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일요일에도 보통때 처럼 점심을 준비해서 아버지를 방문 했습니다. 그동안 매주 세번은 아버지를 찾아 뵙는데,  음식을 하신지가 오래 된 부엌의 싱크대를 닦고 정리를 하기도  하고,  점심을 잡수시는 동안 옆에 앉아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아버지와  함께 하는 시간을 즐기려곤 했습니다.

이주 전에  한 친구가 이사를 했었습니다. 친구는, 작년에는 아들이 해군에 입대를 했고 이번해에는 막내딸이 대학입학을 하게 되면서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하였고, 필요없는 물품들을  버리고 정리하면서  새로 사야 할 살림들도 하나씩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주위의 사람들은  쓸수 있는 물건들이지만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친구에게 주었고, 나도 친구에게 필요한 몇개의 물품을 주면서 더 필요한 것이  있는지를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친구가 자신의 부엌에서 쓸수있는 작은테이블이 하나 필요하다고 했고, 아버지가 계시는 부엌에  작은 밥상 같은 테이블이 두개나 있는 것을 생각해 내고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 아버지, 이 테이블을 쓰지도 않으시니까 나 주세요. 필요한 친구에게 주려고."

나는 당연이  "그러렴." 하실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음식을 잔뜩 넣은 입으로 이렇게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 나 죽거든,  네 마음대로 가져가."

아주 실망이었고 놀랄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냥 조용히 "싫다."  라고 하셨을수도 있었겠지만,  한구석에 밀어 나있었 고  쓰지도 않는 테이블에 집착을 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그리고 있던  자상스러운 아버지은 전혀 볼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그동안 나에게 보여준 아버지의 상은 그렇게 존경할수 있는 모습은 아니였습니다. 그렇지만  89살의 아버지께서는 병원 출입도 잦아지고 바깥 출입은 거의 없으실 정도로 걸음걸이도 불편하셔서 집안에만 계셨고, 혼자 계시는 시간이 많아짐에  따라 그동안 살아오신 세월과 경험을 되새기고 마음의 정리를 하고 계실줄 알았습니다.  내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하는 동안 졸업식장에 한번도 참석한 적이 없었던 아버지, 조그만 아파트에서 시작 한 결혼 살림에  창피하다고 한번도 찾아 오시지 않았던 아버지, 노산에 아들을 낳고 몸이 무척 아파 힘들던 나에게 마른 미역줄기 를  사다 주면서 끓여 먹으라던 아버지, 아들이 태어나서 생사를 다투던 일년동안 병원을 한번도 찾아 오시지 않던 아버지, 왜 그런 아들을 낳았느냐고  나에게 묻던 아버지, 나를 볼때마다 동생의 아이들이 얼마나 똑똑한지를 자랑하시던 아버지....

그렇지만 좋은 기억도 있긴 있습니다. 어렸던 나를 무릎에 않혀놓고 손톱을 이쁘게 잘라주시던 아버지, 하얀 도화지에 붓글씨로  기역, 니은을 써서 학교 들어가기 전에 미리 한글을 가르쳐 주셨던 아버지의 자상하시던 모습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니까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나에게 아버지는  다정하시고  따뜻한 분 이셨습니다.

나는 얼마전에 "제일 등급의 광기(A First Rate Madness by Nassir Ghaemi)" 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다섯살때 이란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왔으며,  대학에서는 역사를 전공하고 하버드에서 신경정신과를 전공한 후에 지금은 터프스(Tufts)대학에서 교수로 계신 분이 쓰신 책입니다.  이책은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역사적인 인물들을 정신 신경학자의 눈으로 파악하고 설명하면서 자세하게 나열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어려운 시절에,  평범한 사람들에게 행동으로서 용기와 힘을 불어 넣어주었던 지도자들---윈스턴 처칠, 루즈벨트 대통령, 간디, 닥터 킹, 링컨 대통령, 케네디 대통령등에 대해 남겨진 문서들과 그들을 치료했던 의사들의 노트를 읽고 비교하면서 이 모든 분(!!)들이 겪었던 우울증과 자살미수등의 여러 복잡한 심리적인 중상들을 이야기하면서, 약점일수 있는 정신적 결함이 결국  불안한 시대의 지도자로서 장점으로 나타날수 있었던 일들을 자세히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관심을 끈 이야기는 "간디"에 대한 정신 분석입니다.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간디"는 깨달음을 얻은 "무저항 주의자"로 대영제국에 반항을 한 사람으로 유명하고,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수많은 감명을 주는 사람으로 알려있는데,  진실은 아주 다른 면이 있음을 볼수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 시절의 간디는 "나는  겁장이 입니다. 나는 도둑, 귀신, 뱀이 무서워서 괴로워 했습니다. 나는 밤이면 밖에 문을 열고 나갈 생각도 못합니다. 어둠은  공포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방에 불이 없으면 잠을 잘 생각도 못합니다." 라고 일기장에 쓰곤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간디의 타고난 수줍음은 영적인 삶에 필요한 침묵으로, 내성적인 성격은 물질적인 세상에서 벗어 난 수도자의 성품므로 우리에게 보여져 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간디의 심한 우울증은 잘 알려져 있으며 그런 영향이 다른 사람에 대한 연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거라는 짐작을 저자는 하고 있습니다.

 간디에 대한 글을 읽다가, 내가 더욱 관심을 갖고 읽게 된 부분은 간디와 아들과의  관계입니다.  그의 큰아들은  사기를 치고,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고, 집창촌을 다니면서 간디에게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들을 합니다. 그리고 큰아들이  쓴  편지에서는 자신의 아버지인  간디는 자식들을 돌보지 않고 무시했으며, 영국대학에 가서 법을 공부하고 싶어하던  자신을 거절했다고 쓰고 있었습니다.  간디의 장례식에도 거지 처럼 하고 나타나 어느 누구도 그를 알아볼수가 없었고, 그는 결국   알코홀 중독자로 홈레스로 지내다 간경화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 사실을 읽게 되면서 다시금 알게 된 것은 이세상에는 완전한 사람은 없다는 새삼스러울수 없는 진실입니다. 영웅으로 불리우는 사람들의 인간적인 결함을 더욱 자세하게 깊숙히 알게 되면서, 살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실망스러운  관계를 상처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그들이 갖고 있는 인간적인 본성을 바라 볼수 있는 눈을 갖는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 것 입니다.   그런면에서 내가 갖게 된 아버지에 대한 실망은, 내가 생각한 "너그러운 아버지" 를 갖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실망이지 결코 아버지의 진실된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인 것 입니다.

아버지와는 자주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언젠가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대대로 서울에서 살아 오신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서 일제 말기에 대학을 다니시다가  학도병으로 일본으로 끌려 가시게 됩니다.  한국으로  돌아오신 후  한국 전쟁 중에는 여기 저기 숨어다니시면서 가족들과 삼촌들을 책임져야 했던 어둡고 추웠던 상황은, 물론 우리 국민 모두가 겪었던 일이였겠지만, 아버지에게도  분명 쉽지는 않았을 상황이였을 것입니다. 결혼을 하신 후에도  할머니와 삼촌들을 도와야 했던 빠듯한 살림살이에  자신을 위해선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아쉬움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며,  엄마가 돌아가시고 다시 결혼을 하시게 되면서  더 많은 책임을 지게 된 부담감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 와중에 막내 동생을 백혈병으로 잃게 되는 고통스러운 시간도 보내시는데, 아버지는 주어진 삶의 무게에 허덕이면서도  성실은 하셨지만,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어떻게 하면 슬기와 지혜로 잘 살아갈수 있는가에 대한  어떤 생각의  여유도 전혀 갖지 못하시고 살아오셨을 거라는 상상을 할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본다면  이제는 내가 아버지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좀더 따뜻한 눈으로 바라볼수 있는  나이가 되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버지가 이제껏 살아오신 모습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지금 살아계신 아버지에게 내가 해야 할일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일이 중요하다는 마음이 듭니다. 내가 원하고 있는  "지혜스러운 아버지상"을 원하기 보다는, 내가 우선 "  너그러운 딸" 의 행동을 보여 드리는 생활을 갖어야 할 것 같아 보입니다.

이렇게  알고는 있지만, 아버지에게서 받은 실망감에서 아직까지 벗어 나지 못한 느낌을 받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야 이 모든 것을 " 그럴수 있는 일"로 받아들이지는  나는  잘모릅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여름이면 마루에서 놀다가 쓰러져 자던 나를 안아서  방안에 처있던  모기장안에 내려 놓으면서 삼베이불을 덮어주시던 기억, 어렸던 나의 작은 손을 잡고 한글 쓰는 방법을 자세히 가르켜 주시던 모습 을 기억하고 있는 한, 아버지에 대한 갈등은  길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실망스럽고  부담스러운 일들은 기억속에서 희석 되어져서, 책을 좋아하시고,  시읽기를 좋아하시던  순수하고,  성실하셨던  아버지의  모습만을 기억하려 노력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