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하고 아름다운 가을 오후였다.
햇빛이 찬란하다 못해 쩌렁쩌렁 퍼져나갔고,
이 눈부신 광경아래 한 여인이 커피를 홀쭉이고 있었으니...

그녀의 벽에는 액자가 즐비했다.
스탠포드 대학.
죤스홉킨스 메디탈스쿨.
서울  xx 대학병원 소아과 의사.
거기에다 그녀의 아파트는 예쁘고 깔끔하고 화려하고 세련된 모습이었다.
혼자 마시는 커피에도 모든 격조를 갖춘. 커피와 커피잔. 은수저. 각설탕. 그리고 집에서 갓 구워낸 쿠키.  그녀의 얼굴은 또한 아름다왔다. 몸매도 모델은 저리가라였다.
세상이 이렇게 불공평할수도 있을까?
그녀는 완벽한것 아닐까?
정 다희.
32세.
아름답고 똑똑하고 성공적인 여의사.
그녀는 말그대로 세상에 부러울것이 없었다.
남자?
단한번도 남자를 사귀어보지 않았다.
학교다닐때는 정신없이 공부만 했고.
의사가 된이후로는 정신없이 일만 했고.
그녀 주위의 친구들이 결혼하고. 아이낳고. 이혼하고. 재혼하고.
하는 모든 모습들을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그렇게 엎치락 뒷치락 정신없이 살아가는 친구들이 그녀는 안스럽기까지 했다.
왜 이렇게 완벽한 자유를 포기해야해?
사랑? 외로움?
그런게 왜 중요한데?
그녀는 그렇게 믿었다.
혼자 있어도 그녀는 늘 밝은 얼굴을 가지고 있었고 커피향을 만끽하며 커피광고를 하듯 미소를 그윽하게 지어보았다.

띵동.
그녀는 스크린쪽으로 걸어갔다.
"누구세요?"
스크린안에 선남선녀가 보였다. 수줍은듯 웃는 여인옆에 듬직한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옆집에 이사왔습니다. 인사드리려구요"
그녀는 귀여운 두 부부가 첫눈에 맘에 들었다.
그래서 이 완벽한 조용함을 선뜻 그들과 맞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안녕하셔요. 저. 이거. 떡은 아니구요..저의 와이프가 직접 구운 파이인데요.."
다희는 예쁘게 포장된 박스를 받아들었다.
"들어올래요?"
"그래도 돼요?" 수줍은 새색시같았다.

두사람은 손을 꼭잡고 문을 열었다.
남자는 밝고 상쾌한 인상에 예의도 바르고 키도 훤칠했고, 여자역시 귀엽고 단아한 모습이었다.
"커피 할래요?"
"감사합니다."
"정다희라고 해요."
"전... 이하림이구요..."
"서민우라고 합니다."

"결혼하셨나봐요?" 다희는 웃으며 물었다.
"네..사실은 한달전에 결혼했는데 -- 그리고 한달전에 이사왔거든요..근데 제가 워낙 수줍음이 많아서...벼르고 벼르다가 오늘은 민우씨한테 미안해서...따라나왔어요"
"미안은.." 민우는 사랑스런눈길로 아내를 쳐다보았다.
"민우씨는 이웃도 사촌이라고..꼭 인사드리고 싶어했거든요..."
"그래요. 잘왔어요. 한달이면 어때요? 전 사실. 오늘 처음 집에서 쉬는걸요."
"어머. 그러세요? 그러게. 전 이집이 비어있는줄 알았어요."
다희는 웃으며 둘을 바라보았다.
겉으로는 그들이 정말 귀여웠지만 속으로는 에이구...이제 애 생기고.. 그 날씬한 허리도 없어질텐데..하는 생각이 퍼뜩들어서 이러면 안돼지 싶었다.
"의사 선생님 이신가 보네요" 민우가 그제서야 벽에 있는 액자를 발견했다.
"아. 예... 두분도 아이 생기시면 제가 많이 그리울걸요?"
"아이요?" 수줍게 끼득거리는 두사람을 다정하게 바라보며 다희는 기분이 좋았다.
"어머. 우리 민우씨랑 같은 학교 나오셨네요."
"그래요? 어디?"
"스탠포드요. 거기서 박사학위했거든요."
"아...그래요? 생각보다 어리지 않나봐요..?" 다희는 세삼 놀랬다.  한국에서 이런 우연이 쉽지 않은데... 그것도 옆집사람이 같은 대학을 먼 미국에서 다녔다니.

"하림이가 끝까지 고집을 부렸어요. 저 공부 마치고 결혼하겠다고.. 공부에 방해된다고... 그래서 미친듯이 공부하고 부랴부랴 마쳤죠. 논문도 어떻게 썼는지. 기억이 안나요.."
세사람은 함께 웃었다.

젊은 부부가 떠나고 나서 다희는 예쁜 박스를 열어보았다.
베이킹을 즐기는 다희에게 하림의 파이는 무척이나 맘에들었다.

갑자기 베이킹 클라스에서 배웠던 케잌 생각이 났다.
깔끔하게 모아둔 레시피 박스를 꺼내든 다희.
케잌레시피를 천천히 찾고있는데 ..
그안에서 사진 한장이 툭 하고 떨어졌다.

다음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