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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가는 여행

요셉, 평화를 가진 사람-마태오를 따라서 오 은정 (sungshim7614) 2014-3-14  20:12:13

3

묵상 1

족보의 의미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통해서 이미 구원이 이방인인 나에게까지 이르게 하셨다는 생각입니다.


나와 내 가정의 구원

내가 중학교때에 감실앞에서 기도하기 시작했었고,

20대에 주님을 체험했어요.

결혼을 고민할때에,

내가 너를 위해서 준비해둔 사람이라고 주님의 음성으로 남편에 대한 메세지를 들었어요.

그래서 망서림없이 결혼했는데,

결혼 10년간은 무진장 싸웠어요.

맞는게 하나도 없었지요.

나는 시골깡촌에서 자란 사람이고 남편은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어서

서울깍쟁이, 나는 시골촌 여자.

그러니 맞을게 없었는데,

10년간 죽을듯이 싸웠는데도, 10년이 지나니까 주변 사람들이 인정을 해주었어요.

네 남편은 정말로 너를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말이지요.

그렇게 싸웠는데도, 남편은 10년만에 저에게 고백했어요.

“10년을 살면서 당신을 통해서 당신과 함께 하는 하느님을 보았다. 나도 이제 그 하느님을 믿고 싶다.

그리고 미국에 와서는 직장을 가질려고 할때에 기도중에 두지를 깊게 체험했어요.

여기는 네 남편의 광야다. 내가 이제 네 남편을 만나려고 한다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어요.

그래서 남편의 광야를 바라보면서 어려운 시간들을 견딜수 있었고,

또하나는 기도중에 죽음을 체험했는데, 거기서 내 신앙생활중에 만난 모든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한 내 모습을 보여주셨고, 아직 다하지 못한것이 아이들이라는것을 보여주였어요.

그래서 기도하면서 아이들을 위해서 산 시간들이 대부분의 여기시간들입니다.

지금은 아이들이 대학생인데 하느님이 계심을 확실히 믿어요.

그리고 이제 아이들이 자기들의 광야로 나아가게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면서 하느님은 우리가족들을 한사람씩, 모두를 만나주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의 시간들은 우리 가족들 각자가 자기의 믿음으로 주님과 함께 나아가서 자신들의 구원을 이루어나갈거라고 믿어집니다.

 묵상 2

요셉

처음 묵상할때에 요셉이 의인이라는 말에 조금은 저항이 느껴졌어요.

근데 기도중에 아브라함과 이삭이 기근이 들어서 이집트로 내려갔을때의 행동들, 모세의 미디안광야로의 도망등이 생각이 났어요.

그래서 그순간에 깨달았어요.

주님안에서 의인이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향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요.

그 마음한자락이 주님안에서 믿음으로 함께 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의인의 인격은 믿음이 자라는 동안에 개선이 되어가는것을 의미하기도 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다음은 편하게 요셉이 온유한 사람이는 생각이 들었고 거기에 머무를수 있었어요.

그런데 기도중에 아주 빠르게 생각이 들어왔어요.

주님은 왜 요셉을 선택했을까요?”

순간 제가 자식을 기르는 모습들이 쭉 떠오르면서, 마음으로 들어오는 생각이 있어요.

양육자의 태도라고 들어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에 대한 것에 생각이 멈춥니다.

성서는 예수님에 대한 어린시절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되고,

예수님의 어린시절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인성을 자라나는것이 아니라 양육되어지는것이고,

에수님의 신성은 예수님안에서 각성되어서 깨어나야함을 생각합니다.

인성이 양육되어지는것은 그 인성이 양육자의 주관에 의해서 길러지는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즉 우리가 우리자녀를 기르는것과 같습니다.

요셉의 양육자로서의 태도가 예수님의 인성을 어떻게 길러주느냐도 중요할수 있다는생각입니다.

우리는 인성으로서 나와 같은 자식을 만들어냅니다.

그것은 우리안에 바로 자신이 있기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인성은 요셉의 인성대로 길러지면 안되는것이지요.

예수님의 신성이 인성안에서 각성되어야하고, 어린시절의 예수님은 인성과 신성의 충돌이 없을수가 없겠지요.

거기서 저는 이것을 조화롭게 해줄 사람으로서 요셉이 선택되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바로 요셉에게 온유함이 있었을거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이 온유함을 들어서 주님의 아버지로 선택하셨구나! 하고요.

예수님의 인성이 요셉의 심성대로 길러지는것이 아니라 주님앞에서 자라나도록 해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성이 자라나도록 돌본다는것은 적절하게 기다릴줄아는 사람을 만들어 주는것입니다. 이것이 30년의 시간을 기다려서 일하게 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볼수 있게 해주는것일지도 모르겠군요. 오랜 기다림을 견디며 준비할수 있게 해주는것이 바로 요셉의 온유함, 더나아가서는  겸손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기도를 하면서 잠기 마음의 평화, 나를 기쁘게 하는 평화를 느꼈어요.

그 순간에 온유함은 평화를 가진자의 마음이라고 깨달았어요.

하루종일, 나를 기쁘게 하고, 주변을 환하게 해주는 어떤평화에 머물러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지금 이 마음처럼 요셉의 삶이 그러했을거라 생각했어요.

요셉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 바로 이 온유함속에서 평화를 가진 사람의 마음이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요셉의 모습에서 토마와 같은 나를 보고 있습니다.

의인은 많은 부분에서 우리와 같이 두려워하기도하고, 소심하게 굽니다만,

그래도 그들은 움직이라는 주님의 뜻을 바로 그자리에 받아들이고 행동하는것을 봅니다.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는 요셉의 모습을보면서 나의 순종을 생각해봅니다.

그러고보면 나의 순종은 내가 이해되어야만이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 “! 당신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나에게 그것을 확인시켜주세요!”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주님의 뜻을 분별한다고 시간을 보내지만

정작 시각을 다투는 일이 온다면 나의 순종은 이미 늦어버리겠지요.

 

묵상 3

이 묵상을 하기가 어려웠어요.

제가 특별히 함께 행동해야만 하는 공동체에 있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할수 있는 묵상들을 하기로 했어요.

제가 뛰어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를요.

제 기도그룹원들은 모두가 다 10년을 넘게 기도를 한 사람들이라서 신앙적으로 다들 잘 믿고 잘사는데, 종종 기도를 분별해달라고 할때에, 제가 기도와 생활이 다른 부분을 찾아내주거든요.

그러면서 내안에는 그 사람의 과정에 대한 판단이 서게 되요.

그런데 그것이 나와도 맞물려 있다는것을 깨달았어요.

그것이

내가 교만하게 굴때에는 나는 그들의 기도와 생활에서 교만을 찾아내게 되고,

내가 시기 질투가 있을때에는 그들안에서 그 모습들을 보게 되요.

결국은 내가 하게 되는 분별이 그들안에서 나를 분별하게 되는것과 같다는것을 알게 되었어요.

내가 지금가고 있는 과정이 내 눈에 보일수 밖에 없고, 내가 그것에 촉수가 있을수밖에 없다는것을 깨달았어요.

 내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자원들, 즉 기도의 체험이나 삶의 경험들이 내게 있는 한

나는 나의 모습을 상대에게 투영할수밖에 없다는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묵상끝.

 

 

아래는 제가 기도하다가 드는 생각을 그냥 적은거에요

이미 저의 묵상은 아주 처음부터가 아니라 이렇게 어느정도 배운 지식아래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볼수 있습니다.

만일에 제가 마태오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다면 제 묵상은 사뭇 다른 쪽으로 흘러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이런 점에 유의하여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 스스로의 묵상을 살핌으로써, 자신을 잘알기 위함과 그런 자신의 인식이나 한계를 넘어서 주님께 잘가기 위함입니다.

묵상이 이렇게 자기안의 자원, 즉 지식이던지, 감정이던지를 통해서, 즉 자기안의 무엇을 매개로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말씀묵상은 거기에 아무것도 없이는 출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묵상이 기도가 되어도 우리가 식별하기는, 기도처럼 올곧게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메세지도 이렇게 자신을 투과해서 나올수 있다는것을 생각해야합니다. 이렇게 내안의 나의 무언가를 딛고서 주님을 향해서 가는 길이 묵상이라고 불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성인의

(성무일도 연중 6주일의 제 2독서-성에프렘 부제의 디아테사론 주해)

누가 말씀의 보화의 한부분을 접하게 될때 자기가 찾아낸것이 그 말씀에 담겨있는 유일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 안에 담겨 있는 여러 보화중에 한가지만 찾아낼수 있었다고 생각해야합니다는 말씀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즉 같은 성서 말씀이라도 나의 자원을 통해서 이루어진 묵상이 나의 보화인 것이지, 다른사람에게는 각기 다 다른 보화가 있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그것이 각자가 다른 것들을 품고서 거기에 말씀을 받아들이기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자기의 묵상이나 다른사람의 묵상을 살핌으로써 그것이 자신과 사람을 판단하는 도구가 되지않게 하기 위해서 노력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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