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아침일찍, 다희는 항상 그러하듯이 예쁘게 차려입고 문앞을 나섰다.
그녀는 곧장 명우의 아파트로 향했는데..

띵동...
조금을 기다렸다.
다시 띵동...
다희가 시계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돌아서려는데 그제야 문이 열렸다.

하얀셔츠에 베이지색 정장바지를 입은 명우의 모습은 얼굴에 상처만 아니면 무척 깨끗해 보였다.
명우의 얼굴에 땀이 맺혀있었다. 가쁜숨을 가다듬으며 다희를 보고 명우는 좀 놀란듯했다.
"왜..."
다희는 대답없이 명우의 아파트를 잠시 둘러보았다.
어젯밤의 흔적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깨끗히 치워져있었다.
"정말 피곤한스타일이네..." 다희는 고개를 흔들며 혼잣말하듯이 말했고..
명우는 힘겹게 숨을 한번 내쉬었다.
"다친사람이 좀 가만히있지 청소는 왜 해요? 좀 누워있지 못하고 -"
그는 대답대신 고개를 잠시 숙였다가 다시 다희를 보았고. 
"결벽증이라도 있나요?"
"집내논거. 어제 얘기 들었쟎아요."
"그렇다고 혼자서 그몸으로.."
"괜찮아요. 이만 가보시죠."
"전 안 괜찮거든요!"
명우가 문을 닫으려다가 놀란눈으로 다희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따라와요." 다희는 명우의 팔을 잡아당겼다.
"뭐해요?" 명우는 아픔을 참으며 좀 찡그렸다.
이러면 안돼겠다 싶은 다희는 명우의 손을 가로챘다.
명우는 당황한 모습으로 어쩔수없이 다희에게 끌려나갔고..
말없이 다희는 자신의 차에 명우를 밀어넣었다.
"지금. 뭐하는거예요?"
다희는 다소 냉정하게 명우를 돌려보았다. "의사질 하는거예요."
명우는 무지막지한 다희를 이길수없어 한숨을 쉬고 차문을 열으려고 했고, 다희는 쐥하니 차를 몰았다.
다희는 핸드폰을 꾹꾹 눌러 전화를 걸었다.
"어. 현수야. 그래. 잘있었어? 응. 너희 감독님. 오늘 바쁘시지? 응...아. 그래? 오늘 오전미팅은 오후로 미뤄줄래? 감독님. 많이 다치셨어. 병원에 오셨는데 X-ray하고 검사좀 해야겠네. 지금 직접 전화 거실 상황이 아니라서. 그래. 그럼 부탁해. 수고해."
명우는 다희를 믿을수없다는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봐요?" 다희는 뻔뻔스럽게 차를 몰았다.
"차 세워요."
"이봐요. 착각하지 말아요. 내가 딴생각으로 이러는거 아니예요. 당신. 지금 치료 받아야 해요. 지금. 열나잖아요. 식은땀이랑. 지혈도 제대로 안됐고. 빨리가서 꼬매지 않으면 안돼겠어요.  저를 돌팔이 의사로 만들지 않으려거든. 아무말 말고 좀 있으세요."
명우는 무슨말을 하려다가 포기한듯 창밖을 내다 보았다.
"사람이 아프면 병원에 가고. 다쳤으면 치료를 받을줄알아야지. 무식하게 왜 그래요 대체?"

병원에 도착하고 다희는 명우를 부축하려고 잡았다.
"됐어요. 걸을수있어요."
"걸어봐요 그럼." 다희는 한발짝 뒤로 하고 명우를 지켜보았다.
명우가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어쩐지..." 다희가 혀를 끌끌차며 명우의 팔을 잡아 부축했다.
"다리도 다쳤네요. 왜 말을 안했어요?"
명우와 다희가 병원 정문 앞으로 들어섰는데..

"다희야..."
서정이었다.
명우와 다희. 둘다 조금 당황했지만. "아 서정아. 민지는. 어때?" 다희가 아무렇지도 않은듯 물었다.
"응? 어...민지..좋아졌어. 이제 말도 조금씩 하고...근데...명...우..오빠..다친거예요..?"
"..."
"걷기..힘들어요..? 오빠...대체.."서정이는 명우곁으로 다가섰다.
"됐어. 잡지마." 명우가 먼저 걸음을 옮겨 자리를 피했다.

다희는 한숨을 푹쉬고 명우를 열받은 눈으로 쳐다봤다.
"서정아. 이따 얘기 하자. 저사람 딴데로 튀기전에 치료실로 좀 옮겨놓고."
뒤에 남겨진 서정이는 물끄러미 지나가는 두사람의 모습을 보고있었는데...

"사람이 왜그래요? 다른사람 무안한건. 생각안해요?"
명우는 대꾸없이 앞만보고 걸었다.

"정교수님 - 일찍 오셨네요"
"네. 안녕하세요. 저기 이 환자좀 봐주세요. 가슴이랑 오른쪽 무릎. x-ray 찍어보고. 타박상 상처부위랑 검사해서 좀 알려주세요. 전 일진 다녀올께요. 부탁해요."

"명우야!" 준기였다. 명우의 상처난 모습을 발견하고 준기가 명우에게 뛰어왔다.
"명우야! 이게 어떻게 된거야? 왜 -" 그제서야 다희를 본 준기는 놀란듯 잠시 말을 잃었다.
"오빠. 잘 잤어..?" 순간 이 상황에 전혀 어울리지않는 인사가 튀어나왔다. 
"어...너..명우랑. 같이 온거야?"
"응. 같은 아파트쟎아. 많이 다치셨길래 내가 모시고왔지."
준기는 좀 이상한듯 명우를 보았다.
"별거 아니야."
"전에 그 놈들이야?"
명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다희는 두사람의 눈치를 좀 살피다가 급히 걸음을 옮겼다.


"좀 어때요?" 일진을 마친 다희가 급하게 간호사를 찾았다.
"어우. 교수님. 그 사람. 벌써 갔어요."
"네? 아니....결과는요?"
"외상도 그렇지만 뼈도 많이 부러졌고, 다리쪽에는 염증될 우려도 있어서 선생님 다시 보시게 기다리시라고 했는데 치료마치자 마자 처방만 가지고 급하게 떠나시던데요?"
정말 속이 상했다. 아니 뭐가 그리 급해서...

"다희야."
"어! 준기오빠!"
"명우...찾았니?"
"어. 아니...그런데. 오빠는. 그사람 가는거 봤어?"
준기의 표정이 좀 이상했다. 의아한듯. 아니 조금 실망스러운듯.
"...어머니댁에 간다고 하더라."
"그래?...." 다희자신도 모르게 긴 한숨이 새어나왔다. 성치도 않은 몸으로 또 그 조폭여사를 찾아갔다고...
"너. 명우에 대해서 얼마나 아니?"
"응? 그게..그냥..같은 아파트에 사니까..여차저차해서 자구 마주치게 되네...또 병원에서도 마주치고. 저번에는 방송국에서도 만난거있지. 참. 별일이야."
준기의 눈동자가 조금 흔들리고 있었다.
"인연이...있나보네."
"오빠는. 그런거 믿어?"
"음. 믿어."
다희는 가볍게 웃었다. "난 그런거 안믿어. 만날수록. 짜증만 나는 사람이야."
"그래?... 명우...참 좋은 녀석인데. 내가 여자라면..반했을만한..."
"오빠 너무 오버한다." 다희는 정말 우스워서 크게 웃었다. 말도 안됀다 생각하면서...
"그런사람. 남편감으로 빵점이야. 매너없지. 불친절하지. 사람말 되게 안듣지. 스스로 챙길줄도 모르고. 뭐. 내가 남편감 고를상황은 아니지만."
"왜 아니야..? 너..결혼해야지."
"난 지금이 좋아. 그런거 관심없고. 또 쭉 관심없을거야."

"너무 자신하지마. 사랑은 예고하고 찾아오는게 아니야."

"와...오빠. 오랫만에 정말 여유가 생겼나부다. 그렇게 멋있는말도 하고?"
"그래. 덕분에."
"덕분이라니..오빠도 알면서..?...의사는 도구일뿐이잖아. 삶의 결정은 다 위에서 하시는거고."
"겸손하긴... 고마와. 그날밤에 니가 병원에 없었으면 어쩔뻔했어..?"
"그때 명우 그사람만 아니었어도 일찍 집으로 갔을껄...알고보면 그 사람도 도와준거네."
다희는 밝게 웃었다.
준기의표정은. 밝지만은 않았다.
"너...명우랑...친해졌나보구나."
"응? 아니야. 그런거. 아. 이럴게 아니라 민지한테 한번 가보자. 응?"
준기오빠가 자신없는 미소를 짓는것이 왠지 마음에 걸렸다.

퇴근하는길. 전화가 울렸다.
못보던 번호였다.
"여보세요."
"...."
"누구세요? 말씀하세요."
"저예요."
"명우..씨?"
"...."
"여보세요? 지금 어디예요?"
"......집앞..."
"괜찮으세요? 아픈거예요?"
"의사가 필요한데요."
"네? 또 다쳤어요?" 다희는 맘이 조급해 져서 신호등을 지나칠뻔했다.
"아니요.."
"지금 거의 도착했어요. 기다려요!"  전화를 끊고 서둘러 운전대를 돌렸다. 아..왜 이렇게 심장이 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