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희의 논리는 이러했다.
명우는 분명 칠칠맞게 집에 열쇠와 핸드폰. 그리고 지갑까지 놔두고 집 밖으로 나간것이고. 하필 이런 날 경비원 아저씨가 자리를 비우신게고. 허 참. 들어가 신세지고 쉴수있는 동생집도 비어 버렸으니 하는수없이 대강 인사하고 얼굴익은 다희를 기다렸다가 부탁이라도 해보려했는데 찬바람 쐥쐥부는 다희의 태도에 쫄아서 별소리 못하고 그냥 밖에서  발만 동동구르고 있는것.
착하고 친절한 다희는 그런 그에게 여관이라도 가서 쉴수있는 오만원을 빌려준 것이고. 그는 지금쯤 눈물로 감격하며 여관으로 향하고 있을것이다.

캬. 역시 나는 똑똑해. 다희는 세삼 잘난척을 하며 자신의 아파트 문고리를 돌렸다.
문고리를...
문을...
열쇠를...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아.뿔.싸.
다희는 빈손이었다.
명우에게 오만원을 집어주려 큰 코트를 챙겨입고 나왔을뿐.
그녀야말로 열쇠도. 핸드폰도. 경비원도 없는 야밤에 이 있을수없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다희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잠시 멍하니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어떻게 하지...? 내가. 왜 이러지...?

그때 바깥에서 사람 소리가들려왔다. 그녀는 조심스레 바깥을 내다 보았다.
명우가 어느 중년의 여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는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여인은 기사를 거느리고 명품으로 온몸을 둘러싼 재벌집 마나님같아 보였다.
다희는 일부러 다시 뒤돌아 들어왔다. 
어찌 할까...라는 생각보다 이 창피함을 어떻게라도 들키면 안됀다는 생각뿐이었다.

"철썩!" 하는 소리가 들려 다희는 무의식중에 돌아 보았다.
여인은 명우의 뺨을 치고는 뭐라고 몇마디 하더니 곧바로 돌아서서 승용차에 올라탔다.
묵묵히 서있던 명우는 떠나는 승용차에다 대고 정중히 인사까지 했다.

승용차는 횅하니 아파트길을 뚫고 나갔다.
다희는 서둘러 자리를 피하려고 돌아서다가 그만 커다란 우체함 선반 모서리에 세게 어깨를 부딫혔다.

"아!..." 일부러 속으로 참았지만 세어나오는 신음은 어쩔수없었다.
어깨를 잡고도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지만 뒤통수가 찌릿찌릿하는것 같았다.
분명 그가 뒤에서 보고있었다.

"...뭐해요?"
"아...저기...시..실은요.." 그녀는 뒤돌아볼수가 없었다. 그저..무슨말을 해야하나...고민 이었을뿐.
그는 아무말 없이 무뚝뚝하게 그녀를 스치고 지나갔다. 왠만한 사람이었으면 야밤에 젖은머리로 어깨를 아프게 감싸고 있는 다희에게 당연히 괜찮냐..고 물었을법한데...그는 역시 매너 빵점이었다.

그런 명우가 잠시 걸음을 멈추더니.
뚜벅뚜벅 다희에게로 다가왔다.
그는 말없이 다희의 손을 확 가로챘다.
"아..." 방금 다친 어깨의 통증으로 그녀는 또 참을수없는 신음을 했다.

돌아서서 다시 걷는 명우.
다희의 손에는 아까 다희가 명우에게 줬던 오만원이 쥐어져있었다.

"아니 이봐요!"
그는 말없이 걸었다.
자기도 모르게 다희는 그를 쫓아갔다.

"서 명우씨. 사람의 친절을 이런식으로 갚으시는군요."
"친절?"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다희를 돌아보았다.
"그래요. 집에 열쇠두고 나온거 아니예요? 그래서 여관이라도 가시라고."
"왜 맘대로 상상해요?"
"그냥...제가 워낙 착해서.." 다희는 대강 얼버무렸다... 틀린건가....싶어서.
그가 피식 웃었다.
왠지.
다희는 몸이 굳었다.

"저 열쇠있으니까. 가서 주무세요 의사선생님."
"전!" 다희가 다급히 소리쳤다.
명우가 뒤돌아 보았다.
"전...열쇠 없어요...두고..나왔...그리고 전 지저분한 여관같은데...못...가거든요..?"
눈물이 맺힐것만 같았다. 너무너무 챙피해서...
그가 고개를 숙였다. 웃음을 참듯...

"그래서..저한테 뭘 어쩌라구요..?"
그는 그래도 매너가 빵이었다. 이쯤됬으면 이 아름답고 여린 처녀에게 좀 수그러들만도 한데...
"경비아저씨한테. 전화좀 해줘요."
이제 뭐. 더 챙피할것도. 숨길것도 없었다.

그는 잠시 그녀를 쳐다보더니 다시 뒤돌아 걸어갔다.
"따라와요."
얌전한 강아지처럼 다희는 그의 뒤를 쫄쫄 따라갔다.

그는 아파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뜻밖에 그의 집은 무척이나 깨끗했다.

그는 집안으로 들어가더니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역시...무 매너...
아..그런데 서정이가 왜 저런사람이랑 사귀었을까?
순간 그것이 몹시 궁금해졌다.
다희는 발을 동동구르며 그를 기다렸다.
곧 명우가 나왔다. 그의 손에는 몇가지 옷과 세면도구등이 들려있었는데...

"뭐..예요..?"
"이런 늦은 밤중에 어떻게 경비아저씨를 깨워요? 착한사람이..그런것도 몰라요?"
다희는 할말을 잃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럼...같이 자자는거야 뭐야?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여기서 자요. 내가 여관으로 갈테니까."
그는 다희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문밖으로 나갔다.

"저기요! 잠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