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역 25. 나의 아동기

기도

주일-금요일:  2열왕 4,16-20, (이어서) 4,33-37

치유를 위한 용서와 화해

어떤 사람을 두고 용서를 청하는 기도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시시때때로 저는 분노에 사로잡혔고 용서하기가 너무도 어려워서 기도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 중에 용서가 지금 내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상처받았을 때 나의 영혼도 함께 다쳤다는 것을 이해했던 것입니다. 그 순간에 제가 다쳤던 때가 기억났습니다. 다리가 가시에 긁히고 깊이 파여 어떤 연고를 발랐는데 그 연고를 거의 몇 주일 간 계속해서 발랐던 기억이었습니다. 그래서 아! 하고 깨달았습니다. 내 영혼이 다쳤다면, 이렇게 몸이 낫도록 계속 연고를 바르는 것처럼 내 영혼에다가도 계속해서 연고를 발라야 하는구나, 그 연고가 바로 용서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 묵상을 통해서 용서는 상대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한 일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영혼이 받은 상처는 우리가 우리의 상황을 이해함으로써, 예수님과 화해할 때 낫습니다. 화해를 이루는 과정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용서하도록 의지를 갖는 것입니다. 이 용서의 은총을 우리에게 주시는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기도 중에 치유됨으로써 받게 되는 은총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마음속에 깊은 평화가 있고, 감정의 조절이 가능해지고, 감각이 좀 더 맑아집니다. 그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신비 중의 하나는 치유됨으로써, 그 상처가 주고 있던 영향들이 순식간에 거두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회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일입니다. 가족 간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회복이 되고, 그 영향 아래 있었던 사람들과도 회복이 됩니다. 상처로 인해서 뒤틀려 있었던 것들이 그 원인이 없어짐으로써 해소되는 것이겠습니다만 하여간 실제로 회복을 체험하는 것은 놀라운 체험입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기도를 통해서 치유 받아야 할 이유입니다.

어느 시기에 상처를 깊게 받게 되면, 그 시기 이후로 우리 정신은 더 성장할 힘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한마디로 성장이 멈추는 것과 같습니다. 특히 가풍 안에 이어지는 양육에 관한 것은 자녀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게 됩니다. 예를 들면 깊이 상처받은 엄마에게서 자란 아이는 자신도 엄마와 같은 마음 상태로 자식을 양육하게 되는 그런 대물림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 알게 모르게 상처로 인해서 마음이 성장하고 있지 않다면, 자기를 찾는 여행을 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내적 치유가 자기도 모르게 일어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기도를 깊이 할 때 그 속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느님의 빛으로 정화가 이루어지는 경우입니다. 즉 기도가 깊어지게 되면 자기 안에 있는 것들이 모두 드러나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정화가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이때 내적인 치유가 일어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내적 치유를 할 수는 없으며 우리가 깊이 기도하게 될 때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부분까지도, 치유를 통하여 하느님께 가까이 갈 수 있게 정화를 이루어 주시는 과정입니다.

<기도 이야기 15>

“자기 아버지에게 나갔다가” (2열왕기 4,18)

1.

열왕기를 묵상할 때 ’자기 아버지에게 나갔다가’라는 구절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기도 중에 제가 선택한 구절이 바로 ‘들에 나갈 나이’라고 바뀌길래 그대로 묵상을 계속했습니다. 그냥 마음으로 한 아이가 느껴졌습니다. 그 아이가 어딘가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멍하니 그냥 어딘가를 응시하는 것 같은데 딱히 사물을 집중해서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작은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그 아이가 저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2.

기도가 끝나고 생활 속에서도 그 아이의 눈이 제게 계속 머물러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바라만 보고 있는 거지? 그리고 다시 기도 속으로 갔을 때 저는 또 그 아이의 눈을 바라보고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아이가 저 자신이라는 것이 이해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생각들이 다 제게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예뻐하다가 미운 짓 한다고 저를 내치기 시작했습니다. 어딜 가도 귀찮아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그게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이상하다? 왜 나를 계속 예뻐해 주지 않는 걸까? 그 아이에게는 이것이 정말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요.’하고 그 아이의 마음이 저에게 말하는 것처럼 이해됩니다.

3.

기도가 끝나서 앉아서 ‘이게 뭐지요?’ 주님께 여쭤보게 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제가 왜 그러고 있지요? 여쭙고 있었습니다.

4.

저는 여전히 기도 중에 그 아이(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음속에서 미운 일곱 살이라는 우리 속담이 떠올랐습니다. ‘미운 일곱 살? 이건 또 뭡니까? 하고 있으니 갑자기 벼락같이 생각이 밀고 들어옵니다. 아하! 내가 진짜로 미운 일곱 살이 된 거구나! 제가 여기저기 얼마나 미운 일곱 살이 되어서 다니고 있었는지요! 그리고는 저를 예뻐했던 사람들이 다 저를 미워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이해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를 대하는 사람들의 갑작스런 낯선 모습에 상처 받고 있었구나,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렇지요? 어린 저로서는 그것이 정말 상처를 줄 만했겠지요! 엄마가 없다고 저를 사랑해주었던 사람들이, 자유롭게 사람들 사이에서 망둥이가 되어있는 저를, 이제 좀 커서 다듬으려고 하니 그게 갑자기 다듬어졌겠느냐고,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바라보는 어린 아이들이, 저의 사촌들이라는 게 마음에 떠오릅니다. 아! 저는 할머니가 그 작은 아이들을 보살펴야 하는 것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은 거네요.

5.

‘그렇게 상처 받았었구나!’ 하면서도 또 다른 마음 한편으로는 이상하게 기쁨이 올라와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야말로 어린아이였으니, 그것이 그때는 정말 아픈 거였다는 게 완전히 이해가 되어서, 지금 치유가 되었구나,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그때까지도 사랑하셨을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에게도 감사를 드렸습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이해하지 못해서 생긴 상처들도 있었던 것이 놀랍습니다.