히 주차장옆에 현지원의 모습이 보인다.
“감독님!”
그가 나를 돌아보는데. 표정이 좋지않다.
“지애는요?”
그가 깊은 한숨을 쉰다.
피로와 상처로 지친 그의 모습이 곧 쓰러질것만 같다.
“괜찮아요?”
“없어진것 같아.”
“네? 지애가요?”
급기야 그가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감독님!!”
“오빠!”
눈물 가득고인눈으로. 지애가 저쪽 골목에서 현지원에게 뛰어온다.
“지애야!”
현지원은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급히 지애에게 다가갔다.
“오빠…미안해…미안해…”
현지원은 지애를 끌어안았다.
“어디 갔었어…!”
“그놈들한테...돌아가려고…나왔는데… 갈수가…없었어. 돈생각을 하면. 가야 되는데. 오빠맘을 생각하니까…갈수가…갈수가 없었어.” 지애가 흐느끼고...
“바보같이…걱정할거 없다그랬잖아…”
휴….
한숨만 나왔다.
그때 현지원의 전화가 울린다.
우리는 모두 굳었다.
누굴까. 혹시…
“여보세요….”
그의 오랜침묵이. 우리의 애간장을 태운다.
“그래. 좋아…”
짧은 이 두마디로 그가 전화를 끊는다.
드디어 돈을 받으려고. 아니. 사람 피를 말리는 독촉을 하기 시작하는구나.
현지원은 일부러 웃는다.
“자. 다들 배고픈데. 국밥이나 먹으러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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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애의 말로는. 갚을 빚의 액수가 어마어마하다. 아무리 현지원이 애를 써도 그렇게 큰돈을 마련할수 있을까. 미국에계신 지애의 부모님께도 그런돈이 있을리 없고. 현지원은 부모님께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고 찾았다는 말과 곧 미국으로 지애를 보내겠다는 소식만 전하고 돈문제는 의논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냥 도망쳐 버려요. 미국으로가면. 그놈들이 못 쫒아올거예요.”
내 아이디어의 한계는 이러하다.
“빚을 졌으면. 갚아야지.”
현지원의 고집은 미련하게만 들렸다.
“그리고…내가 없어지면 지금 내 주위에 모든사람들을 괴롭힐거야.”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안타까운 눈으로 나를 보았다.
그는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고. 또 그들이 내 얼굴을 봤고.
현지원의 주민등록증을 주고왔으니. 그의 직장이나 거주처등. 알아내려면 못알아낼것이 없겠지.
그러니까 그날 우리를 순순히 보내준거지…
그렇다면 꼼짝없이…
나는 바로 이때. 해서는 안될 생각을 마음에 품었다.
그리고.
실천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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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동.
띵동.
나오지 말아라…아무도 나타나지 말아라…비는마음으로 초인종을 누른다.
아니야. 내가 지금이라도 돌아서야지. 지금이라도..
그때, 문이 열렸다.
재혁이가 놀라서 굳은표정으로 나를 본다.
전에 말했듯이 재혁의 부모님은 막강한 재산을 가진 분들이었다.
그분들에게 있어 현지원이 필요한 돈은.
매년 자신들이 졸업한 대학에 기부하는 금액의 반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걸.
나는 불행하게도 알고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아는사람중에. 이 가족들보다 부유한 사람들은 없었다.
“주아야…”
그의 얼굴이 말랐다. 그동안 잠도 잘 못자고, 여러사람들에게 시달려서. 단 며칠만이었는데도 그는 여위어있었다.
“왠일이야.”
“부탁이있어서 왔어.”
그가 침묵하고 나를 살핀다. 이상하겠지.
헤어지자고. 나를 버리라고 날리부르스를 치던 내가 떡하니 나타나서 갑자기 부탁이라니…
그것도…그 사람을 위한…
“놀라지 말고…들어줘. 싫으면 거절해도 좋아…. 아니. 아니다. 내가 미쳤나봐. 미안해.”
차마 말을 할수가 없다.
내가 재혁에게 잠시나마 돌아온 이유가 현지원때문이라면.
차라리 그를 돌로 쳐서 쓰러뜨리지.
이건 못할짓이다.
재혁이 돌아서는 나의 손목을 붙잡는다.
“왜 그래. 무슨일이야.”
“아니야. 내가 정신이 돌았나봐. 오는게 아닌데. 잘못왔어. 미안해.”
“주아야!”
그가 내 어깨를 붙들었다.
“왜그래. 말해봐.”
쥐구멍. 나는 지금 쥐구멍이 필요하다.
“나때문에. 온게 아니지? 너한테 무슨일이 생긴거야?”
사랑하는 사람의 직감이라는것은. 인정하고 넘어가야한다.
“내가…해줄수있는 일이면. 뭐든지 말해봐. 너. 괜찮은거야?”
“그래…괜찮아. 그리고…아무것도…아니야.”
그의 팔을 조심스레 떼어놓고, 나는 뒤돌아서 걷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 나쁜년이다.
괜시리 가만히있는 재혁을 또 다시 흔들어놓고…
그렇다해서 아예 용기를 내어 현지원을 위해 뾰족한 수를 마련한것도 아닌데.
나는 왜이리 미련한짓만 하는것일까…
“주아야. 내가..너를 도울수있게 해줘. 너에게 무슨일이 생긴거. 맞지? 헤어지더라도.
그래. 이제 못만나더라도 나에게 한번만 기회를 줘. 무슨일인지. 말해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간절하고 진실한 그의 마음을…나는 파렴치하게 이용하려고 했던것일까..?
다시 사랑할수 없는걸 알면서. 그저 그가 돈이 많은걸 알기에,
너 아직도 나 좋아하지? 너네 돈 많으니까 나쪼금만 빌려줘…하려고 했던건가?
내가 정말 미친거지. 돌은거야.
눈물이 흘러내렸다. 재혁의 표정은 더욱 더 초조해졌다.
“주아야…”
그때 내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지애다.
“오빠가. 그놈들을 만나러 간거같애! 주아야! 어쩌지? 오빠 몸도 성치않은데… 난 집에 같혀버렸어. 오빠가 절대 나오지 말라고…친척분이 날 붙들고 계셔서. 따라나갈수가 없었어. 어떻게 해…오빠가 돈도 없이 나갔으면…또 다치면 어떻게해…”
“걱정하지마 지애야. 내가 가볼께. 찾을수있어... 내가 전화할께.”
재혁이 걱정스럽고 불안한듯 나를 본다.
“무슨일이야. 도데체.”
“재혁아 미안해. 나는… 괜찮으니까. 제발 걱정하지마. 나같이 못된 기지배…신경도 쓰지마.”
그의 손을 뿌리치다시피 하고 나는 뛰었다.
정말 눈썹 휘날리도록 뛰어 큰길에 나오자 택시를 잡아탔다.
제발…제발…하는 마음으로 병원에서 몰래 적어놨던 현지원의 주소로 찾아갔다.
정말 다행히도 도착하니 마침 코트를 입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채로 밖으로 나오는 현지원이 보였다.
그가 안보이는 뒤로 쫄쫄 따라갔는데, 그는 조용한 정원뒤에 좀 어둑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고, 현지원을 말려야하나 어째야하나…망설이는데.
저렇게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지금 뭘하려고…
예상대로 대여섯명정도의 놈들이 껌을 씹다 침을 밷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야…약속시간을 10분이나 까먹어?. 이 간땡이 부은놈…”
“세 봐.”
그가 봉투를 건내주는데,
“허. 이 자식이. 어디서 반말을 짹짹하고,” 깡패하나가 열받아서 가까이 나서는데, 두목으로 보이는사람이 그를 막는다. 두목은 천천히 돈을 세어본다.
“야. 이게 다야?”
“한달만 기다려. 곧 구할테니까.”
“한달씩이나 기다리려면… 이자가 좀 붙는데.”
현지원이 분노를 삭히려고 입술을 깨문다.
내 심장이 더 쿵쾅쿵쾅. 경찰서 전화번호를 아예찍어서 전송버튼에 손가락을 대기하고…
“얼마나.”
“한…이천?”
말도안돼는 그들의 요구에 현지원이 열받은듯 눈을 감는다.
나쁜놈들.
“자꾸 이러면. 법적으로 해결할까?”
“법적으로? 뭘 어떻게?” 두목이 얼굴을 찡그린다.
“너희 변호사 데려와.”
“이 자식이 겁도 없이!” 뛰어드는 다른놈을 두목이 가로막는다.
“싫지? 그럼 그냥 기다려.”
“너…진짜 미친놈이다…넌. 그렇게 얻어터지고. 정신 못차렸어? 경찰 아찌들이. 다 우리 친구다 이짜샤.”
전송할까…말까…내 손가락이 부르르…떨리고.
현지원이 숨을 길게 내 쉬고,
“한달후에. 여기로 와. 약속한만큼 못가져 오면. 그땐 니들 맘대로 해.”
두목이 날카로운 눈으로 현지원을 노려본다.
깡패들은 두목눈치만 보고. 현지원을 보며 씩씩댄다.
두목이 픽. 웃고는 떠나려는듯 돌아서더니,
“배짱있는건 맘에 드는데… 쟤 말버릇좀. 어떻게 해라..”
기다렸다는듯이 다섯명이 짐승같이 몰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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