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방치한다면? 그러나 가꾼다면…    2013년 12월

우리 집 담 언저리엔 몇년 간 고개만 내민 채 기웃거리는 건너편 집 나팔꽃이 있었다. 보라색 자태를 나팔불듯 폼내고있는 모습에 모 집사님은 저 줄기를 우리집 담벼락으로 유인해 키우면 내 화단과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조언을 해주기도 했었다.          

그 뒤, 여름 두달간을 한국에서 보내고 온 뒤, 내 작은 가든은 주인이 없어진 것을 알았는지 풀죽은 아이 마냥 죄다 늘어져 있었다. 놀라운 것은 나팔꽃도 주인없는 것을 어찌 알았는지 줄기 하나를 슬쩍 우리 쪽으로 늘어뜨리고 있었다. 문득 모 집사님의 조언이 생각나기도 했고, 해야할 일들도 산더미였기에 핑계삼아 모든 화단 정리는 일단 뒤로 미루기로 했다. 더불어 약간의 귀챠니즘도 발동되어 화단 정리는 차일피일 미뤄지게 되었고 내 화단은 데모라도 하듯 헝클어져가는 느낌, 딱 그 느낌으로 점점 변해가고 있었다.

세 달이 흐르자, 방치의 끝을 보여주었고 더 이상은 내 양심도 그것을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걷어치운 나팔꽃 줄기는 한더미였다. 감을 수 있는 것들은 모조리 말아올라간 줄기들을 보니 스물스물 휘감아올라가는 사악한 능구렁이의 모습과 무척이나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넘어오기 전까지는 꽤나 경계하는 태세더니 한번 틈을 내주니 기회를 놓치지않고 마의 손길을 뻗어 모든것을 휘감아 자신의 손아귀에 넣어버리는 모습. 흠, 사단의 전략과 꽤나 닮아있군! 이것들, 앞으로는 절대 넘어오지 못하게 하리!

때마침 모 집사님이 오셔서 풀이 죽어있는 화단에 물을 주셨고, 며칠동안 하나님께서도 알맞게 비를 내려주셨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모든 화단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역시 식물이나 사람이나 방치해서 광이 날 수 없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모든 생명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들임이 틀림 없었다. 다시 예뻐진 내 작은 가든을 보니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