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가 정말 쑤시고 들어와 다희옆으로 끼어 앉았다... 가뜩이나 글래머한 그녀가  다희옆으로 바짝 다가 앉으니 다희는 그녀의 향수와 섹시한 몸매에 숨이 막힐것만 같았다.

"어머..미안해요..다희씨. 제가 좀 풍성해요.." 까르르 웃는 그녀는 얄밉다 못해 귀엽기까지 했다.
준기도 하는수없이 피식..웃었다.
"민지얘기..들었어. 민지-- 내가만든 케이크 좋아했는데 - 내일 가봐도 되지?"
"그래.. 그랬지...근데 음식은...많이 못먹어.."
"아...그래...그럼..." 장난치던 지수도 풀이 죽었다...
"근데, 두 사람 무슨 얘기 하고있었어?"
"그냥... 명우얘기."
"아..명우씨? 서정이랑 사귀었던 명우말이지?"
준기가 살짝 지수에게 눈치를 주는 분위기였다.
"서정이가...그사람이랑요..?"
준기가 조금 다급하게 끼어들었다. "응. 아주 잠깐이었어. 서정이는. 지금 결혼해서 잘사는데... 지수.. 그만해둬.." 준기가 좀 당황한 모양이었다.

"다들 과거는 있는거지요 뭐." 다희가 애써 준기를 편하게 해주려고 말을 이었다.
" 다희씨 과거는 어떤데요?"
"저요? 어...전... 굉장히 재미없는 과거죠. 한번도 사귀어본사람 없으니까요."
"어머...거짓말...이렇게 예쁘고 똑똑한사람을...남자들이 가만 놔둬요?"
"거짓말..아닌데요.. 그리고 전. 관심없거든요. 그런거."
지수가 까르르대고 웃었다.  그녀의 요란스러움이 다희와 준기를 좀 곤란하게 만들었다.
"그러고보니...다희씨...명우씨랑 비슷하네..?"
"네?"  다희는 기분나쁜 속마음을 숨기려 애썼다.
"명우씨도...숫총각일껄..아마...까르르르르"
"그만해 지수야. 가서. 일봐야하지 않니?"
"준기씨. 명우씨랑. 다희씨랑 어떨까?"
"그만하라니까!" 준기가 좀 단호한 목소리로 지수를 노려보았다.
"에이..농담 아닌데..."
지수가 사라지고
그제서야 다희는 숨이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향기가 뭍은 다희의 옆소매가 왠지 생소했다.

"미안하다...장난치기를 좋아해서 그렇지...실없는 사람은 아니야... 파리유학도 다녀왔고..한국에서 알아주는 빠띠쉐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마음은 정말 순수하고 따뜻한 사람이야.."
"왜 미안해요? 덕분에 재밌었어요."
"그만..갈까?"
다희와 준기는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준기와 택시를 타러 밖으로 나왔다.
택시를 기다리고 있는데...
준기의 전화가 울렸다.
"네. 네? 아..예..지금이요?" 그는 전화받으며 다희를 미안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미안해 다희야.." 역시나 전화를 끊은 준기는 사과먼저 했다.
"왜? 미안할거없어. 급한일있으면. 먼저 가봐. 우리가 뭐. 사귀는것도 아닌데."  다희는 웃으며 장난스레 그리 말하긴 했지만 마지막 꽁무리에 한 '사귀는것도 아닌데..' 라는 말을 이내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괜히 불편한 문장을 쓴것같아서...

"정말 미안해. 데려다 줘야 하는데.. 어머니가 지금 공항에 도착하셨데."
"아..그래..? 어서 가봐야겠네.. 서둘러. 오빠."
"미안. 그럼 내일 보자."

다희는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준기를 보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다희는 졸음을 쫓느라 애를 먹었다. 그도 그럴것이, 벌써 밤이 깊어져가고 있었고, 안하던 짓을 별별 신경을 써가며 긴 하루를 보낸기분이었다.

택시에서 내려 조금 휘청거리는 다희. 이내 찬바람에 정신을 차린 다희는 곧바로 아파트 정문을 향해가는데...

"아아악~!!!!!!!!!!!!!!"
시커먼 그림자. 길다란 막대기를 들고 다희 앞에 다가오는 한사람. 다희는 악몽이라도 꾸는듯싶어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이렇게 해야 잠에서 깨어나지 않을까...

"미쳤어요?"
불빛아래로 보니 명우였다. 또? 다희는 기가찼다.
"아니. 이 아파트에는 그쪽하고 나밖에 안사나요? 왜 자꾸 마주치는거예요? 혹시. 나 쫓아다니는거 아니예요? 여기서 기다린거 아니냐구요?" 
뜻밖에 그는 조용했다. 그렇다면..그는 스토커?
"사실은..."
소름이 쏵 끼쳐왔다.
갑자기 한숨을 쉬더니, "아니예요. 들어가요." 명우는 다희를 내비두고 밖으로 나갔다.
다희는 씩씩대며 그를 지나쳐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어 창밖을 내다 보니... 추운 밤. 명우는 아파트 앞에서 천천히 왔다갔다 제자리 걸음을 하고있었다.

무슨상관이야... 무슨일이든...나랑은 상관없지. 동생집도 있고. 아파트 경비도 있고. 경비도.. 있..? 생각해보니 경비 사무실이 비어있었던것 같았다.  그래도..동생이...? 저번에 민우씨 와이프가 놓고간 예쁜 케잌상자를 서둘러 찾아보았다. 그 안에 써있던 그들의 집 전화번호...
다희는 번호를 눌러보았다.  울리고. 울리고. 또 울리고.... 집에...없는것이 분명했다.

신경쓰지 않으려고 다희는 일부러 옷을 벗었다. 샤워에 들어가 피곤한 몸을 씻었다.
키를 잊어버렸나? 그럼 호텔이라도 갈것이지? 문득.  지갑도..없어졌나?
내가 무슨상관이야. 알지도 못하는 사람.  그래. 핸드폰은 있을거 아냐.
샤워를 마친 다희는 다시 빼꼼히 창밖을 내다 보았다.
그는 추위에 몸을 감싸고 아직도 뺑뺑이를 돌고있었다.
에이그...불쌍하네...
다희는 침대로 향해 몸을 확 풀어 내던졌다. 아...이 편안함. 따스함...상쾌함....???
아니. 왠지 떨떠름 한 기분이었다.
"에이!" 다희는 신경질을 부리며 두꺼운 코트를 걸쳐입었다.

밖으로 나오자 차갑게 얼어버린 그의 뒷모습이 더 안스러웠다.
"이봐요"
명우가 놀란듯 다희를 돌아봤다.

다희는 뚜벅뚜벅 그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덥썩 잡았다.
"뭐...뭐해요?"
다희는 홱 돌아서서 다시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명우의 손에는 만원짜리 다섯장이 쥐어져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