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우와 그의 형...
쌍동이 처럼 닮은 두사람이 그렇게 다를수가 있을까... 예의바르고 상냥하고 똑똑하고 밝은 민우. 그리고. 겨우 두번만났지만 무뚝뚝하고 예의없는 그의 형.
남의 일에 사사건건 상관하는 다희는 아니었지만. 그들의 미스테리가 궁금해졌다.

다희는 커피를 마시며 여유로이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진료를 시작한 다희는 제일먼저 민지의 방을 찾았다.
아침일찍이었는데 준기가 벌써 와있었다.
들어가 인사하려다가 그녀는 멈칫하고 준기와 그의 어린딸의 모습을 눈여겨 보았다..
준기는 딸에게 웃으며 얼굴표정을 이리저리 바꾸며, 손짓 발짓 다해가며 동화책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 우스꽝스러운 그의 모습이. 참으로 순수하고 아름다와 보였다.
민지는 끼득끼득 웃으며 아빠의 이야기를 즐거워했다.
"어.." 준기가 다희를 먼저 발견했다.
"민지야. 의사선생님 오셨다. 인사드려."
커다랗고 맑은눈을 가진 민지는 머리카락을 모두 잃어 하얀 모자를 쓰고있었다.
이런 상황에 무척이나 익숙한 다희에게도 목메쳐오르는 감정을 누르기가 쉽지않았다.
"민지.. 여기 병원. 맘에 들어요?" 다희가 다정하게 다가가 민지의 눈을 마주보았다.
"네...아빠가 더 자주 오실수있데요. 그래서 좋아요."
다희가 준기를 쳐다보자, 준기가 웃으며 말했다.
"일하는곳이 바로 옆이야. 점심시간이나 쉬는시간. 퇴근시간에 길에서 낭비안하고 바로바로 올수있게됬거든. 오피스텔도 바로 옆으로 찾아서.. 정말 다행이지..."
"정말 잘됐네...민지. 좋겠다. 응?"
민지는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희는 민지의 차트를 살피고 꼬마의 상태를 여기저기 살펴보았다.
좋지않았다. 어서 골수이식을 받아야 희박한 가능성이라도 찾을수있는 시기까지 다다른 아이였다.
옆에서 웃으며 떠들고 서있는 준기를 보자 가슴이 미어졌다.

"와...민지는 정말 눈이 크고 예쁘다.. 민지 아빠는 어렸을때 눈이 요렇게 쪼끄마..했었는데..."
민지는 금새 끼득끼득 웃었다.

민지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준기와 잠시 병실밖으로 걸어나왔다.
"민지...많이 안좋은거지...?" 방금전 시시덕대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여리고 떨린목소리로 준기가 물어왔다.
"오빠. 내가 방송국에 연락을 좀 해볼까해. 민지 혈액형도 특이하고...모험이지만. 모든수를 다 써보고싶어. 꼭 찾아낼거야. 골수이식. 곧 시킬수있을거야."
준기의 눈가에 참아왔던 눈물이 희미하게 맺혀왔다.
그는 곧 고개를 돌려 다희의 눈길을 피했다.
"오빠. 약해지지마. 지금은 좋은생각만 해. 좋은일이 생길거라고. 꼭 믿어야해."
"..고마와..다희야..."

준기는 힘없이 다희에게 웃어보이고,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잡아주었다.
그의 뒷모습이 너무나 아파서 다희도 맺히는 눈물을 억제할수가 없었다.
"어머. 그분이네요!"  김간호사가 힐끗힐끗 보며 다희옆으로 다가왔다.
"응? 그분이라니?"
"저분이요.. 저희 오빠가 대학에서 미술전공하거든요.. 그래서 아는데, 이번에  그 미술대학에서 특별교수로 초청했는데 다 마다하고 이옆에 조그만 화실에 다니신다쟎아요...딸하고 시간 보내야한다고..."
"그래...준기오빠...어릴때부터 그림을 참 잘그렸는데..."
"선생님..우세요? 저분 아는분이셔요?"
"...참. 좋은사람인데."

하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다희는 방송국에 다니는 친구 현수에게 곧장 전화를 걸어 무리한 부탁을 했다.
"그래. 9시뉴스에는. 안될까? 스페셜 코너같은거. 열어줘. 아예 한시간 내내하는 다큐같은것도 좋지만..그런건 민지에게 너무 힘들거같고. 내가 직접이라도 할테니까. 제발 부탁이야."

그날은 무거운마음으로 퇴근을 했다. 오빠 화실이 옆이라는데....
다희는 용기를 내어 화실을 찾아갔다.

문을 살짝열고 안을 들여다 보니 누군가가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준기오빠는 자리에 없는듯했다.

"저...실례합니다..여기..신준기씨 혹시 계시나요?"
"나갔는데요"
그림그리던 사람은 돌아보지도 않고 짦게 대꾸만했다.
요즘 매너 나쁜사람들이 왜이리 많아? 생각하며 잠시 발을 안으로 들여놓은 다희.
그제서야 다희쪽으로 고개를 돌린사람은.

민우. 아니. 그의 형이라는 사람이었다.
그쪽도 나름 놀란표정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사흘내내 이시간대에 쭉 이런식으로 불쑥불쑥 만난 두사람이 아닌가.

둘은 서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이런 어색한 30초의 마주봄은 마치 30시간동안 북극에 다녀온것같은 썰렁함으로 온방안이 텁텁해졌다.

"누군데 자꾸 내앞에 나타나죠?" 그가 먼저 무심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그쪽이야말로."
"지금. 반말했어요?"
"아니요. 일종의 줄임말인데요. 한국말 잘 못해요?"
그는 어이없다는듯이 풋. 웃었고. 곧 다시 돌아앉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깨너머로 보이는 그의 그림은 참으로 뜻밖이었다. 미술에대해 전혀 모르는 다희가 보기에도 무척이나 신비롭고 아름다운 --- 그 누가 봐도 한번 보고 지나치기에 아까운 그림이었다.

"준기 오늘 안와요."
"진작 말해주지!"
"또 반말이네?"
"죄송한데요. 그건 그냥 혼잣말 이었거든요. 세상에서 나는 소리가 다 그쪽들으라고 나는 소리가 아니예요."
"..."그는 재미있다는듯 다희를 잠시 바라봤고, 다희는 곧장 뒤돌아서서 화실을 빠져나왔다.

왠지 다희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열받은것일까? 왜? 아니. 황당하지않은가. 왜 자꾸 그를 만나는것이며. 만날때마다 더해지는 이 불쾌함.  다희는 곧 자신을 진정시켰다. 이런하챦은일로 자세가 무너지면 안돼.

"이봐요."
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는 이상황. 다희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